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학교를 거쳐 우리 학교로 전학 온 범수(가명)가 우리 반으로 배정되었다. 학생들 말로는 두 학교를 평정한 일명 ‘짱 중의 짱’이다. 범수는 고개를 숙이고 교무실로 들어왔다. 키는 170㎝ 정도로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떡 벌어진 어깨며 다부진 몸매가 범상치 않았다. 특히 눈매가 보통이 아니었다. 내 이야기를 듣다가 뒤에서 수군거리는 아이들을 향해 고개 돌려 쏘아보는 눈빛에 학생들은 모두 기가 죽는다. 범수는 담임교사인 나에게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나이도 다른 학생들보다 두 살 많아요. 이제는 정말 중학교 졸업을 하고 싶어요”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방과 후까지의 생활 하나하나를 함께 점검하며 범수가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범수에게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어울리려고 하는 학생은 없고, 멀리서 수군거리는 아이들만 있었다.

그 가운데 사고가 터졌다. 3학년에서 주먹깨나 쓴다는 옆 반 준표의 도발로 싸움이 벌어졌고, 범수의 주먹 한 방에 일방적으로 상황이 끝났다고 한다. 나는 바로 사건 수습에 들어갔다. 3학년에서 힘 좀 쓴다는 학생들을 불러모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다행히 대화로 해결이 잘 됐다. 준표는 본인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더 이상 일이 확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범수는 진심으로 미안해 하며 모두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거듭 사과했다. 다른 학생들도 이 일을 문제 삼지 않고, 앞으로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범수는 어머니와 함께 준표의 집으로 찾아가서 “다시 찾아온 기회를 잃지 않게 해달라”며 용서를 구했고, 어렵게 준표 부모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일을 겪은 후 범수에게 1인1역을 제안했다. 반 친구 중 휠체어에 의존해 어렵게 생활하는 재우를 돕는 일이었다. 지금은 학교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당시에는 휠체어에 의존해 학교 생활을 하려면 불편하고 힘든 일이 매우 많았다. 범수는 재우를 업고 특별실을 다니고, 화장실 이용을 돕는 등 재우를 챙기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는 식당에서 점심을 받아와 교실로 와서 함께 식사했다. 다른 학생들과의 어울림도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범수로 인해 학급에 마더 테레사 효과가 퍼졌다. ‘마더 테레사 효과’란 남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거나 선한 일을 보기만 해도 인체의 면역기능이 크게 향상되고 더 많이 행복해지는 효과를 말한다. 범수와 재우뿐 아니라 반 학생들 모두 점점 밝아졌다. 행복해 하고 즐거워하는 일이 늘어났다.

재우는 범수의 도움으로 중학교 생활을 행복하게 마치고, 몸이 불편한 학생들에게 개별화 지도와 치료 교육을 통해 장애를 이겨내도록 돕는 특수학교로 진학했다. 범수는 본인이 원하는 고등학교 전자과에 진학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지금은 성실한 사회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학생들과의 생활 속에서 체득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내 행동을 보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마더 테레사 효과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