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버스토리
[2443호] 2017.02.06

아님 말고? 가짜 기사, 피해자만 남긴다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후보가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하는 연설을 했다는 오보(왼쪽)는 한 네티즌이 자신의 SNS에 장난 삼아 올린 글(오른쪽)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도널드 트럼프, “여성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의 여성 대통령을 보라.”
   - 10월 29일 연설에서’.
   
   지난해 11월 1일 YTN이 내보낸 대형 오보다. 한 네티즌의 SNS가 발단이 된 사건이었다. 네티즌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트럼프의 연설 사진에 해당 발언을 합성한 사진을 게재했다. ‘트럼프가 이렇게 말하면 선거에서 이기지 않을까?’라는 가정과 함께. 하지만 가정은 빠진 채 영상만 무분별하게 공유됐고, 해당 언론사는 사실을 검증하지 않고 보도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오보의 파급력은 컸다. 아시아경제, 한국경제TV 등은 YTN 보도를 인용해 기사를 썼고, 네티즌들도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자신의 SNS에 광속으로 퍼다날랐다. 주승용 국민의당 의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장도 공식 회의석상에서 해당 기사의 내용을 재인용해 정국 대응 방안의 근거로 삼았다.
   
   이 기사가 오보로 판명나자 YTN 측에서는 사과와 함께 해당 기사를 바로 삭제 조치했다. 얼마 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이 기사에 대한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열었다. 위원회 측에서 내린 조치는 ‘권고’였다. “해당 보도가 단발성으로 끝났고, 다른 매체로 확산된 측면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 당일 내보낸 ‘승객 전원 구조’라는 초대형 오보를 내보낸 방송사들에 대해서도 ‘권고’ 조치를 내렸다. 권고는 심의 처분 중 두 번째로 낮은 제재 수위다.
   
   
   오보만 기억하고, 정정보도는 안 읽고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부분의 독자나 시청자는 최초의 보도만 기억한다. 이후 ‘바로잡습니다’ ‘사과문’ ‘정정보도’를 아무리 실어도 이 보도문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주변인들에게 트럼프-박근혜 대통령 관련 오보의 사실 인식에 대해 물어봤다. “트럼프 후보가 여성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를 이기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내용의 1차 뉴스 내용은 하나같이 알고 있었지만, 이 뉴스가 오보로 밝혀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보 혹은 왜곡 보도의 경우 가해자는 증발된 채 피해자만 남게 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2004년 전국을 들썩였던 일명 ‘쓰레기 만두 파동’을 기억하시는지. 단무지 공장에서 폐기되는 파지무를 만두소의 재료로 사용한 25개 업체의 명단을 식약처에서 공개했고, 문화일보가 대서특필하면서 커진 사건이다. 해당 언론사는 자투리 무가 위생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달하면서 ‘쓰레기 만두’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이 보도 이후 소비자들은 세상의 모든 만두를 쓰레기 만두 보듯 했다. 소비자들은 만두가게에 발길을 끊었고, 마트에서도 만두봉지를 담지 않았다. 만두 제조업체들은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렸고, 급기야 한 업체의 사장을 투신자살로까지 몰고 갔다. 이후 경찰 조사를 통해 자투리 무는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만두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한 이후였다. 이 최악의 오보에 대한 책임자는 없었다.
   
   의혹만을 내세운 보도로 숱한 피해자를 양산한 경우도 많다. 실체적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의혹부터 파고들어야 하고, ‘의혹’이 먼훗날 ‘진실’로 판명나기도 한다. 하지만 의혹이 그저 의혹일 뿐이라면, 즉 거짓 의혹이라면 의혹 보도는 명예살인이나 다름없다. 의혹 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정신적 상처는 말할 수 없이 크고 깊다. 그러나 이에 대한 피해보상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님 말고’ 식의 추측성 보도가 무분별하게 통용된다.
   
   미국 등에서는 언론의 ‘사실 보도’에 대한 잣대가 엄격하다. 특히 ‘악의적 오보’로 판명나면 징벌적 손해보상제도를 적용, 엄청난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 미국에서 명예훼손 또는 악의적 오보에 대한 손해배상 비용은 평균 15억~20억원에 달한다. 배상액 때문에 언론사가 문 닫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인터넷 언론사 고커(Gawker)는 유명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과의 소송에서 패소해 문을 닫았다. 헐크 호건은 자신의 성관계 영상을 공개한 고커 측으로부터 정신적·금전적 위자료 1340억원에다 290억원의 징벌적 손해배상금까지 더해져 1630억원을 받아냈다. 영국도 상황은 비슷해 손해배상 문제로 문을 닫는 군소 언론사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법원을 통해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배상액은 대부분 2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언론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언론중재위 조정건수 3170건
   
   인터넷 언론사 수가 급증하면서 오보의 피해자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언론 조정 신청 처리 현황을 보면 1990년엔 159건에 달하던 조정 건수가 2000년엔 607건에 달하더니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2006년에는 1087건에 달했다. 이후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2010년에는 2205건이었고, 2016년에는 3170건을 기록했다. 매일 90건 가까운 조정 건수가 발생했다는 통계다. 매체유형별로는 인터넷 신문이 1661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포털 및 방송사닷컴의 인터넷 뉴스 서비스(330건), 지상파 TV(245건)가 뒤를 이었다.
   
   피해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위법성이 분명한 기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내용을 신설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추진 중이지만 갈등의 소지가 많다.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등은 “개정안은 헌법상 가치인 언론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피해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는 환영하지만, 사실 기사까지 수정 삭제할 수 있는 조항을 담고 있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명예훼손 등을 앞세워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론의 자정(自淨) 노력이다. 기사에서 우선시돼야 할 것은 ‘팩트’다. 속보 경쟁에 목매기보다 진실만을 공정하게 전달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실시간으로 바로잡기 위해 도입된 TV조선의 ‘바로 옴부즈맨 제도’는 환영할 만하다. 2월 1일부터 도입된 이 제도는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와 출연자가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하거나 막말,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을 쓰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문제가 있으면 자막이나 앵커 멘트 등을 통해 바로바로 시정 조치를 내리도록 한다.
   
   한국에는 90만명이 넘는 언론인이 있다. 가짜 기사를 양산해내는 펜은 펜이 아니라 칼이다. 피해자의 인격을 죽이는 살인도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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