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진이가 아직 한글을 못 뗐어요. 말은 꽤 잘해서 초등학교 입학 때쯤 어련히 알아서 글을 읽으려니 했는데…. 친구들이 놀리거나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필리핀에서 온 은진이 어머니 걱정이 한가득이다. 은진이는 다문화가정의 밝고 귀여운 여학생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한글이 서투르고 학교생활 적응이 걱정되는 은진이를 위해 담임선생님 부탁으로 도움반(특수학급)에서 한글 떼는 학습을 시키기로 했다.

다문화가정 자녀뿐 아니라 장애아이들이나 지적발달이 조금 늦은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나름의 목표가 있다. 학교에서 학습하는 데 필요한 글자 정도를 해득하고 입학을 하길 원한다. 혼자 대소변 문제 해결하기, 혼자 힘으로 밥 먹기도 스스로 해결하길 바란다. 이는 중증 장애아동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특수학교냐?’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으로의 진학이냐?’를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비장애아동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갖추어야 할 기본 능력이다.

아이들이 한글을 재빨리 깨치게 하기 위한 지도방법이 있다. 많은 장애학생들이나 한글을 깨치지 못한 비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적용해 효과가 높았던 방법이다. 먼저 첫째,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와 ‘가나라다라~타파하’를 쓰기와 읽기를 반복하며 외우게 한다. 이때 연필을 바르게 잡는 방법이나 글자를 바르게 쓰는 데 치중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이 글자를 보면서 소리 내어 읽는 과정을 반복하게 함으로써 24글자에 대한 소리값을 정확하게 알도록 지도한다. 둘째, 아이가 완전하게 습득한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의 10글자와 ‘가나다라~타파하’의 14글자를 다르게 조합하여 단어를 만들어 읽고 보고 받아쓰기를 한다. 예를 들어 ‘아야어여오요우유으이’의 10글자로부터 ‘오이’ ‘아이’ ‘우유’ 등과 같은 단어를 만들고, ‘가나다라~타파하’로부터는 ‘나라’ ‘하마’ ‘다 나가’ ‘타자’ 등과 같은 낱말을 만들어 보고 쓰게 한다. 한 글자 한 글자의 조합으로 다른 낱말과 뜻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두 단계를 마스터했다면 아이들은 생활 속 글자를 보고 읽으려 한다. 이때 아이가 글자를 스스로 소리 내어 읽게 하고, 다른 글자가 있으면 아이가 알고 있는 24글자와 어떻게 달라져서 다른 소리와 의미가 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예를 들면 ‘사랑하다’라는 단어의 경우 24글자 중 ‘사, 하, 다’는 정확하게 읽어내지만, ‘랑’이란 글자는 ‘라~’ 하고 얼버무리며 읽을 것이다. 이때 ‘라’와 ‘랑’을 비교해가며 받침 ‘o(이응)’이 붙을 경우 소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려준다. 그러면서 ‘장수’ ‘가방’과 같은 글자들로 확대하면서 지도한다. 이런 방법으로 글자의 범위를 넓혀가면 한글을 깨우칠 수 있다.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은 어떤 과제에 필요한 특수한 학습능력이 아니다. 여러 가지 과제의 학습에 포괄적으로 필요한 일반적 학습능력이다. 한글 깨치기 전후로 아이들의 자신감은 확 달라진다. 조금 느린 우리 아이들이 한글을 깨치려면 조금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허정환

경남 창원 웅천초등학교 교사

허정환 경남 창원 웅천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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