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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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이 있죠. 왜 그럴까요? 이유는 많지만 한마디로 줄이면 소통의 부재 때문이에요. 소통을 하려면 기준, 약속, 그리고 약속을 지키게 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죠. 하지만 동네 집 짓기 시장에는 그게 없어요.”

지난 12월 6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친절한 친환경 디자인하우스(이하 친친디)’ 사무실에서 서동원(39) 친친디 대표를 만났다. 서 대표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어떤 질문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말이 빠르면서도 발음이 정확했다.

“다른 건축시장에는 공사를 하다가 문제가 생긴 경우에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요. 하지만 집 짓기 시장에서는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워요. 시장이 불투명하죠. 건축주 입장에서는 집을 지을 때 돈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들지를 가늠할 수가 없어요.”

일반적인 소비자(건축주)가 집을 지을 때 직면하는 어려움에 대한 서 대표의 설명이다. 집 짓기 시장에서 건축주는 자신이 살 집을 지으면서도 시공업자가 어떤 자재를 얼마에 구매했는지, 인력 비용은 얼마나 발생했는지, 시공 마진은 얼마를 가져가는지를 명확히 알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건축주와 시공업자 간 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거나 법적 분쟁으로 비화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방송작가 출신인 서 대표도 자신의 집을 지으면서 5년간 네 번의 민사소송을 겪어야 했다. 소송을 겪으며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현장을 뛰어다닌 것이 웬만한 시공업자 못지않은 지식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친친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프로젝트가 잘돼 지난 8월 법인을 설립한 것이 현재에 이른다. 현재 강남구 논현동의 사무실에 8명의 직원이 상근직으로 일하고 있다.

친친디는 주택전문기획사다. 주택전문기획사는 집을 지을 때 필요한 설계, 감리, 예산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컨설팅해 고객이 원하는 비용 선에서 최고 품질의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업체다. 쉽게 말해 ‘1억원으로 집 짓기’와 같은 식이다. 건축 디자인 설계, 감리, 세무 등을 종합적으로 통제해 비용에 맞춰 집을 짓도록 도와준다. 자신의 집을 직접 짓는 문화가 정착된 미국, 일본 등에선 일반화된 사업모델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다. 서 대표는 “일본에서 1995년 고베지진 이후 적은 예산으로 집을 짓는 프로젝트가 인기를 끌었다”며 “한국에는 이런 프로젝트가 없었기 때문에 블루오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집 짓기는 장기 레이스예요. 변수가 많아 과정의 신뢰가 중요하죠. 과정의 신뢰를 위해 페이퍼만큼, 콘텐츠만큼 확실한 건 없어요.”

친친디는 고객에게 설명하기 위한 용도로 브로셔를 자체적으로 제작했다. 브로셔 기획과 집필은 서 대표가 직접 했다. 친친디의 비즈니스 영역은 30억원 이하의 주택시장이다. 대단위 주택시장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시장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서 대표의 설명이다. “가격 투명성을 위해 창호나 마루뿐만 아니라 마감재, 계단, 조명, 스위치까지도 어떤 자재들이 적용됐는지 소비자에게 설명해준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10~15%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

친친디의 올해 매출은 계약금액 기준 약 60억원 정도다. 프로젝트 시작할 때부터 법인 설립 이후까지 계약금액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서 대표는 “결산해 봐야 알지만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첫해를 시작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방송작가서 건축계로

1977년생인 서 대표는 본래 건축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는 20대의 대부분을 방송작가 일에 바쳤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1학년 재학 중이던 1998년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아르바이트로 방송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일밤’ ‘섹션TV’, 영화 ‘B형 남자친구’ 등의 극본에 참여하다 MBC시트콤 작가 공채 2기에 선발됐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학업활동도 계속했다.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영상매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논문을 쓰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서 대표의 재산 전체가 압류된 것이다. 부친이 “땅에 투자를 하면 집을 지어서 팔아 수익금 일부를 떼어주겠다”는 시공업자의 말만 믿고 경기도 양평의 땅에 개발사업을 허락해준 것이 화근이었다. 임야 1만6500㎡(5000평)를 개간해 주택단지 개발을 시작했는데, 토지 명의가 서 대표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공업체는 수시로 바뀌었고, 업체가 몇 번 바뀌는 과정에서 예산이 부족해지자 서 대표 명의로 된 땅과 재산에도 압류가 들어온 것이었다.

“민사소송은 재판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1년은 걸려요. 그 과정에서 압류가 들어오면 공탁도 걸어야 하고, 건축주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이 너무 많았어요. 몇억원이 오고가는 계약서가 너무 허술했죠. 계약금만 받고 도망가는 시공업자가 많았어요.”

서 대표도 자신이 소유한 양평 부지에 집을 네 채 지었다. 건축 비용은 땅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아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네 번의 민사소송을 겪었다. 소송은 모두 이겼지만, 그 과정에서 시간, 돈, 체력 낭비와 함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다. 서 대표는 이 재판을 진행하는 5년간 공사 과정을 취재하면서 잡지에 기명 칼럼을 썼다. ‘집짓기 X파일’이라는 제목이었다. 그는 취재를 위해 당시 공사하던 현장에 CCTV 6대를 설치하고, 공사하는 과정을 모두 녹화했다. 서 대표는 그 과정에서 파악한 집 짓기 시장의 문제점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모든 납품비를 현금으로 결제하기 때문에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두 번째는 부가세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시공업자가 도망가도 책임을 물을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서 대표는 5년 동안 취재한 내용을 월간 건축 전문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첫 회 연재물의 제목은 ‘똑똑해진 미니 건축주와 백전노장 영세시공자’였다. 대학교 때 친구가 마침 해당 잡지의 편집장으로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 현재 12회까지 연재를 했다. 지난해 건축 전문 잡지와 함께 서 대표가 기획한 것이 친친디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다. 투명한 집 짓기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인맥이 큰 도움이 됐다. 신탁사, 감정평가사, 변호사, 세무사 등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2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친친디 프로젝트로 완공한 건물은 현재까지 콘셉트하우스와 1호 집 두 채다. 창원의 310㎡(95평)짜리 주택이 추가로 연내 준공 예정이다. 현재까지 13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서 대표는 아직까지 친친디를 운영하며 사업이 큰 어려움에 부딪힌 적은 없다고 말했다. 30억원 이하 주택이라는 틈새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이 친친디의 순항 비결이다. 그는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하는 업자 단가를 회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맞춤형 건축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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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 장민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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