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버스토리
[2471호] 2017.08.21

27개국 공론조사 사례 보니

▲ 미 스탠퍼드대 숙의민주주의센터 센터장인 제임스 S. 피시킨 교수(오른쪽)가 검버자브 잔단샤타르 몽골 외무장관을 만나 찍은 사진이 지난 5월 2일 스탠퍼드 학내 언론인 스탠퍼드 뉴스에 실렸다. photo 스탠퍼드대 CDDRL
1991년 제임스 S. 피시킨 미 스탠퍼드대 교수가 저서 ‘민주주의와 공론조사’를 통해 처음 소개한 공론조사는 현재까지 약 30년간 세계 27개국에서 실시돼왔다. 피시킨 교수는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1994년부터 전 세계 각국의 프로젝트에 조언해왔고, 각국의 협력자들과 함께 일해온 100 개 이상 프로젝트의 데이터셋(data set)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시킨 교수는 자신이 조언했던 각국의 공론조사 프로젝트들 중 일본의 사례를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자평했다. 2011년 일본은 연금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소비세를 올려야 할지, 혹은 연금제를 민간에 맡길지의 선택을 공론조사에 부쳤다. 2011년 5월 28일부터 29일까지 실시된 당시 공론조사는 ‘연금제도, 세대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도쿄 게이오대에서 이뤄졌다. 일본 전역에서 무작위로 선발된 3000명 중 성별, 세대, 지역을 망라해 뽑힌 127명은 1박2일간 합숙하며 ‘숙의(deliberation)’를 했다. 참가자들은 사회보장제를 비롯한 세금제도를 어떻게 손볼지를 토의했고, 자문을 맡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에게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질문을 했다. 숙의를 거친 결과 “사회보장제도와 다음 세대를 위해 현재의 소비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의 지지를 받아 공론으로 채택됐다. 이듬해 6월 일본 중의원은 장기적으로 소비세를 15%까지 올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몽골이 자국의 개헌과 관련해 진행한 국가적 프로젝트도 피시킨 교수가 “성공적으로 완수된 케이스”라고 자평하는 사례다. 몽골 국민 669명은 지난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울란바토르의 정부 궁(宮)에 모여 6가지의 개헌방안을 두고 토의했다. 개헌을 두고 공론조사를 실시하기 전, 몽골 의회는 공론조사 활용의 필요성을 명시한 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몽골 의회는 국가 전역에서 임의로 선출된 국민들을 상대로 헌법의 미래를 묻는 전국적인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1992년 민주화 이후 몽골은 강력한 민주국가가 될 수 있는 헌법적 토대를 마련했지만, 행정부 모든 영역에서의 정쟁화, 법원과 독립 기관들의 독립성 부족으로 인해 헌법 개정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상태였다. 하지만 국민들 간의 합의가 어려웠고,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할지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일치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각계각층의 몽골 국민들이 헌법 개정에 대한 공론조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앞서 몽골은 2015년 아시아재단과 스탠퍼드대의 지원 아래 울란바토르시의 지하철 시스템 신설과 관련해서도 공론조사를 수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몽골 검버자브 잔단샤타르 외무장관은 스탠퍼드 CDD(숙의민주주의센터)를 방문해 공론조사의 이점을 강조하던 피시킨 교수를 만났다. 잔단샤타르 외무장관은 피시킨 교수와 만난 후 공론조사의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피시킨의 저서 ‘When the people speak’를 몽골어로 번역해 울란바토르의 국가 도서관에 비치하도록 했다. 잔단샤타르 외무장관이 몽골에 공론조사의 개념과 방법론을 소개하는 동안, 피시킨 교수는 에르덴 바트울 울란바토르시장과 접촉했다. 몽골 행정부의 공론조사 접근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던 바트울 시장 역시 피시킨 교수에게 공론조사와 관련한 자문을 요청했고 결국 몽골 민주당 소속인 바트울 시장과 몽골 인민당 소속의 잔단샤타르 외무장관이 공론조사위원회 공동의장을 맡았다.
   
   2015년 12월, 울란바토르 시민 300여명이 지하철 신설과 관련한 14가지의 방안을 놓고 1박2일간 숙의했다. 숙의를 거치기 전 가장 우세한 의견은 수도 울란바토르에 지하철을 신설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숙의를 거친 뒤 지하철 신설에 동의한 인원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하철 신설에 필요한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몽골 국민들은 울란바토르시에 있는 학교에 온열 시스템을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것을 지하철 신설보다 더 시급한 과제라고 결론 지었다. 울란바토르시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불가리아 프로젝트 가장 어려워
   
   피시킨 교수가 수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어려웠던 사례로 꼽는 것은 2007년 불가리아 정부가 행한 ‘로마’ 관련 프로젝트다. ‘로마’는 불가리아의 소수민족인 집시를 말하는데, 불가리아의 격변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이들은 빈민가에 고립되어 있다시피 했고 교육을 받지 못하며 일자리를 구할 기회도 거의 없었다. 당시 불가리아의 세르게이 스타니셰프 총리는 공론조사 결과를 ‘로마’ 관련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공론조사가 한 나라의 정부에 의해 수행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1차 여론조사는 1344명에게 행해졌고, 이 중 255명이 조사대상으로 선발됐다. 1차 여론조사에서 “로마인들이 다른 주변 인종들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43%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설명과 토론을 거친 2차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21%로 감소했고, 결국 “로마인들을 다른 인종들과 분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공론으로 채택됐다.
   
   피시킨 교수가 “흥미로운 사례”라고 지목하는 또 다른 사례는 2014년 7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행한 프로젝트다. 당시 공론조사의 목표는 정부 정책이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정부 관리들과 지역 주민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의 국가들에서는 공론조사가 사용된 적이 없었다. 피시킨 교수가 우간다의 마카레레(Makarere)대학교 연구진과 함께 설계한 공론조사는 부두다(Bududa)와 부탈레자(Butaleja) 두 지역에서 시행됐다. 두 곳은 홍수와 산사태 등 모두 빈번한 자연재해를 겪고 있었다. 두 지역에는 약 20만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 농업으로 근근이 먹고사는 수준이었다. 주된 문제점은 저학력과 높은 인구밀도였다. 우간다 전체의 평균 인구밀도는 1㎢당 195명이었지만, 해당지역 인구밀도는 1㎢당 950명 수준이었다. 이렇게 높은 인구밀도는 교육에 대한 투자를 방해했고, 특히 여성은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불러왔다.
   
   연구진은 참여자들을 소규모로 나누고 핵심적인 사항을 소개하는 그룹 인터뷰에 초점을 맞췄다. 부두다에서는 14개의 소그룹이, 부탈레자에선 15개의 소그룹이 만들어졌다. 두 그룹 인터뷰에는 각각 36개씩의 문항이 실린 질문지가 사용됐다. 숙의를 거친 뒤 부두다에서는 “정부가 주민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응답이 61%에서 73%로 증가했다. 피시킨 교수는 ‘미국 예술학회 아카데미 저널(daedalus)’ 2017년 여름호에 우간다 사례를 소개하며 “제대로 (공론조사를) 설계한다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해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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