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버스토리
[2479호] 2017.10.23

확증편향이 부른 전문가의 몰락

전문가의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

최근 벌어진 몇 가지 사회적 논란을 살펴보자. 먼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줄여서 ‘안아키’라고 불리는 단체의 이야기다. 안아키는 현대의학을 따르지 않는 부모들이 모인 단체다.
   
   이들은 아이가 열이 날 때 해열제를 쓰지 않고 염증이 생겨도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 예방접종을 맞히지 않고 현대의학의 시술 자체를 거부한다. 안아키 부모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가장 큰 원인은 ‘불신’, 의사와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자기 아이는 어느 의사보다 아이 엄마가 더 잘 알잖아요?” “의사의 말이 절대적이며 신약만이 답인 걸까요?”
   
   스스로를 ‘안아키스트’라고 부르는 안아키 부모들이 불러온 최악의 결과는 인터넷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화상이 짓물러 진물이 흐르는 아이의 얼굴, 휴지가 흥건할 정도로 피를 토하는 아이.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열을 앓는 아이에게 결국 해열제를 주지 않아 뇌사 상태에 빠진 경우도 있다.
   
   논란이 커지고 언론에서 잇따라 ‘안아키’의 피해를 보도하자 ‘안아키스트’들의 목소리가 다소 잠잠해졌지만 아주 없어지진 않았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소아과 전문의가 털어놓은 이야기다.
   
   “요즘은 항생제 처방률이 공개되기 때문에 필요하지도 않은데 무작정 항생제를 처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부모들의 항생제에 대한 거부감을 알기 때문에 처방할 때에도 충분히 설명을 하고요. 그런데 항생제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10분, 20분 설명했는데 무작정 항생제 투약을 거부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책에서 읽었다’ ‘어디서 들었다’는 게 전부라 답답할 때가 많아요.”
   
   ‘생리대 위해성 논란’도 있었다. 여성환경연대와 김만구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교수가 함께 시중에 판매되는 생리대 10종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 생리대에서 유해한 물질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한 데 따른 논란이다. 이 중 먼저 이름이 공개된 ‘릴리안’이라는 생리대를 쓰고 나서 생리양이 변했다거나 생리불순이 생겼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논란이 생긴 지 한 달 만에 식약처가 시판 중인 생리대와 팬티라이너 제품을 전수조사한 결과 “위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생리대 소비자들은 이 결과를 믿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같은 전문용어까지 외워가며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해 지적하고 나섰다.
   
   “특정 제품 생리대를 쓰고 있는데 생리통이 생겼다거나 생리불순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환자가 하루에도 2~3명은 찾아옵니다. 저는 환자들에게 생리대의 위해성과는 별개로 생리불순이나 생리통은 매우 복합적인 원인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 전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는 생리대 하나만으로 발생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모두 제 말을 믿지는 않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일하는 산부인과 전문의의 설명이다.
   
   의료계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 법조계 같은 공공 부문의 전문가는 말할 것도 없다.
   
   변호사 이수혁(가명)씨는 지난 여름 부동산 관련 송사에 휘말린 의뢰인이 직접 증인 신문을 하겠다고 나서는 통에 진땀을 흘린 적이 있다. “변호사는 법전을 잘 외우고 있어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송사를 치르면서 겪은 경험이 변호사와 법률지식만 풍부한 일반인을 가르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내 일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우기는 의뢰인을 이기기 어렵더군요.”
   
   
   민주주의의 위기
   
최근 출간된 톰 니콜스 미 해군대학 교수의 책 ‘전문가와 강적들’(오르마)은 이런 일이 이제는 사회현상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관해서건 모든 의견이 똑같이 타당하다고 우기면서, 전문가의 견해나 확립된 지식을 서슴없이 자신의 의견으로 대체하려 한다.”(46쪽) “인터넷으로부터 무한한 사실들을 공급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전문지식을 가졌다는 착각에 빠져서, 마치 지적 기량이 풍부한 사람인 양 허풍을 떨 수 있게 된 것이다.”(194쪽)
   
   톰 니콜스의 지적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히려 더 극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한국은 만 3세 이상 국민의 88.3%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만 6세 이상 국민의 85%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누구나 무한히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전문가는 더 이상 예전의 전문가가 아니다. 원래 전문가란 전문지식을 습득해 경험을 쌓고 전문가 집단에 속한 특정 인물들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이제 대중에게 전문가란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얼마간의 전문지식을 쌓고 그것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대신 전문가 못지않은 일반인이 늘어났다. 전문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더 ‘잘 안다’고 자부하는 일반인이 늘어난 것이다. 야당 중진 국회의원의 한 보좌관이 전해준 얘기다.
   
   “지역구에 내려가서 유권자들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저보다 우리 당 의원들의 성격을 더 잘 아는 유권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 벌어진 사건이 어느 의원의 어떤 의도 때문에 벌어진 것인지 죽 분석하는 사람들이 웬만한 정치평론가보다 나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유권자의 분석은 술자리에서만 소비되고 마는 것이 아니다. 블로그, SNS 같은 채널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알리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기회는 매우 많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논객(論客)으로 활동하다 전문가라는 이름까지 얻는 사람들도 꽤 있다. 정치·군사·안보 분야에도 많고 부동산·주식 같은 분야에서는 전문가라고 일컫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런 경로를 거쳐왔다.
   
   이른바 ‘새로운 전문가’가 탄생하는 사이 기존의 전문가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26.8%, 4명 중 1명에 불과했다. 10명 중 4명(41.2%)은 “문제가 생겼을 때 전문가에게만 의지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 전문가라면 이런 변화를 매일 몸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전문가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전문가의 권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조롱받는 것이 일상이다.
   
   톰 니콜스의 설명에 따르면 애초에 전문가 집단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전문화라는 게 본질적으로는 배제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 니콜스의 설명이다. 이해하기 힘든 전문용어와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설명하는 전문가보다 이해하기 쉽고 명쾌한 설명이 더 ‘민주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에 대한 불신과 전문가 위상의 추락은 장기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온다. “국민의 안녕을 보장하는 기술과 경제 영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 분업이 필수다. 그 결과 자연스레 다양한 전문 직업이 창출된다. 전문가주의는 전문가들로 하여금 의뢰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영역도 존중해주기를 장려한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가 결합되어 혜택을 보는 대상은 최종적인 의뢰인, 바로 사회 전체다.”(372쪽)
   
   쉽게 설명해보자. 고도로 분업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일반 대중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다양한 분야의 일을 모두 떠맡아 처리할 수 없다. 그래서 전문가가 존재한다. 세금과 관련된 일은 세무사가, 비행기 조종은 기장이, 정부기관의 행정 업무는 공무원이 처리해주고 있기 때문에 사회가 원활하게 굴러간다. 이들 전문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혼란은 이미 시작됐다. 왜 우리는 전문가를 믿지 않게 되었나.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원인은 누구나 쉽게 양질의 정보를 많이 얻게 된 인터넷의 발달 때문이다. 인터넷은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웠다.
   
   
▲ 지난 8월 24일 한 시민단체가 생리대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photo 장련성 조선일보 기자

   정보를 왜곡시키는 TMI
   
   TMI라는 신조어가 있다. ‘Too Much Information’, 즉 너무 많은 정보라는 영어단어를 축약한 단어다. 몰라도 되는 내용까지 알게 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그거 TMI인 것 같아”라고 지적할 때 쓰인다. 확실히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은 정보’의 바다에 빠져 있다.
   
   중학생 딸 두 명을 둔 주부 홍근영씨는 얼마 전 불거진 생리대 위해성 논란을 지켜보다가 ‘안전한 생리대’를 찾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포털사이트에서 안전한 생리대라는 검색어를 넣어 보니 별의별 내용이 다 검색되더군요. 생리컵, 면생리대에 대한 장단점을 찾아보는 데에만 하루가 꼬박 걸렸습니다.” 외국에서 인기 있다는 친환경생리대를 구입하려 했지만 사용 후기가 썩 좋지 않아 포기했다. 생리컵이 안전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위생 문제가 마음에 걸려 선택하지 못했다. 면생리대 역시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홍씨는 결국 어떤 생리대가 안전한 생리대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마치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시콜콜한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얼핏 보기와는 달리 전문가와 일반인의 격차를 늘리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TMI란 그저 많은 정보를 칭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 많은 정보 중 쓸모 있는 정보는 별로 없다는 것도 포함하는 단어다.
   
   정보를 찾는 사람에게 ‘쓸모없다’는 단어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 경우에 해당한다. 첫 번째는 정보의 질 자체가 좋지 않아 ‘쓸모없을’ 때가 있다. 이것은 좋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보다 정확한 검색어를 통해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는 문제다. 굳이 전문가의 도움을 빌릴 필요 없이 조금의 훈련만으로 일반인도 좋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정보 중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결국 정보 자체가 쓸모없어지는 경우는 문제가 된다. 수많은 정보 중에 쓸모 있는 정보를 골라내야 할 때 전문가가 필요하다. TMI 환경에서는 일반인과 전문가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정보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곤 하는데 그건 단순히 인터넷 이용률을 높이거나 누구나 접속하기 쉬운 인터넷 환경을 만드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노인들도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해봐요. ‘정보 격차’의 숨어 있는 의미는 그 많은 평범한 정보 중에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고급정보를 골라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격차입니다.”
   
   많은 정보 중에 필요한 정보를 골라내지 못하는 사람은 ‘정보 중독’에 빠진다. 김 교수가 조합해낸 용어인 ‘정보 중독’은 자신이 찾은 정보에 확신을 가지지 못해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정보를 찾는 데에만 골몰하는 사람이다. “사실은 전문가가 이 정보를 분류하고 전달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전문가를 불신하는 소비자들은 자신이 직접 정보를 찾다가 정보 중독에 빠지지요.”
   
   톰 니콜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인터넷의 편리함은 엄청나게 요긴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대부분, 이미 조사하는 법을 훈련받고 어느 정도 자신이 찾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있는 사람들한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199쪽) 전문가는 숙련된 경험과 풍부한 지식으로 정보의 경중(輕重)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에 대한 몇 가지 연구결과가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뉴스 소비자들은 뉴스의 질, 뉴스의 출처에는 상관없이 단지 접근하기 쉬운 뉴스만을 주로 소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 교수는 “대부분은 뉴스를 소비하면서 어떤 특별한 기준이나 원칙, 뉴스 기사에 대한 검증 과정 없이 편리함에 따라서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톰 니콜스 역시 런던대학(UCL)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사람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접하게 된 기사를 사실상 읽지 않는다”며 “제목과 첫 몇 문장을 대충 훑어본 뒤에 그냥 다른 기사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이를 요약하자면 많은 정보가 있다고 해도 이를 모두 검토하고 필요한 것과 중요한 것을 가려내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는 얘기다.
   
   게다가 사람들은 정보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장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숫자 정보에 대한 연구결과도 보자. 톰 니콜스의 책으로 돌아가면 니콜스는 ‘숫자맹(innumeracy)’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사람들은 대개 제시된 숫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같은 숫자를 보고서도 주관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설명한다. 위험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연구해온 백혜진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역시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일 때 수리문해력(numeracy)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수리문해력이란 일상생활에서 숫자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건강이나 과학, 위험 정보는 계산이나 확률 등의 수치로 제시될 때가 많다. 수리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이런 정보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백 교수는 “여러 연구에 따르면 수리문해력이 낮은 사람들은 위험을 왜곡해 이해하는 경향이 있고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불거졌던 ‘살충제 계란’ 파동은 일반인들이 숫자와 관련된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다. 살충제 계란 파동은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수백만 개의 계란에서 살충제 피프로닐이 검출된 데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잔류농약 검사를 펼친 결과 8월, 경기도 남양주시와 광주시 농가의 계란에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이라는 농약이 검출되면서 파장이 커졌다. 언론에서는 마치 스포츠 중계를 하듯 매일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농장의 개수와 위치, 달걀번호를 부르며 소비자의 불안을 키웠다. 뒤늦게 식약처와 대한의사협회가 살충제 계란으로 인해 급성 독성반응을 일으킬 염려가 적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소비자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계란을 찾는 소비자가 줄어들었다.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전문가 스스로 키운 불신의 늪
   
   수치만 놓고 보자. 계란을 생산하는 농장 1239곳 중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농가는 52곳이다. 식약처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가장 오염된 살충제 계란을 먹어 급성 독성반응이 나타나려면 한 번에 127개의 계란을 먹어야 한다. 평생 2.6개를 매일 먹어야 독성에 대한 반응이 나타난다는 사실도 함께 발표했다. 우리나라 식약처만의 의견이 아니다. 독일 연방유해평가원(BfR) 역시 비슷한 결과를 내놓으며 “섭취 기준량을 넘겨 섭취하더라도 반드시 유해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며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한 번에 127개’라는 말을 ‘위험성이 낮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쨌든 위험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많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54%의 국민은 여전히 “계란 먹기가 꺼려진다”고 답했다.
   
   정보 중독에 빠져 주관적으로 정보를 해석해버리는 일반인들은 점점 ‘확증편향’이 강해진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정보만을 찾고 사실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믿음에 배치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정보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정보를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인지할 능력이 부족할 경우에는 이런 확증편향이 수시로 일어난다. 미리 판단하고 그에 맞는 정보만 찾으며 적당히 왜곡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백신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안아키 부모들, 생리대의 위험성에 대해 확신하는 환자들은 다른 주장, 객관적인 정보를 잘 읽지 않는다. 읽어도 부족한 수리문해력, 판단 능력 부족으로 무시해버릴 때가 많다.
   
   문제는 전문가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수많은 연구 결과는 대중이 TV, 신문,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내용만을 골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실제로 전문가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정치성향에 따라 이용하는 미디어가 아예 다르고, 미디어를 이용하면 할수록 정치성향도 극단화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실을 활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 TV 뉴스 프로그램에 종종 출연해 정치 평론을 해왔던 변호사의 설명이다.
   
   “정치에 늘 관심을 가지고 뉴스를 열심히 읽곤 했지만 사실 저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거든요.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정치인은 손에 꼽을 정도예요. 정치와 관련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정치를 해본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저에게는 경험으로 단련된 ‘말빨’이 있었어요. PD와 작가가 은연중에 이끄는 대로 얼마든지 발언할 수 있는 언어 구사력을 갖추고 있었죠.”
   
   이 변호사처럼 종합편성채널의 뉴스프로그램에는 내용과 상관없는 패널이 나와 뉴스를 해설할 때가 많다. 한국 경제의 전망에 대해 나와서 설명하는 변호사의 말을 들어 보면 이미 TV 뉴스나 신문에서 읽는 내용을 적당히 짜깁기해 되풀이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때 패널이 읊어주는 내용은 진행자와 제작자가 의도하는 바에 가깝게 편집된다.
   
   “진행자의 질문 내용을 잘 들어 보면 사건에 대해 ‘이러이러한 것이 아닌가요?’라고 유도하는 질문이 많을 겁니다. 패널은 진행자의 유도에 따라 ‘맞다’ ‘아니다’ 대꾸를 해주고요. 패널을 등장시켜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려고 하지만, 패널의 전문성조차 담보되지 않고 편향된 내용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문제점을 알면서도 이 변호사는 왜 방송의 요구에 응하고 있는 것일까.
   
   “방송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게 영향력을 넓히는 일이거든요. 변호사로서 직업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되지만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지난 10월 13일 충남 천안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단 종합토론회가 2박3일 일정으로 시작됐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脫원전 정책이 대표적 사례
   
   자신의 전문성을 특정 정치세력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전문가, 비전문가이면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비전문적 전문가’는 모두 문제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첨예하게 진행되는 사회적 논란에는 이런 이기적인 전문가와 사이비 전문가가 한데 얽혀 있을 때가 많다. 탈원전(脫原電) 문제가 그렇다.
   
   탈원전은 매우 전문적일 뿐 아니라 에너지·환경·산업 정책 등과 연관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객관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문제다. 그러나 비전문가의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재의 탈원전 정책 진행을 이끄는 데는 ‘비전문가가 전문가보다 낫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탈원전을 왜 비전문가가 결정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예전에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총리 하는 분이 한 말씀 하셨어요. 전쟁이 너무 중요해서 전쟁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원전도 현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후세에 관련한 문제라서 너무 중요한 문제라서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안 되는 입장입니다.”
   
   집단이 개인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때도 있다. 전문가 입장에서 다소 어긋난 내용이 있다 할지라도 비전문가, 일반인들의 의견을 마냥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완전히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톰 니콜스는 워싱턴포스트의 과학기자 크리스 무니의 말을 빌려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동일하게 인정받는 상황은) 인간관계라는 바퀴가 굴러가게 하는 데는 윤활유가 될 수는 있지만, 사실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에서는 커다란 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전문가를 믿고 맡겨 두자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가 의사결정을 하는 사회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 사회에는 전문가가 소통도 잘하고 의사결정도 잘할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습니다. 전문가는 그 전문 분야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판단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회는 전문 분야 하나만으로 굴러가지 않죠. 전문 분야와 일반 대중 간의 소통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문가에게 전문 분야에 대해서 잘 알면서 소통도 하고 사회적 역할도 하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믿음은 언제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흔히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에는 이른바 ‘전문가’ 출신 장관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통상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장관은 에너지 분야 전문가다. 통상정책에 관해서는 행정 경험이 전혀 없다. 소프트웨어와 IT 정책에 치중된 경험을 가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기초과학과 통신정책에 대해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소기업 정책까지 총괄해야 하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벤처 창업 전문가 출신을 앉히려다가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이덕환 교수는 수십 년간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교육정책 실패의 원인을 이 부분에서 찾았다.
   
   “공교육 정상화, 교사 양성, 교과과정 개편, 사교육 규제 같은 수많은 교육 문제를 아우를 사람이 교육정책을 총괄해야 하는데 그동안은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를 교육정책의 수장으로 앉혀 놓기만 했습니다. 자신이 자신 있는 분야를 조금 건드리다가 실패하고,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다른 분야를 건드리다가 실패하고. 이런 실패가 거듭돼서 지금 우리 교육정책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요즘 일반인들이 전문가를 ‘자신의 분야만 강조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는 것으로만 세상을 설명하려고 하고, 소통 능력이 부족한 데도 억지로 밀어붙이려고 했으니 대중과 전문가 간의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전문가를 아우르는 행정전문가, 전문가와 대중을 연결해주는 소통전문가처럼 전문가의 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위험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백혜진 한양대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위기대응시스템을 예로 들었다.
   
   
   소통전문가 나서다
   
   미국의 질병통제본부(CDC)는 각 질병 분야의 전문가에 더해서 소통전문가와 행정전문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통합적인 ‘위기대응상황실’을 설치했고 소통전문가 200~300명이 모인 ‘건강마케팅센터’는 늘 대중들에게 전문가들로부터 습득한 정보를 정확히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전문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용을 알고 있는 전문가를 대중과 연결해주는 소통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는 관리자가 또 필요합니다.”
   
   정리해 보자. 수많은 정보의 홍수에서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것만 취하는 대중에게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고 판단의 기준을 세워주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전문가 아닌 전문가, 자신의 분야만 강조하는 전문가가 대중 앞에 서왔다. 그 결과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전문가 없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처럼 보여지기에 이르렀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와 일반인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니 ‘전문가와 강적들’에 톰 니콜스가 마지막에 쓴 부분과 결론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반인들은 전문가 없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으니 만큼, 적의(敵意)를 내려놓고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전문가들도 자신의 충고가 의심의 여지 없이 옳다고 생각되더라도, 그들과 같은 것에 가치를 두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충고가 늘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민주주의가 근거 없는 의견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중으로 이해된다면,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게 된다.”(4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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