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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호] 2018.06.18

센토사섬에서 김정은이 얻은 6가지

김대현  기자 

▲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photo 뉴시스
외교에서 ‘완벽한 승리’는 없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오늘날 쌍방 또는 그 이상의 국가가 협상에 나서 일방적 승리를 거두는 일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관련 학계에서도 ‘외교에서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적 해석은 과거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적 구도하에서나 가능했던 산물’로 치부한다.
   
   그럼에도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미국의 양보와 북한의 승리’로 규정 짓는 이들이 많다. 특히 국내에서 이런 시각이 압도적인 까닭은 북한의 비핵화, 즉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CVID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여온 미국과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우리 입장에서 ‘선(先) 비핵화’ ‘CVID’가 빠진 대신 북한 체제보장에 관한 내용이 돋보였던 미·북 정상 합의문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번 싱가포르 회담에서 적어도 6가지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선, 북한 노동신문이 6월 13일자 머리기사로 실은 김정은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 자체가 김정은 우상화를 완성하는 동시에 북한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와 관련,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국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북한 사람들의 사고는 굉장히 다르다. 김정은이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성과를 냈다는 건 김일성·김정일도 못한 대단한 업적을 만든 것이다. 장마당이 활성화되고 국제사회의 제재로 간부들의 일탈이 발생하던 시점에 김정은이 미국과의 담판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돼버렸다.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을 위대한 지도자로 떠받들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단적으로 말해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는 장면이 담긴 단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지난 7년 동안 암중모색을 해왔다. 동시에 핵무장 완성을 위해 ‘올인’했다. 지난 2011년 말 김정일이 사망한 뒤 북한 체제를 승계한 김정은은 집권 초기 정권교체에 따른 후유증을 겪었다. 권력승계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지난해 2월 자신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암살한 것은 국제사회가 목도한 사실이다. 정보당국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미국과 중국 등은 김정남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 중단과 개방을 유도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가장 강력한 체제위협 요인에 극약처방을 내린 셈이다. 이에 앞서 김정은은 지난 2013년 12월 친중 행보를 보여온 자신의 고모부이자 북한 내 실세로 통했던 장성택을 공개처형하기도 했다.
   
   미국이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을 국제사회 일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이번 정상회담에 나섰다지만 역설적으로 김정은 독재체제는 더욱 공고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김성민 대표는 “회담에 나선 미국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북한은 미국과 달리 이번 회담 성사에 목숨을 걸었고 그 결과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 자체가 체제를 보장해준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화려한 국제무대 데뷔전
   
   두 번째, 북한은 미·북 회담을 통해 대외적으로 정상국가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둔의 독재자였던 김정은이 국제무대에 보란 듯이 등장해 정상국가의 지도자로 둔갑하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는 ‘영광’ ‘존경’ ‘똑똑한 협상가’라며 김정은을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복수의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미·북 회담의 성사를 위해 북한은 그동안 철저하게 준비해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숨죽이며 핵무장을 완성한 김정은이 문재인 정부를 고리로 걸어잠갔던 문을 열고 나오면서 막혀 있던 국제사회와의 소통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남북관계 개선의지가 강한 문재인 정부의 탄생은 김정은 입장에서 최적의 타이밍이었던 셈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김정은을 중국으로 초청해 환대했고,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영국 등 서방세계가 북한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한국과 중국이라는 지렛대를 활용해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회담에 나오게 만든 것도 김정은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모든 것을 북한이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김정은이 기회를 엿보고 적절한 시점에 ‘거사’를 도모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국제사회 등장은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일본 공안조사청 출신의 한반도 전문가인 사카이 다카시 또한 지난 4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대화에 나선 것은 경제제재 때문이 아니라 미국과 담판할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김정은은 특히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실용적인 면모도 보여줬다. 북한과 4800㎞가량 떨어진 싱가포르까지 약 7시간의 비행을 감당할 전용기가 마땅치 않자 중국에서 항공기를 빌려 타고 이동했다. 이런 사실을 해외는 물론이고 북한 언론에도 공개했는데, 자존심을 중시하는 김정일 체제에서는 불가능했을 법한 일들을 김정은은 해치웠다.
   
   
   핵보유국 공식화
   
   세 번째는 국제사회에 핵보유 국가임을 인식시킨 계기가 됐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강력한 대북 경제제재를 펴며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북한이 어느 수준의 핵개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몇 기의 핵무기를 보유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핵무기를 갖고 있을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공동발표문에 담아 서명함으로써 국제사회는 이제 공식적으로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향후 비핵화를 위한 프로세스가 전개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별개로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공식화됐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보수진영에서는 “미·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성과가 아니라 오히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주고 말았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미·북 정상 간 첫 만남에서 CVID를 못 박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 비핵화로 해법을 선회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네 번째,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이끌어냈다는 것도 김정은의 소득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2일 김정은과 회담 직후 카펠라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향후 (미·북)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엄청난 돈을 절약할 수 있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이라며 “협상하는 상황에서 워게임(War-game)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매우 도발적인 상황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북한은 그동안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북침전쟁 소동’ ‘대결 난동’ 등으로 규정하고 우리 정부와 미국을 싸잡아 비난해왔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지난 5월 16일 열리기로 했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북한이 전격 취소한 것도 한·미 맥스선더 훈련을 명분으로 내세운 바 있다.
   
   북한 소식통들은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북한이 느껴온 압박은 상당했다고 말한다. 매년 한·미 군사당국이 실시해온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같은 대규모 군사훈련이 한반도에서 전개될 경우 북한은 비상체제에 돌입하고 대비태세를 갖춰왔다고 한다. 휴전선 일대 북한 군사들의 긴장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김정은이 상주하는 평양 인근에 병력을 집중하는 등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대응체계를 가동해왔다고 한다.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중단되면 긴장을 완화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인력과 재원의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6월 13일자 북한 노동신문 1면. photo 뉴시스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은 향후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을 흔들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고영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의 분석이다. “북한의 돌발행동을 제어하기 위해 미군이 한국에 상주해왔고 그에 따른 연합훈련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언제 끝날지 모를 미·북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훈련을 중단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다. 이것은 향후 미·북 협상의 결과에 따라 한국 주둔 미군의 지위를 흔들 빌미가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북한 핵을 어깨에 멘 상태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총체적 안보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고 전 부원장은 특히 “몇천만원짜리 미사일 발사장 몇 개를 파괴하고 미사일 엔진 개발을 중단한다는 북한의 말을 미국이 선의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북한의 선전선동은 신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섯 번째는 북한이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에 이어 평화협정 체결에도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됐다. 북한이 주도하는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은 김정은 정권 입장에서도 선대가 달성하지 못한 숙제였다. 만약 미래 핵을 동결하는 수준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낸다면 북한은 실질적으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과 동시에 한반도 내에서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게 된다. 나아가 미·북 수교까지 연결된다면 향후 한반도에서 남한보다 힘의 우위에 서게 된다. 북한에서 교육을 받아온 탈북자들 대부분은 이런 수순이 결국 ‘북한식 사회주의 기반 통일’로 연결될 수 있음을 걱정하고 있다.
   
   미국 의도대로 북한이 보유한 모든 핵을 제거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가 진전된다 해도 그 이후에 한반도의 번영이 보장된다거나 안보 위협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익명의 통일안보 부처 관계자의 설명이다. “핵 없는 북한, 그리고 미군이 철수한 한국은 중국과 일본 등 주변 열강 입장에서 더 이상 핵심 고려 대상이 아니다. 우리 민족끼리 잘 살아보자는 것은 국제사회의 논리와는 거리감이 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돈은 한국과 일본이?
   
   여섯 번째로, 북한은 이번 미·북 정상회담으로 경제제재 해제와 조기 경제지원의 길을 텄다. 미·북 정상들은 이번 회담을 통해 평화와 번영을 향한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을 약속했다. 후속 회담에서 미·북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행동을 이행한다면 막대한 경제적 지원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 미·북 회담 당시 북한의 현재와 미래를 담은 영상을 제작해 직접 김정은에게 보여주며 경제발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련의 경제지원에 대해 한국의 역할을 상정해 두고 있다. 그는 카펠라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에 따른 경제지원 문제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도와줄 것”이라면서도 “미국은 돕지 않아도 된다. 그동안 대가를 많이 치렀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담이 종료된 6월 13일 외신들은 한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북지원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4·27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간 철도 연결 등을 언급한 것을 두고 국내에서는 이미 남북 경협 관련 주식이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 달리 북한 지원에 대한 국내의 반발 목소리가 크게 줄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과거 남북관계 개선 시도가 있을 때마다 ‘퍼주기’ 등을 우려하며 반대 목소리를 냈던 자유총연맹이나 새마을운동중앙회 등의 단체는 오히려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지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번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승리를 거뒀다’는 분석이 압도적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빈손으로 귀국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미국 내 여론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호의적이라는 평가가 일단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이 미·북 정상회담 직후 미국 내 성인 유권자 1000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1%가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협상을 잘했다”고 평가했다. ‘미·북 정상회담이 핵전쟁 위험을 낮췄다’는 평가는 39%,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37%, ‘모르겠다’는 응답은 34%로 나타났다. 이런 평가는 미국의 혈맹인 한국이 미·북 회담을 바라보는 시각과 미국 내 여론에 괴리감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트럼프, 특검 돌파구로 대북 카드 활용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대선에서 자신의 선거 캠프가 러시아 측과 연루됐다는 의혹과 함께 해당 사건 수사 담당자를 해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사법방해 혐의로 로버트 뮬러 특검의 조사를 받고 있다. 뮬러 특검은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지기 전까지 특검 수사를 매듭 지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을 옥죄어오는 특검의 칼날을 피할 이슈가 필요했던 상황이었는데, 북한 핵 문제야말로 뮬러 특검의 예봉을 피할 돌파구가 아니었겠느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내 보수 정치권 한 핵심 인사의 분석을 들어보자. “미·북 정상회담을 한 차례 취소하는 소동이 벌어졌는데, 이를 통해 트럼프는 북한을 손아귀에 넣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때부터 북한의 활용가치를 자신의 정치적 상황에 맞춰 관리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을 것이다. 중간선거, 뮬러 특검, 그리고 2년가량 남은 재선 가도에 북핵 이슈를 끌고가면서 자국의 눈과 귀를 외부로 돌리려는 게 아닌가 싶다.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를 묵인해주면서 결과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는 타이밍까지 계산했기 때문에 이번 싱가포르 회담에서 맹탕 합의문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북한 문제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구도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의도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이런 분석을 했다. “미·북 정상의 만남으로 한반도에 어정쩡한 평화가 찾아왔다.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까지 중단한 마당에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내란 이외에는 없다고 본다. 단,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미국이 대중국 전략구도하에서 한국보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우리에게 북한에 대한 막대한 지원 책무만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는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완승을 거뒀다. 이를 발판으로 군소 야당과 연정을 통한 여대야소의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보수진영을 ‘패싱’한 채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가속페달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으로서는 향후 미·북 협상을 통해 진짜 비핵화 단계를 밟아 나간다면 자본 유입과 동시에 스며들 자유주의 이념을 어떻게 제어하느냐는 숙제를 떠안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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