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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72호] 2019.08.26

아이 5명 중 1명은 ‘할마’ 육아 ‘할마 쇼크’가 온다

▲ 일러스트 허인회
A씨는 손녀와 함께 둘이서 살고 있다. A씨의 딸과 사위가 함께 살 수 없는 형편 때문이다.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A씨의 딸은 손녀를 낳자마자 지방에서 근무해야 했다. 사위는 서울에 이미 터를 잡고 있는 터라 어쩔 수 없이 주말부부를 해야 하는 형편이 됐다. 문제는 누가 A씨의 손녀를 돌볼 것인가였다. A씨가 ‘희생’하기로 했다. A씨는 딸과 손녀를 따라 연고 하나 없는 지방에 자리 잡았다. 친구도 없이 손녀만을 돌보며 살던 것이 3년. 갑자기 딸의 근무지가 서울로 재배치됐다.
   
   “1년 정도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지방으로 내려온다는데, 그 사이에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갔다가 다시 내려올 수도 없고. 그냥 제가 남아서 아이를 돌보기로 했어요. 본의 아니게 ‘조손가정’이 되어버렸네요.”
   
   A씨의 주위에는 이렇게 손주를 돌보는 ‘할마(할머니+엄마)’가 많다. 외롭기만 한 타향살이의 아쉬움을 덜어준 것도 손녀를 데리고 나간 놀이터에서 만난 주변 ‘할마’들이다.
   
   “조손가정이 되어버린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엄마 대신 아이를 돌보는 할머니들의 사연이 참 가지각색입니다.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손주를 맡아주지 못하는 친구들은 미안함에, 맡아 기르는 친구들은 힘듦에 각자 허덕인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할마’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영·유아 돌봄 유형이 됐다. 통계로도 드러난다. 여성가족부가 5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가족실태조사’에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있는 시간 외의 다른 시간에, 누가 만 6세 이하 영·유아를 돌보는지에 대한 조사 결과가 있다. 아이의 부모가 직접 돌본다는 응답이 75.1%로 가장 많았지만 조부모가 돌본다는 응답도 18.6%에 달했다. 거의 5명에 1명꼴로 할머니가 손주를 돌보고 있다는 얘기다. 이 조사에 따르면 가사도우미나 베이비시터같이 고용인이 아이를 돌본다는 응답은 3.1%에 불과했다.
   
   손주를 돌보느라 3대가 함께 사는 경우는 쉽게 접할 수 있다. B씨는 손녀를 돌보느라 서울에서 사위와 셋이서 산다. 딸의 직장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데 출퇴근을 하기 어려워지자 아예 원주에서 혼자 살기 때문이다.
   
   “함께 산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사위는 불편하기는 합니다. 어쩌다가 사위까지 모시고 살게 되었을까 한탄하게 될 때도 많아요. 그래도 손녀는 키워야 하니까, 딸이나 사위 혼자서는 못 키우니까 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요된 희생, 할마의 돌봄
   
   할마의 모습을 일상적인 풍경으로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 더 살펴보면 할마는 한국 사회의 돌봄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할마가 생겨나게 된 이유가 ‘돌봄 공백’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 그렇다.
   
   최인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할마의 돌봄 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조사한 바를 살펴보자. ‘100세 시대 대비 여성노인의 가족돌봄과 지원방안 연구’라는 이름의 조사 결과를 보면 자발적으로 할마가 되었다는 사람은 전체의 47.7%에 불과했다. 왜 할마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을까.
   
   한국 사회의 돌봄 체계에는 허점이 많다. 부모의 근로시간은 긴데 자녀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맡기는 것으로는 보육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 그 빈틈을 할머니들이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던 C씨는 5년째 두 딸이 낳은 손자와 손녀를 돌보고 있다. 먼저 결혼해 손녀를 낳은 둘째 딸의 육아를 챙겨주다가 첫째 딸이 낳은 손자까지 돌보느라 5년의 시간이 지났다.
   
   “원래 손녀는 중국동포 도우미에게 맡겨 기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손녀가 24개월 되던 쯤에 도우미가 손녀에게 손찌검하는 것을 부모들이 알게 됐지요. 한 달에 120만원씩 들여 맡겼는데도 믿을 수가 없잖아요. 정년퇴임하고 집에 있던 제가 돌봐야 했죠. 할머니는 믿을 수 있으니까요.”
   
   최인희 연구위원에 따르면 할마들이 손주를 돌보는 이유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녀들의 직장생활에 도움을 주려고’이다. 이어서 ‘양육비 부담을 줄여주려고’ ‘남에게 손주를 맡기는 것이 불안해서’라는 응답이 나왔다. 거꾸로 얘기하자면 할마들이 나서지 않으면 자녀들은 일·가정을 양립할 수 없다. 양립하려면 덜 믿음직스러운 곳에 아이를 맡기거나 돈을 많이 들이는 수밖에 없다.
   
   할마들이 겉으로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손주를 돌보는 것 같아도 사실은 비자발적인 경우가 많다. 최인희 연구위원은 “평생을 자녀와 가정을 돌보면서 살아온 지금 50~70대 여성들이 다시 돌봄 노동에 나서게 되는 데에는 거의 대부분 환경적인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C씨만 해도 먼저 “내가 손녀를 맡겠다”고 나섰지만 완전히 흔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힘들게 키워낸 딸들이 육아 문제로 집안에 갇히는 것을 보기 싫었어요. 결혼을 시키면서 딸들을 다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손자·손녀를 돌보면서 딸이 제 갈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것까지 제 몫이었던 거죠. 애들을 결혼시킨다고 해서 엄마의 역할이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이런 점에서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들을 ‘할마’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적절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손주들에게 엄마 역할을 하는 것뿐 아니라 평생을 그래왔듯 자녀를 돌보는 엄마의 역할도 연장된다는 점 때문이다. 할마들은 여전히 엄마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쉬고 싶은 할마들
   
   본의 아니게 할마가 된 할마들의 삶이 마냥 만족스러울 리 없다. 최인희 연구위원의 연구를 보면 만약 손주를 잘 돌볼 만한 다른 방법이 생긴다면 돌봄을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전체 할마의 67.3%에 달했다.
   
   할마들의 삶은 고용된 육아도우미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할마들은 평균 주 5일, 매일 9시간 손주를 돌본다. 할마들이 손주를 돌보는 시간 동안 할마의 자녀들은 자신의 생활을 영위한다. D씨는 금융업에 종사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뒀다. 아들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D씨는 매일 아침 8시에 아들 집으로 ‘출근’해 저녁 6~7시쯤 ‘퇴근’한다.
   
   “아들이나 며느리가 휴가를 냈을 때에도 별다르지 않게 출퇴근합니다. 일하느라 힘들었을 아이들이 그날은 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게 제가 일부러 집 밖으로 내보내기도 하죠. 제가 손자·손녀를 돌봐야 아이들이 사회생활도 할 수 있을 거니까요.”
   
   대신 D씨가 쉴 틈은 없다. 무릎 관절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좀처럼 치료 일정을 잡을 수가 없다. 평일 낮에는 줄곧 아이를 돌보고 아들·며느리 집의 가사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친구나 친지와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지난 7월에는 아들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으로 정신과 문턱을 밟았다.
   
   “우울증 검사를 했는데 우울증이 상당히 심하다고 했습니다. 약을 먹는 것은 싫다고 하니 상담을 받으라고 하는데 상담받을 시간이 있나요. 아이들이 커서 독립하고 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마 중에는 관절염,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낀다’는 할마들은 전체의 63.7%나 된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손주를 돌보는 것이 힘들다’는 사람이 절반이 넘고, ‘손주를 돌보는 일 때문에 항상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할마들도 55%를 넘는다. 심지어 ‘노년에도 내 삶을 찾지 못해 우울하거나 화가 난다’고 응답한 사람도 40.3%, 5명 중 2명에 달했다.
   
   그래서 아예 할마가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은정 한양여대 사회복지보육과 교수는 손주 돌봄을 거부한 할마들을 연구한 논문에서 “손주를 돌보는 일이 ‘나의 과제’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노인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미안함과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인들 역시 ‘할마’ 문제가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할마’가 되기를 거부하는 노인들은 “손주 돌봄은 자녀들이 직접 해결하거나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인데 여성 노인들에게 양육 부담을 미루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들 부부와 차량으로 10분이면 닿는 거리에 살면서도 할마가 되기를 거부한 이영순씨가 그런 사례다. 이씨는 시민단체에서 오래 일하다 6년 전에 은퇴하고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아들이 손자를 낳으면서 조심스럽게 1~2년만 돌봐주면 안 되느냐고 묻더군요. 아들과 며느리에게는 무척 미안했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아들 부부는 힘들게 아이를 키우더군요. 한두 번 도우미가 바뀌었다거나 휴가를 쓰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결국 돕겠다고 나서지 않자 아들 부부와의 관계도 서먹해졌습니다.”
   
   고등학교 교사인 이씨의 며느리는 “차선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요즘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육아 옵션은 양가 부모님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게 안 되면 도우미를 알아보는 게 대부분이에요. 어린이집은 육아 문제를 다 해결해주지 못하고 도우미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책은 양가 부모님입니다.”
   
   
   돌봄이 끝나고 난 할마들은?
   
   분명히 할마 문제는 구조적 이유 때문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사회에서 할마를 돌보고 지원하는 일은 없다. 할마의 돌봄은 가정의 차원에서만 이뤄지고 누구도 할마가 어떻게 손주를 돌보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 돌볼 수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는다.
   
   사실 할마의 돌봄은 여러 갈등 요소를 가지고 있다. 가족 구성원 간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세대 갈등도 문제가 된다. 그러나 숨어 있는 더 큰 문제는 할마의 역할이 끝날 때 생긴다.
   
   할마의 문제를 줄곧 연구해온 안희란 광주대 사회복지학 박사는 역할을 끝낸 할마들이 느끼는 ‘박탈감’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안 박사는 “노후 준비가 되지 않은 할머니들은 손주를 기르면서 들인 노력과 자신의 노후를 연관 지어 생각하고 있다”며 “손주를 돌볼 때에는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서로 주고받는 일이 있는데 그게 끝나고 나면 할머니의 생활만족도가 떨어질 것이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할마들은 오히려 할마의 역할을 하면서 높은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라도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자기 만족부터 양육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역할이 끝나고 난 뒤의 할마들을 보살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할마들의 손주 돌봄이 회사 생활처럼 규칙적이고 장기적으로 이뤄진 만큼 할마들의 돌봄 종료도 ‘은퇴’로 봐야 하지만 사회의 인식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안희란 박사는 이 문제가 가족 구성원 모두와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할마들도 이제 자신의 업무가 종료되었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변화된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할마의 도움을 받던 자녀들도 단지 할마에게 짐을 맡기지 않게 됐으니 ‘홀가분해졌다’고만 여길 것이 아니다. 할마 역할을 하던 부모와 주고받았던 관심과 애정이 할마 역할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꾸준히 부모를 챙길 수 있어야 한다. 사회는 이런 사실을 교육시키고 지원해야 한다.
   
   할마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필요하다. 흔해져서 일상처럼 보이는 할마를 그냥 놔두기만 한다면 ‘할마 쇼크’가 올 수도 있다. 할마 쇼크는 공공 보육의 사각지대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할마의 돌봄 문제를 일컫는 것이다. 할마 본인들의 정서적 문제, 억지로 메워진 돌봄 공백 같은 것을 통틀어 말한다.
   
   이를 대비해 정미라 가천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조부모 교육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할마는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돌봄의 공백을 메울 수는 없습니다. 대신 할마들이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역할을 지원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할마에 대한 지원이 필요해
   
   조모돌봄수당 같은 경제적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할마들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정미라 교수는 2011년부터 조부모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해왔다.
   
   “할머니들의 경험은 훌륭한 자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지요.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아이를 맡습니다. 할머니들에게도 예전과는 달리 지금의 육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론적인 부분과 실천적인 부분을 모두 알려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어린이집, 자녀세대, 할머니세대가 갈등 없이 하나의 큰 틀을 공유하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조부모 교육을 통해 ‘소통’하는 방식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자녀와 조부모 간의 양육방식의 문제, 보상 문제 등으로 갈등이 벌어질 때 상당수의 가정들은 할마가 자녀의 뜻을 그저 수용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한다. 이런 방식은 할마에게는 물론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정 교수는 “손주들 키워봤자 ‘부질없는 짓이다’고 허탈해하는 조부모들은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교육을 통해서 할마들은 우선 자신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정신건강 및 신체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고 안전한 보육에 대해서도 교육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녀와 손주와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배워야 한다. 정미라 교수는 할마의 돌봄 역시 다른 돌봄 체계와 마찬가지로 종합적인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할마는 공공보육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보육의 한 방식입니다. 가정 보육을 지원하듯이 할마 보육도 지원받아야 합니다. 단지 경제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조부모 교육처럼 제도적으로도 지원할 수 있도록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 ‘할마 쇼크’라는 신조어는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의 최신 논문 ‘할마 쇼크: 한국 가족주의의 그림자와 할머니’에서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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