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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셜 리포트] 7가지 질문으로 본 페미니즘 기초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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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498호]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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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7가지 질문으로 본 페미니즘 기초안내서

김효정  기자  / 일러스트 허인회    

‘나도 당했다’는 뜻의 미투(#MeToo)운동이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여성들이 겪은 성폭력·성추행 경험을 더 이상 감추지 말고 직접 폭로하자는 움직임이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의 성폭력 행위를 폭로한 뉴욕타임스 기사가 나오면서 시작된 사회운동이다.
   
   피해여성들은 주로 SNS를 통해 자신의 피해사실을 고백했다. SNS에서 해시태그(#)를 붙이면 쉽게 검색이 가능하다. 미국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SNS에 ‘#MeToo’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하비 와인스틴과 여러 문화계 권력자의 가해사실을 폭로해온 움직임이 한국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영화계와 대중문화계에서 시작되는가 싶더니 기업이나 학교,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미투운동의 ‘다음 단계’를 생각할 때다. 안타까운 것은 미투에 용감하게 나선 여성들이 자신이 바라는 결말을 맞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7일 조선일보에는 ‘미투 이후 또 다른 차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일부 남성들이 직장에서 ‘성폭력 가능성을 미리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회식이나 출장에서 여성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일이 있다.… 게시물엔 ‘여직원이 무섭게 느껴진다’ ‘여자와 얽히면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세상이니 남자들이 여자들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 미투운동을 ‘남자들 흠집 잡기’ ‘예민한 여성들의 한풀이’로 읽어내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여성은 목소리를 높이고 남성은 불만을 가지는 이 온도 차는 미투운동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드러난다. 성폭력은 몇몇 정해진 행동양식을 어기는 규칙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른 인식의 문제다. 상대방과 거리를 둔다고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의 인식은 날로 변화하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페미니즘 관련 서적 판매량은 매년 100% 넘게 늘어나고 있는데 구매자의 78%가 여성이다. 그러나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남성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는 그만큼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왜 문제를 삼는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모르니 아예 상대방과 거리를 두거나 ‘듣기 싫은 소리’라고 벽을 쌓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개별 사건에 대한 감정적인 공감을 넘어서 미투운동, 나아가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투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인 지난 2월 8일,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투운동에 대해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많아져 60대에 이르면 17.3%가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이슈가 논의되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20년이 지났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해의 간극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7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보았다.
   
   
   01 페미니즘의 목표는 무엇인가?
   여성해방? 여성우월주의?

   
   2000년에 처음 출간돼 페미니즘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Feminism is for Everybody)’ 서문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일반적으로 남성은 가부장제,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보다 우수하므로 여자를 지배해야 한다는 전제의 수혜자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가장으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느끼는 증오와 공포,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 모두를 혼란스러워한다.”
   
   대개 페미니즘은 남성의 것을 빼앗아 여성이 취하고자 한다는 오해를 받는다. 사실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남성을 대립 상대로 삼지 않는다. 페미니즘이 극복하고자 하는 것은 성불평등(gender inequality)이다. 여기서 ‘성’은 생물학적 성(sex)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gender)을 의미한다. 생물학적으로 여성과 남성 어느 한쪽으로 딱 잘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되라고 억압받고 ‘남성’이기를 강요받는 사회적 규범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불평등이란 단순히 여성의 일자리 몇 개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에 좌우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면서 겪는 수많은 성적·사회적·문화적 압력과 배제를 총칭한다.
   
   페미니스트가 목표로 하는 것은 성평등(gender equality)이다. “페미니스트인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고 한다.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남자를 반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 여성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몇몇 여성이 때로 가장 적극적으로 성차별을 행하기도 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위의 책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 해설을 덧붙인 권김현영씨의 설명이다. 차별의 형태가 선명했던 예전에는 성평등으로 가는 길이 뚜렷이 보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어지지 않던 투표권을 쟁취하고 무조건 정숙하기만을 강요하던 사회에 ‘내가 결정한다’고 소리치는 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페미니즘은 약간 달라졌다. 앤디 자이슬러가 ‘2세대 편견’이라고 표현한 희미하지만 뿌리 깊은 차별에 저항한다.
   
   “예뻐서 한번 안아본 건데 어때? 그냥 가슴 한번 만진 건데 어때? 웃고 넘어가요. 당신은 아름다우니까요. 남자가 외모로 칭찬 좀 할 수도 있지 뭘 그래요? 그럴까?” 록산 게이는 ‘나쁜페미니스트’에서 여성이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존재로 여겨지는 요즘 문화를 비판한다.
   
   페미니즘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온 가부장제·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한다.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같이 당연해 보이는 명제에도 물음표를 붙여야 하니 페미니스트가 되는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02 모든 페미니스트는
   ‘프로 불편러’인가?

   
   ‘프로 불편러’라는 말은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이 중시되는 요즘 생겨난 신조어다. 인종주의, 성차별주의부터 성소수자 인권, 연령 차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말이나 행동에 일일이 태클을 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자칭 페미니스트와 같이 있으면 무조건 불편합니다. 말 하나를 하는 데도 신경이 쓰이고 잘못 말했다가 ‘사과하라’는 얘기를 듣곤 하니까 같이 있는 것도 꺼려져요.” 여성 직원이 80%가 넘는 한 광고회사 팀장이 한 말이다. 이 말처럼 페미니스트는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페미니즘의 목표는 우리 안에 있는 성불평등을 깨트리고 극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는 기존의 관념에 일일이 반기를 든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해서 바뀐 것들을 찾아보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남편과 아버지는 종종 부인을 겁박하거나 때렸다.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집안에만 있는 여자가 성질이 사나우면 안 된다”는 남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페미니스트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말해왔다. 여성은 남성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며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여성의 가치가 폄하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사라져가고 있다. 남성들이 스스로 깨우쳐서가 아니다. ‘시끄러운 여자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페미니스트가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당연히 불편하고 번거로운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대로는 여성과 남성 모두 동등하게 인정 받지 못하며 조화롭게 살 수 없다”고 경고한다. 페미니즘을 깨우친 페미니스트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불편러’들도 늘어날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변화를 원한다.
   
   
   03 페미니즘은
   좌파운동인가?

   
   진보, 혁신, 사회적 평등 같은 이념을 옹호하는 것이 좌파라고 정의한다면 페미니즘 역시 좌파에 속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좌파진영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페미니즘은 좌파진영과 대립각을 세울 때도 많았다. 페미니즘이 극복하고자 하는 가부장제는 어느 한 분야의 사상 같은 것이 아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총체적인 구조로 작동하는 것이다.
   
   종종 페미니스트는 더 큰 목표, 대의를 위해 희생하거나 침묵할 것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수전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는 역사적으로 강간이 어떻게 좌파운동에 이용돼왔는지 서술돼 있다. 브라운밀러에 따르면 “공산주의자에게 페미니즘은 항상 금기어이자 우익으로의 탈선이었고 부르주아적 ‘오류’였다”. 가부장제는 부르주아 혁명이 성공하고 나면 저절로 없어질 거라는 미온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흑인 급진주의자 집단 블랙팬서당의 이론가 역할을 한 엘드리지 클리버는 아예 강간은 ‘만족스러운 행위’라는 저술을 남겼다.
   
   “강간은 반란 행위였다. 내가 백인 남성의 법을, 그의 가치 체계를 거역하고 짓밟는다는 것이, 그리고 그의 여성을 모욕하고 있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특히 그의 여성을 모욕한다는 지점이 나에게는 가장 만족스러웠다.”
   
   말하자면 페미니즘은 모든 사회운동 중에서도 후순위에 속하는 것이었다. 여성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시대에는 더욱 그랬다. 대표적 진보 지식인 유시민 작가는 2000년대 초반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해 활동할 때 당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자 이를 해결하자는 여성 당원들에게 “해일이 일고 있는데 겨우 조개나 줍고 있느냐”고 대응했다. 페미니스트가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셈이다.
   
   다만 이 간격은 점차 좁혀지는 추세다. 최근 좌파진영 내에서 미투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이유를 ‘좌파들의 이중성’이라고만 볼 수 없다. 비로소 좌파진영 내에서도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남성중심주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은 해석이다. 우파진영의 경우 페미니즘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작은 편이다.
   
   

   04 페미니즘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나?

   
   페미니즘은 사회의 총체적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된다. 흔히 떠올리기 쉬운 급진적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일부다. 페미니즘이 하나의 목표와 실천방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40~50년 전 페미니즘의 모습만을 보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맨 처음 깨우친 여성들에 의해 시작됐다. 유럽 계몽주의시대에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선구자들은 물론 20세기 초반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해 전투적으로 나섰던 여성들이 그렇다. 이들은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는 일에 반대하는 남성 정치인에 맞서 테러를 저지르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1960~1970년대 68혁명과 함께 등장한 다음 세대 페미니스트 역시 가시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여성과 남성이 같은 대학에 다니는 것이 불가능했을 때 급진 페미니스트는 목소리를 높여 여성의 대학 입학권을 따냈다.
   
   다만 급진 페미니스트의 실천 방식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페미니즘 내외부에서 계속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복합적이고 전체적인 구조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페미니스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이 다양한 사회운동과 연대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페미니즘의 주제도 다양해졌다.
   
   페미니즘이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다양화된 페미니즘이 이끌어낸 인식 중 하나다. 성평등을 목표로 하는 페미니스트에게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성소수자가 받는 차별은 극복해야 할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가장 차별받는 집단 중 하나였던 성매매 여성의 인권, 당연한 듯 존재했던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비판부터 시작해 사회 곳곳의 정치·문화·사회적 규범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는 각자의 철학에 맞는 목표와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부각되는 ‘적녹보라 패러다임’은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도 논쟁이 이어지는 문제 중 하나다. 노동(赤), 환경·생태(綠), 젠더(보라)의 문제가 서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을 바꾸려 하지 말고 서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몇몇 페미니스트는 이 적녹보라 패러다임이 지나치게 온건할 뿐 아니라 여성의 문제에 집중하지 않는 유사 페미니즘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는 늘 어떤 것이 ‘옳은’ 페미니즘인지 치열하게 논의가 펼쳐진다. 여성학자이자 문화평론가인 손희정씨의 설명이다. “사실 페미니즘은 세계를 바꾸려는 인식론이자 실천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진짜 논쟁’이 계속되는 것은 당연하다.” 페미니즘을 그저 ‘불편러들의 예민한 목소리’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05 아직도 페미니즘이
   필요한가?

   
   만약 아래의 내용에 동의한다면 페미니스트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고 봐도 된다. 여성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정희진씨가 쓰고 엮은 책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모든 것이 성별화된 사회라 해도 우리가 실제로 남성과 여성으로 인식하는 ‘진짜’ 남성과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은 대단히 적다. 그래서 ‘부자 남성’과 ‘예쁜 여성’이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성별 사회에서 여성은 외모와 나이, 남성은 사회적 자원 여부가 남성과 여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여성에게도 동등한 법적 권리가 주어지고 여성이 못 갈 곳은 없어졌다고 해서 성불평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복잡한 불평등 문제가 남아 있다. 앤디 자이슬러는 더 깊이 숨어버린 불평등에 대해 얘기한다.
   
   “1세대 편견(bias)이 자유와 성과를 가로막는 가시적인 장벽의 형태로 나타났다면(여학생과 소수민족 학생들의 입학을 거부했던 대학들, 피임의 불법화,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구인 광고 등) 2세대 편견은 훨씬 미묘하고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며, 내면화하는 경향을 띤다.”
   
   지금은 여성이 대학에 진학하고 회사에 취업하는 데 어떠한 법적인 장애도 없는 사회이다. 그렇다면 여성이 고위 관리직에 오르지 못하는 것, 경쟁 레이스에서 중도하차하는 여성이 많은 것은 그저 여성의 ‘기질적인 취약점’ 때문인 것일까. 실제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성은 인내심과 투지가 부족하고 심지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문제가 구조적 원인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자녀를 출산하고 기를 나이인 30~40대에 경력단절 여성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통계만 봐도 된다.
   
   성관념(gender)에 대한 인식은 더욱 공고해지는 경향도 보인다. 엄혜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가 책 ‘그럼에도 페미니즘’에서 다룬 된장녀, 김치녀 같은 ‘속물적인 젊은 여성’에 대한 논란도 페미니즘의 문제다.
   
   “남성은 유일한 생계 부양자로서의 가부장적 권위를 인정받았던 기반을 상실했으며, 여성은 가족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개인에 미달하는 존재로 취급당한다. 된장녀, 김치녀와 허구적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남성들은 이러한 변화를 자신들에 대한 오롯한 위협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부당한 처우가 자신들의 지위를 잠식하는 여성들 때문에 비롯됐다고 믿고 싶어한다.” 엄 교수는 “남성 개개인의 삶을 모두 비난하고 여성 개개인의 삶을 모두 옹호하는 것은 페미니즘과 가장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요즘 페미니즘의 문제는 굳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파편적으로 등장한다. 저출산 문제는 정확히 ‘요즘 페미니즘’의 문제다. 12년 동안 122조원의 예산을 쏟아붓고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는 ‘여성=출산’ ‘여성=육아’라는 공식에 의문을 가지는 페미니스트를 고려하지 못한 탓이다. 단순히 아이를 낳으면 지원금을 주는 방식을 넘어서 사회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은 계속 필요하다.
   
   

   06 미투운동도
   페미니즘인가?

   
   위에서 말한 ‘아직도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미투운동이다. 성폭력 사건을 다룬 언론 보도에서 흔히 접하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라는 표현은 아직도 성관계의 문제가 얼마나 성차별적으로 인식되고 있는지 알려준다.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에는 두 가지 생각이 전제돼 있다. 하나는 ‘남성의 욕구는 억제할 수 없다’이고 또 하나는 ‘피해자는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이다. 페미니스트는 이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줄곧 주장해왔다.
   
   모든 성폭력 사건에는 성불평등 상황이 있다. 피해자를 인간이 아니라 성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 자신의 성적 욕망을 피해자를 통해 ‘풀 수 있다’는 생각, 피해자는 피해자의 욕망이 어떻든 자신의 욕망에 응해줘야 한다는 위계적인 사고방식이 그렇다. 주로 여성인 피해자는 이 과정에서 보통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한다. 신체적인 피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자율성을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성폭력 범죄가 범죄로 인식되기 전부터 성폭력 범죄 피해를 알리고 범죄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일을 해왔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성폭력 피해자 말하기 대회’가 열렸다. ‘야한 옷을 입어서 강간당했다’ ‘평소에 남자를 유혹했으니 성희롱을 당했다’는 인식이 상당히 보편적이던 시절에 용기 있게 나서서 “성범죄의 원인은 가해자에게 있다”고 선언하는 자리였다. 소수의 사람들이 낸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변화는 찾아왔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도 성폭력의 원인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에게 있다는 것, 성폭력은 피해자의 신체뿐 아니라 삶을 망가뜨리는 행위라는 것을 점차 인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위계적인 관계에서 권력으로 피해자를 억누르던 가해자로부터 입은 피해도 폭로되기 시작했다. 미투운동은 혼자 외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운동이 아니라 수십 년간 진행된 페미니즘의 반(反)성폭력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았다. 미투운동이 문제가 되니 아예 “여자와는 손도 잡지 않겠다”고 말하는 남자들이 생겼다. “무고한 가해자를 양산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도 나온다. 성폭력이 특정 상황에서 특정 행동에 대해 문제가 되는 것으로 간단하게 생각해버린 결과다. 그러나 성폭력은 원인·과정·결과가 뚜렷한 범죄가 아니다.
   
   수전 브라운밀러가 말했듯이 “성범죄에서도 범죄자와 피해자 사이에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 강도범의 협박에 순순히 돈을 내놓더라도 돈을 ‘탈취당했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피해자가 성관계에 응했다고 해서 모든 성관계가 합의된 것은 아니다. 맥락이 중요하다.
   
   “강도와 폭행의 피해자는 저항 여부나 동의 여부, 의지를 꺾을 만큼 충분히 힘으로 강요당하거나 위협당했는지 여부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강간 및 여러 형태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증거 구성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즉 저항했다는 것,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 압도적인 힘과 공포 때문에 의지가 꺾였다는 것을 피해자 자신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수전 브라운밀러)
   
   강제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언제나 성폭력 피해자는 ‘잠재적인 무고자’가 돼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현재의 미투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정적일 정도로 구체적인 진술과 피해자가 모든 것을 내걸고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나설 때에야 어느 정도 진실성을 담보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07 페미니즘 교육은
   꼭 필요할까?

   
   미투운동이 갑작스럽고 ‘두렵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나도 혹시 부지불식간에 잘못한 것이 없을까 걱정된다”는 말이 꼭 들어간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중에는 “예쁘다는 말도 하기 무섭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엇이 성폭력인지, 왜 이번 미투운동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다.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필요하다. 여성 또한 충분히 성폭력은 물론 성불평등의 가해자일 수 있다.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간격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지만 가해자는 “잘못인 줄 몰랐다” “나는 진심이었다”고 표면적인 사과만 하는 상황이다. 왜 그것이 범죄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페미니즘을 가르쳐줘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학교 현장에서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것이다. 자주 오해하듯이 페미니즘을 가르치자는 얘기는 ‘여성을 존중하라’는 식의 성별 분리 교육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 보자면 페미니즘 교육은 사회와 사회구성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교육이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남자 아이가 그러면 안 된다’거나 ‘여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단 하나의 정체성만 주입받다 보니 그에 맞는 자아를 갖추지 못했을 때 쉽게 열패감을 느끼고 불안과 분노를 안게 된다. 점점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을 수행하기 힘들어진 사회에서 여전히 남학생에게 책임감, 의무, 권위를 강조해 가르치다 보면 생기는 문제다.
   
   페미니즘 교육은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을 의미한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폭력을 금지하는 것도 포함한다. 자신의 몸을 제어하고 몸에 대한 자신감을 함양하는 동시에 신체적 힘을 어떻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일도 페미니즘 교육의 주된 목표 중 하나다.
   
   미투운동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격차는 페미니즘 교육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 교육에 대해 의견을 밝힌 여성운동가의 말이다.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가치관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롭게 강조돼야 할 가치도 아닙니다. 페미니즘 강의를 하러 다니면 여성은 많은데 남성은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식 차이는 점점 더 커지고 소통은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세상에는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듣고 변화하고자 하는 남성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남성들과 함께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용어 해설
   
   젠더(gender)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성’에는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이 있다. 생물학적 성은 말 그대로 신체 외양에 따라 정해지는 성을 말한다. 젠더는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출산을 할 수 있는 것은 생물학적 여성이 갖춘 특징이다. 예뻐야 하고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만들어낸 여성의 특징이다. 사회적 성은 생물학적 성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남성의 몸을 타고났지만 ‘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젠더 개념 또한 이분법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성폭력과 성폭행의 차이
   성폭력은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성범죄 행위를 포괄하는 단어다. 성희롱이 언어와 행동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범죄라면 성추행은 강제적인 접촉을 포함한다. 성폭행은 강간과 강간미수를 통틀어 강제적인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페미니즘을 더 공부하려면
   
   이 기사는 아래의 책들을 참고해 썼다. 페미니즘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면 아래의 책을 하나씩 읽어봐도 좋다.
   
   입문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문학동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 창비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교양인
   ‘나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 사이행성
   
   질문이 생길 때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정희진 외, 교양인
   ‘그럼에도 페미니즘’ 윤보라 외, 은행나무
   ‘페미니즘을 팝니다’ 앤디 자이슬러, 세종서적
   ‘배드 걸 굿 걸’ 수전 J. 더글러스, 글항아리
   
   미투운동 읽기
   ‘강간은 강간이다’ 조디 래피얼, 글항아리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수전 브라운밀러,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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