지난 10월 20일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박근혜 대통령의 ‘일탈’을 막지 못한 청와대 참모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0일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박근혜 대통령의 ‘일탈’을 막지 못한 청와대 참모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photo 뉴시스

2015년 말 대학교수들이 올해 병신년(丙申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한 바 있다. ‘혼용무도’는 ‘혼용’과 ‘무도’가 합쳐진 합성어로 ‘혼용’은 말 그대로 ‘어리석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두뇌가 모자라고, 어떤 재능도 없는’ 상태나 사람을 가리킨다. ‘무도’는 글자대로라면 ‘도가 없다’는 뜻인데, 대개는 ‘대역무도(大逆無道)’나 ‘황음무도(荒淫無道)’라는 네 글자를 많이 쓴다. ‘무도’는 덕을 베풀지 않는 포악한 정치, 그로 인해 조성된 암울하고 혼란한 정치 상황, 그런 정치를 일삼는 통치자를 나타내는 단어로 수천 년 동안 수없이 사용되어왔다.

지금의 나라 사정은 불행하게도 혼용무도라는 사자성어가 딱 들어맞는 상황이 돼 버렸다. 최순실이라는 한 여자에게 휘둘린 어리석은 대통령으로 인해 나라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큰 위기에 빠져 버렸다. 국민들은 혼용무도를 겪으며 분노하고 아파하고 있다. 특히 국민들은 혼용한 대통령 못지않게 그 주변의 간신들에게 분노하고 있다. 어리석은 대통령에게 직언 한마디 하지 못하고, ‘나는 최순실을 몰랐다’는 면피성 발언으로 일관하는 친박 정치인들과 대통령 주변 사람들에게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혼용한 군주와 간신이 나라를 망친 사례는 역사에서 숱하게 등장한다. 중국의 경우 수천 년 왕조 체제를 거치면서 약 600명의 황제나 왕을 칭한 제왕을 배출했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 중 비정상적으로 삶을 마감한 제왕이 40%가 넘는다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이 ‘혼용무도’한 군주로 나라를 망치거나 망하게 만들었다.

혼용무도한 군주의 특징

혼용무도한 통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좋은 말이나 충고에는 철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다. 그러다 보니 바른 말을 하거나 충고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증오심을 품고 박해한 반면, 자신의 말과 판단 등에 맞장구를 치거나 기분을 맞춰주는 아첨배와 간신들을 총애한다. 간신 정치와 환관 정치라는 왕조 체제의 부조리가 이렇게 해서 나타난다.

‘혼용무도’한 통치자들의 또 다른 특징이자 공통점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자리를 과신하는 과대망상과 이를 부추기는 간신들의 아부가 합쳐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무슨 짓을 하든 잘했다고 꼬리를 치는 자들을 곁에 두고 총애하니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능력과 자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결국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반성할 줄 모르는 권력과 권력자는 결국 독재나 폭력으로 흐르고, 그 최후는 예외없이 비참했다. 자신을 망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백성과 나라를 해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는 잘난 인재 열로도 모자라지만, 나라를 망치는 데는 혼용무도한 통치자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통치자가 혼용무도하게 되는 원인을 파고들면 예외 없이 개인이나 패거리의 사사로운 욕심과 만나게 된다. 이러면 공사 구분을 못하게 되고, 결국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변질된다. 선현들은 이런 문제의 근원을 가정과 교육에서 찾고 있다. ‘성리대전’을 보면 “사람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敎人使人, 必先使有恥). 부끄러움이 없으면 못할 짓이 없다(無恥則無所不爲)”고 했다.

자신의 언행이 남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만 그릇된 언행을 일삼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옳은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청나라 때의 학자 고염무(顧炎武)는 “청렴하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 없고(不廉則無所不取),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不恥則無所不爲)”고 했다.

‘혼용무도’한 통치자들 대부분이 부끄러움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설사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게 할 마땅한 제도적 장치나 멘토도 없었다. 결국은 자기수양, 즉 후천적 노력에 의한 자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이런 결론은 왕조 체제에서나 지금 우리 현실에서나 하등 다를 바가 없고, 그 ‘무치(無恥)’의 결과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리석고 못난 혼군은 사사로운 욕심에만 급급한 간신들을 길러내는 토양이 된다. 이런 점에서 혼군과 간신은 이란성 쌍생아이며, 이 쌍둥이가 손을 잡으면 나라가 절단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간신의 다섯 가지 유형

‘순자(荀子)’에 보면 공자(孔子)가 노(魯)나라에서 법 집행을 담당하는 사구(司寇)라는 관직에 취임한 지 7일 만에 조정을 어지럽히던 소정묘(少正卯)를 처형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권력을 믿고 설치던 소정묘이긴 했지만 노나라의 유력자이었던지라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달려온 제자 자공(子貢)은 “소정묘는 노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선생님께서 정치를 맡으신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를 죽이시면 어쩌자는 겁니까?”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다.

“통치자로서 제거해야 할 인물에는 다섯 가지 유형이 있는데 도둑질하는 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첫째가 마음을 반대로 먹고 있는 음험한 자이고, 둘째가 말에 사기성이 농후한데 달변인 자이고, 셋째가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자이고, 넷째가 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자이고, 다섯째가 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는 자이다. 이 다섯 가지 유형의 자들을 보면 모두 말 잘하고, 지식 많고, 총명하고, 이것저것 통달하여 유명한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진실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런 자들의 행위는 속임수 투성이며, 그 지혜는 군중을 마음대로 몰고 다니기에 충분하고, 홀로 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이런 자들은 간악한 무리의 우두머리라 죽이지 않으면 큰일을 저지른다.… 꼭 죽여야 할 자는 낮에는 강도짓을 하고 밤에는 담장을 뚫고 들어가는 그런 도둑이 아니다. 바로 나라를 뒤엎을 그런 자를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군자들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며, 어리석은 자들을 잘못된 길로 빠뜨린다.”

공자는 나라와 백성을 해치는 간신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꼽았다. 공자의 이 논리를 지금 우리 상황에 대입한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역사의 비명’이자, 우리 시대의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간신들의 망령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정말이지 역사의 무기력을 절감한다.

당초 총명한 제왕이었다가 간신에 휘둘려 나라를 망친 당나라 현종.
당초 총명한 제왕이었다가 간신에 휘둘려 나라를 망친 당나라 현종.

아첨으로 권력자의 뜻을 떠받들다

당나라 현종(玄宗)은 집권 초반 ‘개원(開元)의 치(治)’라는 사상 유례가 없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후반기로 가면서 소인배와 간신들을 기용하고 사치 방탕한 생활에 젖어 결국은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초래함으로써 대당 제국은 거의 멸망 직전까지 갔다.

현종이 중용했던 간신 안록산은 뚱뚱하고 배가 불룩 나왔는데, 한번은 현종이 농담으로 “대체 그 뱃속에는 무엇이 들었길래 그렇게 불룩 나왔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안록산은 “폐하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가득 차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둘러댔다. 현종은 이 아부의 말에 기분이 들떠 안록산을 나라를 지킬 대들보라 칭찬하면서 양귀비로 하여금 그를 양아들로 삼도록 권유했다.

불룩 나온 뱃속에 오로지 현종에 대한 일편단심만 가득 차 있다던 바로 그 안록산이 755년 15만 대군을 이끌고 범양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현종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도망길에 올랐다. 세계를 호령하던 대당 제국은 이를 기점으로 쇠락을 향해 추락했다.

그런데 집권 초기 현종의 의식은 어떠했던가? 어쩌다 사냥이나 놀이를 나갔다가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날라치면 깜짝 놀라며 “한휴(韓休)가 알면 어쩌지?”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측근 하나가 “한휴가 조정에 들어온 이래 폐하께서는 단 하루도 즐겁게 지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째서 한휴를 내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현종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말랐지만 천하가 살찌지 않았는가? 이전에 내숭은 모든 일을 내 뜻대로 따랐지만, 일을 끝내고 자리에 누워 천하를 생각하면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한휴는 내 앞에서 끝없이 바른 소리를 하지만, 자리에 누워 천하를 생각하면 편히 잠을 이룰 수 있다.”

간신은 언제나 인성이 가장 취약한 부분을 사정없이 파고든다. 특히 누구에게나 듣기 좋고 편한 아부는 역대 간신들 모두가 능수능란하게 써먹은 수법이었다. 이것이 바로 ‘아부나 아첨 따위로 알랑거린다’는 뜻의 ‘아유봉승(阿諛奉承)’이다. 최고 통치자 역시 많은 약점을 가진 인간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인성의 약점’이다. ‘인성의 약점’은 간신이 기생하는 숙주와도 같아 냉철한 판단력과 굳건한 의지로 지탱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간신 위충현의 공포정치

명 왕조 후반기는 환관들의 발호로 나라가 완전히 망가졌다. 입국한 지 100여년이 지나면서 대(大)간신 왕진(王振·?~1499)이 환관 간신의 시대를 활짝 열더니, 위충현(魏忠賢·1568~1627)에 오면 초절정기를 맞이한다. 특히 위충현은 비밀 경찰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금의위’나 ‘동창’ 같은 특무 기구를 동원하여 공포스러운 공안 정국을 조성하면서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제거했다.

위충현이 조성한 공안 통치 가운데 정말 기가 막힌 것은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로 위충현의 성씨인 ‘위’ 자를 거론하는 자가 있으면 누가 되었건 잡아들여 ‘한 자씩 줄인다’는 엄포를 놓은 일이다. 이 해괴망측한 명령은 대체 무슨 말인가? ‘한 자씩 줄인다’는 말은 신체의 일부 중 한 자를 없앤다는 뜻으로, 요컨대 목을 자른다는 의미였다. 태산과도 같은 위 태감의 이런 살벌한 위세에 눌려 사람들은 감히 ‘위’ 자를 입에 올리지 못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 ‘최순실’ 석자가 금기시됐던 것과 비슷하다.

이뿐만 아니었다. 관부에서 올리는 문서는 위충현의 손을 거쳐야만 했는데 여기에 ‘위’ 자가 하나라도 들어가 있으면 황제의 성지를 빙자하여 즉시 잡아들여 죽였다. 이러니 문무 대신들 누가 감히 나서 위충현에게 맞서겠는가? 모두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아들, 손자를 자처하며 몸보신에 급급했는데, 불과 1~2년 사이에 위충현을 아버지로 모시겠다는 자가 백수십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최정수(崔呈秀)라는 자가 가장 충실한 주구였는데, 하루는 글줄깨나 읽을 줄 아는 태감(환관)들을 좀 모으라는 위충현의 명령을 받고는 엉뚱하게 국자감으로 달려가 생원들을 잡아 불알을 까게 하는 소동을 벌였다. 혼비백산한 생원들 절반은 그날 밤으로 도망쳤고, 재수 없이 잡힌 20명은 실제로 불알을 까였다. 그 과정에서 12명은 죽고 나머지만 살아 위충현에게 보내졌다. 글줄깨나 하는 태감들 좀 모으랬더니 멀쩡하게 공부 잘 하고 있는 예비 학자들의 생식기를 절단하여 고자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뭐라 말이 안 나온다. 과잉충성, 이것도 간신의 특징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중국의 대표적 간신인 명나라 재상 엄숭. ‘부자 간신’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중국의 대표적 간신인 명나라 재상 엄숭. ‘부자 간신’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복렵시랑’의 간신 이임보

당나라 현종 때의 재상이었던 이임보(李林甫)는 역대 간신들 중 학문이 형편없고 경박하기로 이름났다. 게다가 과거시험을 통해서가 아닌 종친의 신분으로 조정에 들어왔기 때문에 일쑤 무시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 때문에 이임보는 자기보다 학문이 깊거나 식견이 높은 인재들을 몹시 미워하고 질투했다. 관리를 추천할 때도 자기보다 못한 자들을 추천했고, 자신의 주위로는 늘 변변치 못한 자들을 끌어들였다.

한번은 이임보가 과거시험을 감독하게 되었는데, 수험생 하나가 답안에 ‘고독한 팥배나무’란 구절을 적어 넣은 것을 보고는 옆에 있던 수하에게 그 뜻을 물었다. 이 구절은 원래 ‘시경’에 나오는 시의 제목이었는데, 이임보는 당시 지식인의 기본 도서인 ‘시경’조차 읽지 않았던 모양이다. 수하는 자신도 모르겠다며 납작 엎드렸다. 자칫 아는 척했다가 눈밖에 나면 보복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이임보가 공석이 된 호부시랑 자리에 소경이란 자를 추천했는데, 이 자도 이임보와 비슷해서 공부를 싫어했다. 그래서 중서시랑 앞에서 ‘복랍(伏臘)’을 ‘복렵’으로 읽는 바람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당시 중서시랑이었던 엄정지(嚴挺之)는 이 일을 재상 장구령(張九齡)에게 보고하며 “조정의 장관으로 어찌 ‘복렵시랑’을 앉힌단 말입니까? 장차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게 생겼습니다, 그려!”라며 혀를 찼다.

장구령은 이 일을 현종에게 보고했고, 결국 소경은 기주자사로 좌천되었다. 이 일로 이임보는 엄정지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 뒤 장구령이 엄정지를 재상으로 추천할 요량으로 당시 현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던 실세 이임보와의 관계를 개선해 보라고 엄정지에게 권했다. 그러나 꼬장꼬장한 엄정지는 재상을 포기할지언정 이임보에게 굽신거릴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 일로 이임보는 엄정지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

나라 일을 하는데 학식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기본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외국과의 협상에서 국제 공통 언어도 제대로 말하고 번역하지 못해 국제적 망신살이 뻗친 일들이 지금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걸 보면 우리에게도 ‘복렵시랑’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매관매직의 대명사 엄숭 부자

명나라 때 엄숭(嚴嵩)은 ‘역대 3대 간상 중 가장 많이 배웠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 아들 엄세번(嚴世蕃)과 함께 숱한 악행을 저질러 이른바 ‘부자 간신’이란 오명을 남겼다. 아들 엄세번은 아비와는 달리 매사에 언행을 조심하지 않아 엄숭을 늘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입만 열었다 하면 황제와 자신을 견주는 오만방자함은 언젠가 큰 화를 부를 위험천만한 시한폭탄과 같았다.

엄세번은 또 문란한 사생활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는데, 첩실만 27명을 두었다. 첩실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진한 화장에 온갖 패물로 장식하는 등 그 사치가 도를 넘었다. 뿐만 아니라 코끼리 침대에 금으로 치장한 커튼 사이로 밤낮 없이 음악 소리가 들리는 등 황음무도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러면서 엄세번은 “황제도 나만큼 즐겁지 못할 것이야!”라며 허풍을 떨었다.

엄숭은 진사에 급제한 지식인이자 뛰어난 문장, 특히 ‘청사(請詞)’를 잘 써서 가정제(嘉靖帝)의 마음을 사로잡아 엄청난 권력을 누렸다. 하지만 이런 그도 ‘10년 은둔에 10년 소외’라는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냈다. 세월을 견디며 기회를 엿본 인내심 하나는 알아주는 간신이었다. 이렇게 해서 권력을 잡은 엄숭의 간행은 정말이지 눈이 돌아갈 정도로 현란했는데, 부정 축재는 기본이고 아들과 환상의 콤비를 이루어 자행한 매관매직은 특히 볼 만했다.

먼저 엄숭이 황제로부터 관직 임명권을 얻어오면 아들 엄세번이 이를 팔았다. 관직의 값은 그때마다 달랐는데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첫째는 직급의 높낮이, 둘째는 직급에 따른 이권의 많고 적음, 셋째는 부임지의 멀고 가까움, 넷째는 임기의 길고 짧음이었다. 이렇게 관직을 사간 관리는 승진을 위해 또 엄숭 부자에게 뇌물을 갖다 바쳐야만 했다. 뇌물은 비리로 옥에 갇힌 죄인마저 풀어주고 나아가서는 승진까지 시킬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으니 엄숭이 재물을 얼마나 밝혔는지 알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의 부정과 비리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과 나라에 넘어온다. 역대 간신들치고 부정과 비리에 광분하지 않았던 경우는 없었다. 아비와 자식이 함께 설치며 백성의 피와 땀을 빨고 나라를 거덜냈던 엄숭 부자를 비롯한 간신들의 간행을 보면서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혼군과 간신 합작의 나라 거덜 내기가 겹쳐지지 않을 수 없다.

강태공의 한마디를 전하며 맺는다. “천하는 천하 사람의 천하이지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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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역사학자·‘치명적인 내부의 적 간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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