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경찰관들. 영국 경찰은 아무런 이유 없이 보행객을 정지시킬 수도,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도 없다. ⓒphoto 뉴시스
런던의 경찰관들. 영국 경찰은 아무런 이유 없이 보행객을 정지시킬 수도,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도 없다. ⓒphoto 뉴시스

영국에는 신분증이나 주민등록제도가 없다. 한국에서는 사회 안위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인해 그 누구도 당위성에 대해 감히 도전을 하지 않는 대단한 제도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국가가 국민의 주거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무슨 그런 국가가 있는가 하겠지만 영국이 그런 국가이다. 영국인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관공서를 방문해 신고해야 할 일이 3번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바로 출생신고, 혼인신고, 사망신고이다. 이 중 혼인신고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그러니 반드시 해야 할 출생신고를 하고 나면 사망신고가 들어올 때까지 국가는 국민이 어디에 사는지 제도상, 공식적으로는 알 방법이 없다. 이사를 해도 주민등록이 없으니 관공서에 주거 이전 신고를 해야 할 의무조차 없다. 물론 소유차량, 운전면허, 은행계좌, 신용카드, 가스, 전기, 전화 관련 주소 이전 신고는 최소한으로 한다. 이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하는 것이지, 국가가 요구해서 하는 신고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영국은 국가가 나서서 국민이 어디에 사는지 알 필요가 없다는 식의 제도를 무언의 국민적 합의에 의해 애써 유지해간다. 이제 그 이유를 하나하나 풀어가보자.

대학을 진학하거나 취직해 집을 나가면서 굳이 살던 집 주소로 등록된 모든 서류를 새 주소로 옮기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럴 경우 영국에서는 우체국에 ‘바뀐 주소지로 우편물 자동 우송 서비스(mail redirection service)’를 신청한 후 소액의 수수료(1년에 7만원)를 내면 내가 원하는 주소에서 우편물을 받아볼 수 있다. 이 서비스에 기간 제한이 있지 않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이미 오래전에 이사간 전 주인이나 방 하나에 세를 들어 살던 세입자, 심지어는 내 주소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영국에는 누군가가 내 주소를 이용해 대출을 받은 뒤 갚지 않아 신용불량자가 되면 나하고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이상한 일도 벌어진다. 영국에서는 대출 또는 신용카드나 금융 관련 신청서류에서 제일 먼저 물어보는 항목이 바로 ‘현주소에서 몇 년을 살았느냐’이다. 대개 3년 이하면 이전 주소가 어디였는지를 상세하게 세월을 거슬러 적으라고 요구한다. 주소를 자주 옮기면 신용평가에서 감점요인이 된다. 이런 모든 문제가 바로 국가가 국민의 주거 이전 사항을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이 주거 이전을 한 후 신고하는 주민등록이라는 제도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나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영국은 주거 이전 사항을 관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사진도 국가가 수집하지 않는다. 하물며 개인 지문은 범죄자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채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국인은 자신을 증명하기가 상당히 어렵고 불편하다. 반드시 사진이 붙어야 하는 여권이 있긴 하지만 두껍기 때문에 소지하고 다니기가 불편하다. 물론 1998년부터 발급해주는 사진이 부착된 명함 크기의 운전면허증이 있어 신분증으로 대용하긴 한다. 하지만 아직도 사진이 없는 과거 종이 형태의 운전면허증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유로 여권 신청할 때 제출하는 사진이 신청자 본인임을 증명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쓰는 방법이 있는데 허술하기 그지없고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엉성하다. 다름아니라 사진 뒤에 동네 유지가 ‘이 사람이 바로 여권 신청인 본인이다’라고 증명하면 끝이다. 동네 변호사, 회계사 같은 자격증 소유자나 공기관 인사, 심지어는 동네에서 영업을 하는 필자 같은 개인사업자도 사진에 본인 확인을 해준 후 전화번호 적고 서명만 하면 끝이다. 여권 신청자가 나쁜 마음을 먹고 가공의 동네 유지나 지나가다가 본 변호사 간판의 이름과 주소로 증명하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서 신청해도 그만이다. 이론상으로는 사진 뒤에 적힌 전화번호로 여권 발급 당국의 확인전화가 올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필자도 주위 친지 수십 명의 여권 신청서에 증명을 해주었지만 한 번도 확인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었으니 설사 여권 발급 당국에서 전화가 와도 자신이 거짓으로 확인해주면 그만이다. 사진이 붙은 주민등록이나 신분증이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이런 미심쩍은 절차가 엄연히 영국에는 존재한다.

주민등록이 없으니 여권 신청에 들어가는 서류도 한심하다. 본인의 주소지를 증명할 방법은 물론 없다. 신청서에 적는 주소지는 그냥 발급된 여권을 받을 주소지에 불과할 뿐이다. 심지어는 사서함 주소를 적어도 그만이다. 해서 여권 신청에 반드시 필요한 서류가 출생등록서 정도다. 호적이나 주민등록서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나 문제는 출생등록서이니 사진이 당연히 없다는 점이다. 자식이 태어난 후 병원이 발급해준 출생증명서로 출생신고를 하면 시청은 그 자리에서 출생등록서(birth certificate)를 발급해준다. 출생등록서에는 생부의 이름과 출생지와 태어난 시일이 적혀 있다. 향후 영국인의 삶에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공적 서류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일한 공식 서류인 출생등록서로는 본인의 다른 인적 사항, 즉 사진이나 현주소를 증명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결국 동네 유지가 사진을 증명해주는, 정말 19세기에나 있을 법한 방법을 쓰는 것이다. 해서 범죄자들이 남의 이름을 도용해 여권을 만들고, 운전면허증도 만들어 여행도 하고, 신분증으로도 사용한다. 영국 신문에는 가끔 이런 맹점 때문에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해외에서 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서 본인이나 가족이 기절초풍하는 사건이 종종 보도된다.

투표장서도 신분확인 안 해

한국인 입장에서 기가 막히는 일은 이 뿐만이 아니다. 각종 선거철이 되어 투표를 하러 가면 투표장에서 투표용지를 받기 위해서 내가 누구라는 걸 증명하는 서류나 신분증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주소와 이름을 말하면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표용지를 내준다. 대리투표나 부정투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투표를 하러 간 날 과장하면 거의 기절초풍의 문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절차의 하나인 투표를 하는데 본인 확인도 하지 않고 투표에 참가하게 하는가 말이다. 과연 이런 제도의 맹점을 영국인은 모르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애써 모르는 체하는 건가? 아니면 이래도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국민이라고 믿을 만 한 사람이 와서 자신이 누구라고 하면 믿어야지 관에서 감히 의심을 하고 신분을 확인하는 일이 월권이라는 믿음이 영국 사회에는 분명 있다. 그 사람이 본인이 아니라는 확실한 의심이 들 때만 신분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투표를 하기 위한 권리를 얻는 근원적인 절차는 더 황당하다. 영국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표 등록(vote register)을 해야 한다. 법에 의해 투표권이 있다고 모두 투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법적인 권리가 있더라도 본인이 투표를 하겠다고 투표인 명부에 등재 신청을 해야 한다. 선거일이 다가오면 각 주소지로 투표 등재 신청을 하라는 서류가 우송되어 온다. 이 서류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재해 우송하면 된다. 별다른 부속서류가 필요하지도 않다. 자세하게 다른 인적사항이나 법적근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더 기가 막힌 일은 투표 등록관청은 등록서의 기재 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등록서류의 기재 내용 그대로 투표인 명부에 등재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주민등록이 없으니 등록서 기재 내용의 진위를 해당기관은 확인할 방도가 없어서이다. 해서 투표 등록서는 문자 그대로 투표(vote)를 하겠다는 등록(register)이지 신청서(application)가 아니다. 국민이 투표를 하겠다고 기재해서 보내면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표인 명부에 등록을 해준다면 등록이 맞지 신청이 아니다. 자신이 영국법에 의해 투표권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이 신청하면 그냥 믿고 등록해주어서 투표하게 만드는 일이 사리에 맞은 일인가? 정말 물 한 방울 새어나갈 틈이 없는 완벽한 제도를 요구하는 한국 관료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못 할 일일 것이다.

영국법에 의해 선거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했거나 혹은 장난으로 등록을 해도 투표인 명부에 등재가 되면 투표가 가능하다. 반대로 생년월일과 사진, 주소가 기재된 주민등록이 없으니 투표할 나이가 되어도 스스로 등록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자동으로 투표권을 줄 수가 없다. 서류 만능의 한국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을 일이다.

런던 개트윅공항. 영국에는 출입국 카드라는 제도가 아예 없다. ⓒphoto 뉴시스
런던 개트윅공항. 영국에는 출입국 카드라는 제도가 아예 없다. ⓒphoto 뉴시스

출입국 관리도 안 해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 개만 더 보자. 영국에서는 국가가 국민의 출입국도 관리하지 않는다. 영국인에게는 출입국 카드라는 제도가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그냥 여권만 살펴보는 것이 공항에서의 출입국 관리다. 영국 정부는 자국민이 외국에 나가 사는지 아니면 국내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이 없다. 요즘은 공항 출입국 관리들이 여권을 기계에 스캔하긴 한다. 그러나 이 절차도 여권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결코 여권 정보를 인식해서 국가 정보시스템에 국민의 출입국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영국 정부는 영국 국민이 어디에 살고 언제 출국하고 입국하는지, 혹은 국내에 살고 있는지 해외에 살고 있는지를 원래부터 관리하지 않았다. 물론 항공사 기록을 통하면 국민의 출입국을 알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알 수 있다는 말이지 모두 안다는 뜻은 아니다. 영국 정부는 자국 국민의 출입국 상황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가 보다.

그렇다고 영국 정부가 마냥 맥을 놓고 자국민에 대한 일체의 관리를 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영국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일체의 서류를 받지 않고 신고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주소 이전이나 주거지 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앞에서 예로 든 것처럼 이사 후 각종 주거 이전 신청 기록 등 수도 없이 많다. 영국인들답게 호들갑 떨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도 조용히 할 일은 다한다는 뜻이다. 조금 돌아가는 방법이긴 하나 국민을 관리한다는 인식을 주지 않고도 결국 관리할 건 다 한다. 행정력 낭비하면서 쓸데없이 모든 국민의 입출국 관리를 하지 않을 뿐 필요한 만큼만 한다.

영국에도 주민등록이나 신분증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1, 2차 대전 중에는 신분증이 있었다. 그러다가 1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9년, 그리고 2차 대전이 종전된 후인 1952년 폐지되었다. 전쟁 중에는 필요에 의해 신분증을 도입했지만 전쟁이 끝나 정부가 국민의 신분을 굳이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자 즉시 폐지했다. 당시 폐지의 대의명분은 ‘신분 확인의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영국인의 국가 권력에 대한 태생적이고 신경질적인 의심이 이유였다. 국가라는 비인격적인 존재에 자신을 통제할 권한을 주는 데 대한 반감이 워낙 높은 것이다. 국가가 국민 개개인이 어디에 사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말고, 알아서도 안 된다는 무언의 합의가 영국인들 사이에는 이루어져 있다.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 신분증이니 주민등록이니 하는 제도를 만들게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영국의 역대 모든 정부가 한때는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려고 시도했으나 항상 의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곤 했다. 보수·진보 구분 없이 대다수 의원이 반대했다. 세계적인 테러사태가 만연하는 요즘에도 신분 통제의 가장 쉬운 방법인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려는 유혹이 있을 만한데도 한 번도 의회에서 신분증 필요성이 언급된 사례가 없다. 그만큼 영국인들이 신분증에 대한 반감이 높다는 뜻이고, 국가에 의한 통제를 싫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법의 그물망을 조금 비켜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민등록 제도와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다.

투표도 같은 맥락이다. 부정투표의 가능성이 상당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투표인 등록이나 투표용지 배부 때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뚜렷한 방도를 마련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둘씩 신분확인 절차를 만들어가다 보면 결국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는 상황까지 가리라는 무언의 믿음과 합의가 영국 사회에는 분명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이런 영국 제도의 엉성함을 필자는 영국인 친지들에게 의도적으로 비판하면서 도전 해 보았다. 필자의 도전에 대한 대답에서 바로 그런 합의와 믿음을 거듭 느낄 수 있었다.

국가에 많은 권력을 주면 안 돼

영국 경찰은 아무런 이유 없이 길거리 보행객을 정지시킬 수도 없고 더군다나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신분증이 없으니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또 있다고 해도 법적으로 신분증을 꼭 지니고 다닐 의무도 없다. 뭔가 범법행위를 했거나 했다는 확실한 의심이 들 때만 경찰은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정지시킬 수 있다. 음주운전의 의심만으로는 진행하는 차를 바로 세울 수도 없다. 일정 거리 이상을 따라오다가 차선을 계속 침범하는 등 음주운전의 행태가 보일 경우에만 정지를 요청해서 운전면허증과 함께 음주테스트를 할 수 있다. 속도위반 또는 자동차 등이 하나 나갔다는 등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만 차를 세울 수 있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아무런 근거 없이 주행 중인 차나 보행자를 세워서 신분증이나 몸수색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영국인이 가장 경계하는 일은 무인격자인 국가에 너무 많은 권한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는 반드시 일탈을 해서 주인인 국민을 통제하려 든다고 본다. 그것이 권력의 태생적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인들이 엉성한 제도를 알면서도 보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영국인들의 피 속에 존재하는 합리적인 경험주의의 지혜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두어도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적은 범죄는 그냥 두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반면 관료들의 속성은 그런 범죄를 완벽하게 막으려는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 그러나 그런 제도를 관리하기 위한 절차나 서류로 인한 경비가 실제 범죄로 인한 피해보다 훨씬 많이 든다는 걸 영국인들은 경험에 의해 안다. 범죄를 막으려 그물망을 작게 하는 일이 더 번거롭고 비싸게 치인다는 말이다. 1995년 노동당 연례총회에서 보수당의 신분증 도입 시도를 비판하면서 당시 노동당 당수였던 토니 블레어는 “소수의 범죄자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의무적인 신분증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투입할 수십억파운드의 예산으로 차라리 수천 명의 경찰을 길거리에 투입하는 쪽이 더 효율적이다”라고 발언했다. 한국의 국회가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는 언론 기사를 보고 영국의 사례를 한번 짚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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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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