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버스토리
[2457호] 2017.05.15

문재인 대통령을 기다리는 것들

통치는 가고 협치의 시대로

정장열  부장대우 jrchung@chosun.com 

▲ 지난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며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씨.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 앞에는 이제 거버넌스(governance)가 기다리고 있다. 그는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치열했던 선거전을 승리로 마감했지만 선거일 바로 다음날부터 지지자와 반대자가 모두 올라탄 대한민국호(號)의 키를 잡았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호에 올라탄 모든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임무가 바로 그에게 주어졌다.
   
   그가 5년간의 항해를 시작하면서 당장 참고할 수 있는 건 전임자의 사고(事故) 일지다. 불통(不通)과 편 가르기,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 그의 전임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통치(統治)에 젖어 있다가 주어진 5년의 항해를 끝내지도 못하고 항로를 이탈해버렸다. 이런 전임자를 반면교사로 삼아 그는 새로운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통치 대신 협치(協治), 즉 거버넌스를 나침반 삼아 올바른 항로를 찾아나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에 올린 41.1%의 득표율, 1342만3800표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어른거린다. 그는 전국 17개 권역 중 경북, 경남, 대구광역시를 제외한 14개 권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지난 5월 9일 밤 승리가 확정된 후 광화문 광장에서 스스로 강조한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특히 그는 역대 대선 사상 2위와 가장 큰 표차로 당선됐다. 2위 홍준표 후보(24.0%)와의 557만표 차는 종전 기록인 17대 대선 당시의 531만표 차를 넘어선 것이다. 17대 대선에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크게 이겼다.
   
   하지만 그의 득표에는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그의 40%대 득표율은 과반뿐 아니라 지난 18대 대선 자신의 득표율(48.0%)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또 이는 최근 치러진 몇 번의 대선과 비교해도 뒤떨어지는 성적표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모두 48% 이상을 득표했기 때문이다. 40%대의 지지율은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40.3%) 이후 처음이다.
   
   
   ‘40-40 대통령’의 한계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40-40 대통령’이라는 한계 속에서 출발해야 한다. 40%대의 득표율은 국민 10명 중 6명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엄중한 사실을 일깨우는 수치다. 또 2위 후보(홍준표 24.0%)와 3위 후보(안철수 21.4%)의 득표율만 합해도 문재인 대통령의 득표율을 넘어선다. 특히 그는 40%대의 득표율뿐 아니라 40%의 의석을 가진 소수 여당의 대통령이다. 국회선진화법의 장벽 앞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현 120석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거의 없다. 여야가 맞서는 쟁점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재적 의석수의 5분의 3인 180석이 필요하다. 당장 총리 인준안을 통과시키려 해도 과반인 151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여당이 나홀로 할 수 있는 건 야당의 법안 개정을 막는 것 정도다. 국회선진화법에 기대 박근혜 정부의 경제살리기 법안 등에 번번이 제동을 걸었던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완전히 공수가 뒤바뀌는 셈이다.
   
   현실적으로 대통령과 여당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해야 할 일들은 쌓여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기간에 공약한 현안 중 하나인 ‘사드 국회 동의’부터 관심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기간 사드 배치에 대한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고 이를 공약에도 포함시켰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측은 “공약대로 비준 동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절차에 문제가 있었고 배치 과정에서 불거진 외교 실수 등으로 한·중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도 비준 동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회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고 과반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설 수밖에 없는 사드 문제를 원만하게 풀어낼 수 있느냐가 협치의 첫 관문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하반기에 추진하겠다고 밝힌 10조원 규모 일자리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당장의 관심사 중 하나다. 이는 올해 하반기 공무원 1만2000명 추가 채용에 사용될 재원을 마련하는 것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인 일자리 창출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을 비롯해 바른정당, 정의당 모두 추경에는 반대하고 있어 야당을 설득하는 일부터 우선시되어야 한다. 헌정 사상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2000년 추경안이 국회에서 처리되는 데 무려 106일이 걸리는 등 여야 간 진통은 불가피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를 예방하고 정우택 원내대표(오른쪽)와 대화하고 있다. photo 연합

   협치는 숙명
   
   문재인 대통령이 내건 주요 공약 모두 사정은 마찬가지다. 개혁이라는 대의명분만 앞세워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개혁 대통령만 뽑아놓고 아무런 개혁도 해낼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특히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이번 대선이 5월 보궐선거로 치러지면서 10월 정기국회까지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점을 우려하고 있다. 통상적인 12월 대선의 경우 다음해 정기국회까지 준비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이번은 대선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정기국회를 맞아야 한다. 한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내년 예산의 얼개를 이미 다 짜놓았는데 이걸 새 대통령의 공약과 개혁 의지를 반영해 다시 고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며 “내년 예산안을 새로 짜서 야당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새 정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염려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문재인 대통령에게 협치는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사안 사안마다 야당과의 협조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해나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같은 뿌리인 국민의당(40석)이 일차적인 협치 대상이지만 바른정당(20석), 정의당(6석)과도 사안에 따라 손을 잡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107석)의 협조도 구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자신이 처한 정치적 환경을 숙지한 듯 보인다. 그는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 야당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했다. 문 대통령은 5월 10일 자유한국당 여의도 당사를 찾아 정우택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국정의 동반자로 여기겠다”며 “야당 당사를 방문한 것도 이례적인 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임기 내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국회를 찾아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도 연쇄적으로 만나 협치와 소통을 약속했다.
   
   사실 여소야대(與小野大) 대통령은 이례적이긴 하지만 처음은 아니다. 예컨대 1987년 36.7%의 득표율로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 역시 취임 첫해인 1988년 총선에서 패하면서 사상 첫 여소야대 국회를 맞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당시 3김(金)의 세 야당이 포진했던 13대 여소야대 국회가 가장 생산적인 국회 중 하나였다고 평가한다. 대통령이 여소야대를 인정하고 야당에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정치의 묘를 발휘하면서 지방자치법 제정, 집시법 개정, 청문회 도입, 의료보험 확대 등 굵직한 성과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내고, 5·18민주화운동 진압 책임을 물어 민정당 실세 정호용 의원의 사퇴를 이끌어내는 등 지금 같으면 엄청난 갈등으로 비화할 사안들도 모두 여야 합의를 통해 처리했다.
   
   전문가들은 13대 국회와 비교하면 지금의 여소야대 사정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평가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13대 국회 때는 야당이 똘똘 뭉쳐 사안마다 여당에 맞서다 결국 3당 합당이라는 반작용을 불렀지만 지금 야당은 단일 전선이 아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민의당과만 손을 잡아도 괜찮은 그림이 나온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은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와 개혁을 원하며 압도적인 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몰아준 호남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요직을 거치면서 국회와 야당의 중요성을 이미 경험한 정치인이다. 여소야대를 인정하고 야당에 줄 건 주는 자세로 임하면 오히려 국정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여당 단독 과반 국회가 결과적으로 협치를 가로막는 독(毒)으로 작용했다.”
   
   
   개혁과 통합 모두 이룰까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개혁과 통합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모두 달성하겠다는 의욕을 내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5월 9일 밤 더불어민주당 당사에 들러 “국민이 염원하는 개혁과 통합 그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이루겠다”고 말했다. 국무총리로 내정된 이낙연 전남지사 역시 적폐청산과 통합은 상충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낙연 내정자는 5월 10일 기자들과 만나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은 상충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상충하는 게 아니고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두 가지가 함께 가도록 지혜롭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키를 잡은 대한민국호의 앞으로 항로는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이라는 두 목적지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달리 그려진다고 볼 수 있다. 두 목적지가 한 지점으로 수렴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어디까지가 개혁 대상이고 적폐인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뿐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전임자의 실패까지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때는 국민을 이분법으로 나눠 특권을 청산하겠다고 하다가 기득권의 반발을 사서 오히려 보수정권 10년이 들어섰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던 지난 4월 28일 발표한 최종 대선 공약집에서 ‘이명박·박근혜 9년 집권 적폐청산’을 1호 공약으로 내세우며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신설을 약속해 보수층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단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국회 취임 연설에서는 ‘적폐’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이라며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작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41%의 대통령에서 시작한 ‘문재인 시대’가 100% 국민통합 대통령으로 막을 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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