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베트남은 ‘미래’와 ‘호연지기’라는 두 단어로 각인돼 있다. 하노이에서 1주일간 강의하면서 지난해 만났던 GYBM 5기 졸업생 6명과 접촉했다. 이 중 4명은 1년 전 주간조선(2383호)을 통해 졸업 후 결의를 밝혔던 청년들이다. 이들이 1년 사이 얼마나 성장했을까.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베트남은 도전의 현장이면서 성숙해지는 무대라고 볼 수 있다.

이아영

“베트남은 마지막 기회의 땅”

현재 베트남 의류업체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아영씨는 베트남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마지막 도전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15살 때 캐나다에 교환학생으로 가 미국과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이씨는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하면서 입으로는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머리와 마음으로는 계속되는 탈락과 좌절에 허덕이는 내 모습이 싫었고 현실에 자꾸만 얽매이는 내가 나 자신 같지 않았다. 그래서 베트남에 도전하였다”고 했다.

그는 1년 전 연수생 때와 현재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달라진 점을 ‘수입’이라고 했다. “이제는 현지 직원들에게 저녁 한 끼는 거뜬하게 대접할 수 있게 됐다. 아직 현지 직원들의 급여 수준은 낮은 편이다. 내가 일하는 팀의 한 현지 직원은 나이가 23살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역할을 하는데, 한 달 용돈 2만5000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급여는 모두 고향으로 보낸다. 이런 환경의 현지 직원들에게 저녁을 대접하면서 인생 얘기, 일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단어 하나만 주고받아도 통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

이씨는 앞으로 영어 교육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면서 느꼈던 즐거움과 성취감을 많은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다. 30년 뒤에는 그동안 쌓아온 비즈니스 경험을 통해서 배움의 기회가 없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무료 교육 사업을 통해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나눠줄 것이다.”

이씨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나처럼 외국에 나와서 직접 경험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했다. “유학 생활을 포함해 외국 생활을 9년 넘게 하고 있지만 가족과 한국은 매일 그립다. 혼자 아플 때면 너무 외롭다. 외국에 나와 있는 동안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장 달려갈 수 없다는 점이 때로는 무섭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두려움에 얽매여서 자신의 역량을 세상에 맘껏 자랑할 수 없게 된다면 그 점이 가장 아쉬울 것 같다.”

그는 “100세 인생이라고 하는데 이제 겨우 인생의 반도 살지 않은 우리 세대가 현실에 안주하기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며 “두려워하지 말고 삶을 다이내믹한 일들로 가득 채워가는 우리 세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태훈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을 잘 모르겠다”

베트남 한세실업 해외영업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태훈씨는 ROTC 출신이다. 그는 “초·중·고, 대학교를 거쳐 ROTC 복무, 어학연수, GYBM 프로그램까지 거치며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기까지 30년이 걸렸지만 아직도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뚜렷한 목표, 원대한 꿈이 있었다기보다 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고 했다. “익숙한 환경과 생활은 뻔한 인생으로 나를 이끌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의 흐르면서 남들 하는 대로 상황에 안주하게 될 내 모습이 두려웠다.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남들이 이야기하는 기회의 땅 베트남에 왔다.”

그의 직장은 호찌민시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구찌라는 지역에 있다. 그는 연수생 때 대하던 베트남인들과 직장동료로서 대하는 베트남인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외국인 학생에게 보여줬던 베트남 사람들의 ‘정(情)’이 정작 업무 때는 철저한 개인주의로 바뀐다. 때문에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의문이 들곤 한다. 봉제회사 영업사원이다 보니 바이어가 원하는 디자인이나 스타일의 옷을 급하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평소에는 친하게 웃고 떠들던 현지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 외의 일을 부탁하면 ‘이건 내 일이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차갑게 변해 버린다. 베트남인은 업무에서는 동양적이라기보다는 서양적인 사고로 일한다.”

그는 “현재 꿈은 40살이 되기 전까지 내 평생의 직종을 찾는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눈감을 때 적어도 내가 선택한 일에 대해 후회는 남기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업무와 많은 경험을 쌓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촛불시위에 나서는 한국의 또래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옳지 못한 일에 대해 침묵으로 답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에 대해 고맙게 느낀다. 주말 광장에 함께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국민이 함께 노력하는 모습에 울컥하기도 한다. 해외에 나가려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새로운 삶은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생각을 심어줄 수 있고 나아가 우리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도전해 보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김상현

“300여명 동문 네트워크가 큰 힘”

베트남의 한 의류업체에서 일하는 김상현씨는 “GYBM 연수를 통해 나를 업그레이드하고자 베트남에 왔다”고 했다. “GYBM 코스를 수료한 것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연수과정은 정말 힘들었지만 자신감, 인내심을 길렀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는 습관을 얻기도 했다. 무엇보다 베트남 300여명의 동문 네트워크가 가장 큰 힘이다.”

그는 현지 생활을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처음 통역을 하며 머리가 정지하는 느낌을 수십 번 받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은 크게 어렵지 않다”며 “시작할 때는 한숨만 나오는 것들이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겨도 ‘한번 해보지 뭐’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고 큰 영향력을 가진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가 되고 싶다”며 “30년 뒤의 나는 지금의 내가 예상할 수 없는 큰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우중 회장처럼 늘 청년 같고 꿈이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또래들에게 “해외에 나가는 것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해외에서는 한국 특유의 줄 세우기 문화가 덜하다 보니 스스로를 마주하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일방적 평가를 거부하고,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 외국행 비행기를 타던 날, 비행기표는 사놓고 갈지 말지 매일 마음을 바꾸다가 출국날이 다가와 할 수 없이 비행기에 올라탔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돌아보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김수안

“한국에서 무한경쟁 말고 밖으로”

베트남의 현대기아차그룹과 유사한 트루옹하이(Truong Hai)자동차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김수안씨는 2010년부터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베트남 GYBM 연수생이 됐다. 일찌감치 해외취업을 결심하고 전공과 무관한 일자리를 찾아 아프리카에서 2년, 중동에서 2년5개월간 일하다가 뒤늦게 연수생이 됐다고 한다.

현재 그가 일하고 있는 직장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90㎞ 떨어진 곳. 꽝남지방 최고로 꼽히는 직장이지만 그에게는 한국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는 ‘촌동네’다. 하지만 “자동차가 좋아서 촌동네 회사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3개의 자동차 동호회에서 활동한 자동차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준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진리를 생업에서 몸소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10년 뒤 자신의 모습에 대해 “베트남에서 나만의 토대를 구축해 15년 뒤쯤이면 내 해외 체류의 시발점이었던 아프리카로 돌아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싶다”고 했다. 혈혈단신으로 한상 신화를 일군 인터불고의 권영호 회장과 PG그룹의 박기출 회장이 롤모델이라고 한다.

그는 “6년째 타국 생활을 하고 있지만 말라리아나 뎅기열 같은 풍토병에 한 번도 걸리지 않은 것은 행운”이라며 “튼튼한 몸에 바지런한 습관을 갖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또래들에게 “침체기에 끼인 우리 청년들이 작은 틈새에서 서로를 누르려는 무한경쟁을 하기보다 넓은 세상에서 진취적으로 움직이는 건 어떨까 제안해 본다”고 했다.

권의빈

“한국 수준의 월급에 물가는 싸”

20대(29살)임에도 불구하고 직원 700여명을 둔 공장의 한국인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권의빈씨는 “취업을 위해 베트남에 왔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내가 원하던 진로로 취업이 안 돼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한 친구의 소개로 GYBM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취업도 하고 언어도 배운다는 가벼운 생각과 전 세계에 퍼진 화교 같은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프로그램의 이상에 끌려서 지원했다.”

그는 연수생 신분에서 벗어나 이제 한국의 평균 대졸 초봉과 같은 월급을 받지만 물가가 싼 나라에서 사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여기는 한국보다 물가가 싸고 근무지 사정상 돈 쓸 일이 없어서 금전적으로 크게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두 명의 한국인 관리자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어딜 가든 지켜보는 이목들이 있고, 내 결정이 현지 근로자들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동거지 하나도 신중하게 한다. 어떠한 의사 결정을 하더라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한다”며 “이전에 덜렁거리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30년 후 스포츠 관련 업종에서 일하는 유쾌한 ‘아재’가 되고 싶다”며 한국의 또래들에게 “자신이 가치를 두는 바가 무엇인가를 잘 생각하여 자신의 선택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고 싶다”고 조언했다. “새로운 문화, 언어, 사람 등에 대해 거부감이 없고 부대껴 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에 맞닥뜨려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선택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니 선택을 하고, 주저 없이 실행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돌아와서 다시 걷고, 그러다 보면 결국 자기만의 길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수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나라”

호찌민 인근 신발공장에서 근무 중인 박수현씨는 서울의 명문대에서 철학과 동남아시아학을 전공했다. 그는 “청년기에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며 자신이 베트남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해외 생활,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의 해외 경험은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커리어에서도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베트남 경제에 대한 낙관적 기대도 베트남으로 오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다.”

현재 직장에서 신발 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박씨는 중간관리자로서 “때로는 영어로, 때로는 베트남어로 사람의 마음을 열어야 할 때가 생긴다”며 “학생 때는 혼자만 잘하면 됐는데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30년 후 “한국에서 토양이 척박한 순수 학문과 순수 예술 진흥을 위한 인재 육성 사업을 하고 싶다”며 “개인적인 부를 늘리는 사업보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다음 세대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청년들이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는 능력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경쟁이 치열한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면 그 능력과 잠재력을 펼칠 기회가 많아지고, 같은 노력으로도 훨씬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야 하는 해외 생활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기에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성향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용기를 낸다면 옆에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가 분명히 생길 거라고 본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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