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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543호]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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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을지로엔 을지면옥만 있는 게 아니다

일대 상인들 “서울시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라”

곽승한  수습기자 

▲ 재개발 논란이 한창인 서울시 중구 을지로 3가 일대 모습. 철거 현장과 공구상이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다. photo 김연정 객원기자
을지로 3가에 자리잡고 있는 공구상들은 산업화 시대 한국 제조업의 근간으로 자리 잡았던 곳이다. 고층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선 요즘에도 을지로 3가 공구상 골목은 5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넓이의 골목사이로 공구를 실은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위태롭게 지나가는 모습은 변함없다.
   
   공구상들의 쇠 깎는 소리만 들렸던 이 동네에 언제부터인가 포크레인이 건물을 긁어 허물어뜨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 일대 재개발이 추진되면서부터다. 철거 공사 중인 현장과 공구상들의 작업 현장이 골목 하나를 두고 맞닿아 있는 모습은 더 이상 생소한 풍경이 아니었다. 아직 철거가 시작되지 않은 구역 내에서도 두세 집 건너 한집 꼴로 문이 닫혀있었다. 철거와 이주, 보상금 문제는 이곳 상인들의 최대 화두였다. 길을 지나다 만나는 이들마다 “형님은 어디로 가시게”가 인사말이었다. 농담하듯 대화했지만, 씁쓸한 표정이 역력했다.
   
   을지면옥이 위치한 을지로 3가 주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 사업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을지면옥 보상금 문제로 이 일대 재개발 사업이 화제가 됐지만, 사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는 을지면옥 말고도 전통의 맛집들이 즐비하다. 이런 노포보다 더 많은 것은 이미 70년 전부터 자리 잡아온 공구상들이다. 재개발 이슈가 을지면옥에 집중되면서, 다른 가게들과 영세상인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 했다. 기자가 직접 이 일대 노포들과 공구상들을 만나보니 이들도 한 식당이 전체 상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공구상도 하남이나 구리로 흩어져"
   
   1960년대부터 을지면옥 근처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최전분(80) ‘안성집’ 사장은 “지금 언론은 오래된 식당들만 집중하고 있는데, 그것보다도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주변에 오래된 공구상, 제조상들이 뿔뿔이 흩어진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와 관광지로서 가치가 충분히 있는 동네를 싹 밀고 주상복합을 짓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일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 사장과 말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없어진다는 게 사실이냐”는 전화가 가게로 걸려왔다. 카운터를 보고 있던 최 사장의 아들은 “우리는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한 것 밖에 없는데, 마치 욕심 부리며 떼쓰는 사람처럼 비춰지는 게 제일 서럽다”고 말했다.
   
   을지로 대표적 노포 중 하나인 ‘통일집’ 문대권 사장 역시 “구체적으로 얼마를 줄 테니 나가라, 이런 이야기는 아직 없었지만 바라는 것은 단지 이 정도 공간(20평 남짓)에서 영업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우리는 세입자이지만 이곳의 토지주 역시 무슨 재벌이 아니고 다 영세하신 분들”이라고 말했다. 문 사장은 “주상복합이 들어서면 얼마나 값이 오르겠나. 그럼 이곳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결국 다 밀려날 것”이라고 했다.
   
   95년부터 이곳에서 공구상을 운영하고 있는 김 모 씨(59)는 “한 동네 안에서 몇 발자국 걸어 설계부터 제조까지 해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장점인가. 그런데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누구는 하남으로 누구는 구리로 흩어지고 있다”며 “경쟁력도 약화되고 결국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회사 내에서 각 부서를 이 동네 저 동네로 찢어놓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일이 되겠나”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또 “시행사야 본인들의 이득이 걸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니 그렇다고 쳐도, 이런 일을 허가해준 서울시와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1970년대부터 재개발 논의
   
   을지로 3가 ‘공구거리 재개발’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다. 재개발이 본격화 된 것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때다. 오 전 시장은 2006년 ‘공구거리’를 대상으로 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발표했다. 금융위기 여파로 계획이 중단되었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뒤인 2013년 재추진됐다. 박 시장은 이 일대 구역을 보다 잘게 나누고, 세운상가는 보존하는 방식으로 재정비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박원순식 재개발’로 이름 붙은 도시재생 프로젝트였다. 기존 계획대로라면 현재 공구거리에는 지하 6층에서 지상 20~25층에 달하는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다. 을지면옥 건물 1층에서 전지사를 운영하고 있는 양기명 씨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계획 같다. 철물, 공구 제조업의 특성상 소음이 발생하고 자재가 무거워 빌딩 같은 복층형 건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현장에서 만나본 상인들은 하나같이 “이 자리에 빌딩이 들어서는 게 어떻게 도시재생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인근 노포 주인들 역시 ‘식당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동네 그 자체의 보존’을 강조했다. 아직 남아있는 토지주들과 세입자들 역시 언제 얼마를 받고 나가게 될지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 동네의 현재 모양새를 영영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은 수긍하고 있었지만, 갈아엎고 주상복합건물을 짓는 계획에는 반발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1월 16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일대 재개발 사업은 전면 재검토 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가 을지로를 비롯한 곳곳에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개발이 진정한 ‘재생’의 의미에서 퇴색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이광환 위원(해안건축 소장)은 “박원순 시장이 진정한 ‘도시재생’의 뜻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계획을 세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그렇다고 해서 박 시장의 ‘전면 재검토’는 더욱 신중했어야 한다. 더 큰 반발과 저항 세력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며 “철공소와 공구상이 반드시 도심 한복판에 남아 있어야 할 필요가 있나. 냉철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그렇다면 공공과 토지주, 시행사가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를 마련해 논의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이미 인가 낸 사업인데도 불구하고 반발 여론에 전면 보류 결정을 내린 것은 성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이미 진행 중인 재개발을 일방적으로 중단시켜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맞서고 있다. 박 시장은 ‘노포 보존’의 입장을 재차 밝혔지만 재개발을 촉구하는 토지주들과 시행사의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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