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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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OECD 국가들의 최상위 소득과 세금, 위기는 과연 게임 체인저인가?’라는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서 OECD는 18개 회원국들의 소득 상위 1%층이 각국 전체 소득의 얼마를 점하는지를 보여주며, 경제위기가 각국 최상위 소득층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8개국 소득 상위 1%층이 각국 소득에서 점하는 비중은 1981년 평균 6.5%에서 2012년 9.7%로 높아졌다. 특히 미국은 1980년부터 2012년까지 이 수치가 두 배 가까이 늘어 2012년에는 20%에 육박했다. OECD는 빈부 격차를 좁히기 위해 부자에게 유리한 면세 제도 등을 철폐하고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OECD 보고서가 분석 대상으로 삼은 회원국은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스위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일본, 이탈리아, 호주, 스페인, 프랑스, 노르웨이, 핀란드, 뉴질랜드,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이었다. 한국은 빠졌는데, 왜 빠졌을까?

당시 OECD 보고서가 분석에 활용한 각국 고소득층 관련 수치들은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World Top Income Database, http://topincomes.parisschoolofeconomics.eu/)에 실린 것들이다.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는 최근 ‘21세기 자본론’이란 저서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파리경제대학 교수인 토마 피케티를 비롯해 파쿤도 알바레도, 토니 애킨슨, 에마뉴엘 사에즈 등의 경제학자들이 구축해온 데이터베이스다. OECD는 5월 보고서에서 자신들이 활용한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에 대해 “전통적 방식의 가계소득 조사는 고소득층의 소득을 정확히 잡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세금 자료를 활용한 데이터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훨씬 적합하다”고 지적했다. 피케티가 ‘21세기 자본론’에서 소개한 대로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의 수치들은 각국 국세청 자료를 바탕으로 파악한 것이다.

피케티 등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에는 현재 28개국(이 중 18개국이 OECD 국가)의 소득분배에 대한 자료들이 올라와 있지만 한국 관련 자료는 없다. 한국에는 그동안 관련 연구가 없었고, 피케티 팀도 한국을 분석 대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OECD가 보고서를 쓰는 데 활용한 데이터베이스에 한국 관련 자료가 없기 때문에 OECD 보고서에도 한국에 대한 분석이 빠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에 한국 소득분배 통계가 조만간 올라가기 때문이다. 동국대 김낙년(57) 교수(경제학)가 국세청 자료를 활용해 한국의 소득분배에 대해 분석한 논문과 통계수치들이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에 올라가고, 앞으로 이를 활용한 OECD의 소득불균형 보고서에도 한국 관련 분석이 실릴 전망이다. 지난 6월 30일 서울 중구의 동국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낙년 교수는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 팀이 내 논문을 보고 먼저 연락이 와서 리뷰가 이뤄지고 있다. 곧 논문과 통계자료들이 DB에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의 소득분배와 소득불균형의 실상을 알리는 데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월드 톱 인컴 데이터베이스’에 올라가는 김 교수의 논문과 통계들은 그가 소장으로 일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 홈페이지(www.naksung.re.kr)에 떠 있다. 지난 6월 3일 발간된 ‘Top Incomes in Korea, 1933-2010:Evidence from Income Tax Statistics’라는 영어 논문으로, 김 교수가 2012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한국의 소득분배 관련 논문들을 업데이트한 것이다. 김 교수는 2012년부터 발표한 논문들에서 한국 국세청 자료들을 활용해 피케티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국의 고소득층과 소득분배 문제를 분석해 왔다. 그동안 언론에서 적지 않게 주목한 그의 논문은 우리가 짐작하던 한국의 소득불균형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한 상태에 있다는 걸 객관적 수치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한국은 2012년 현재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한다. 이는 전 세계에서 소득불균형이 가장 심한 미국(소득 상위 10%가 48.16% 점유)에 육박하는 수치이며 일본(40.50%), 프랑스(32.69%)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1979~1995년 30%에 머무르던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2000년 35%를 넘었고, 2006년 42%로 치솟았다.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한 국가는 미국과 한국 정도다. 일본과 영국은 금융위기를 지나며 최근 이 비중이 떨어지고 있다. 한국의 상위 1%의 소득 비중도 2012년 12.41%로 조사됐는데 이 수치 역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하고 있다. 1997년 이전까지 7%가량에 머물던 상위 1%의 소득 비중은 2005년 10%를 돌파한 이후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상위 1% 소득 비중도 2005년부터 일본, 프랑스를 넘어섰다.

김 교수의 논문이 ‘피케티 DB’에 올라가는 것은 김 교수의 표현대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앞으로 OECD가 이 자료를 활용해 한국의 소득불균형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한국의 소득불균형 정도가 기존의 통계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사실상 대외적으로 공식화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낙년 교수는 그동안 기존 한국의 소득 분배 지표로 활용되어온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점을 줄곧 지적해 왔다. “통계청 조사를 바탕으로 한 지니계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소득불균형 정도가 OECD 중간 정도에 위치합니다. 특히 세금 부과 전 시장 소득을 기준으로 할 경우 한국은 세금을 통한 소득 재분배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소득불평등 정도가 세계에서 가장 미미한 정도로 나옵니다. 이것은 제 연구와는 정반대의 현실 인식입니다. 그동안 통계청은 제 연구 결과에 대해 자꾸 토를 달았지만 이제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내 얘기를 더 믿게 되는 셈입니다.”

통계청 지니계수는 뭐가 문제라는 걸까. 김 교수는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는 8000가구 정도의 샘플을 인구통계학적 기법으로 선정해 조사 대상 가구들이 수입과 지출 등 가계부를 알아서 쓰게 하고 이것을 원 데이터로 쓴다”며 “그런데 여기에는 금융소득은 잡히지 않고 연 소득 2억원 이상의 고소득자 수십만 명도 잡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샘플링을 하면 연 소득 2억원 이상의 고소득자도 샘플 대상에 잡힐 수밖에 없지만 조사에 응하지를 않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고소득자일수록 통계청 조사에서 빠지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했다. 이자 등 금융소득도 조사 대상 가구들이 스스로 빠뜨리면 파악할 길이 없다. 김 교수는 “국세청에서 파악한 금융소득 총액을 기준으로 하면 가계조사에서는 5%만 파악되는 걸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종합소득세 신고가 일반화돼 있는 미국의 경우 가계동향조사를 할 때 종합소득세 신고 직후 소득을 물어본다”며 “미국에서는 크로스체크 기능이 있기 때문에 답을 제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작년 6월 발표한 ‘한국의 소득분배’라는 논문에서 기존 지니계수가 가지는 문제점을 보정(補正)해 수정 지니계수를 만드는 시도도 했다. 그 결과 통계청이 파악한 0.314라는 지니계수가 0.372로 올라갔다.(지니계수의 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 김 교수는 “보정 지니계수로는 우리의 소득불평등이 OECD에서 5위였다”고 했다.

김 교수가 자신의 연구에서 활용한 국세청 자료는 국세청 연보다. 여기에는 납세자 개인소득 신고 자료를 바탕으로 구간별 소득이 파악돼 있다.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과 다를 수가 없다. 김 교수는 “국세청에 신고된 개인 자료는 대외비라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없지만 연보는 공개 자료”라며 “국세청 자료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세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기존 학자들이 연구 자료로 활용하기를 꺼렸다”고 했다. 김 교수는 연구를 위해 세법도 따로 공부했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국세청, 한국은행 등의 관계 공무원에게 수시로 물어봐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날 정도가 됐다고 한다.

왜 한국은 급격하게 소득불균형 국가가 됐을까. 김 교수의 논문을 보면 한국의 소득분배는 일제강점기 때는 악화된 상태였지만 이후 안정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다시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일종의 U자 그래프를 그린다. 우리가 익히 짐작한 대로 1997년 외환위기가 한국 소득불균형의 새로운 기원으로 작용한 것이다. 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고도성장기 빠르게 늘고 평균임금도 상승하던 비농업 부문의 고용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줄어드는 것이 그중 하나다. 김 교수는 “중국 등 저임금 국가와의 교역 확대를 포함한 세계화 심화가 고용을 줄였고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를 가속화하면서 근로자 간의 소득격차도 확대시켰다”고 지적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 지배구조 변화와 성과주의 보수체계의 확산도 소득 격차의 확대를 불러왔다. 특히 상층 소득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세율구조가 변화된 점도 이를 가속화시켰다. 김 교수는 “소득세법에 규정되어 있는 최고 세율 추이를 보면 1960~1970년대 빠르게 상승하여 70%까지 갔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최근에는 그 절반으로 내려갔다”며 “1980년대 이후 미국 레이건 정부나 영국 대처 정부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추진되고 소득세율을 대폭 인하하는 조세 정책이 당시 세계적 조류가 되었는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사 연구자다. 낙성대경제연구소에서 동료 학자들과 함께 지난 100년간의 경제 변화를 입수 가능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치화해서 분석해내는 게 본래 연구 영역이다. 이런 연구 성과는 몇 년 전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지난 100년의 국민계정(National Accounts) 추이를 방대한 데이터로 정리해내는 성과를 낳았다. 김 교수는 “이번의 소득분배 추이 연구도 국민계정 연구의 부산물”이라며 “연구성과가 쌓이고 있기 때문에 3년 후쯤에는 경제뿐 아니라 사회 통계 등을 포함해 한국의 지난 100년을 데이터로 보여주는 ‘한국의 역사 통계(Historical data in Korea)’의 발간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김 교수는 “수치화된 데이터 없이 우리는 그동안 구름 잡는 얘기만 해온 측면이 있다”며 “‘히스토리컬 데이터 인 코리아’는 각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실증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구하는 학자일 뿐 정치적 편향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득불균형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피케티가 주장하듯이 부자 과세가 문제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한다. 김 교수는 “소득불균형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문제는 어떤 복지 체계를 가져가느냐는 것과 일자리, 성장과도 관련된 문제”라며 “지금처럼 소득 상위 10%가 80% 가까이 세금을 내는 상황에서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재원을 두 배로 늘리려면 야당의 주장처럼 부자 과세로만은 해결이 안 되고 모든 사람의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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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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