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수년 전부터 ‘헬조선’이라는 조어가 젊은층 일각에서 크게 유행했다. ‘헬조선’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은 긴 노동시간, 많은 사교육비, 낮은 삶의 질, 높은 자살률, 높은 집값 등을 곧잘 그 근거 자료로 제시하곤 한다.

지난 11월 19일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집값과 관련한 통계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는 ‘헬조선’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박광온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6년 말 기준으로 서울 주택의 중위가격은 4억3485만원이었다. 중위가격이란 가격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정확히 중간에 위치한 값을 말한다. 그런데 박 의원에 따르면 서울 주택의 중위가격은 세계 주요 대도시와 엇비슷하다.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 도쿄의 3억1136만원보다 훨씬 비싸고 미국 뉴욕의 4억434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여기에 도쿄·뉴욕보다 서울 거주자의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 수준을 고려하면 서울의 집값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비싸다는 게 박 의원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 자료의 근거가 되는 통계자료에 있었다. 조선일보도 보도했듯 도쿄와 뉴욕의 집값의 근거는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데모그라피아 인터내셔널’에서 제공한 통계자료였다. 이 자료에서 박광온 의원이 ‘도쿄’ 집값이라고 인용한 자료는 사실 ‘도쿄도(都)와 요코하마시’의 자료였다. ‘뉴욕’ 집값은 뉴욕을 중심으로 ‘뉴욕시, 뉴욕주(州), 뉴저지주, 펜실베이니아주’를 포함하는 자료였다.

서울은 오밀조밀하게 모인 25개 구(區)로 구성된 하나의 도시다. 그러나 도쿄도는 다르다. 도쿄도는 23개 특별자치구·26시(市)·5정(町)·8촌(村)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지역이다. 그중에는 공공기관과 상업시설이 밀집된 치요다구, 신주쿠구 같은 도심 지역도 있지만 도쿄로부터 1000㎞ 떨어진 인구 3000여명의 외딴섬 오가사와라촌도 포함돼 있다. 뉴욕도 마찬가지다. 뉴욕시라고 하면 맨해튼섬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통계자료에서는 서울 면적의 233배나 되는 뉴욕주를 포함해 뉴저지·펜실베이니아 인근에 이르기까지 뉴욕에서 120㎞ 떨어진 곳까지 광범위하게 포함됐다. 인구와 기능이 집중된 서울 집값과 분산돼 있는 ‘도쿄 인근’ ‘뉴욕 인근’ 집값의 단순 비교는 불가능한 부분이다.

통계가 객관적이라고?

이 자료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통계 오·남용’ 현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단순 비교가 어려운 자료를 직접 비교하는 일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숫자를 이용하는 흔한 통계 오용(誤用) 사례다. 이런 경우도 있다.

지난 5월 18일 경향신문은 현재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고 있는 장하성 당시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SNS 글을 인용해 보도했다. ‘기업총소득이 358% 늘어날 때 가계총소득은 186% 증가 그쳐… 계층 간 소득격차도 더 벌어져’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가계평균소득 증가율은 90%로 가계총소득 증가율(186%)의 절반에 불과했다’는 내용이 있다. “가계총소득에서 소득 상위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는데 주장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이 비교 역시 박광온 의원이 저지른 실수와 비슷한 잘못을 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가계평균소득 증가율은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서 인용한 것으로 도시의 2인 이상 가구당 실질소득이 달마다 평균 얼마만큼 변화했는지를 집계한 것이다. 가계총소득 증가율은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국민계정’ 가계부문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국민계정과 가계동향조사는 수치를 잘라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다른 통계다. 국민계정이 거시소득 통계라고 한다면 가계동향조사는 미시소득 통계다. 무엇을 소득으로 인정하느냐, 소득의 포괄 범위가 다르다. 예를 들어 국민계정에는 세금과 국민연금·건강보험료 등의 사회부담금도 소득으로 포함시키지만 가계동향조사에서는 아니다. 가계동향조사에서 인정하는 소득의 범위는 거시소득 통계의 60~70%에 그치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다. ‘계층 간 소득격차도 더 벌어졌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통계를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다.

통계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통계 작성 과정에서부터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논란에 시달리는 통계도 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통계 하나를 살펴보자. 한국 공공부문 일자리 수를 어떻게 집계하느냐의 문제다. 지난 6월 통계청이 처음으로 작성해 발표한 ‘공공부문 일자리 통계’에 따르면 한국 공공부문 고용인원은 233만6000명으로 전체 일자리의 8.9%를 차지한다. 그런데 여기에 사립학교 교원,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 군인과 의료기관 종사자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을 두고 과소집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영국·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에서 사립학교 교원을 공공부문 인원으로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왜 사립학교 교원을 제외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통계청의 설명에 따르면 사립학교 교원의 포함 여부는 국가 간 제도 차이에 따른 것이다. 스웨덴과 일본은 사립학교 교원을 공공부문으로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들을 운영하는 기관이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정부가 교사 채용에 직접 관여할 수 없고 재단 운영이 자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공공부문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의무 복무기간이 있는 군인이나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 민간 의료기관 종사자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들을 공공부문 일자리에 포함시킨다면 현재 공공부문 종사자가 전체 일자리의 10~15%로 늘어난다. 문재인 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규모가 축소될 수도 있는 문제다. 야당과 보수진영에서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맞춰 ‘의도’를 갖고 통계를 산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때로 통계집계 기관이 제각각일 때도 있다. 제각각인 통계는 어느 통계를 선택·인용하느냐에 따라 사회를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개인 입장에서는 개인의 의사결정에 차이가 생길 수 있고 정부 입장에서는 정책 결정 과정이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대출 규모만 해도 그렇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파악하는 가계대출 규모는 각각 다르다. 지난 10월 가계대출 잔액 증가폭을 설명할 때도 한국은행은 6조8000억원이 늘어났다고 밝혔지만 금융위원회는 10조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했다. 두 기관이 집계하는 금융기관의 범위와 대출상품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집계할 때는 은행에 저축은행, 신협, 상호금융, 보험사, 카드사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한국은행에서는 보험사, 카드사를 제외하고 우체국예금과 신탁을 포함한다. 분기별로, 월별로 집계하는 방식도 각각 달라 정확한 가계대출 규모를 특정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어느 통계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문제를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통계 방식이 옳은 방식인지 판단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기준을 삼아 현실을 수치로 집계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통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일이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어떻게 추합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다. 한 고용경제학자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사립학교 교원은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지만, 다른 통계학자는 “한국 상황에 비추어 보면 제외해도 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평균의 함정에 빠지면 현실인식도…

어떤 통계가 현실을 잘 반영하는 통계인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통계를 만들 수 있는지는 전문가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통계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같은 의견을 내는 부분이 있다. 바른 통계를 만드는 것보다 바르게 통계를 읽는 사례를 찾는 것이 더 어렵다는 점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통계를 잘못 이해하고 쓰는 사례가 매우 많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무지(無知)와 고의(故意)다. 어떤 오용이 무지에 의한 것이고, 고의에 의한 것인지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대개 통계를 잘못 사용하는 사례에서는 무지와 고의가 뒤섞여 나타난다.

그래프를 이용해 시각적으로 목적에 맞게 통계를 왜곡하는 일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JTBC의 뉴스 프로그램 ‘뉴스룸’에서는 지난 4월 ‘그래프 오류’에 대해 사과하는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문제가 된 그래프들은 당시 19대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 간 지지율을 보도하는 데 쓰인 것들이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36.8%로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 25.7%에 비해 11.1%포인트 정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프의 격차는 두 배 이상 나는 것처럼 그려졌다. 이런 사례는 방송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가장 잘 알려진 오용 사례 중 하나는 ‘평균의 함정’이다. 정부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근거는 평균의 함정과 관련이 있다. 2020년에 5인 이상 사업체에서 일하는 상용직 근로자의 임금총액 평균의 50%가 1만원이 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문제는 ‘평균’이다. 평균 임금총액에는 고소득 근로자의 임금까지 포함돼 있다. 고용노동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고소득과 저소득 근로자 사이 임금격차가 매우 큰 편이다. 상위 10% 소득 근로자가 하위 10% 소득 근로자보다 4.7배를 더 버는데 소득 불평등 정도가 OECD 가입국 중 꼴찌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의 평균 임금총액을 구하게 되면 자연히 평균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라 지난해 전체 근로자 임금의 중위값, 정확히 중간에 위치하는 값과 평균값을 비교해 보자. 중위값은 1만982원이고 평균값은 1만4038원이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6030원인데, 중위값 기준으로 보면 54.9%로 50%를 넘는 수준이고 평균값 기준으로는 43%로 아직 올려야 한다. 평균과 중위값 중에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을지에 따라 현실 인식은 물론 정책 방향까지 완전히 달라지는 셈이다.

통계청에서 실시한 제2회 ‘통계 바로쓰기 공모전’ 수상작 중 하나도 살펴보자. 고려대 심리학과 석사과정 중인 강새하늘씨는 “왜곡된 해석이 문제를 양산한다”며 성별 임금격차와 관련된 통계의 문제를 지적했다. 강씨가 지적한 부분은 지난 6월 통계청에서 남성의 평균소득은 390만원, 여성의 평균소득은 236만원으로 남성의 평균소득이 여성에 비해 1.65배 높다고 발표한 자료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평균값은 극단적인 값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통계청의 성별 소득구간 분포를 보면 극단적인 저소득층에 여성이 많고 극단적인 고소득층에 남성이 많다. 이에 따라 극단값을 제거하고 나면 남녀 평균소득의 차이는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문제는 남녀의 소득 차이는 단순한 성별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근속연수가 길고 노동시간도 많다. 경제활동인구 조사 결과를 보면 한창 경제활동을 하는 25~29세 사이 남녀의 임금격차는 크지 않은데 40~44세 이후의 성별 임금격차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남녀의 임금격차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성별이 다르니까 임금격차가 심하다’고 설명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남녀의 노동환경이 차이가 나는 이유를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연공서열와 남성 중심적인 직장문화 등을 문제로 삼기 위해서는 평균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통계를 모르고 수치만 비교하기도

최저임금과 성별 임금격차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평균의 함정은 현실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여기에 통계의 특성을 잘못 이해하고 통계 집계 방식을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서 생기는 오류도 많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통계청 마음 내키는 대로 줄어드는 한국의 노동시간’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그렇다.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하면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016년 2188시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계청이 OECD에 보고한 연간 근로시간은 2052시간으로 이보다 훨씬 짧다. 김 연구위원은 “일부러 OECD에 축소보고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계청의 설명에 따르면 김유선 연구위원의 지적은 서로 다른 통계의 특성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진 지적이다. 우선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집계하는 근로시간은 주당 근로시간이다. 주당 근로시간을 집계할 때는 연차나 휴가, 공휴일의 영향이 최대한 적은 주(周)의 근로시간을 조사하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52주 곱해서 연간 근로시간으로 환산할 수 없다. 독일의 경우에도 주당 근로시간에 단순히 52주 곱해서 구하면 연간 1851시간 근로한다는 결과가 나오는데, OECD에는 1363시간으로 보고했다. 통계청 담당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 가지 통계자료로만 연간 근로시간을 정하면 오차가 많이 나게 됩니다. 통계청에서는 전문가들의 공청회와 OECD의 권고사항, 통계학회의 검토를 거쳐서 여러 통계자료를 혼합해 연간 근로시간을 정하고 있고 이를 OECD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제 기준과 비교할 때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서로 다른 통계를 단순히 비교해버리는 오류가 많이 나타난다. 주로 한국의 현실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거나 나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드는 근거다. 서로 다른 통계의 조건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수치만 가져다 쓰는 오류가 대부분이다.

지난 5월 30일 시행된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바로 잘못된 통계 비교로 인해 현실인식이 올바르게 되지 않아 졸속으로 처리된 예다. 그동안 정신병원 강제입원 문제가 종종 사회적인 문제로 언급이 된 바 있다. 환자의 인권침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정부가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관련 법규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보건복지부가 개정 근거로 내놓은 조사 결과는 한국의 정신병원 입원 사례 중 환자의 의지와 상관 없는 비자발적 입원율이 65%로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17.1%, 영국의 13.5%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준호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 8월, 이것이 서로 비교하기 힘든 통계를 단순히 비교한 것에 불과한 자료였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비자발적 입원율이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치라는 것을 알고 나서 의사들도 놀랐습니다. 숫자가 그렇게 나왔는데 정신보건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에 다들 반박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준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우선 재원(在院) 환자만을 조사하는 한국과 연간 전체 환자를 조사하는 유럽의 통계 집계 방식의 차이 때문에 비자발적 입원율이 높게 잡힌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국과 유럽의 문화적인 차이가 크다. 정신질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강하고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병을 인지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신병원 입원은 자발적이기 쉽지 않다. 제도적인 차이도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부터 ‘퇴원중지제도’가 폐지됐다. 퇴원중지제도란 자발적으로 입원한 환자라 하더라도 자해할 위험이 높거나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환자가 퇴원을 요구할 경우 병원이 이를 강제로 막는 제도다. 한국에서는 이 제도가 폐지된 상태라 아예 처음부터 자발적인 입원을 할 수 있어도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 비자발적 입원을 선호한다는 차이가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 개정안이 여론에 떠밀려 졸속으로 시행되었다며 제대로 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줄곧 지적해왔다. 안준호 교수는 “문화적·제도적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비자발적 입원율이 높으니 비자발적 입원을 못하게 하자’고 결론짓는 것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일”이라며 “의도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주장에 맞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통계를 단순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비판했다.

JTBC ‘뉴스룸’ 캡처 화면. 19대 대선 기간 중 그래프 오류에 대해 손석희 앵커가 사과했다.
JTBC ‘뉴스룸’ 캡처 화면. 19대 대선 기간 중 그래프 오류에 대해 손석희 앵커가 사과했다.

통계 리터러시가 필요

결국 통계를 임의로 해석하고 오용하며 제작하는 쪽은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통계가 가장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통계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하는 옳은 잣대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앞서 인용한 박광온 의원의 집값 비교 자료는 전 언론사에 배포돼 ‘서울 집값은 세계 어느 대도시보다 비싸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데 한몫을 했다. 이 사례는 매우 전형적이다. 학자나 정치인이 목적을 가지고 통계자료의 일부분을 가리거나 왜곡해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하면 언론은 별다른 검증 없이 받아 쓴다. ‘미친 서울 집값, 도쿄 넘어섰다’ ‘도쿄보다 1억 비싼 서울 집값… 뉴욕보다도 내집마련 힘들어’ 같은 제목을 통해 젊은층의 박탈감을 부채질한다.

언론이 통계자료를 직접 잘못 해석해 배포할 때도 있다. 뉴스1의 10월 16일자 기사 ‘김밥 가격 1년 전보다 40% 하락’은 통계를 잘못 이해해 통계청에서 직접 해명에 나선 사례다. 기사에서는 통계청의 물가조사에 따르면 전국 평균 김밥 가격은 1990원으로 지난해 3353원에 비해 40% 하락했다고 주장하며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통계청은 기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통계청 물가조사에서 김밥 가격은 2줄을 기준으로 조사했다. 이때가 3352원이었고, 올해 한 줄을 기준으로 삼기로 하면서 새로 조사한 결과 1990원으로 집계가 된 것이다. 같은 단위의 가격 변동을 조사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살펴보면 지난해 김밥 가격 지수는 105.91이었고 올해는 113.66으로 가격이 7.3% 상승했다.

통계 집계 방식의 변화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쓴 기사에는 다분히 감정적인 단어들이 등장한다. “정부가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김밥 가격이 하락했다는 황당한 통계를 올해부터 발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문장이 그렇다.

통계청 관계자는 “언론의 통계 왜곡 문제는 언론사의 기사 생산 방식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비판했다. “언론사 기자 중 통계적 소양을 갖추고 통계자료를 다루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통계의 특성과 해석방법에 대해 거의 고민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 보고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특정한 주장을 하기 위해서 통계자료를 부분적으로 가져다 씁니다.”

그러나 박헌진 인하대 통계학과 교수는 “통계는 그 자체로 사실이나 주장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남학생의 수학 점수가 여학생보다 높다는 통계 자료가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여자보다 수학을 잘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통계는 현실을 전부 반영하는 팩트(fact)가 아닙니다. 현실의 경향(trend)를 반영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통계를 해석하고 통계를 이용해 주장을 만드는 데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통계는 하나의 자료다. 그 자체로 사실을 대신할 수 없다. 오히려 주장하는 바를 검증하는 데 통계가 쓰여야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자신의 주장에 맞게 통계를 짜맞추는 일이 많다. 통계적 자료를 여러 개 들어 죽 나열하고 곧바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통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통계의 특성에 맞게 해석한 다음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에 맞는 통계적 수치를 들고 와 ‘보여주기’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통계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제대로 된 통계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통계적 사고 수준은 마치 초·중·고 12년 동안 영어 공부를 했지만 회화 한마디 하기 어려운 현실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통계 문제를 푸는 교육만 받았지 통계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는 부족합니다.”

통계적 사고란 많은 데이터에서 무엇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깨우치는 사고다. 통계적 자료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통계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만 통계적 사고를 함양할 수는 있다. 통계자료가 인용된 언론 보도나 보고서를 보고, 바르게 인용한 것인지 왜곡은 없는지 확인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통계적 사고를 기르기 위해 통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통계학자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통계는 날개라는 얘기입니다. 통계는 결코 몸통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몸통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지요. 통계 교육을 어떻게,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라는 몸통에 어떤 날개가 달릴지 결정될 겁니다.” 박헌진 교수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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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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