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지진 피해 현장. ⓒphoto 뉴시스
포항의 지진 피해 현장.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15일 오후 2시29분,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했다. 1978년 기상청이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가장 큰 규모는 지난해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 지진이다. 지진 에너지 총량으로 보면 경주 지진이 포항 지진의 4배 수준이다. 그럼에도 부상자 등의 피해는 포항 지진이 훨씬 더 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진원(땅속 지진 발생 지점)과 진앙(진원 바로 위로 가장 가까운 지표면) 사이의 거리가 짧은 것이 피해를 키운 첫 번째 요인이다. 경주 지진은 진원과 진앙의 거리가 15㎞인 반면 포항은 이보다 얕은 9㎞ 깊이에서 발생했다. 진원과 진앙 사이의 거리가 짧은 만큼 지진 에너지가 덜 줄어든 채 지표면에 전달되면서 땅에 가해지는 진동 세기가 심하게 나타나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더구나 인구와 건물이 밀집된 도심 가까운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해 규모가 작음에도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오래 지속되고 멀리까지 전달

더욱 중요한 사실은 지진의 진동 주파수 영역대가 피해를 가중시켰다는 점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경주 지진이 고주파인 반면 포항은 중저주파 지진이라고 분석했다. 주파수는 음파가 1초에 몇 번 진동하는지를 나타내는 단위인데, 지진에서 진동 주파수가 낮으면 진동 전달 주기가 비교적 길다. 이를테면 10㎐(헤르츠)인 지진은 0.1초마다 진동이 전달되고, 주파수가 더 낮은 5㎐는 0.2초에 한 번씩 진동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이는 지층의 흔들림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움직인다는 얘기다.

지층이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단층운동(미끄러짐)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 피해를 주는 시간이 오래 지속되고, 그로 인해 지진파가 멀리까지 전달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저주파 진동에서 지진 피해가 더 크게 나타난다. 특히 고층 건물일수록 저주파 진동의 피해가 크다. 예를 들어 1층 건물은 10㎐에, 2층 건물은 5㎐ 진동에 의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포항 지역의 3~5층 저층 구조물에 지진 피해가 집중됐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주 지진이 1~2초의 짧은 시간에 강한 에너지를 쏟아내는 고주파 진동이었다면, 포항 지진은 비교적 느린 중저주파의 진동이 발달해 좀 더 높은 층에 피해를 입힌 것이다. 물론 진원에서 아주 가까운 곳은 강한 지진에너지가 도달하기 때문에 주파수와는 별 상관이 없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포항 지역의 지층이 무른 해성 퇴적층인 관계로 지반이 약하다고 설명했다. 포항 지역은 불과 1730만~1200만년 전에 동해에 가라앉아 형성된 지층인데, 1200만년 전(마이오세)에 양산단층을 따라 해저에서 융기한 이암으로 이뤄져 있어 약하다는 것이다. ‘양산단층’은 대표적 활성단층(지층이 움직여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단층)으로 경주와 양산, 부산을 잇는 약 170㎞ 길이의 단층이다.

점토가 퇴적하면서 형성된 이암층은 단단한 화강암 기반의 경주 지질에 비해 강도가 훨씬 약한 편이다. 이암 절편을 세게 조몰락거리면 과자처럼 쉽게 부스러질 정도다. 이렇듯 지반이 약한 퇴적층이다 보니 자잘한 중저주파 진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진앙인 포항시 흥해읍 일대에 피해가 컸던 이유가 바로 이암 퇴적물이 19~20m 쌓인 곳에 위치한 마을이기 때문이다.

지진 전문가들은 포항 지진의 경우 두 개의 지층이 위아래로 어긋나고 또다시 좌우로 엇갈려 이동하는 ‘역단층성 주향이동단층’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진원지 서쪽 지반(상반)이 동쪽 지반(하반)을 타고 올라가는 패턴이다. 경주의 경우는 ‘주향이동단층’ 지진이다. 이는 지층이 한쪽은 북쪽으로 한쪽은 남쪽으로 서로 엇갈려 수평 이동하는 지진이다. 포항의 경우는 이때보다 단층면이 들었다 놨다 더 요동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같은 단층이라도 ‘역단층성 주향이동단층’이 발생할 때 피해가 더 크다. 결국 포항 지역의 지반 특성이 지진 규모보다 더 큰 피해를 키운 셈이다.

지진 예측 연구의 발전

포항 지진은 그동안 알려진 양산단층이 아닌, 전혀 새로운 활성단층에서 발생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활성단층은 지진 발생 위험이 높고 연쇄 효과 또한 무섭다. 여진과 함께 연쇄 지진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땅속에 축적된 에너지가 아직 덜 소진돼 여진은 물론 다른 단층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지질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전국의 활성단층을 정확히 조사하는 일이 시급하다. 해당 지역의 지층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고, 또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힘이 얼마나 누적되고 있는지 등의 지질 정보를 알아야 지진에 대비할 수 있다. 한반도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진 발생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대다수 세계 지진학자들의 중론이다. 피해를 완전히 막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지역별 지진 위험 상황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게 최선이다. 미국의 경우 샌안드레아스 단층이 지나가는, 지진 위험도가 높은 지역의 지질 구조를 세밀하게 계속 조사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약 15%, 규모는 6.7에서 6.8 사이’라는 식의 정보로 제공한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지진연구소의 맨-앤드린 메이어 연구팀은 ‘단층이 파열되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특수한 패턴 발견’이라는 연구 결과를 통해 지진 예측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연구팀이 100개 이상의 지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에너지가 방출되는 속도를 토대로 이후 일어날 지진의 최소 규모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정확하게 언제 어느 지점에서 지진이 발생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특정 지점에서 단층이 파열되는 현상을 포착하면 이후 진행 양상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가령 지진이 점점 커지는 단계에서 이미 모멘트 규모 5.4에 도달하면 최소한 모멘트 규모 5.6 이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지진 규모에서 0.2는 단순히 작은 수치에 불과하지만 에너지 양으로 환산하면 약 2배 차이가 난다. 지진 피해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 포항과 경주의 규모 0.4 차이의 피해 정도를 비교하면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도 전국의 단층을 단계적으로 조사해 지진 위험에 짧게라도 대처할 시간을 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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