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 초 준구(가명)의 표정은 몹시 어둡고 마음에 분노와 두려움이 가득했다. 첫마디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었다. “아버지가 싫어요. 얼굴 보기 괴롭고 무서워요. 저는 놀고 싶고, 체육 중학교로 전학 가서 높이뛰기 선수를 하고 싶은데, 아버지는 소위 ‘사’ 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하세요. 학원에서는 매일 시험을 보고 점수가 낮으면 나머지 학습을 시키는데, 이런 모습을 다른 학생들이 보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창피해요.”

준구의 하소연은 계속됐다. 한번은 어지럽고 아팠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병원 다녀와서 학원 하루 쉬면 안 되나요?” 물었더니 화를 내시며 “진통제 먹고 바로 학원에 가” 하셨단다. 준구를 믿지 못한 아버지는 학원으로 전화까지 하셨다. 학원 선생님이 다른 학생들 앞에서 확인하는데 너무 화가 나서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늘 우울하고 짜증 나요. 집을 나가고 싶어요. 폭발 직전이에요. 지옥에서 사는 것 같아요.”

준구 아버지께 면담을 요청했다. 아버지께 준구 속마음을 전하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셨다. “아들을 위해 힘들게 일하는 것을 보여주면 준구가 더 열심히 공부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밤낮 없이 더 힘들게 살았는데….” 아버지는 준구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고 계셨다. 미안하고 후회된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물으셨다.

아버지가 다녀가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준구의 학교생활은 변하기 시작하였다. 담임 교사와 교과 교사들도 준구가 변했다고 말씀하셨다. 좋은 일이 생긴 것 같다며, 수업시간에도 졸거나 딴짓하지 않고 수행평가도 잘하고 열심히 참여한단다. 같은 반 학생들도 준구 대하기가 편해졌다고 했다. 비결이 궁금했다. 준구를 불러 물었다. “아버지하고 저녁마다 30분 정도 배드민턴을 쳐요. 끝나면 가끔 치킨도 함께 먹고요, 요즘에는 천국에 있는 것 같아요. 너무 행복해요.”

아버지와 함께하는 30분이 준구를 변화시켰다. 자존감을 높여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자존감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높아진다. 학교에서 자존감이 높은 학생은 합리적이고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다른 학생들과의 관계도 잘 유지한다. 전반적으로 성적도 높은 경우가 많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학생은 우울, 불안, 열등감, 분노, 공포 등의 부정적 심리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의사결정에 의존적이거나 불확실한 태도를 보이기 쉽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주나 흡연 등 중독에 빠져들기 쉽고, 자격지심 때문에 공격적인 태도를 보여 교우관계도 원만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무기력하고 학습에도 관심이 없다.

자존감 형성에는 부모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작은 노력이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자녀와 오롯이 함께하는 추억 만들기 시간은 자존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길지 않아도 되고 매일이 아니어도 된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면 그걸로 족하다.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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