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가 한국말을 참 잘하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 시온고마을 아리랑요양원의 김나영(39) 부원장이 처음 이곳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아리랑요양원에는 현재 39명의 고려인 노인들이 살고 있다. 모두 1937년 이전 출생한 중앙아시아 이주 고려인 1세들이다. 어린 시절 생사를 넘는 강제이주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아침 안부를 묻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요양원을 오가며 이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이 김나영 부원장의 일이다. “운동하시라” “약 잘 드시라” 잔소리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우즈베키스탄은 멀고 낯선 곳이었다. 2009년 11월 그는 자원봉사자로 이곳을 찾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직장인 9년차, 관리자의 위치가 돼서 행정업무에만 매달리는 삶에 염증이 느껴졌다. 해외봉사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던 중 아리랑요양원의 자원봉사자 모집공고를 보게 됐다. 목화밭과 뽕나무가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를 지나 2층 건물만 달랑 서 있는 요양원에 도착했을 때는 단 몇 개월도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시끌벅적한 서울에 비하면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투정만 부리면서 시간을 보내다 문득 “이곳에 온 이유를 내 자신에게 증명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자원봉사 기간이 끝날 때쯤 그는 모든 노인들의 손녀가 돼 있었다. 결국 그는 아리랑요양원의 정식 직원이 됐다. 이제는 “일 없소” “부끄럽소” 등 노인들의 말투를 닮아가다 보니 한국에 나가면 오히려 조선족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가 가장 힘들어 하는 일이면서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는 임종을 지키는 일이다. 평균연령이 83.5세이다 보니 매년 2~3명씩은 운명을 달리한다. 그는 주간조선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 분 한 분이 살아있는 역사이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어른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내 부모는 내가 모셔야 한다’는 부양의식이 강해 아리랑요양원에 입소한 경우는 의탁할 곳 없는 외로운 처지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만큼 안타까운 사연도 많다. 그들에게 한국은 죽기 전에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고향이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인의 관심이 아쉽다고 했다. “이분들은 자신들이 기억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고려인 독거노인을 위한 유일한 양로원인 덕분에 요양원이 처음 생겼을 때는 방문자가 많았는데 점점 잊혀질 수밖에 없겠지요. 이분들은 무엇보다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올해로 7년째, 그의 버팀목은 노인들이다. “아무것도 모를 때 우즈베키스탄 전통의상을 곱게 지어 선물해 주고, 제 생일 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연금을 모아 인형과 이불을 안겨주셨어요. 처음 이곳에 와서 받았던 사랑을 이제야 돌려드리고 있는 것 같아요.”

아리랑요양원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고려인 독거노인들을 위해 2010년 설립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김 부원장도 KOFIH 소속이다.

마지막을 의탁할 곳을 마련해준 고국에 대해 끊임없이 고마워하는 노인들을 보면서 그도 새삼스럽게 애국심을 배웠다고 한다. 평생 받을 칭찬을 이곳에서 다 받고 있다는 그가 다시 한 번 당부의 말을 전했다. “된장과 김치를 좋아하고 우리와 같은 말을 하는, 내일이면 찾아뵙지 못할 고려인 어르신들이 머나먼 땅에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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