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14박15일 일정으로 지중해 섬나라인 북사이프러스를 다녀왔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도 되지 않은 지난해 3월 초 ‘못 가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영국 여행사 투어 예약을 했는데 다행히 코로나 사태가 많이 진정돼 투어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인 일정과 가격이어서 여행 충동을 막기도 힘들었다. 왕복 항공권과 가이드가 딸린 1주일 버스투어가 포함된 14박15일 여행 경비가 고작 249파운드(약 39만원)라니 믿기는가. 더군다나 투어가 끝나고 나면 나머지 7일간을 코발트색 지중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대한제국 멸망을 맞아 많은 선인들이 자결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자결했다고 알려졌다가 나중에 병사(病死) 순국한 걸로 수정된 이준 열사(1859~1907)는 익히 아는 인물이다. 그에 비해 이한응 열사(1874~1905)는 대한제국 멸망을 한탄해 자결한 최초의 열사임에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렇다 할 기념도 하지 않는다.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오랫동안 열사를 잊고 있다가 1962년에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이를 시작으로 1964년 10월 장충단공원에서 정일권 당시
정말 감개무량하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국민학교(우리 때는 국민학교라 불렀다) 때 소풍 전날 흥분돼 잠이 안 오던 기억이 났다. 2020년 2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해외여행,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인 이탈리아 지중해 시칠리아를 7박8일 동안 갔다 왔다. 런던~시칠리아 항공료가 단돈 7만여원이번 시칠리아 여행은 작년 초여름에 갑자기 결정되었다. 유럽 최대 저가항공 ‘이지젯’의 런던~카타니아(시칠리아 제2의 도시) 왕복요금이 겨우 47파운드(당시 환율로 7만2850원)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이 뒤바뀌어 역사가 이뤄지는 현장에 개인의 이해가 직접 걸려 있는 일은 흔하지 않다. 작년 말인 2021년 12월 26일은 ‘소련’이라 불리던 소련연방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해체된 지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영국 언론에도 소련의 해체가 주는 역사의 의미를 해석하는 기사가 많았다. 해당 분석 기사들은 최근 유럽 대륙에 다시 대규모 전쟁의 기운을 한창 드리우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의 대치 때문에도 더욱 시의성을 띠었다.30년 전 소련이 해체되는 그 역사의 현장에서 필자는 무역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과 영국에서 생필품
영국인에게도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다. 그러나 결혼식을 통과의례 행사처럼 치르는 우리와는 달리 영국인들은 축제로 철저하게 즐긴다. 축제란 참석자 모두가 즐거워야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보통 하루 만에 끝나던 결혼식이 최근 들어서 길어지는 추세이다. 결혼식 전날 외지에서 온 하객을 위한 파티를 한 차례 열고, 결혼식을 마친 후에는 리셉션을 밤늦게까지 연다. 그리고 그 다음날 늦은 ‘아점(brunch)’을 하는 식으로 3일에 걸쳐 결혼식 행사를 치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수년 전 한국의 준재벌 격에 해당하는 영국 교포의 결혼식
세상은 돌고 도는 것 같다. CD와 스트리밍에 밀려 거의 사라지기 직전이던 LP가 이제 CD보다 더 많이 팔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영국에서도 2020년 480만장의 LP가 팔려 1987년 이후 처음으로 CD 판매고를 앞섰다. 금액으로는 2019년에 비해 30%가 오른 8650만파운드(약 1384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1989년 이후 30여년 만의 최고 판매액이다. LP 음반 재유행에 힘입어 영국 중고 음반 시장도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스테레오 LP 음반이 처음 발매된 1950~1960년대는 영국 음반 황금기였고 세계
유럽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All Saint Month)’이라고 부른다. 돌아가신 모든 영혼을 기리는 예식이 각 교회마다 치러지는 시기다.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고 난 뒤 유럽인들은 성탄이 있는 12월로 또 한 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사람들의 삶에서 장례식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그래서 각 민족마다 나름대로의 절차와 예법이 있다. 모든 것이 바뀌는 세상이지만, 영국인들은 아직도 장례식만큼은 200년 전인 빅토리아 시대 전통을 거의 그대로 지키고 있다. 예를 들면 장례식 조문객은 반드시 검은색이나 어두운 색조의
1 공직자 공관 폐지하자한국에는 수많은 고위 공직자 공관이 있습니다. 청와대를 비롯한 3부 요인 공관, 전국 도지사 공관을 비롯해 각 정부 기관도 장을 위한 공관을 갖고 있습니다. 공직자들의 임기 동안 무상 제공되는 이런 공관이 왜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청와대처럼 경호와 의전 문제가 혈세 절약 차원을 넘어서는 경우 말고는 특권의식 불식 차원에서 모두 폐지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공직에 임명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공관 거주 공직자는 대부분 자신의 집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는 필요 이상의 공관을 제공할
영국 정치를 보면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긴 의회(Parliament)라는 영어 단어가 프랑스어 ‘paler’, 즉 ‘말하기(to talk)’에 어원을 두고 있다. 영국 정치의 시작과 끝이 이뤄지는 의회라는 곳은 결국 말로 국정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이는 장소이다. 그래서인지 영국 정치인들은 참 말을 잘한다.영국은 내각책임제라서 봄의 부활절 휴가, 여름 휴가, 겨울 성탄 휴가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 의회가 열린다. 총리를 비롯한 장·차관들은 물론 하원의원들도 의회에서 살다시피하면서 동료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영국인들은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다. 최근 현충일(11월 11일)을 맞은 영국의 분위기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정말 대단한 행사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사실 영국에는 별다른 국경일이 없다. 1·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도 없고 독립기념일도 없다. 가장 크게, 그리고 중요하게 거행하는 기념일이 바로 이 현충일이다. 축하할 날도 아니고 기쁜 날도 아니고 더군다나 자랑스러워할 날도 아니지만 그냥 숙연하게 죽은 이들에 대해 산 자가 감사해 하고 기억하자는 날이다.영국인들은 현충일을 우리처럼 ‘국가에 대한 충성’ 운운하며 거창
영국 언론들도 과거와는 달리 한국의 대중예술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관련 기사도 자주 등장한다. BTS, 블랙핑크,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 이루 다 언급할 수 없을 만큼 한국의 대중예술은 전 세계로 진출한 상태다. 이제 본격적인 중흥기로 들어선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한식도 세계인들은 ‘기막힌 신대륙의 발견’으로 본다.드디어 한국이 영국에서도 경제력만이 아닌 문화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사실 영국은 유럽 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해 그동안 가장 인색하게 평가한 국가다. 한국의 예술을 변방의 예술로 취급해
입법·행정·사법의 분권을 ‘민주주의의 꽃’인 삼권분립제도라고 말한다. 권력의 삼권을 개인이나 집단이 장악한 뒤 절대권력을 휘두를 독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그러나 절대적인 장치이다. 1880년대 중반의 영국 정치인 제1대 액턴 남작은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원래 이 말 앞에는 ‘원래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Power tends to corrupt)’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어떤 권력이든 부패하기 마련인데 거기다가 절대권력까지 가지면 절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영국 저력의 근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 왜 이런 질문을 아직도 던지는지 이유부터 보자. 이런 질문 앞에는 늘 ‘옛날에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특별한 제조산업도 없는 듯한데 아직 강국을 유지하는’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아직 영국 경제가 13억9700만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 바로 밑, 프랑스 바로 위인 세계 6위(2020년 국내총생산 기준)라는 사실에 놀라서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영국의 국력이 한참 밑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그렇다면 이 질문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는 한 그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As long as we remember them, they are not dead yet.)’‘임진강전투 70주년’ 기념 추모예배를 보고 있는 순간 이 문장이 머릿속에 만들어졌다. 지난 9월 26일 영국 중서부 글로스터시 글로스터대성당에서 열린 추모예배는 한국전쟁 당시 영국 글로스터 대대가 벌인 임진강전투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행사에는 한국전 참전 글로스터 대대 생존 노병 4명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촌인 글로스터 공작, 한국의 보훈처장, 글로스터 시민 등이 참
1988년 2월 영국 런던 BBC 스튜디오. 당시 79살이던 한 노인이 방청객석 첫 줄 중앙에 앉아 있었다. 노인은 자신이 단순히 방청객으로 초대받아 온 줄 알고 있었다. 당시 노인이 앉아 있던 곳은 BBC TV의 인기 프로그램 ‘인생이 다 그렇지(That’s Life!)’의 방송 현장. 이윽고 프로그램 사회자인 에스테르 랜전이 영문을 모르고 앉아 있던 노인을 바라보면서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관객 중에서 1939년 체코에서 니컬러스 윈턴에 의해 구해져 영국으로 온 사람들이 있으면 일어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바로 노인 주위에서
얼마 전 ‘2021 위민스 오픈’에 출전한 우리 태극낭자들의 활약을 보려고 스코틀랜드 동해안 카누스티골프장을 다녀왔다. 무려 11시간을 운전해 갔는데 우리 선수들의 성적이 좋지 않아 신이 덜 났다. 하지만 날씨 나쁘기로 악명 높은 카누스티답지 않게 날씨가 좋아 그런 대로 허무한 여행은 아니었다.필자는 2008년 런던 근교 서닝데일 골프클럽에서 열린 위민스 오픈에서 신지애 선수가 우승한 이후 위민스 오픈은 가능한 관전하고 있다. 당시 시합 시작 전부터 신지애 선수를 따라다닌 끝에 신 선수가 우승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봤다. 2019년에
영국 정부는 지난 2월 ‘표현의 자유 수호자(free-speech champion)’라는 이름의 직책을 교육부 외청인 ‘대학생교육청(Office for Students)’ 안에 신설했다. 중세의 시대착오적 명칭 같은 이 직책은 대학교 내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불이익을 당한 구성원들을 도와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 경우가 생기는지 감독하고, 최악의 경우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까지도 부여했다. 이런 직책 신설이 필요했던 이유는 가장 활발하고 자유로워야 할 대학의 표현의 자유가 극
민주주의가 인류가 만든 최선의 정치제도라면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언론의 자유는 바로 그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해 ‘영국 지성의 정상’으로 평가받는 조지 오웰은 유독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당대의 언론인을 비롯한 영국 지식인들이 권력과 세상에 겁을 먹고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있음을 간파해서인지 오웰은 “자유가 무언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쪽으로부터의 위협이나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8월 8일 폐막하는 도쿄올림픽이 끝나기도 전에 영국에서는 2018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때처럼 ‘올림픽이 과연 가치가 있는가’ 하는 논쟁에 불이 붙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가 경제 사정이 어려운 판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올림픽에 투입할 대의명분이 있는가 하는 논쟁이다. 영국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 32개 종목에 걸쳐 3억4500만파운드(5175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고, 2024년 파리올림픽에는 43개 종목에 3억5200만파운드를 향후 4년간 투입할 예정이다. 영국에서는 종합 1위 성적(금 56, 은 51, 동 39 등 도합 1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념? 현실? 신념은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를 말함이고, 현실은 표를 주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바이다. 그 둘이 합쳐져 있으면 가장 행복한 상황이겠지만 그렇지 않고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정말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창당 120년이 된 영국 제1 야당 노동당이 처한 정치적 현실을 말하고자 꺼낸 서두이다. 현재 영국은 코로나19 사태 끝에 와 있다. 영국인들이 ‘자유의 날(Freedom Day)’이라고 부른 지난 7월 19일을 기점으로 영국 내에서는 더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와 실내 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