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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38호] 20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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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재개발 갈등 백사마을 ‘구룡마을’ 전철 밟나

곽승한  수습기자 

▲ 지난 12월 14일 백사마을 끝자락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전경.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 사는 권인구(62)씨는 이 동네에서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한다. 그는 현재 보증금 1000만원에 월 7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이 마을 허름한 단독주택에 14년째 살고 있다. 이삿짐 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권씨는 “근래 들어 일이 줄어 집에서 쉬는 날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부동산 대출을 규제하고 나서 이사가 확 줄었다”며 “사무실에서 아침에 연락을 주면 일을 나가는데, 한창 이사가 많은 10월에도 올해는 10번밖에 일하지 못했다”고 했다. 권씨는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한쪽 벽이 아예 허물어져 있어 바깥으로 벽돌을 다시 쌓았다. 다른 집들도 비가 오면 물 새는 곳이 수두룩하다. 그렇다고 수리할 여력이 되지도 않으니 그냥 사는 거다”라고 말했다.
   
   권씨의 집안 거실 한쪽 벽은 서로 다른 벽지가 덕지덕지 땜질되어 있었다. 그의 집에는 화장실이 없다. 백사마을 주민 대부분이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 슬레이트로 만들어진 이동식 화장실이어서 겨우 용변만 해결할 수 있는 시설이다. 쪼그려서 볼일을 봐야 하는 오래된 변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그대로 묻어 있었다. 겨울인데도 악취가 올라와 코를 찔렀다. 권씨는 “화장실 때문에 특히 겨울에 힘들다”고 했다.
   
   백사마을의 다른 집들도 대부분 비슷했다. 2018년 서울 한복판에 이런 주거시설이 남아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자를 백사마을로 태워다준 60대 택시기사 역시 “요즘도 이런 데가 있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백사마을은 노원구 중계동 104번지에 자리해 붙여진 이름이다. 1966년 청계천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불암산 밑자락 구릉지로 하나둘 모여 터를 잡았다. 경작지였던 땅에 점점 집과 공장이 들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백사마을은 그 시절에 멈춰 있었다. 지붕이 벗겨지고 외벽이 무너진 집 수백 채가 있는 이 마을을 두고 언론에서는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달동네’라고 주로 표현한다.
   
   
   우울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멀리서 본 모습보다 훨씬 주거환경이 열악했다. 처음 마을이 조성될 당시 집 한 채에 부여된 공간은 대부분 24㎡(8평) 남짓이었다. 이런 작은 집들이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4~5가구가 같은 주소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복잡한 마을길이 심지어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숨이 금방 가빠진다. 이곳에 살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70대 이상 독거노인들이다. 기자가 이곳을 방문했던 12월 17일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골목길을 지팡이 짚은 노인들이 간신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백사마을에 30년째 살고 있는 국순자(89)씨 집은 연탄보일러를 사용하지만, 정작 연탄을 사용하지 못한다. 화재나 사고가 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씨는 올겨울도 전기장판과 두꺼운 옷으로 버틴다. 국씨의 집안에 들어가 보니 실내온도는 1도에 불과했다. 집 안에는 전기장판과 밥솥, 커피포트 콘센트가 뒤엉켜 있었다. 전기장판이 이 집의 유일한 난방도구였다.
   
   백사마을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보다 비어 있는 집이 더 많았다. 직접 돌아본 50여채 중 12가구만 실제 거주하고 있었다. 비어 있는 집들은 슬레이트 지붕이 날아가고 벽이 갈라지고 창문은 뚫려 있었다. 터만 남아 있는 수준에 가까웠다. 내부에는 나무 덩굴과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30년째 백사마을에 살고 있는 김기분(82)씨는 “몇 년 사이 사람이 워낙 많이 나가다 보니까 뱀도 자주 보인다. 얼마 전엔 자고 일어났는데 신발장에 물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어 소스라쳤다”고 말했다.
   
   현재 백사마을에는 1400여가구가 토지 등 소유자로 서류상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 거주는 500여가구 정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거주자들은 대부분 집이나 토지를 소유한 사람이 아닌 임차인들이다. 백사마을에서는 임대인 내지 집주인을 권리자라고 부른다. 기자가 만나본 백사마을 거주민들 중 대부분은 임차인이었다. 권리자이면서 거주자인 사람은 만나기 어려웠다.
   
   
▲ 지난 12월 14일 백사마을의 골목 풍경. 전날 내린 눈이 덜 녹아 길이 미끄러웠다.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저층 아파트’ 설계에 주민들 ‘16층’ 요구
   
   백사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30년 전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돌았다. 재개발 이야기가 본격화된 것은 2008년 서울시가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부터다. 2009년 서울시는 이 마을을 주택재개발 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했고, 2011년에는 ‘주거지 보전구역’으로 지정했다. 백사마을 고유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재개발한다는, 전례가 없던 재개발 방식이었다.
   
   주거지 원형을 유지하는 재생 개념의 재개발은 2011년 9월(오세훈 전 시장 시절)부터 계획이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그래서 지금의 재개발이 오세훈 시장 때 재개발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말도 나왔었다. 당시는 구상에 그쳤다면, 박 시장 아래서 실현되어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업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해 당사자 간 마찰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2016년 1월 사업시행자였던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용적률 등의 측면에서 사업성이 없다며 손을 떼면서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재개발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지난해 7월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사업시행자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서울시와 SH공사는 올해 6월 백사마을 재개발 설계안 마련을 국제지명공모 방식으로 진행해 여기에 참여한 6개 업체를 놓고 심사를 진행했다. 승효상 커미셔너(현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이광환 총괄계획가(해안건축 소장)와 SH공사 관계자 2명 등 총 7명이 심사에 참여했다.
   
   그 결과 조남호 건축가(솔토지빈 건축사무소 대표)의 설계안이 당선됐다. 조 건축가는 2〜3층으로 지어질 임대주택 지역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나머지 개발 지역의 3분의 2를 4〜5층짜리 저층 단지로 설계하는 대신 총 가구수를 2000가구로 맞추고자 불암산 자락에 25층짜리 고층 아파트를 배치했다.
   
   그러자 백사마을 주민대책위원회는 반기를 들었다. 설계된 저층 아파트의 동간 간격이 너무 좁아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고, 불암산 앞에 설계된 25층 아파트가 경관을 해친다며 평균 16층 높이로 지을 것을 요구했다. 황진숙 백사마을 주민대책위원장은 “건축가들의 건축철학을 왜 우리 사유재산에 구현하려고 하나.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평균 층수 16층만 맞춰달라는 것이다. 요즘 16층이 뭐가 ‘고층’인가”라고 말했다. 급기야 백사마을 주민대책위 소속 회원 100명은 12월 2일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서울 강남구 SH공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재개발 설계 계약을 해지하라”고 요구했다.
   
   주민들이 SH공사가 선정한 설계안에 크게 반발하면서 백사마을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이전보다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과거에는 서울시와 주민들 간 대립이었다면, 최근에는 설계안을 만든 건축가까지 공방의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 과거 서울시에 쏟아졌던 주민들의 불만이 건축가를 향하고 있다. 주민들은 심사위원과 건축가가 특정 학연으로 얽혀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 심사에 참가했던 이광환 건축 총괄계획가가 사업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시까지 비판하고 나서서 그야말로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이 어려운 상황까지 됐다.
   
   
   주민 내분, 설계자 불신… 법정으로 가나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설계안을 둘러싸고 백사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 SH공사 설계안에 반발한 주민대책위와 SH공사 설계안에 찬성하고 있는 주민들 간 마찰이 발생하고 결국 송사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주민대책위는 백사마을 권리자 가족인 A씨와 건축가 조남호, 이광환 총괄계획가를 12월 17일 서울중앙지검에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한 상황이다.
   
   주민들은 A씨가 서울시와 건축가들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A씨가 주민들이 참여하는 단체카톡방에 재개발 관련 파워포인트 자료 등을 공유했는데, 이 자료가 모두 조 건축가와 이 계획가로부터 받은 것으로 이를 통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 A씨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주장이다. 주간조선이 확인한 A씨 카톡 내용에는 “주민대표위원회(주민자치)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가짜뉴스 생산을 막아야 하고, 주대위의 합리적 의사 결정 과정을 위해 권리자에 대한 신상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주민대책위 측 인사는 “권리자의 딸이라는 어떤 학생이, 우리 주민회의 단톡방에 주민 대표가 잘못하고 있다며 조남호, 이광환 측이 주장 근거로 내세우는 자료를 올렸다”며 “그런데 그 자료는 서울시, SH공사, 구청, 이광환까지만 접근할 수 있는 비공개자료다. 그 학생에게 자료를 준 사람이 누구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정보공개청구시스템을 통해 권리자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자료’라고 반박했다.
   
   주간조선이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이들의 입장 차이는 너무나 커 보였다. 일단 설계자인 조남호 건축가는 이 문제를 단순히 ‘주민 vs 설계자’ 구도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남호 건축가는 “모두가 낯선 방식이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고 도시와 건축을 바라보는 눈이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욕심만으로 아파트를 지으면 20년 뒤에도 가치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광환 총괄계획가는 “경제적 이유로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백사마을의 경우 주거지 보전 개발이라는 유례가 없는 재개발”이라며 “공공과 주민이 협의를 해서 이뤄가야 하는 일인데, 서울시는 ‘말미잘’처럼 분위기 좋을 때만 하는 척하다가 나빠지면 쏙 들어간다”고 서울시에 날을 세웠다.
   
   주민대책위 황 위원장은 주민들이 설계안 수정을 요구했지만 조 건축가 측에서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권리자로서 합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고, 설계자는 그걸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계약해지로 밀고 갈 거다. 그리고 다른 설계안을 다시 선정해서 가는 게 빠르지, 이대로 조남호 건축가와 할 수는 없다”며 “너무 멀리 왔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원순 시장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백사마을이 서울시 강남구 구룡마을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마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구룡마을은 재개발 방식을 둘러싸고 이해당사자들 간 대립 때문에 수십 년째 개발이 멈춰 있는 상황이다. 개발 방식에 따른 의견 차이로 인한 피해는 백사마을이나 구룡마을 모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백사마을 재개발 당사자들의 입장
   
   “서울시는 분위기 나빠지면 쏙 들어간다”
   이광환 총괄계획가

   
   “그야말로 ‘헌법 위에 떼법’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설계안을 바꾸라는 주민들 요구는 법적 권한이 없다. 설계안 공모 방식은 공공시행사인 SH공사가 진행할 몫이고, 지명 공모는 설계안의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주민들은 설계안만 두고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있는데, 그분들이 설계안을 제대로 볼 전문적인 시각이 있겠나. 그리고 거기에 실질적으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경제적인 이유로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백사마을의 경우 애초에 주거지 원형을 유지하는 도시재생 개발이었다. 공공과 주민이 협의를 해서 이뤄가야 하는 일인데, 서울시는 ‘말미잘’처럼 분위기 좋을 때만 하는 척하다가 나빠지면 쏙 들어간다. SH공사도 이런 방식의 재개발을 해본 경험이 없으니 중간에서 제대로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도시정비법이나 건축에 대해 제대로 주민들한테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니 반대 목소리만 더 증폭된다.”
   
   
   “갈등은 자연스러운 일”
   조남호 건축가

   
   “도시를 어떻게 가꿔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주민들의 입장과 상충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갈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느 일방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중간적 시선에서 잘 조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허약하다. 전문가들의 건축이 최선의 건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가 안 해본 걸 처음으로 시도하려고 하니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단순히 ‘설계자 vs 주민’ 구도로 가져가는 것도 문제다. 설계도를 새로 수정해서 도시계획위원회에 제출했다. 권리자들이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할 문제가 아니다.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지금의 욕심만으로 20년 뒤에도 그 아파트들이 가치가 있겠는가.”
   
   
   “너무 멀리 왔다”
   황진숙 주민대책위원장

   
   “그들의 건축 철학을 왜 우리 사유재산에서 구현하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무조건 초고층 아파트 세워달라는 것도 아니다. 16층이 요즘 뭐가 고층인가. 우리를 마치 투기꾼처럼 보는 시각도 있는데, 권리자로서 당연한 요구를 하는 거다. 그럼에도 설계자는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건축가가 주민들의 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나. ‘국제 지명 공모’라는 방식도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명 공모 절차는 ‘특수한’ 경우에만 할 수 있도록 도시정비법에 되어 있는데, 여기가 무엇이 특수한가. 조남호 건축가 측에서 수정안을 새로 제출했다는데 우리가 볼 땐 큰 변화가 없다. 우리는 계약해지로 밀고 갈 거다. 그리고 다른 설계안을 다시 선정해서 가는 게 빠르지, 이대로 조남호 건축가와 할 수는 없다. 너무 멀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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