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어느 날 상산고 임현섭 교감과 정해춘 수학교사가 이른 새벽 전주 집을 나섰다. 울릉도에 사는 한 학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전북 전주에서 경북 울릉도까지 가는 데 고속버스와 배로만 9시간이 걸렸다. 상산고 교사들이 만나러 간 학생은 울릉북중 3학년 재학생. 전교 1등이라고 했지만 실력을 가늠할 수 없어 직접 찾아간 것이다.당시 울릉북중은 3학년생 전체가 6명이었다. 홍성대 상산고 설립자는 울릉북중 1등이 상산고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교사들에게 “웬만하면 데려오시죠”라고 부탁했다. 홍 설립자는 전북
현대성 난치병으로 불리는 공황장애 해결의 실마리가 중국 후한(後漢)시대에 쓰인 책에서 풀릴까. 공황장애는 이경규, 정형돈, 김구라, 강다니엘 등 수많은 연예인들이 호소해 ‘연예인병’으로 널리 알려진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주로 과도한 스트레스와 무대공포증 등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후한 때 장중경(張仲景·150~219)이란 사람이 쓴 ‘상한론(傷寒論)’이란 책에 공황장애를 비롯 조현병(정신분열증), 조울증(분노조절장애), 우울증 등의 증상과 이에 대한 치료법이 대거 수록된 것으로 최근 연구 결과 밝혀졌다.경기도 부천 노영범한의원의
국내에서 수년 전부터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종교인이 있다. 바로 강성석(40) 목사다. 사회적 해악으로 인식되곤 하는 대마를 종교인이 직접 거론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지만, 대마 허용을 목표로 삼은 그의 활동은 올해로 벌써 5년째다. 현재는 신경질환 등을 앓고 있는 환자, 환자 가족, 의료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대표직도 맡고 있다. 그는 “종교인 신분이었기에 그동안 비난이나 법적 제재 없이 합법화에 앞장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그의 노력 덕이었을까. 지난해 11월 ‘마약류
한 분야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덕후’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영화 덕후, 여행 덕후는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식물 덕후’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식물을 발견하고, 구분하고, 키우고, 관찰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식물 덕후들에게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면, 제주도다.제주도 서귀포시 법환포구 인근. 위로는 한라산 백록담, 아래로는 제주 남쪽바다 범섬이 내려다보이는 양지 바른 땅에 커다란 온실이 들어섰다. ‘야자나라’라는 이름이 붙은 4층짜리 건
“영업에 미학이랄 게 있겠습니까. 그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것이 영업이지요. 영업이란 ‘나를 파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나를 파는 과정, 그 과정을 통해 상대방이 내게 마음을 활짝 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남의 마음과 진심을 얻으며 사는 것, 그게 인생 아닐까요.”대한민국 최고의 영업 달인으로 불리는 장인수(63) 전 OB맥주 부회장이 평생을 이어온 자신의 영업 인생을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으로 정리했다. 고졸 신화, 대한민국 최고 영업 달인,
‘물차’는 활어 배달차를 뜻하는 은어다. 원래는 ‘활어차’가 맞다. 전국을 누비는 활어차는 약 1만대. 등록대수가 아니라 실제로 영업을 하는 차의 숫자다. 활어차 기사의 하루는 이렇다. 새벽 6시쯤 시장에서 활어를 떼온다. 활어는 다른 수산물과 유통구조가 다르다. 일단 수도권에 집하된 후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유통량 대부분이 장외시장에서 거래된다. 인천 연안부두, 경기도 안양, 하남시 등에 있는 장외도매시장에서다. 통영에서 양식한 우럭이 하남으로 갔다가 다시 부산의 자갈치시장으로 가는 식이다.활어차 기사는 전국을 누비며 미리 주문받
“국물부터 맛보라.”김지억(85) 전무가 말했다. 말간 국물에 면발이 새초롬하니 잠겨 있다. 어떻게 마주한 냉면인지 황송하기도 했다. 지난 7월 17일, 서울 창경궁로에 있는 우래옥이었다. 원래는 인터뷰 시간보다 한참 전인 점심 때 일부러 찾았더랬다. 그야말로 인산인해. 대기번호 109번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초복이었다. 혹시 겁을 먹고 기권하는 사람은 없을까 휘휘 둘러봤지만, 눈빛들이 형형했다. 일행과 깊은 논의 끝에 일단 후퇴했다. 오후 4시를 넘겨 2차 시도. 이날 점심 대기번호는 360번까지 갔다고 한다.특유의 국물 맛은
전동휠체어가 아니면 혼자서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전신장애 여자, 그리고 그 여자 옆에 서 있는 1급 시각장애 남자. 이 두 남녀가 단둘만의 유쾌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제삼열(33)·윤현희(35) 부부 이야기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오는 유럽 여행, 그게 뭐?”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천성 녹내장으로 1급 시각장애인이 된 제삼열씨와 전동휠체어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1급 전신지체장애 윤현희씨 부부에게 열흘간의 유럽 여행은 그저 쉬고 즐기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모험이고 도전이었다.세상이 캄캄하게만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 이곳에서 지난 5월 4일 김오성(73) 조각가의 작품전인 ‘천구의 조각전’이 열렸다. 김오성씨는 인체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석조(石彫)를 통해 인간 태초의 원초적 감각과 감성을 표현해온 작가. 또 한편으로는 별에 미친 아마추어 천문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에 그가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가 관찰해온 별을 주제로 한 대형 조각품들이다. 지난 5월 4일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아름다운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다. 서울에서 4시간 정도를 달려 전북 부안군 변산면의 목적지에 도착
‘달리면 건강해진다’라는 단 한 가지 주제로 5년 동안 매주 2~3편의 칼럼을 인터넷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이동윤외과의원의 이동윤(66) 원장. ‘달리는 의사’로 유명한 그는 2013년 9월부터 현재까지 ‘조선pub’ 사이트(http://pub.chosun.com)에 340편이 넘는 칼럼을 기고했다. 이와 별도로 서울시의사회가 발행하는 ‘의사신문’에는 4년 동안 역시 달리기와 건강을 주제로 200편이 넘는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전체를 모아놓으면 달리기 백과사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달리기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와 상식을
“뇌를 알면 인간 정신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더라.”지난 3월 2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조옥경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심신통합치유학과 교수를 만났다. 조 교수는 4월 3일부터 매주 한 차례씩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씨스퀘어 1층 스페이스 라온에서 ‘마음챙김+요가’ 강의를 진행한다. 심리학도였던 조 교수는 인도에 유학을 갔다가 요가를 만났다. “요가는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체육, 철학, 심리학이다. 체육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됐지만 본래 정신수행법이다.” 명상 요가를 하면서 어떤 변화를 느꼈는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난 3월 2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남북하나재단을 찾았다. 5층 입구에 들어서자 보이는 책꽂이 맨 위에는 두툼한 책 두 권이 전시돼 있었다. 최근 재단이 출간한 ‘2017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 정착실태조사’와 ‘2017 탈북민 사회통합조사’였다. 같은 층 이사장실에서 고경빈(61)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고 이사장은 1979년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2009년까지 통일부에서 일했다. 정책홍보본부 본부장을 끝으로 통일부에서 나온 그는
인도는 느린 속도로 악명 높다. 인도가 뜬다 뜬다 한 지 20년이다. 그간 많은 이가 중국 다음으로 부상한다는 인도에 관심을 가졌으나, 인도가 천천히 움직이자 제풀에 쓰러졌다. 그나마 몇 개 있던 인도 관련 한국 내 사이트는 대부분 사라졌다. 지난 몇 년간 한국 기업의 인도 진출은 주춤했다.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과 중국의 기업들이 인도에 열심히 드나들 때 한국발 대규모 투자 발표는 듣기 힘들었다. 기아차의 생산공장 건설 건이 유일했다.하지만 인도 비즈니스 컨설팅과 무역업을 하는 김응기 BTN 대표는 우리가 ‘인도 진출 2기’를 맞고
일상과 예술의 기막힌 공존이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시장 골목을 걷다 보면 의외의 공간을 만나게 된다. 대중목욕탕과 슈퍼마켓, 복권방을 지나 만나게 되는 세련된 회색톤의 건물.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발걸음이 느려지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1970년대 풍경 속 저 혼자 감각적인 외관으로 존재감을 뿜어대는 대안공간 챕터투(chapter Ⅱ)다. ‘이런 곳에 이런 곳이’라는 반응이 나올 법하지만 2016년 11월에 문을 연 이곳은 벌써 미술계의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명소가 됐다.챕터투는 크게 세 공간으로 구성된다. 카페와 무료 전시
[image1]내 이름은 고영분(40). 고등학교 졸업하고 삼성생명에 들어갔다. 사무직이었다. 급여를 많이 줘서 좋았다. 본봉 그리고 여러 가지 이름의 보너스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일이 맞지 않았다. 금요일이면 등산 배낭을 메고 출근했다. 일이 끝나면 지리산으로 달려갔다. 20대 중반 매주 지리산 구석구석을 배낭을 둘러메고 다녔다. 20살 때 PC통신 유니텔산악회 가입하면서 산과의 인연이 시작됐다.지리산을 다니던 즈음, 미국인 셰릴 스트레이드가 2012년 펴낸 책 ‘와일드’를 읽었다. 상처받은 여성이 미국 태평양 해안을 따라
“두 살, 네 살배기 두 딸에게는 과자 사러 간다고 속이고 기약 없는 이별을 했습니다.”김태준(83)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1972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기자직을 내던지고 아무 연고 없는 미국에 첫발을 디딘 후 46년간의 투쟁 같은 삶을 되돌아보던 중이었다. 자리 잡히면 아이들을 데려오리라 마음먹고 아내와 단둘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후 3년간 김씨는 기름 넣어주는 주유소 직원으로, 아내는 가발가게 직원으로 일했다. 그는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죽도록 일했다”고 회상했다.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감내하며 새
‘이재용을 석방하라!’지난 1월 24일자 조선일보 사설(社說) 하단에 큼지막한 광고가 내걸렸다. 현재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석방을 촉구하는 광고였다. 광고 문안을 작성한 이는 골프용품 제조기업 사장인 이영수(81) 재이손(財李孫)산업 대표였다.이 대표는 해당 광고에서 “이재용에 대한 검찰의 공소는 ‘박근혜와 이재용이 만났으니 청탁이 있었고 삼성이 정유라와 미르, K스포츠재단 등에 돈을 보낸 것은 그 대가이다’라는 가상현실을 구성하여 무고한 한 기업인에게 유죄를 선고하려는 시도이고 새로운 적폐 제1호”라고
“조선일보 50년, 주간조선 30년, 월간조선 20년, 월간산 10년…, 다 합치면 100년이 넘지요, 허허.”김종철(65)씨는 ‘자칭 100년 독자’라고 했다. 하지만 자칭일 수 없다. 실제로 누가 봐도 조선일보와 주간조선 등 조선일보의 자매지를 구독한 기간이 모두 합쳐 100년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만난 그의 손에는 2005년 8월 8일 발행된 주간조선 ‘1866호’가 들려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집으로 배달되던 조선일보를 보기 시작해 지금까지 신문을 보고 있고, 주간조선과 나머지 자매지들이 창간될
지난 8월 5일 정오 서울 강남구 코엑스. 입구에서부터 곳곳에 영화 캐릭터며 애니메이션 캐릭터 옷을 입은 외국인들이 한곳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코엑스에서는 ‘코믹콘 서울 2017’ 행사가 열렸다. 코믹콘(Comic con)은 미국 서부 해안도시 샌디에이고에서 시작해 전 세계 22개 도시에서 열리는 세계적 팝 컬처(Pop culture·대중문화) 행사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SF, 피규어 등 대중문화 장르를 망라하는 가장 잘 알려진 대중문화 전시회다.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참석하고, 새 영화 예고편이
“오랜만입니다.” 관 속으로 얼굴을 드밀며 김한겸 고려대 의대 교수가 인사를 건넸다. 다정한 눈빛이었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머뭇거림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기자도 관 옆으로 다가갔다. 아담한 골격, 앞가르마를 해 뒤로 쪽을 찐 흔적이 있는 머리 모양의 여성이 관 속에 누워 있다. 양손은 가지런히 아랫배 앞에 모으고 있다. 그녀의 가족이 눈에 담았을 마지막 자세 그대로다. 추운 날 먼 길을 떠난 걸까, 한쪽 발에 신겨진 버선이 제법 두툼하다. 버선을 지은 사람도, 신긴 사람도 상상조차 못 했을 터다. 500여년 후 어느 봄날 고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