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가 끝없이 이어지는 요즘 교무실은 스산하고 우울하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건 학교에서는 여전히 어김없이 일상적이지만 중요한 일과들이 진행된다. 교무실에서 교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다가 수업종이 울리면 교실로 향한다. 무거운 마음은 여전하지만 수업이 시작되면 교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수업에 성실히 임한다.

때로는 아이들의 관심사와 소소한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시위 현장에 다녀왔다며 흥분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이런 화제에 직면하면 교사들은 곤란할 때가 많다. 여러 가지 상황과 교육자적 입장이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아무리 어려도 시대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어른 세상의 얘기이니 한발 뒤로 물러나서 밝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해야 할지….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요동친다. 역사 속에는 어려운 시기에 용기를 낸 수많은 어린 학생이 있었고, 그들이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쳤기에 아이들의 행동을 치기 어림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

12월이 되면 학교에서도 다음 해의 전교임원단을 선출한다. 총학생장 선거는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후보들은 러닝메이트를 이루어 출마한다. 후보들의 첫 관문은 선생님과 여러 친구들에게 추천서를 받는 일이다. 놀랍게도 이 단계에서 포기하는 후보들이 종종 생긴다. 학생들은 그저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추천서를 써주지는 않는다. 평소에 부족한 행동을 보인 후보들에게는 사인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내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반면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자질이 되는 후보에게는 기꺼이 사인을 해준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는 않는 성숙한 모습이다.

후보들은 친구들에게 사전조사를 통해 공약을 선정하고 홍보물을 제작한다. 홍보 벽보가 붙으면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다. 어설픈 선심성 공약이 걸리면 맹비난이 쏟아지고, 기대하던 공약들이 걸리면 환호를 받는다.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은 거의 하지 않는다. 같은 학교의 친구로서 예의를 지키고 앞으로 함께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교문 앞에서 팻말을 들고 소리쳐가며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응원하는 열기도 꽤나 그럴듯하다. 선거 당일, 줄을 서서 투표 차례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직접투표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결정한다.

학생들은 어떤 후보에게 투표를 할까. 몇 명의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답하도록 하였는데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행하는 사람, 공약을 잘 지킬 것으로 믿어지는 사람, 학생들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 정직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어디에서 이 모든 것을 배우고 행하는 것일까. 물론 사회, 도덕 등의 교과수업을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를 통해 배우는 것이 훨씬 크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모방하고 어른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온다. 대한민국을 세계 속에 우뚝 세울 미래의 동량들이 바른 가치관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한 어른들의 책임은 크고, 깊고, 넓다.

김경원

경기도 성남 풍생중 교사

김경원 경기도 성남 풍생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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