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오전 9시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위치한 ‘진연합의원’에 노인들이 오전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 29일 오전 9시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 위치한 ‘진연합의원’에 노인들이 오전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에 사는 김모(83)씨의 일과는 아침 6시 마늘밭에서 시작된다. 10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허리를 다쳐 몸이 편치 않지만 5월 농사철에는 손을 보태야 한다. 집에 돌아와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아침 8시30분, 의성군 읍내 정형외과로 향한다. 그는 일주일에 3번 물리치료를 받는다. 점심은 의성군 노인복지관에서 해결하고 오후 1시에 다시 마늘밭으로 향한다. 저녁 6시가 되면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의 아내는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김씨의 일과는 의성군에서 흔한 일상이다. 경북 의성군은 전국에서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행정자치부가 지난 4월에 발표한 주민등록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성군 사람들의 평균연령은 55.1세로 전국 평균(41.2세)보다 14세 정도 높다. 평균연령이 높은 지역 2위는 경북 군위군(54.7세), 3위는 전남 고흥군(54.1세)이었다. 지난 4월 기준 의성군의 인구는 5만396명. 그중 65세 이상 인구는 37%에 달하는 2만161명이다.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셈이다. 의성군에서는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어렵다. 4월 한 달간 이곳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13명, 사망자는 68명이었다. 3일에 1명꼴로 신생아가 태어나고, 하루 3명씩 사망했다는 통계다.

고령자가 많은 의성군민의 삶은 초고령화사회를 코앞에 둔 대한민국의 머지않은 미래다. 이들의 일상을 취재하기 위해 의성군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30시간 머무는 동안 15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예상대로 의성군은 초고령화사회의 집약지였다. 젊은이가 드물어 일손을 구하기 쉽지 않은 탓에 60~70대는 한창 일하는 나이에 속한다. 60~70대 여성은 ‘새댁’으로 불리고, 78세의 남성이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한다. 그곳에서 만난 의성군민 중 최연소 군민은 57세의 의성염매시장 반찬가게 주인이었고, 최고령 군민은 금성면 탑리리에 사는 97세 독거노인이었다.

최연소 57세, 최고령 97세

오후 12시40분,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의성시외버스터미널 앞은 한적했다. 의성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위치한 의성읍사무소의 직원은 “지금 의성은 농번기라 대부분 어르신들이 오전 10시쯤 병원진료를 끝내고 농가에 나가 계신다”고 했다. 의성군 시외버스터미널 앞부터 의성군 읍내 중앙로까지 대부분의 음식점과 신발가게에는 손님이 없고 텅텅 비어 있었다. ‘직원 모집’ ‘아르바이트생 모집’ 공고가 곳곳에서 보였다. 문을 닫았거나 장사를 하지 않는 상점도 여럿이었다. 의성군 중앙로 중심에 위치한 의성염매시장에는 다니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의성군 노인복지관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의성군 토박이 택시기사 김진호(63)씨는 “오후에는 손님이 없다”고 했다.

“의성군 노인들은 아침 일찍 읍내 병원에 갔다가 바로 밭으로 나간다. 아침 일찍 와야 한다. 손님 대부분은 70~80대 어르신이다. 인구가 자꾸 빠져나가 택시 영업도 어렵다. 하루에 보통 5만원 정도 버는데 기름값 1만5000원 들어가면 남는 게 거의 없다. 의성 읍내에 택시가 75대 있는데 다 힘들다.”

오후 1시30분 의성군 노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의성읍 동산2길 월룡사 바로 옆에 위치한 의성군 노인복지관에 도착했다. 의성군 노인복지관 앞에 ‘밥꽃향기’라고 간판이 내걸린 식당 앞에는 복지관 소파와 서랍장이 나와 있었다. 의성군 노인복지관 식당과 내부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의성군 노인복지관 황희철 사회복지사는 “어르신들은 복지관에도 꽤 있고, 일반 경로당에도 계신다. 복지관은 대개 오후 2시면 다 끝난다. 일반 경로당에는 열 분에서 스무 분 정도 계신다.”

오후 2시쯤 의성군 노인복지관을 나와 문소 1길을 따라 걸었다. 동산교를 지나기 전에 위치한 도동 1리 경로당이 보였다. 경로당에서는 국민연금보험공단 의성군지사가 운영하는 운동교실이 한창이었다. 12명의 노인은 초록색 고무매트에 앉아 운동교실에 나온 강사의 동작에 맞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80세 넘은 어르신들이였다. 권연호씨는 87세의 독거노인이다. 권씨는 기자에게 삶은 달걀과 소금을 건네면서 “서울에서 왔다는데 이거 무라(먹어라)”라며 “아무래도 우리가 마늘 많이 먹어서 오래 사는 것 같드라”라고 웃었다.

의성마늘은 전국에서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 의성군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곳에서 살아온 권씨의 삶은 의성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51년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마늘밭과 사과밭을 가꾸며 살아왔다.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갔다가 다시 돌아왔지. 의성에서 해놓은 농사일들이 아까웠고 그땐 젊은 사람도 많고 살기가 참 좋았거덩.” 남편은 2007년 세상을 떠났고 아들과 딸은 경기도 용인과 일산에서 각각 살고 있다. 그는 “아들하고 딸이 오라고 하는데 내가 못 가겠다. 가면 눈치 보이고 마음이 편치 않다. 여기서 혼자 지내는 게 훨씬 편하다”고 했다. 10년째 혼자 지내면서 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됐다. 지난 10월 대구 영남대학교병원에서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갑상선암 초기라 큰 위험은 없었지만 여전히 약을 먹으며 지낸다. 요즘도 월 1회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는데 다녀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 “검진받는 데 12만원 정도다. 한번은 어깨가 결리고 해서 병원에서 추가로 치료받았는데 돈 100만원이 깨졌다. 그런 적이 가끔 있다. 약값하고 수술비가 많이 들어서 힘들다. 갑상선 수술하고 정기검진한다고 MRI 찍으면 80만원도 나온다”고 말했다. 권씨는 의성 읍내에 있는 병원에서 주 3회 물리치료를 받는다. 약값은 한 달 5만~6만원 정도 든다. 오전 6시쯤 일어나 진연합의원에서 8시에 물리치료 받고 10시쯤 경로당에 가서 친구들과 점심 먹고 시간 보내고 오후 5시쯤 다시 집으로 향한다.

오후 3시, 경로당에서 나와 인근 편의점 앞에 앉아 있는 김홍규(73)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광색 등산복 상의와 검정색 트레이닝바지를 입고 농가로 일을 다시 나가려고 하는 그에게 의성군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상대적으로 여기서 젊은 편이다. 의성군에 경로당이 많다. 젊은 사람들은 주로 농공단지에 있고 대부분 필리핀, 미얀마, 스리랑카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여기 어르신들은 경로당에만 있으니까 게을러지고 일하기 싫어지고 의욕이 없다. 의성이 30년 지나면 없어진다 카지, 젊은 사람들은 점점 줄지, 삶의 활력이 어디 있겠노.” 그는 비봉과 팔성리 경로당에도 어르신들이 많다고 했다. 10분 거리에 있는 그곳에 가기 위해 다시 택시를 잡았다.

지난 4월 29일 토요일 오후 2시 의성읍에 위치한 중앙길. 주말 낮 시간대임에도 사람이 없어 한적하다.
지난 4월 29일 토요일 오후 2시 의성읍에 위치한 중앙길. 주말 낮 시간대임에도 사람이 없어 한적하다.

“읍내로 이사간 현숙네가 애 낳았다 카대”

이번에도 토박이 택시기사였다. 의성에서 나고 자란 김세영(63)씨는 대구 소재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다 의성군에서 컴퓨터학원을 운영했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 없어 학원 운영하기가 힘들어져 택시기사로 업종을 바꿨다. “운행하면서 어르신들을 많이 태우는데 참 불쌍타. 외로우니까 술에 의지하고 어떤 분들은 아예 1년 이상 요양병원에 들어간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집에까지 모셔다 드릴 때도 많다.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은 빈부 차이가 심하다.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생활이 그런대로 여유가 있지만 자식들이 바쁜 어르신들은 사는 게 엉망이다. 집을 딱 가 보면 안다. 자식들이 잘 오지 않는 집은 막 이사 온 집 같다. 엉망이다.”

오후 4시, 의성군 의성읍 팔성3리에 위치한 경로당에는 딱 2명이 있었다. TV를 보고 있던 조갑련(67)씨는 “나는 여기서 노인 축에도 못 낀다”라고 웃으며 기자를 반겼다. 지난 10월 갑상선 수술로 몸이 불편해 일을 나가지 못한다는 조씨는 김모(89)씨와 함께 있었다. 조씨는 최근까지 마늘농사를 짓다 갑상선 수술 이후 농가일을 놓았다. “200평(660㎡) 한 마지기에 씨 뿌리고 하자면 일손이 너무 부족하다. 인건비도 비싸다. 마늘 80㎏ 한 가마니가 12만원밖에 안 된다. 여자 하루 품값이 8만원이다. 차비, 식비까지 9만원이 든다. 남는 게 없으니 안 지으려고 한다.” 마침 남편 김재봉(71)씨가 읍내에서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하고 들어왔다. 부부는 함께 저녁을 먹자며 팔성3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 기자를 초대했다. 김씨가 71년째 살고 있는 집이었다.

김씨의 집에서 저녁을 먹기 전인 5시, 팔성1리 경로당을 잠시 들렀다. 7명의 노인들이 있었다. 노순자(77)씨도 12년째 혼자 살고 있다. 남편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1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의성으로 시집온 그는 “이것저것 모르고 세월이 흘렀다. 무슨 일 해야 한다 이런 것도 없다”고 했다. 노씨는 6남매를 뒀다. 대구에 1명, 포항에 1명, 구미에 1명, 의성 읍내에 3명이 있는데 의성 읍내에 있는 자식들도 바빠서 잘 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마늘밭을 가꾸다 왼쪽 팔과 다리가 안 좋아져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의성군에선 애 한 명 낳았다 카면 얘기가 돌아요. 최근에 여기 살다 읍내로 이사 간 현숙네가 낳았다 카던데. 의성이 30년 뒤에는 없어진다 카대요. 다 죽으면 슬프지만 지금은 군청에서 지원이 잘 나오니까 괜찮아요.” 5시40분 김씨는 저녁 먹고 가라며 자신의 집에서 김치를 가져와 밥을 차려줬다. “손주 같아가지고 자꾸 뭐라도 챙겨주고 싶네”라고 했다. 기자는 이날 저녁을 두 곳에서 먹었다.

4월 29일 아침 8시30분, 노인들이 많이 찾는 의성군 시외버스터미널 건물에 위치한 진연합의원을 찾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물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노인들이 많았다. 6·25 참전 유공자인 김이규(87)씨는 “무료로 진료해주니까 온다. 보통 아침 먹고 8시나 9시쯤 사람이 많다”고 했다. 오전 8시30분부터 9시 사이 병원 대기실에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금성면 탑리리에 사는 박봉석(72)씨도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찾았다. 그는 “여기는 ‘조금 더 하실랑가?’ 하며 시간을 올려주고 주물러주고 잘해준다”고 했다. 마늘밭에 가기 전 병원을 들른다는 그는 보통 3일에서 5일에 한 번 병원에 온다.

물리치료 받고 마늘밭으로

금성면 탑리리 경로당으로 향했다. 오전 11시30분, 탑리리 경로당은 잠겨 있었다. 지나가던 길목에서 만난 윤태암(91) 할머니는 동네 어르신 3명과 담소를 나누다가 기자에게 물었다. “집에서 밥 무울래?” 윤씨의 집 앞마당에는 상추가 심어져 있었다. 그는 옹기종기 심어놓은 상추를 직접 캐며 “내가 아파서 요새 일을 잘 몬 한다”고 했다. “애들 오면 요 방에서 잔다”는 말에 대청마루를 올랐다. 마루 위에는 거미줄이 있었고 각종 물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TV와 이불장이 있는 안방에는 혈압약과 대상포진 약들이 많았다. “아프니까 청소도 잘 몬 한다. 이제 아들딸들도 나이 많아서 자주 오지 않는다. 큰아들이랑 셋째까지 다 70이 넘었다. 애들 대부분도 놀고 쉰다. 막내도 60이 넘어서 일하러 오라고 하는 데가 없다.”

윤씨 할머니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와 대한노인의성군분지회에서 운영하는 경로당을 찾았다. 마루에 김모(97) 할아버지는 팔로 얼굴을 가리며 누워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최고령자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자 그는 “서울에서 왜 왔는교” 하며 서서히 일어났다. “우리는 이제 늙어가 아무것도 몬 한다. 화투나 치지. 나는 백 살이 다 돼간다. 병원에 간다. 약 안 먹으면 죽는다. 속이 답답하다. 약을 세 번씩 먹고 우울증도 걸리고 이상하다. 사는 게 아니다. 우리 같은 시대에 사는 게 아니다. 금성면은 이제 없어져간다. 저기 사람한테 물어봐라.” 그는 다시 마루에 누웠다.

경로당에서 일하는 송춘자(78)씨는 자원봉사자다. 인천이 고향인 그는 6·25전쟁 때 피란 내려오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에 안착했다가 일을 하기 위해 다시 의성으로 넘어왔다. “여기는 농사 안 짓는 노인들이 주로 와서 화투 친다. 나는 여기서 달걀 삶아주고 청소도 해준다. 청소 정도만 하니까 힘든 거는 없다. 어르신들이 심적으로 힘들다. 일을 못 하고 아프니까. 애들도 잘 안 오고.”

서울로 돌아가기 전 점심을 먹기 위해 의성 읍내 염매시장을 찾았다. 시장 입구 반찬가게에 들어갔다. 가게 주인 김모(57)씨는 “밥이 하나밖에 없는데”라며 난감해했다. “반찬만 팔다가 장사가 너무 안 되니까 점심이라도 팔아 볼까 하고 식사도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5년째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그는 손님이 계속 줄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30시간 동안 만난 어르신들의 얼굴을 떠올려 봤다. 일을 하고 싶어도 몸이 아파 할 수 없다며 슬픔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월 22만원의 기초노령연금(만 65세 이상)과 1500원만 내면 되는 노인기본진료비 혜택, 자식들의 용돈 뒷바라지는 생활의 안정에서 오는 행복보다 무기력함을 안겨준 듯 보였다. 의성군 80~90대 노인 중 장수를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불편한 ‘장수의 민낯’을 가진 곳은 단순히 의성군만이 아니다. 전국에서 초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로 접어든 지역은 의성군을 포함해 10곳이 넘는다. 10곳의 소멸위험지수(65세 이상 인구 대비 20~39세 인구비중, 낮을수록 소멸위험 높음) 차이는 단지 0.1% 이내로 대동소이하다.

귀농귀촌 인구 경북 1위 의성군

‘일자리 만들면 인구 는다’ 바이오산업 메카 만들기

지난 5월 20일 의성군농업기술센터와 대구광역시 농업기술센터가 진행한 ‘귀농귀촌체험투어’의 모습. ⓒphoto 의성군
지난 5월 20일 의성군농업기술센터와 대구광역시 농업기술센터가 진행한 ‘귀농귀촌체험투어’의 모습. ⓒphoto 의성군

경북 의성군에서는 인구 유입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17 저출산 극복 릴레이 캠페인’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출산 예정인 산모들에게 미역과 황태, 신생아 내의와 축하엽서 등을 담은 ‘맘앤베이비 사랑꾸러미’를 증정한다. 지난 5월 22일부터는 의성군 인구 늘리기 시책 발굴을 위한 국민 아이디어를 모집하고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모집 중이며 8월 31일까지 아이디어 신청을 받는다.

귀농귀촌을 장려하기 위한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일정 기간 동안 농사기술을 배운 후 안정적으로 정식 귀농할 수 있도록 ‘귀농인의 집’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대구광역시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전국에 있는 귀농희망인을 대상으로 ‘귀농귀촌 체험투어’도 호응을 얻으며 이어지고 있다.

의성군 관계자는 “상주~영덕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광역 교통망의 수혜를 입게 되어 의성군이 귀농 최적지로서의 장점이 늘었다”며 “영남대와 추진 중인 바이오신약 개발 프로젝트도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의성군은 지난해 10월 경북도, 영남대와 함께 바이오신약 개발 산업을 주도하기 위한 ‘세포배양 이노베이션 허브센터 구축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100세 시대를 맞아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바이오의약품의 핵심기반 기술인 세포배양 기술을 동력 삼아 의성군을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제도적 노력에 힘입어 의성군의 귀농귀촌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16년 한 해 동안 502명이 의성군으로 귀농귀촌을 했다. 이는 경북도 내에서 1위, 전국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김민섭 객원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