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사리현동에 자리 잡은 정와한옥마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사리현동에 자리 잡은 정와한옥마을.

“이건 장방, 장혀, 도리…, 주두와 보아지로 결구를 해서 대들보를 받치는 초익공(初翼工) 방식이에요. 궁이나 사찰에서 한옥을 지을 때 사용하던 양식이죠. 민도리집에는 안 들어가요. 저기 보세요. 대들보 위에 작은 대들보가 하나 더 들어갔죠? 대들보가 두 개 들어가는 집을 오량가(五樑架)라고 해요. 집 폭이 넓다 보니 대들보 하나만 들어가면 서까래가 휘는 수가 있어요. 민가에서 오량집은 드물죠.”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힘들다. 낯선 용어들은 뇌에 저장되기도 전에 사라진다. 송덕영(56) 대목(大木)으로부터 한옥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같은 단어를 몇 번이나 되물어 봐야 했다. 송씨가 목수의 길로 들어선 것은 40년이 됐다. 열여섯 살, 친구들은 학교 갈 때 송씨는 스승인 이종문 대목 밑으로 들어갔다. 이종문 대목은 서울 강남 봉은사 등을 지은 사찰 건축의 대가이다. 송씨는 스승을 따라 전국의 사찰 건축 현장을 돌며 잔뼈가 굵었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와 나무의 결구로 지어올리는 목조 건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스승의 어깨 너머로 배워야 하는 도제식 교육은 혹독했다. 10년 동안은 스승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선배들 연장 갈며 심부름만 하는 것도 어려웠다. 연장을 헷갈렸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졌고, 실수라도 할라치면 망치가 날아들 만큼 험한 현장이었다.

“사나이는 한 우물만 파야 한다, 아버지하고 한 약속 때문에 버텼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한 가지 일만 하겠다고 아버지께 맹세를 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한 길을 가겠다고….”

마음속으로는 수십 번, 수백 번을 때려치웠다. 너무 힘들어 머리 깎고 스님이 되겠다고 나섰다가 어른들한테 혼쭐만 났다.

그랬던 송씨는 동생까지 끌어들여 대목을 만들었다. 어쨌든 기술이 있으면 먹고살 수는 있겠다 싶어서였다. 동생 송덕남 대목도 나무를 만진 것이 40년이 되어간다. 철없던 나이에 시작해 나이테처럼 이마에 굵은 주름이 늘어가는 형제는 이제 나무의 이음새 하나가 천년 세월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송씨 대목 형제가 7년 가까이 공을 들이는 곳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 사리현동에 들어서고 있는 정와한옥마을이다.

지난 8월 26일 정와한옥마을을 찾았다. 정와한옥마을은 해발 133m 독산 아래 터를 잡고 있다. 독산은 정상에 봉화를 올리던 터가 남아 있어 봉화산이라고도 한다. 공사가 70% 정도 진행된 마을은 2년은 더 있어야 완공이 된다는데 멀리서도 대규모 한옥촌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틀을 갖췄다.

송씨 대목 형제는 마을 공사 초기인 6년 전에 이곳에 합류해, 한 채 한 채 전통 한옥을 올렸다. 40년 고집스럽게 한 길을 걸어온 만큼 형제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양보가 없다. 건축 방법을 놓고 치열하게 싸움을 벌일 때도 많다고 한다. 최근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한옥이 관광자원으로 떠오르면서 지자체들이 경쟁하듯 한옥마을에 나서고 있다. 개중에는 예산에 맞추다 보니 겉만 한옥인 곳도 많다. 실용과 전통, 건축비와 건축미 사이에서 우리 한옥이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송씨에게 들어보았다.

형 송덕영 대목(왼쪽)과 동생 송덕남 대목.
형 송덕영 대목(왼쪽)과 동생 송덕남 대목.

해풍에 얼고 녹은 금강송의 힘

목조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무다. 송씨는 좋은 나무가 천년 한옥을 만든다고 믿는다. 나무 중에서 최고로 꼽는 것이 금강송이다. 금강산 일대부터 강원도·태백산맥 일대가 금강송 군락지다. 목수들은 춘양목이라고도 부른다. 특히 울진, 삼척 일대 금강송은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까지 내려가는 곳에서 해풍을 맞고 자라면서 얼고 녹기를 반복해 단단하다. 온도차가 많아 송진 함량도 월등히 높다.

“송진은 나무를 단단하게 해주고 해충을 막아 썩지 않게 해줘요. 문화재 복원을 위해 건물을 해체하다 보면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나무 안에 송진이 뭉쳐 있어요. 모르는 사람들은 나무에 금이 갔다고 뭐라고 하지만 강한 나무일수록 금이 갑니다. 나무가 건조되는 과정에서 송진이 당기면서 금이 가는 거지요. 그래야 안에까지 바람이 통하고 나무도 안 썩어요. 요즘에 많이 쓰는 수입 목재 캐나다산 더글러스도 송진이 많긴 하지만 한옥에는 역시 금강송이죠. 대패질을 해보면 달라요. 단단하면서 부드럽죠.”

좋은 금강송을 얻기 위해서는 벌목 시기가 중요하다. 나무가 물을 빨아들이는 여름에 벤 나무는 습해서 곰팡이가 슬기 쉽다. 때문에 수분이 빠진 겨울에 베야 한다. 고로쇠 물이 나오면 그해 벌목은 끝이다. 건조도 중요하다. 해충 제거를 위해 껍질을 벗기고, 눕혀서 3~4년은 자연건조를 해야 제대로 된 목재를 얻을 수 있다. 이곳에 와서 송씨는 신이 났다. 정와한옥마을의 한옥에는 전부 울진, 삼척서 공수한 금강송을 사용했다. 목수가 좋은 나무를 만났으니 물 만난 제비가 따로 없다. 송씨가 금이 쩍쩍 벌어진 한옥의 나무를 만지며 감탄사를 던졌다.

부분 개장을 앞둔 정와한옥마을 전경.
부분 개장을 앞둔 정와한옥마을 전경.

“참, 기둥 끝내주죠. 이렇게 나무가 터야 해요. 한옥은 검어질수록 가치가 높아요. 이 정도면 수령이 100년은 훌쩍 넘은 겁니다. 대들보용은 300~400년 된 것도 있어요. 그런 건 가격이 없어요. 시가로 따지는데 수천만원은 갈 겁니다. 여기 한옥들은 문화재급입니다. 이런 집을 수십 채 지었으니 한옥에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송씨의 말에 따르면 이곳 한옥은 시멘트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황토와 금강송만 사용했다고 한다. 금강송의 경우 나무 지름이 30㎝가 넘어가는 경우 일반 목재보다 최고 10배까지 비싸다. 기와도 최고급 고령기와를 사용해 한 채에 7000만~8000만원이 들었고 문에 들어간 비용만 1억원이다. 한옥의 문제점인 단열도 잡았다. 옛날 한옥의 벽이 8~10㎝였던 데 반해 이곳은 황토에 참나무 숯을 넣어 18~20㎝ 두께로 만들었다.

정와한옥마을은 송현민씨가 대표로 돼 있는 가족기업이다. 한옥에 꽂혀 천년 한옥을 남기겠다는 꿈을 꾸고 이곳에 터를 잡았다. 대기업도 엄두를 내기 힘든 14만8800㎡(4만5000여평)에 이르는 땅을 16년 전 매입해놓고 본격적인 공사는 2010년부터 시작했다. 공사비가 1000억원 가까이 들어가는 대공사였다. 산림청 공매를 통해 울진, 삼척 일대의 금강송을 확보하는 데만 300억원 가까이 들었다. 벌목해온 나무를 제대로 건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제재소를 만들었다.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제재소의 규모는 엄청나다. 수령 300~400년 된 금강송을 비롯해 건조 중인 나무들이 아직도 가득 쌓여 있었다.

현재 한옥 56채가 완공된 상태다. 이곳은 개인에게 분양하지 않는다. 외국인과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옥호텔이다. 다산초당 등 전국의 유명한 고택 21채를 재현하고 아토피 체험관, 초가, 너와집 등을 포함해 총 112채가 들어서는 대규모 한옥마을이다. 300~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황토 세미나관도 곧 완공된다. 황토로 지은 구절초 한증막은 11월께 먼저 문을 열 계획이다. 마을과 이어진 산길을 따라 5㎞에 이르는 구절초 둘레길을 조성하고 가을이면 구절초 축제를 열 계획이다. 염색·목공 등 체험관, 다방도 들어선다. 한옥 테마파크인 셈이다. 의료관광을 온 VIP 외국인을 유치하기 위해 연세대학교와 MOU를 맺었다. 영빈관도 지을 예정이다. 제재소 자리에 외국 국빈용급 영빈관과 경호동이 계획돼 있다. 번잡한 관광지로 만들지 않기 위해 마을 입장료를 받는다. 완공도 하기 전 KBS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드라마 촬영 제의가 잇따르고 있다.

정와한옥마을 내에 있는 제재소.
정와한옥마을 내에 있는 제재소.

강하면 부러진다! 나무 달래려면 마음을 달래야

이곳 한옥이 특별한 이유는 도면 하나 없이 지어졌다는 것이다. 송씨 대목 형제를 비롯해 50여명에 달하는 목수가 도편수의 머릿속 구상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지어올린 것이다. 1㎜의 차이에도 결구가 어긋날 수 있으니 재단, 대패질, 치목하는 사람이 혼연일체가 돼야 한다. 처음에는 5채를 짓는 데 2년 가까이 걸렸다. 외국인 건축가들도 종종 견학을 오는데 이들의 작업을 보고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송씨의 말이다. “보통 인내력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붕 처마선을 잡을 때도 그래요. 반듯한 나무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성격이 강하면 나무가 부러지죠. 나무를 달래려면 내 마음부터 달래야합니다.”

송씨는 한옥바람을 타고 속성으로 길러진 기술자들이 양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수십 년 스승의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은 기술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송씨는 힘든 일을 하려는 젊은이들이 없다 보니 후계자를 기르기가 힘들다고 했다. ‘아들이 목수가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렇잖아도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잇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고 한다. 송씨는 “내년부터 시켜 보려고 하는데 힘들다고 도중에 그만둘까 벌써부터 걱정이다”고 했다. 정와 측은 한옥 완성 후에 만든 도면 등 시공 매뉴얼을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일반에 제공할 계획이다. 4000만~5000만원에 달하는 설계비 부담 없이 사람들이 한옥을 지을 수 있도록 서민형부터 고급형까지 단계별로 입면도, 상세도 등 모든 시공 과정을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천년 한옥을 내건 정와의 한옥이 전국에서 천 년, 이천 년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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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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