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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303호]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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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미스터 나이팅게일!

남자 간호사 곧 2만명 시대

황은순  차장  / 홍근혜  인턴기자·연세대 국어국문학과 3년  

▲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수술 회복실에서 김장언 수간호사(왼쪽)와 김철환 간호사가 어린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1984년부터 10년 동안 프랑스에서 살았던 오미숙(가명)씨는 둘째 딸을 1988년 12월 파리 근교 크레테이의 한 병원에서 출산했다. 오씨는 병원을 가기 전에 주변 지인들로부터 특별한 조언을 들었다. “병실에 남자 간호사가 들어와도 놀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병원에 가서 보니 남자 간호사들이 산부인과 병동을 활보하고 다니는 게 아닌가. 분만실에서 입원실로 침대를 옮길 때도 남자 간호사 두 명이 와서 가뿐하게 들어 올려 주었다. 한국에서 첫째 딸을 출산할 때는 여자 간호사들이 여러 명 달려들어 겨우 옮겼던 걸 생각하니 힘센 남자 간호사가 있어 편하긴 했다. 기겁할 일은 분만 후 병실에 누워 있을 때였다. 남자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치료 부위를 들추고 슥슥 소독을 하고 나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남자 간호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오씨에게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다.
   
   25년이라는 시차가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곧 익숙한 풍경이 될 전망이다. 경기도 성남의 분당서울대병원 심혈관계 중환자실. 10개의 베드가 있는 이곳에는 세 명의 간호사가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4월 16일 오전 시간대 근무조는 남자인 박근태 간호사와 두 명의 여간호사이다.
   
   “팔이 간지러워. 이것 좀 봐줘.”
   
   “죽은 그만 먹고 싶어. 밥 달라고 해줘, 잡곡밥.”
   
   환자들이 박 간호사를 붙들고 이것저것 요구사항을 늘어놓는다. 이곳에서 박 간호사의 인기는 아이돌 가수 못지않다. 신경계 병동이다 보니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많아 힘쓸 일이 많다. 그렇다고 해도 박 간호사가 힘든 일을 도맡아 하지는 않는다. 업무 분담은 남녀 구분 없이 똑같다. 박 간호사는 “여간호사보다 특별히 힘쓰는 일이 있다면 병뚜껑 따는 정도”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현재 분당서울대병원에는 수술실·중환자실 등에 15명의 남자 간호사가 일하고 있다.
   
   간호사는 여성의 영역이라는 등식은 과거의 이야기가 됐다. 성(性)의 벽을 깬 ‘미스터 나이팅게일’ 2만명 시대가 머지않았다. 대한간호협회 통계에 따르면 현재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한 남자 간호사는 7443명이다. 지난해 말 현재 전국 간호대학에 재학 중인 남학생은 1만1182명에 이른다. 현재 재학 중인 남학생들이 졸업하는 4년 후에는 남자 간호사가 2만명에 육박한다. 전체 간호사(면허증 취득 기준 32만3701명) 대비 남자 간호사 비율은 현재 2.3% 수준이다. 미국의 7%, 일본의 6%와 비교하면 아직은 많지 않지만 간호대학에 진학하는 남학생 비율이 급격하게 늘고 있어 10년 이내에 선진국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 간호대학 재학생 수에서 남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4년 4.7%에서 10년 만에 15%대로 높아졌다. 남학생 비율이 늘면서 간호사 국가고시 합격자 수도 2004년 121명(전체 합격자의 1%)에서 2014년 1241명(8%)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호남대학교 간호학과 조은아 교수는 “남학생 비율이 꾸준히 늘어나 호남대학교 1학년의 경우 100명 중 남학생이 20% 가까이 된다. 이제는 남학생의 간호학과 입학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한국교통대는 지난해 남학생 비율이 25% (15명)에 이르렀다. 이 대학의 이순희 간호학과장은 “최근 2~3년 새 부쩍 남학생이 늘었다. 학과 생활에서도 이제 남학생들은 소수파가 아니다. 우리 학교 2, 3학년 과대표도 남학생들이다. 입학사정관으로 나가 보니 고1 때부터 간호학과를 준비하는 남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금남의 구역’이었던 국군간호사관학교도 2012년부터 남자에게 개방했다. 총 정원의 10%만 뽑는 남학생의 입시 경쟁률은 첫해인 2012년 94.3 대 1, 2013년 51 대 1로 치열했다. 지난해에는 ‘대한남자간호사회’(회장 김장언 서울대병원 수간호사)가 발족됐다. 서울대 간호학과 1979학번으로 30년째 병원 현장을 지키고 있는 김장언 회장은 “간호사로서 성별에 따른 능력의 차이는 많지 않다.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집중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내가 병원 생활을 시작하던 때만 해도 사회적 편견이 심해 남자 간호사를 이상하게 봤지만 요즘엔 아들을 간호학과에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원격진료가 도입되고 고령화시대가 되면 치료보다 간호의 역할이 더 커지고 간호사 수요도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의사도 이젠 여성 비율이 50%를 넘어선 만큼 남의사, 여간호사가 아닌 여의사 남간호사가 자연스러운 시대가 됐다. 이젠 성별에 따른 영역의 구분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 백찬기 홍보국장은 “어느 한 성의 비율이 5%가 넘어서면 일방적인 영역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간호사도 남자 비율이 5%가 넘으면 여성만의 직업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4년 내 5%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간호대학 남학생 비율이 어문계열보다 오히려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 간호사가 급격하게 늘어난 이유는 무엇보다 100%에 가까운 취업률이다. 백찬기 국장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경제난으로 취업이 어려워지자 남학생들이 취업률 높은 간호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남자 간호사들의 경우 그동안 희소성 때문에 병원 입사 때 플러스 요인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 분당서울대병원의 박근태 간호사. 이 병원에는 남자 간호사 15명이 근무하고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대병원 소아수술실 김철환 간호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대학 졸업자들이 다시 간호학과에 편입해 간호사가 된 경우도 많다. 내가 서울대병원에 입사한 2010년을 전후해 2~3년 동안 남자 간호사가 부쩍 늘었다. 현재 서울대병원에 간호사가 2000여명인데 그중 남자 간호사는 45명으로 2%가 조금 넘는다.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은 남자 간호사 비율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고 말했다.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누적 남자 간호사 수를 보면 2009년까지 수십 년 동안 배출된 수(2745명)보다 2010년 이후 5년 동안 배출된 수(4698명)가 훨씬 많다.
   
   사실 남자 간호사의 역사는 오래됐다. 1936년 삼육보건대학의 전신인 경성요양병원 부속 간호원양성소에서 처음으로 남자 간호사가 나온 이후 1961년까지 22명이 배출됐다. 당시에는 남성에게 면허를 발급하지 않아 간호사로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우리나라 제1호 남자 간호사는 1962년 서울위생간호학교(현재 삼육보건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면허증을 받은 조상문(78)씨다. 조씨는 서울위생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후 위생간호전문학교장, 삼육대 간호학과장을 거쳐 1977년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났다. 조씨는 미국에 자리를 잡고 남캘리포니아 환자재정복지관으로 근무한 후 은퇴했다. 삼육대 미주 총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조씨는 2012년 남자 간호사 50주년 기념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1972년 2월 19일자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의 가십난에는 ‘간호원시험에 남자가 수석’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기사에는 ‘국립보건연구원이 실시한 간호원 자격 국가시험에서 남학생 4명을 포함해 총 2448명이 합격했는데, 그중 서울위생병원 부설 간호학교를 졸업하는 장검현군이 수석합격을 차지해 화제’라고 쓰여 있다. 당시 시험을 주관한 국립보건연구원에서는 남학생의 수석합격을 믿지 못해 재채점을 하고 학교에 신원조회까지 요청했다고 한다. 장검현(65)씨는 졸업 후 서울위생병원(현 삼육서울병원) 청일점 간호사로 일하다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나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돼서 돌아왔다. 장씨는 현재 부산에서 소아과 병원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장언 수간호사가 입학할 당시만 해도 남자가 간호학과에 입학하는 것은 신문에 날 정도로 화제가 될 일이었다. 김 수간호사는 “1977년도에 서울대 간호학과 최초로 남학생이 입학했다는 기사를 읽고 간호학과에 갈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 수간호사처럼 신문기사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았던지 1979년도엔 서울대 간호학과에 남학생 지원자 30명이 몰려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30명 중에서 김 수간호사를 비롯해 5명이 합격해서 3명은 중도 탈락하고 2명이 졸업했다. 그중 한 명은 현재 의료기기 사업을 하고 있고, 김 수간호사는 서울대병원 최초의 남자 간호사로 들어와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다. 김 수간호사를 간호사의 길로 이끈 77학번 청일점은 정작 2년을 다니다 그만두고 다시 의대를 들어가 의사가 됐다고 한다.
   
   김 수간호사는 “1979년도에 경쟁률이 높았던 탓인지 그후로 한동안 남학생 지원자가 없었다. 서울대병원에도 남자 간호사는 한동안 나밖에 없었다. 10여년이 지나서야 후배 남자 간호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수간호사가 들려준 에피소드 하나. 대학에 입학해 교양학부 수업시간이었다. 여학생들에 둘러싸여 계단식 강의실 한가운데 앉아 있는데 교수가 들어와서 그를 보더니 깜짝 놀라 “자네 왜 거기 앉아있나. 빨리 나가”라고 하더라는 것.
   
   숫자의 변화만큼 남자 간호사의 역할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그동안 남자 간호사는 ‘체력’이 요구되는 중환자실, 응급실, 수술실, 정신과병동 등 특수파트에 주로 배치됐다. 지난해 KBS2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굿닥터’에 나온 소아과병동의 남자 간호사 조정미(고창석 분)는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웠다. 일반병동은 그동안 여자 간호사의 영역이었다. 환자, 보호자들과 직접 부딪혀야 하는 부담 때문에 남자 간호사들도 지원을 꺼리는 데다 병원 측에서도 힘을 쓰는 부서에 우선 배치했다. 수술실, 중환자실 등 특수파트의 경우 간호사 트레이닝이 힘들기 때문에 한번 배치되면 일반병동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반병동에 존재하던 성벽도 이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남자 간호사들도 최근 일반병동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의 남자 간호사는 49명(전체 809명)인데 이 중 7명이 일반병동에서 일하고 있다. 대형 병원 중에서 남자 간호사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울대병원의 경우는 장창섭 수간호사가 2001년 처음으로 일반병동에 배치된 것을 비롯해 2명이다. 조은아 교수는 “남자 간호사들의 일반병동 배치가 늘고 있다. 조선대학교병원도 남자 간호사들이 워낙 많이 들어오니까 일반병동 배치도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변화의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병동에 아직 남자 간호사가 한 명도 없는 분당서울대병원의 조문숙 간호본부장은 “남녀 간호사가 같이 일하는 것이 서로의 발전을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 섬세하고 환자들의 정서적인 부분을 돌보는 것은 여간호사들이 앞서지만 결단력이나 전체를 보는 면에서는 남간호사들의 장점도 많다. 아직은 여성 환자들이 남자 의사에게 처치를 받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남자 간호사들에게 신체부위를 보이는 것은 불편해하지만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일반병동으로도 남간호사를 많이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병원 밖 선택의 길도 많다. 현재 면허증을 갖고 있는 남자 간호사 7400여명 중 병원에 취업한 숫자보다 다양한 의료 관련 업종으로 진출한 숫자가 더 많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2013년까지 면허증을 취득한 6202명 중 병원에서 일하는 남자 간호사는 3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나머지는 보건 관련 공무원, 소방공무원, 보건직 교사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제약회사, 의료 관련 회사에서도 간호학과 출신들이 환영받고 있다. 김장언 회장은 “병원뿐만 아니라 의료산업계에서 간호대학 졸업자가 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넓다. 요즘에는 병원 경영, 관리파트에서도 간호사를 선호한다. 새로 개척할 수 있는 분야도 많다. 몇몇 사람들과 병원 수출, 병원 인력 수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병원 수출이라고 하면 병원만 지어주고 의료시설 넣어주는 하드웨어만 생각하는데,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인력까지 채워 줘야 병원 수출이 제대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남간호사의 역할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자 간호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군대 문제이다. 군 입대 기간 경력단절에다 군복무로 병원 취업이 늦다 보니 학교 후배를 병원에서는 거꾸로 선배로 모시고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한남자간호사회는 발족하면서부터 공중보건간호사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장언 회장은 “남자 간호사나 간호 대학생들을 공중보건의처럼 공중보건간호사로 투입하면 경력단절 없이 임상경험을 쌓을 수 있고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은 간호사 부족사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농어촌지역 의료인력 부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 공중보건간호사가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남자 간호사들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병역법을 개정해 간호사도 공중보건의료인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병역법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를 공중보건의사로 규정하고 있다. 신경림 의원(새누리당)은 2012년 9월 ‘공중보건의사’ 명칭을 ‘공중보건의료인’으로 바꿔 남자 간호사도 병역의무를 공중보건 업무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병역법 일부 개정 법률안’과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백의의 전사’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개정안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위원장 오제세) 법안심사소위에서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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