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9일 어젠다 저널리즘 ‘피렌체의식탁’에서 X세대를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 ⓒphoto 서경리 topclass 기자
지난 8월 29일 어젠다 저널리즘 ‘피렌체의식탁’에서 X세대를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 ⓒphoto 서경리 topclass 기자

X세대(1970년대생)는 세대 담론의 투명인간이었다. 베이비붐세대는 바글거리는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후에도 부모와 자식 부양을 이중으로 책임져야 하는 슬픈 세대로, 386세대는 똘똘 뭉쳐 민주화를 이뤄낸 거룩하고 당당한 세대로 주목받았다. 그 다음은 순서로 보자면 X세대다. 하지만 세대 연구자들은 X세대를 건너뛰고 밀레니얼세대를 주목했다. ‘워라밸’과 ‘욜로족’으로 상징되는 이 세대야말로 기존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세대라며 연구하고 배우라고 한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1990년대생으로 표방되는 Z세대 연구가 한창이다. 스마트폰과 손이 하나로 폰연일체된 ‘포노 사피엔스’인 Z세대는 새로운 문명을 여는 신인류라며 떠들썩하다.

위로는 베이비붐·386세대, 아래로는 밀레니얼·Z세대, 이들의 딱 중간에 낀 X세대는 존재감이 없었다. 19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을 소비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X세대. 이들은 한때 대단했다. 세상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 시끌벅적하게 등장하면서 ‘신세대’ ‘신인류’의 탄생을 알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후로 오랫동안 X세대는 무대 뒤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그런 X세대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략 3년 전부터다. 오랜만에 등장한 X세대는 ‘화려한 주연’이 아닌 ‘가엾은 조연’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주목하는 지점은 서로 다르다. X세대 내부에서는 위 세대의 성공방정식이 통하지 않는 첫 세대로서의 ‘당혹감’에 주목한다면, X세대 외부에서는 위아래로 센 세대의 중간에 끼여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에 따른 ‘우려와 걱정’의 시선이 강하다. 40대가 된 X세대는 조직의 중간관리자나 팀장급인데, 이들이 이렇다 할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부유하는 형국이라는 얘기다. 이들이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조직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감돈다.

위아래로 센 세대 사이에 낀, 낀낀세대

지난 8월 29일 X세대를 주목하는 흥미로운 심포지엄이 열렸다. ‘X세대에서 낀낀세대로; 40대, 그들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하는 심포지엄으로, 출판사 메디치미디어가 만든 어젠다 저널리즘 ‘피렌체의식탁’에서 개최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 이은형 국민대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고, 박상현 ㈔코드미디어 디렉터,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과 필자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필자 역시 X세대다. 1975년생으로 X세대의 정중앙에 서 있다. 40대가 된 X세대의 고충과 애환을 절절하게 느껴왔고,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주간조선에 심층취재 기사를 썼다. 주간조선 기자로 활동하던 2018년 1월이었다. ‘잊혀진 X세대의 비명, 1990년대를 휩쓸던 신인류들은 어디로 갔나’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기사(2493호·2018년 1월 29일자)는 X세대로부터 적지 않은 호응을 얻어냈다. 메일을 보낸 독자도 여럿이었다. “내가 왜 힘든지 몰랐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고맙다”는 내용이 많았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필자의 역할은 ‘X세대로서 X세대의 집합적 경험담’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피렌체의식탁에서 규정한 X세대의 별칭은 ‘낀낀세대’다. 어느 세대나 중간 세대는 ‘낀세대’이기 마련이지만, 낀세대로서의 X세대의 특수성은 분명하다. 서바이벌 스킬이 체화된 ‘센 위 세대’와, 할 말을 시원하게 다 하는 사이다 세대인 ‘센 아래 세대’ 사이에 끼여 있어 그 압박감이 두 배, 세 배 강하다. ‘낀낀세대’는 끼여 있는 강도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우스갯소리로 ‘낑긴세대’라는 말도 나온다. 옴짝달싹 못하는 모양을 비튼 말이다.

생존력의 70년대생 vs 위험회피의 90년대생

심포지엄을 앞두고 피렌체의식탁에서는 전국의 X세대 7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현대사’ ‘한국 사회 성공요인’ ‘한국 사회의 공정성 평가’ ‘한국 사회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86세대에 대한 인식’ ‘정치이념 성향’ 등의 항목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흥미로운 결과들이 많이 도출됐다. 최종 분석자료는 자체 여론조사와 한국종합사회분석의 통계분석을 기반으로 작성됐다. 김하영 피렌체의식탁 편집장은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X세대의 특징으로 ‘탁월한 생존력’과 ‘주목받지 못한 세대’를 꼽았다.

X세대는 노력을 중시하고, 잡초 같은 생존력을 지녔다. ‘한국 사회의 성공요인’을 묻는 질문에서 ‘본인 학력’이라고 응답한 비중이 전 세대를 통틀어 40대가 가장 높았고, ‘부유한 집안’이라는 응답은 가장 낮았다. X세대는 부모의 경제력보다 자신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김하영 편집장은 이를 대입제도와 연관 지어 해석했다. “1960~1970년대생은 입시에서 학력고사와 수능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가 하면 X세대는 불공정한 대우에 침묵하는 경향이 가장 강한 세대다. ‘직장 내 불공정 대우에 대한 (세대별) 대응’에서 ‘그냥 참고 지냄’ 응답률이 전 세대를 통틀어 40대가 가장 높았다. 주목할 부분은 복수응답이 가능한 해당 설문에서 ‘더욱 충성’ ‘이직 시도’ 응답 비율도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윤호영 서울시립대 융합전공학부 빅데이터전공 객원교수는 ‘1970년대생은 생존력의 세대이고, 1990년대생은 위험회피의 세대’라고 분석했다.

“1970년대생은 불공정한 대우에 대해 ‘그냥 참고 지냄’도 하지만, 불평등을 받지 않기 위해 ‘더욱 충성’하는 세대이며, 동시에 ‘이직 시도’도 많이 하고, 자식의 몫을 얻기 위해 ‘불법 행동’을 하는 비율도 그 수는 적으나 가장 높은 세대이다. 생존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1970년대생에게 1990년대생은 무기력하고 계산만 하는 세대로 보이고, 1990년대생에게 1970년대생은 자기 잘난 맛에 싸움도 하고, 아부도 하고, 설교도 하는 여러모로 피곤한 존재로 보일 수 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결과는 X세대의 86세대에 대한 인식이다. 이들 세대는 바로 위 세대인 86세대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갖고 있다. ‘86세대의 장기집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하나둘 삐져나오지만, X세대는 86세대의 역할과 기여에 대해서는 비교적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86세대에 대한 인식’ 1위는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28%)로, ‘실력이 없으며 이제 물러나야 할 때’(20.6%)보다 높았다. ‘86세대 권력집중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약간 공감’(46%)이 ‘매우 공감’(17%)보다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다소 공감 못 함’(26%) 비율도 꽤 높았다. 86세대의 권력집중의 장기화에 대한 불만이 예상보다 낮았다. 김하영 편집장은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낮았다”고 평가했다.

김호기 교수, ‘상처받은 개인주의 세대’

세대 연구의 권위자인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X세대를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로 규정한다.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하고, 타인을 의식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욱 충실하고자 한 첫 세대라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개인의 감정, 욕망 사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한 최초의 세대로서 X세대를 바라봐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양 근대사회의 성립은 개인주의 발전과 함께 이뤄졌다.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의 등장을 자극했고, 이는 다시 서구의 근대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성장을 가져왔다. 낀낀세대의 망탈리테(mentalité·프랑스 아날학파가 만들어낸 개념. 특정한 시대의 개인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사고 및 생활양식)는 민주화의 가치에 공감하면서도 엄숙하고 권위주의적인 방식은 거부한다. 신자유주의적인 경쟁을 인정하면서도 과도하고 비인간적인 강제는 거부하는 특성이 있다.”

‘최초’라는 거창한 의미를 달고 출현한 X세대는, 그러나 진정한 개인주의 세대로서 새 시대를 활짝 열어젖히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원인으로 김 교수는 1997년 몰아닥친 외환위기의 영향을 꼽는다.

“X세대는 새로움으로 무장한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주도적 세대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인해 생존을 모색해야 했기 때문이다. 586세대와 낀낀세대는 생존을 모색해야 했다는 점에서 같았지만, 낀낀세대는 고용위기 등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기가 더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낀낀세대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그런 차원에서 ‘상처받은 개인주의 세대’라고 규정했다.

한편 ‘수축사회’의 저자이자 대우증권 CEO를 지낸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는 경제 차원에서 X세대를 바라봤다. 그는 먼저 X세대 내에도 성격이 다른 두 세대가 혼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2차 베이비부머세대인 1974년생까지는 86세대와 유사하고, 1975년생부터는 1980년대생과 유사하다는 것. 그러면서 “우리의 세대론은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세대론을 볼 때 인구구조적 측면과 글로벌 산업구조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홍 대표는 86세대를 장기독점하는 세대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비판했다. “많이 태어나는 세대가 권력과 부를 가지는 건 당연하다”며 “그런 86세대가 늙어가고 있다. 많은 회사에서 86세대는 이미 퇴사하고 있다. 이들의 장기집권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쪽이다. 한편 산업구조적 측면에서 낀낀세대와 86세대는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가 소프트웨어 중심의 산업 구조로 재편되면서 한국의 4대 산업이 어려워지는데, 낀낀세대와 86세대는 같은 배를 탄 입장이라는 얘기다.

홍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 세대갈등이 부각되는 분위기를 경계했다.

“세대 갈등보다 양극화에 따른 갈등이 훨씬 심각하다. 세계 어디에도 세대 갈등이 주제인 나라는 없다. 세대 갈등이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 양극화 해소에 주력해야 한다.”

X세대의 포용적 리더십이 희망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X세대를 ‘프리 밀레니얼’세대로 표현했다. ‘밀레니얼과 일하는 법’으로 세대론 전문가 대열에 합류한 그는 “밀레니얼 이전에 X세대가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X세대는 선배 세대와 몸은 같이하면서 마음은 후배 세대와 닮아 있다. 밀레니얼세대가 외쳤던 얘기들이 X세대가 과거에 가졌던 생각들이다. 하지만 속 시원히 할 말을 못하는 세대이다 보니 밀레니얼세대를 보면서 ‘쟤네들은 속 시원히 표현한다’는 인상을 가진다. X세대는 심정적으로 밀레니얼세대에 공감하고 동의하는 세대다.”

X세대에 대해 ‘지는 세대’ ‘주연이 될 수 없는 영원한 조연세대’로 보는 시각이 강하지만, 이은형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X세대의 포용적 리더십이 희망이다”라는 입장이다. “X세대는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 양쪽을 이해하고, 젠더 갈등의 원인도 이해하고 있으며, 공동체의 가치와 개인의 자유를 모두 존중하는 특성을 지녔다. 이런 X세대야말로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긍정적 리더십이다”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리더십 자질을 지닌 것과 실제로 리더가 되는 건 다른 얘기다. 결국 기회의 문제다. 이에 대해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센터장은 “헤게모니를 가져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며 중국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중국의 경우 공산당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외의 실력파 40대 유학생을 칭화대 학장으로 앉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40대가 어둠 속에서 아무리 달려봐야 소용없다. 국가 차원에서 권력을 주고 보호막까지 준 후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미국 생활을 오랫동안 해온 박상현 ㈔코드미디어 디렉터는 나이와 세대에 민감한 한국의 실정을 지적했다. “미국에는 40대 대통령이 9명이나 된다. 현재 미국 대선 토론회가 진행 중인데, 나이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고, 세대에 대해서는 딱 한 번 언급됐다. 40대 대통령이 많다 보니 나이 때문에 뭘 하거나 못한다는 인식이 없다.”

알고 보면 저평가 우량주 X세대

필자는 40대가 된 X세대의 특성을 세 가지로 꼽았다 △아무리 달려도 전진하지 않는 ‘트레이드 밀’세대 △목표 중독의 마지막 세대로,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세대’ △영포티 첫 세대인 ‘피터팬세대’. 한편 X세대의 가치에 대해서는 ‘저평가 우량주’라는 표현을 썼다.

“X세대야말로 새 시대의 첫 리더로서 원석 같은 자질을 많이 지녔다. 점이지대로서의 장점이 많다. 위 세대처럼 성실하고 아래 세대처럼 탈권위적이면서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디지로그적인 세대다. 또 경험과 연륜의 가치를 아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한다. X세대는 회사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지만, 아래 세대는 아니다. 한 조직이 수십 년 지속돼온 데에는 전수해야 할 귀중한 가치와 문화유산이 있게 마련이다. X세대가 이 위대한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수해줄 의무가 있다. X세대에게 필요한 건, 위아래 세대를 평화롭게 잇는 브리지 리더십이다.”

3시에 시작한 심포지엄은 6시가 넘어서 끝났다. 시간 관계상 딱 한 명의 질의를 받았다. 86세대 청중은 토론자들에게 물었다. “X세대가 리더가 되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 시간 관계상 모든 토론자들이 답할 기회는 없었다. 필자에게 마이크 차례가 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방으로 두 동강 나 있다. 남녀가, 위아래 세대가, 어른과 아이가, 또 좌우 진영이. 비교적 탈이념적인 X세대가 주도권을 잡게 되면 이 분열과 대립을 이어붙이는 다리가 되고 싶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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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topclass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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