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도권 허베이성의 한 대규모 양계장.
중국 수도권 허베이성의 한 대규모 양계장.

지난 1월 13일 중국 산둥성 지난(濟南)에서 뜬 대한항공 KE848편 여객기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주기장에 들어온 B737 비행기 아래 화물칸 문이 열렸다. 하얀색 박스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줄지어 내려왔다. 대형 박스로 줄잡아 수십 개가 넘었다. 하얀 박스 위에는 ‘스파파스(斯帕法斯·SPAFAS) SPF EGGS(에그)’라는 상표와 함께 빨간색 ‘취급주의(Fragile)’ 표시가 선명했다. 박스 하단에는 ‘중외합자(中外合資)’라는 인장과 함께 ‘지난 스파파스 가금유한공사’란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스파파스는 지난의 스다가금(斯澾家禽)유한공사가 미국의 찰스리버연구소와 함께 1996년 지난의 고신기술(하이테크)산업개발구에 50 대 50 합자투자로 세운 달걀 생산 기업이다. 이후 찰스리버연구소는 지분을 영국의 유명 식품회사인 래스코(LASCO)에 매각해 중·영합자 달걀 생산 기업이 됐다. 산둥성 내 3곳의 양계장에서 신선란과 달걀가공품을 생산하는데 약 900만개의 달걀을 생산하는 산둥의 대표적 양계기업이다. 스파파스는 그동안 생산한 달걀을 홍콩·마카오·러시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에 수출해왔다. 한국도 스파파스 달걀의 주요 수출 대상국이다.

인천공항 세관 수출입통관총괄과의 한 관계자는 “AI(조류인플루엔자) 사태 발생 후부터 항공사로부터 생란(날달걀) 적재 예정정보를 받고 있다”며 “미국, 호주, 스페인 등지에서 보고가 올라왔는데 중국산 생란 선적에 관한 정보가 올라온 바 없어 생란보다는 달걀가공품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월 22일까지 신선란은 394t(670만개), 달걀가공품은 217t(1070만개 상당)이 수입됐다. 농림축산식품부 축산경영과의 한 관계자는 “신선란 수입은 금지 제외 대상 국가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페인 5개국만 허용된다”며 “중국은 AI발생국이라서 신선란 대신 달걀가공품만 가능하다”고 했다.

중국산 달걀이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해 말 AI 발생으로 인한 대규모 살(殺)처분 조치로 국내 양계시장이 붕괴된 틈을 타서다. 거듭된 살처분으로 국내 양계시장은 사실상 괴멸 상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AI 발생 이후 살처분된 닭은 지난 1월 23일 기준으로 모두 2735만마리(수)에 달한다. 오리, 메추리까지 포함하면 살처분된 가금류는 3259만마리(수)다. 수천만 마리의 닭을 살처분하면서 대형마트에서는 달걀의 공급부족 현상이 장기화되고 설을 앞두고 달걀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결국 정부는 AI로 촉발된 식탁물가 상승을 잡을 요량으로 신선란 및 달걀가공품에 적용되는 최대 30% 관세를 0%로 면제하고, 미국에서 신선란(최대 3일)을 공수했다. 롯데제과 등 일부 대형 제과업체들도 과자와 비스킷 생산의 필수 원료인 액상달걀에 한해 중국산 가공란 수입을 공언해왔다. 이에 편승해 중국산 신선란에 앞서 중국산 달걀가공품이 비행기를 타고 속속 국내에 상륙한 것이다. 한국의 달걀값 앙등 소식이 중국에까지 전해지면서 한국에 달걀수출 조건을 묻는 문의도 이어진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0% 할당관세는 전 국가에 적용된다”며 “중국산 달걀가공품도 적용 대상”이라고 했다.

사실 중국산 달걀이 수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달걀, 오리알 등 중국산 난류(卵類·새의 알)는 매년 수백t씩 수입돼 국내에 유통 중이다. 관세청은 껍데기가 붙은 새의 알, 껍데기를 제거한 새의 알(가공용 액상란) 등을 대상으로 무역통계를 낸다.

지난 5년간 관세청의 중국산 난류 수입 현황을 확인한 결과, 2012년 354t가량 들어온 껍데기가 붙은 중국산 난류는 지난해 424t까지 증가했다. H7N9형 조류인플루엔자가 창궐해 중국에서만 46명의 사망자를 낸 2013년 한 해 잠깐 주춤했던 것을 제외하면 매년 수입액이 늘었다. 제과·제빵 등 가공식품 원재료로 쓰이는 껍데기를 제거한 중국산 난류 역시 매년 200여t가량 꾸준히 수입됐다. 지난해 국내로 들여온 중국산 난류만 711t에 달한다.

물론 711t이란 그리 크지 않은 분량이다. 지난 1월 14일 단 하루 만에 무게로 100t, 개수로 약 160만개 미국산 달걀이 한 번에 수입된 것과 비교하면 규모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향후 문호 확대에 따라 국내 달걀시장을 파고들 가능성이 있다. 중국산 달걀의 경우 미국산 달걀에 비해 생산물량 자체가 압도적이다. 생산단가 및 수송비는 월등히 저렴하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신선란의 유통시간이다. 미국산 달걀은 비행기로 공수해도 10시간 이상 걸린다. 중국산 달걀은 비행기로 1시간이면 한국에 도착한다. 운임이 저렴한 배편으로도 10시간이면 한국 시장에 상륙할 수 있다. 특히 한국과 가까운 산둥성은 1억7200만마리의 산란닭을 기르는 중국 최대의 달걀생산지 중 한 곳이다. 미국산 달걀에 비해 압도적 경쟁력이다.

산란닭 13억마리, 4000억개 소비

중국은 달걀 등 세계 최대 난류 생산국이자 소비시장이다. 중국 농업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중국의 산란닭은 모두 13억1500만마리에 달한다. 특히 인구가 집중된 허난성(1억6400만마리), 허베이성(1억800만마리), 산둥성(1억7200만마리) 등 화북(華北) 지역의 각 성(省)들은 각각 1억마리 이상의 산란닭을 사육하고 있다.

이들 닭은 2015년 기준 2400만t의 달걀을 생산했다. 연간 63만t가량을 생산하는 한국에 비해 40배 큰 시장이다. 달걀생산량 기준으로 세계시장의 40%, 1위 자리를 수십 년째 고수하고 있다. 금액 기준 시장 규모로는 약 3000억위안(약 51조원)이다. 중국 13억 인구의 연간 달걀소비량은 4000억개로, 대략 1인당 연간 307개꼴이다. 일례로 한국 산모(産母)는 출산 후 미역국을 먹지만 중국 산모는 계란국을 먹는다. 한국인 1인당 연간 달걀소비량은 254개에 그친다.

중국이 세계 최대 달걀 생산, 소비 대국이 된 것은 1985년 이후부터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직후인 1961년만 하더라도 중국의 달걀생산량은 약 120만t정도였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8%가량에 그쳤다. 미국과 소련에 비해 한참 뒤진 3위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단행한 후 집단농장인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농가의 개별생산력을 급속히 끌어올리자 달걀생산량도 급속히 늘었다. 문화대혁명 동안 악화된 식량사정 개선과 영양공급에 달걀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었다. 그 결과 1985년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2007년에는 달걀생산 2200만t을 돌파해 세계시장 40%를 장악한 뒤 지금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3억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생산된 달걀 대부분은 중국 국내에서 신선란(생란) 또는 달걀가공품 형태로 소비된다. 해외 수출량 역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이 2015년 해외로 수출한 신선란만 12억700만개, 금액으로는 약 1억2093만달러(약 1406억원)에 달한다. 주로 제과·제빵용으로 쓰이는 가공용 달걀까지 합하면 그 수가 훨씬 늘어난다. 신선란과 가공용의 비율은 대략 7 대 3 정도로 추산된다. 셴단, 피단 등의 전통 먹거리를 찾는 화교(華僑)들과 해외 중국 식당 등지서 소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광진구 자양동 등 조선족 동포 밀집지에서는 중국산 난류 가공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6개들이 한 판에 3000원, 10개들이 한 판에 대략 6000원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중국 식품 소매상은 “조선족 동포들과 중국 유학생들이 많이 사가는데, 요즘은 한국 사람들도 피단 등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후베이성에서 생산된 중국산 난류를 수입 유통하는 경기도 안산의 한 중국 식품 수입상은 “중국 식당과 식품점을 통해 오리알 등이 많이 나간다”며 “중국산 달걀은 아직 못 들여오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자국산 달걀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경우 다른 농축산물처럼 국내 시장을 내어줄 염려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양계농장 입장에서는 자칫 핵폭탄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산 달걀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일이다. 중국산 달걀에 대한 불신은 2006년부터 홍콩에서 연이어 발견된 독(毒)달걀이 기폭제가 됐다. 공업용 염료이자 발암물질인 수단레드와 멜라민 성분이 중국산 달걀에서 연이어 검출되었다.

홍콩은 양계장이 없어 달걀을 전량 수입한다. 고도주(酒)와 담배 등을 제외하면 무관세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자유항(港)이라 달걀 역시 완전경쟁이 이뤄진다. 중국산 달걀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수송비가 저렴한 이점을 활용해 홍콩 달걀시장의 80% 가까이를 장악했다. 중국산 독달걀의 연이은 검출에 홍콩이 발칵 뒤집히자 홍콩 정부는 즉각 수입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에 홍콩 시장에서 중국산 달걀은 저가시장은 태국과 말레이시아에, 고가시장은 미국·독일·일본에 내어줬다.

중국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진 가짜 달걀에 대한 공포도 중국산 달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가짜 달걀은 흰자에 점성이 부족하고, 노른자가 잘 터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일각에서는 “영양성분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장기간 복용 시 문제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는 “가짜 달걀 제조법을 가르친다”고 하는 불법교습소도 성업 중이다. 물론 진짜 달걀이 보관이나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가짜 달걀로 오해받는 경우도 상당하다. 달걀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은 중국 내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다.

중국산 독달걀, 가짜 달걀 파문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5년 743t으로 정점을 찍은 중국산 난류(껍데기 붙은 것) 수입은 이듬해인 2006년부터 줄곧 하락했다. 2008년 일본으로 수입된 중국산 알가공품에서 멜라민 성분이 검출되자, 우리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중국산 알가공품을 긴급수거해 조사를 벌였다. 당시 랴오닝성 다롄(大連)에서 생산된 일부 알가공품(달걀 분말)에서 미량의 멜라민 성분이 검출돼 수출선적 중단조치와 보관된 물량에 대한 즉각폐기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지난 1월 14일 인천공항에 첫 도착한 100t(160만개) 분량의 미국산 신선란.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지난 1월 14일 인천공항에 첫 도착한 100t(160만개) 분량의 미국산 신선란.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전화위복된 독달걀, 가짜 달걀

일련의 품질 문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우선 영세 양계장 덩치 키우기에 나섰다. 중국은 아직도 2000~1만마리의 산란닭을 기르는 양계장이 전체의 40%가량에 달한다. 10만마리 이상의 산란닭을 키우는 대형 양계장은 아직 10%에 그친다. 수입국의 엄격한 품질관리 기준에 따라 품질관리 역시 대폭 강화했다. 중국의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등지에서는 포장이 안 된 날달걀을 낱개 단위로 많이 판매해왔다. 이 같은 날달걀 등은 유통기한 등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시장에서는 점차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실제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마트에서는 제조일자와 달걀규격 등이 적시되지 않은 포장 안 된 날달걀은 자취를 감췄다.

지난 1월 24일 찾아간 중국 상하이 푸동의 IFC몰. 홍콩계 복합쇼핑몰인 이곳에는 중산층 이상이 자주 이용하는 시티슈퍼가 있다. 시티슈퍼의 달걀 매대에는 각종 난류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달걀을 비롯해 메추리알, 오리알, 비둘기알, 거위알 등이 잘 포장돼 매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또한 달걀과 오리알 등을 오랜 시간 소금에 절여 가공한 셴야단(咸鸭蛋), 진흙과 왕겨 등에 삭혀 발효시킨 송화단(松花蛋·피단), 찻물에 적셔 끓여낸 차예단(茶葉蛋) 등이 잘 포장된 채로 올려져 있었다. 이 밖에 일본 등지에서 수입된 고급 유기농 달걀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달걀 등 각종 난류가 선택의 폭이 달걀 위주로 단조로운 한국에 비해 월등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중국산 난류(껍데기 붙은 것)의 국내 수입규모도 H7N9형 조류인플루엔자가 창궐한 2013년 291t으로 바닥을 찍고 회복세를 타고 있다. 실제 국내 시중에 유통되는 셴야단, 송화단(피단) 등의 난류 가공품은 알 하나하나에 비닐포장을 씌워 유통과정에서의 오염을 최소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흔적도 엿보인다. 현재 국내에서는 AI 청정국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페인산 신선란 수입만 허용된다. 품질관리와 신뢰회복에 성공할 경우 중국산 달걀이 들어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농림축산식품부 축산경영과의 한 관계자는 “살균을 하면 다 들어올 수 있다”며 “신선란을 수입하려면 AI 관리에 문제가 없다는 보고서를 내서 평가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가짜 달걀 만든다고 비웃을 때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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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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