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면 졸업생들이 회귀하는 연어들처럼 학교를 다시 찾아온다. 다른 학교도 그렇겠지만, 모교 졸업생 중에는 ‘5월의 연어’들이 특히 더 많은 듯하다. 3 년 동안의 기숙사 생활이 학교와 선후배 그리고 교사에 대한 애착을 더욱 키웠을 것이다.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너 이번 학기 마치고 군대 간다며?” “어머님 건강은 괜찮아지셨니?” 등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나의 옛 제자들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를 찾아오는 학생들은 나에게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침밥은 꼭 먹어라” “수업시간에 늦지 마라” “잠은 자면서 공부해야 한다” “스스로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등 교사라면 한 번쯤은 해보았을 잔소리를 나도 많이 한다.

우리 학교는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기숙형 학교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함께하는 방식을 배우고 서로를 배려함으로써 사회성과 대인관계를 배운다. 그러나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하거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서 생활해야 한다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과 결핍을 겪는다. 이러한 어려움과 결핍은 어떤 학생들에게는 큰 영향을 끼쳐 학교생활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학생들을 돕는 방법이 ‘잔소리’다. 엄마 아빠가 집에서 하는 그런 잔소리 말이다. 잔소리를 듣는 학생들은 짜증난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나는 모른 체하고 계속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잔소리 후에는 꼭 잔소리하는 이유를 말해주곤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너희들에게 결핍된 것은 부모님의 잔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너희들의 부모님의 마음으로 계속 잔소리를 할 것이다”라고….

이러한 잔소리 교육은 나의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실패의 고배가 많았던 인생 굽이굽이에서 나는 어려울 때마다 늘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부모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안부를 물으시며 여러 잔소리를 하셨다. 그러나 잔소리 내용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잘 지내지 얘야, 보고 싶단다. 사랑해”라고 계속 반복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전화 한 통은 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부모님께 전화를 하곤 한다.

며칠 전 스승의 날이라고 찾아온 제자들을 만나자마자 안부 몇 마디 묻고는 나는 또 잔소리를 시작했다. 제자들은 그 잔소리를 밝은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 순간 그 옛날 부모님과 전화를 하던 내가 떠올랐다. 다음 수업에 들어가서도 나는 학생들에게 부모님의 따뜻한 정이 담긴 ‘잔소리’를 할 것이라고 다짐해본다.

김민철

경기과학고등학교 물리교사

김민철 경기과학고등학교 물리교사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