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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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새로 나온 책 ‘심미안 수업’은 미술관에서 대표작품이라고 전시해둔 그림 앞에서도 물음표를 띄우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틈만 나면 음악을 듣지만 ‘듣는 귀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음악을 즐길 것인지 안내하는 책이다. 아름다운 것을 찾아 떠난 길에도 막상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심미안’ 입문서다.

책을 쓴 윤광준 작가는 이름 있는 예술잡지를 두루 거친 글쓰는 사진작가다. 그의 관심사는 예술 어느 한 분야에 속해 있지 않다. 그는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 등 예술 전반에 관심을 갖고 숨은 아름다움을 전달해오며 살았다. 작가가 짚어주는 대로 아름다움을 느껴보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아예 누구의 도움 없이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책을 쓴 것이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윤광준 작가처럼 예술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날 때면 긴장을 하기 마련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어느 한 건물 지하에 마련된 그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압도적인 환경에 다소 주눅이 들었다. 얼핏 평범한 지하 사무실 같아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린아이 키만 한 스피커가 눈에 띄었다. 그 위에 놓인 공예품, 책장을 따라 빼곡히 놓여 있는 LP판과 CD가 독특한 풍경을 만드는 공간이다. 벽에는 미술과 사진작품이 단정히 걸려 있었다. 놓인 자리에 의미가 있는 듯 가지런히 놓인 각종 장식품들을 훑어보고 있노라면 몸에 느껴질 정도로 울리는 클래식 음악이 어느 낯선 땅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어색한 기분을 떨쳐내려 윤광준 작가에게 “저 스피커는 얼마짜리냐”고 질문했다. 음향기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값비싸 보이는 것이다. 윤 작가는 “꽤 가격이 나가기는 하는데 얼마인지 정확히 모른다”며 웃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에야 느낀 것이지만 그 웃음에는 ‘심미안 수업’을 읽고 그에 대해 인터뷰하러 왔지만 여전히 ‘심미안’을 갖지 못한 기자에 대한 아쉬움도 포함돼 있었다. 예술을 앞에 두고 값어치와 정보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느끼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그가 ‘심미안 수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점이었다.

예술을 느끼고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일이 왜 필요할까. 먹고살기에도 바쁜 일상에서 예술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을 정보와 선입견으로만 생각하면 마치 일상생활에서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예술은 전시회에서만 접하는 어느 유명작가의 대표작품, 수십만원의 티켓을 주고 입장해 들을 수 있는 유명 교향악단의 공연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늘 접하려고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고 스쳐가는 것들입니다.”

매년 1000만명이 한국 땅을 떠나 해외 여행길에 오른다. 그중 수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파리며 미국 뉴욕의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을 텐데 대개는 그곳에서 우리가 익히 알던 ‘그 작품’을 확인하려 든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은 무척 넓습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작품을 다 못 보니 사람들은 입장하자마자 발걸음을 재게 놀려 ‘목표물’을 향해 가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작품 앞에 서서 ‘내가 이 유명한 작품을 보다니’라며 감탄하는 한편 ‘생각보다 그림이 작네’ 대강 그런 감상을 남깁니다.”

미술에 대해 조금 더 안다 해도 마찬가지다. 교양 삼아 알고 있던 반 고흐며 잭슨 폴락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확인하고 얼른 다음 목표물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윤광준 작가는 그런 ‘감상’에 대해 ‘안 하니만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모나리자’에서 눈을 떼고 옆에 걸린 작품들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어, 이거 괜찮은데’ 하는 작품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게 덜 유명한 작품이라도 상관없어요. 그 앞에 서면 느껴지는 감정, 그게 바로 심미안의 시작입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작품 즐기기

윤광준 작가의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평생 사진을 찍어왔고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길 즐겼던 그는 지금 오른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다. 몇 년 전 앓았던 망막박리라는 심각한 질병의 후유증이다.

“한쪽 시력을 잃게 되면 세상이 달라보입니다. 내가 알고 지냈던 세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보이죠. 저는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고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깊어진 생각이 있죠. 인생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니 바로 지금 여기, 현실의 삶을 충분히 누리며 살자고 결심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틈이 나면 여가활동을 즐긴다. 여행을 다녀오고, 전시회도 관람하고, 영화도 보면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삶에 ‘충실해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우리 주변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우리는 제대로 접하고 있지 못합니다. 우선 지식과 정보로 처리하려고 하죠. 그건 교육의 탓도 큽니다. 어떻게 아름다움을 즐길 것인가가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부터 배웠으니까요. 여행을 가서도 일단 아는 곳부터 ‘확인’하려고 하죠. 음악을 들어도 그에 대한 정보를 모르면 제대로 못 느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만나면 일단 작가가 누구인가,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확인하려 합니다. 아니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자신의 느낌대로 바라보면 된다. 작품이 주는 느낌 그대로 받아들인 다음에 그게 마음에 들면 다음 단계로 나가면 된다. 윤광준 작가는 “좋은 것을 좋다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유명한 거라서, 알고 있던 거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내 관점을 가지고, 내 느낌을 좇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는 책에서 미술 전시를 즐기는 여섯 가지 방법을 설명했다. 시간의 여유를 충분히 갖고 갈 것, 정해진 방법 없이 자신의 방식대로 작품을 즐길 것, 이후에 설명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두라는 것 등이다.

“사진을 찍어둬야 하는 이유는 반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술을 즐긴다는 것은 사실 ‘차이’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의 차이를 아는 겁니다. 그런데 미술관을 더러 가거나 공연장을 가끔 방문해 제대로 된 감상을 하고 나서도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고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건 자신이 느꼈던 그 ‘차이’를 반복하지 않아서입니다. 사진을 찍든 메모를 남기든 자신이 느낀 예술에 대한 감상을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꼭 미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 공연 등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예술에 이 같은 접근을 하는 것이 좋다. 윤광준 작가는 그렇게 주변의 예술을 느끼게 되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는지 계속해서 강조했다.

“그저 먹고사는 일에만 그치지 않고 주변을 감상할 줄 알며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게 되면 현실의 삶에 충실해집니다. 제가 주로 예로 든 것이 미술 전시회이기는 하지만 예술의 영역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사진, 여행, 일상 생활용품 속 디자인 요소, 모든 것이 심미안을 자극시키는 것이죠.”

그러니 윤광준 작가의 작업실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음악을 듣다 보면 마음에 와닿는 선율을 느낄 때가 있다. 윤 작가가 아끼는 원두로 내린 커피와 잘 어울리는 은은한 가락이다. 커다란 스피커가 ‘비싸 보인다’고 말했던 첫 대화가 의미 없어지는 순간이다. 느낌대로 음악이 ‘좋다’고 생각하는 순간 윤 작가의 손길이 15년간 닿은 작업실이 낯설지 않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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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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