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강원도 춘천시의 의암빙상장에서 만난 강원도청 아이스슬레지하키팀과 협회 소속 선수들. (앞줄 가운데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지훈, 김영성, 조병석, 한민수, 장동신, 이종경, 류지현, 최시우, 정승환, 이재웅, 조영재, 유만균, 장종호, 최광혁 선수.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21일 강원도 춘천시의 의암빙상장에서 만난 강원도청 아이스슬레지하키팀과 협회 소속 선수들. (앞줄 가운데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지훈, 김영성, 조병석, 한민수, 장동신, 이종경, 류지현, 최시우, 정승환, 이재웅, 조영재, 유만균, 장종호, 최광혁 선수.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2002년 어느 날, 당시 서른 살이던 이종경씨에게 장애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이씨는 아침 일찍 패러글라이딩 동호회 활동을 하기 위해 평택집을 나섰다. 이날 장소는 충청남도 대천 해수욕장. 이씨는 벌써부터 절벽을 타고 활강할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패러글라이딩 동호회로 활동을 한 지도 어느덧 7년. 이만하면 스스로 반(半)전문가라고 생각했다.

대천에 도착해 패러글라이딩 복장으로 갈아입고 장비를 점검했다. 이제 절벽에서 뛰어내려 푸른 하늘에 몸을 맡기면 될 차례였다. 이씨는 패러글라이딩에 몸을 싣고 있는 힘껏 절벽을 내달렸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패러글라이딩 기술인 스파이럴(spiral)을 시도했다. 스파이럴이란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기술을 말한다. 빠른 속도로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속도에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이씨는 원심력으로 인해 순간 정신을 잃고 그대로 추락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날 이후 이씨는 척수1급장애 판정을 받고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그렇게 평범한 농협 기술직 직원이었던 그의 삶은 하루아침에 바뀌게 되었다.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재활병원에서 만난 한 환자의 추천으로 아이스슬레지하키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선수 생활이 13년째이다. 그는 현재 강원도청 아이스슬레지하키팀의 주장이다.

국내 유일의 실업팀

2006년 창단한 강원도청 아이스슬레지하키팀은 국내 유일의 실업팀이다. 아이스슬레지하키란 아이스하키(ice hockey)와 슬레지(sledge)의 합성어다. 스케이트 대신 양날이 달린 썰매에 앉아서 스틱을 양손에 쥐고 퍽(puck)을 상대 골에 넣는 경기다. 썰매의 특성상 다리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장애인들이 즐길 수 있는 대체 종목으로 성장했다.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패럴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현재 동계 패럴림픽 경기에서 가장 격렬하면서도 인기 있는 종목이다. 경기 방식은 아이스하키와 똑같다. 다만 경기시간이 3쿼터 15분씩 총 45분으로 아이스하키보다 1쿼터당 5분씩 짧다. 한 팀은 골키퍼를 포함해 6명의 선수로 이뤄진다. 아이스슬레지하키를 하는 선수들의 장애의 종류는 다양한 편이다. 뇌병변, 하반신 마비 등으로 최소한 발목 이상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 선수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

지난 6월 21일 강원도청 소속 아이스슬레지하키팀이 훈련 중인 강원도 춘천시의 의암빙상장을 찾았다. 현재 의암빙상장에서는 강원도청 팀원 10명과 협회 소속 선수 4명이 함께 훈련을 하고 있었다. 기자는 선수들이 훈련을 준비하고 있는 로커룸에 들어섰다. 선수들은 가방에서 운동도구를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썰매의 날을 갈기도 했고, 하키 스틱을 수건으로 정성스레 닦았다. 그때 한 선수가 자신의 의족을 벗었다. 다른 선수들도 하나둘 벗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탄 선수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기자는 처음 보는 풍경에 깜짝 놀랐다. 자신의 몸의 일부인 의족을 벗어 놓은 장애인의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썰매를 타기 위해서는 휠체어와 의족 모두 불필요한 대상이다. 그들은 빙상장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보조기구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이종경 선수는 “이때가 장애를 잊는 가장 짜릿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훈련 때 그들에게 주어지는 건 썰매와 두 개의 하키스틱뿐이다.

이들이 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가 된 계기는 무엇일까. 팀의 맏형 한민수(46) 선수는 올해로 경력 17년 차인 베테랑 선수다. 그는 두 살 때 관절염을 앓으며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학창 시절 친구들과 운동을 즐겼다. 목발을 짚으면서도 축구를 할 정도였다. 서른 살이 되던 해, 골수암으로 전이가 되며 결국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렇게 휠체어농구부터 시작해 결국 하키스틱을 손에 쥐며 장애인 국가대표가 됐다. 선수 생활을 포기할 뻔한 우여곡절도 많았다. 실업팀에 입단하기 전에는 평일에 회사 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운동을 했다. 일과 운동을 병행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꿈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빙상장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눈 녹듯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영성 선수가 스틱에 있는 픽을 다듬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김영성 선수가 스틱에 있는 픽을 다듬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아이스슬레지하키로 다시 태어난 선수들

최시우(21) 선수는 동네에서 소문난 골목대장이었다. 각종 문제를 일으키며 부모님 속을 썩이는 철없는 아들이었다. 19살 때 3층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다. 당시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하는 수술은 고등학생인 그가 감당하기에는 큰 시련이었다. 항상 패기 넘쳤던 최 선수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자신감은 사라지고 의기소침한 날들이 계속됐다. 그때 우연한 계기로 아이스슬레지하키협회의 김정호 코치 권유로 하키스틱을 쥐게 됐다.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뒤바뀌었다. 최시우 선수는 “취미로 시작한 아이스슬레지하키가 이제는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며 “사지가 멀쩡했을 때도 이렇게 격렬하게 운동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팀의 간판 정승환(30) 선수는 이종경 주장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했다. 둘은 평택의 한국복지대학교 동기이다.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먼저 아이스슬레지하키에 빠져 있던 이 선수가 정 선수에게 함께할 것을 권유했다. 정 선수는 다섯 살 때 공사현장 파이프에 깔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뒤로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정 선수는 이상하게 빙상장으로 이끌리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선수 생활이 벌써 12년이 됐다. 현재 그는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주장인 이종경이 평범한 학생이었던 정 선수를 발탁한 셈이었다. 이종경씨는 “처음에는 빙상장에서 조금만 훈련을 해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하던 동생이었다”며 “지금은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가 돼서 나도 뿌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대표 아이스슬레지하키팀의 활약은 뛰어난 편이다. 그동안의 주요 수상경력은 다음과 같다. △2010년 밴쿠버 동계 패럴림픽 6위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 2위 △2014년 소치 동계 패럴림픽 7위 △2015년 세계장애인아이스하키대회 1위 △2016년 일본 챔피언십 1위, IPC 환태평양선수권대회 3위 등이다. 그렇지만 유일한 실업팀인 강원도청 소속 선수들의 평균 연령대가 높은 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다. 도청 소속 11명의 선수들은 20대가 3명, 30대가 4명, 40대가 4명이다. 신인 선수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다. 협회소속 김정호(32) 전임지도자(이하 코치)의 말이다. “신인 선수를 발굴해야 하는 걸 잘 알지만 선수층이 얇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각종 장애인 협회에 문을 두드려 선수 추천을 받기도 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직접 발굴하고 있다.” 김 코치는 하나의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의족을 만드는 협회가 있으면 의족을 지원받는 장애인도 분명 있다. 이 의족을 지원받는 장애인 명단을 일일이 살펴 선수가 될 만한 후보를 물색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국 곳곳의 재활병원에도 직접 방문해 치료를 받는 장애인들 가운데서도 인재가 있는지 살핀다. 그렇게 발탁한 선수가 바로 골목대장이었던 최시우 선수다. 김 코치가 아이스슬레지하키팀의 코치가 된 계기도 특별하다. 김 코치는 대학교 3학년 때 봉사활동으로 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들과 만난 게 인연이 됐다. 봉사로 시작한 활동이 결국 직업이 된 셈이다. 그래서 김 코치와 선수들은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할 정도다. 그만큼 여기 모인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동료애가 남다르다. 각자 다른 이유에서 모였지만, 결국 ‘아이스슬레지하키’라는 견고한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이지훈 선수가 썰매 프레임에 바스켓을 장착하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이지훈 선수가 썰매 프레임에 바스켓을 장착하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부상은 훈장처럼

아이스슬레지하키는 동계 패럴림픽 종목 가운데 가장 격렬한 운동이다. 선수들은 거친 몸싸움과 날카로운 썰매의 칼날 때문에 부상을 달고 산다. 한민수 선수는 “장애인이라고 몸을 사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전혀 다르다. 실제 경기를 하다 보면 손가락 골절은 물론이고 칼날에 손이 베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없던 장애까지 생길 정도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부상은 이제 하나의 훈장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경기를 하다가 다쳐도 하나도 아프지 않다는 게 선수들의 말이다. 선수들은 오히려 부상이 이 종목의 매력이라고 말할 정도다. 류지현(30) 선수는 “아이스슬레지하키를 통해 새로운 꿈이 생겼기 때문에 부상은 큰 문제가 안 된다”며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장애인으로서 내가 아닌 진짜 나를 찾아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빙상장은 선수들에게 장애를 잊게 해주는 자유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는 휠체어와 목발로 인해 생활하는 데 제약이 많지만, 선수로 변신하면 그 어떤 제약도 없다. 오히려 휠체어와 목발은 벗어야 할 짐이 돼버린다.

선수들은 체력단련을 위해 하루 2시간씩 웨이트트레이닝을 꾸준히 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수들의 상체는 보디빌더를 연상케 할 정도로 탄탄한 근육이다. 몇 년 전 선수들이 단체로 숙소 생활을 할 때였다. 11명의 선수들이 모인 숙소에 한 택배기사가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숙소에서는 선수들 모두 남자다 보니 속옷 차림으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본 택배기사가 근육질의 선수들을 보고 조직폭력배들이라고 오해했다. 택배기사는 너무 놀란 나머지 뒤로 나자빠졌다. 숙소 아래층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오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층간소음 문제로 선수들의 숙소로 따지러 온 주민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내 사정을 알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휠체어와 목발을 짚고 다니는 선수들을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민들은 선수들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서로의 짐을 들어주는 이웃사촌이 되었다. 이제 주민들은 선수들을 가장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 중에 하나다.

아이스슬레지하키를 알아주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선수들 역시 힘이 난다. 그들에게 관심은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이다. 시계가 오전 11시30분을 가리키자 빙상장에서 훈련이 시작됐다. 훈련은 1시간30분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된다. 바깥의 기온은 30도를 가리켰지만 빙상장의 온도는 영하 6도였다. 이곳의 기온은 한겨울과 다름없었다. 기자는 긴팔 셔츠를 입었지만 추위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나왔다. 그때 하키 복장으로 완벽하게 갈아입은 늠름한 선수들이 빙상장으로 입장했다. 그들은 추위에는 이미 익숙해진 듯 어깨를 활짝 펴고 서로를 향해 “파이팅”을 크게 외쳤다. 썰매에 몸을 맡긴 선수들은 하키스틱으로 자유롭게 빙상장을 누볐다. 전용성(25) 트레이너는 “처음 이들과 함께 훈련을 할 때 장애인이라 걱정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선수들의 긍정적 에너지를 통해 내가 배우는 점이 더 많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선수들은 장애인이 아닌 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로서 인식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선수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바로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다. 장애는 순식간에 하키의 퍽처럼 날아왔지만 선수들은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빙상장에서만큼은 장애를 잊고 자유롭게 활보하는 늠름한 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들이었다. 김 코치는 빙상장에 들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선수들이 장애인이라서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를 대표하기 위해 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모습은 충분히 특별하다. 관심이 더 많아져 선수들이 삶의 더 큰 목표를 세워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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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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