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연중기획 | 나는 체인지메이커다] 지하철 환승지도 만든 엄마의 투쟁 홍윤희 무의 이사장
  • kakao 플러스친구facebooktwiteryoutube
  • 검색
  1. 사회/르포
[2576호] 2019.09.30
관련 연재물

[연중기획 | 나는 체인지메이커다]지하철 환승지도 만든 엄마의 투쟁 홍윤희 무의 이사장

▲ 홍윤희 무의 이사장의 목표는 장애인의 기본이동권이 갖춰져 지하철 환승지도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사진 속 휠체어는 그가 근무하고 있는 이베이코리아에서 강원소방본부 등에 지원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휠체어’이다. 입고 있는 옷은 장애인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 의류로 그가 G마켓에 론칭시켰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지하철 3·7·9호선이 겹치는 고속터미널역은 하루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으로 꼽힌다. 사람에 떠밀려갈 만큼 붐비는 이곳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지하철 9호선에서 7호선 반포 방면으로 갈아탈 경우 어떻게 가야 할까.
   
   ‘9호선 1-4칸 쪽에서 좌측으로 이동 후 엘리베이터(B5) 탑승→지하 2층 엘리베이터 하차 후 우측으로 꺾어 직진→역무원 호출 후 개찰구 통과→환승통로 지나 휠체어 리프트 이용 지하 2층 7호선 대합실로 이동→휠체어 리프트 하차 후 우측으로 직진→직진 후 좌측 엘리베이터 탑승→지하 3층 7호선 승강장 이동’.
   
   이 경우가 최단거리 동선으로 총 22분이 걸린다. 9호선에서 7호선으로 이동할 때 계단을 휠체어리프트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무원을 호출하고 리프트기에 타서 이동하는 데 15분여가 걸린다. 경로를 보고 그대로 따라간다고 해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데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경우라면 인파를 헤치고 환승을 하기 위해서는 고난의 행군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헤매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동선을 자세하게 안내한 환승지도가 있다. 장애인 이동권 콘텐츠를 제작하는 협동조합 ‘무의(Muui)’가 만든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다. 무의(www.wearemuui.com)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용할 수 있다. 환승이 어려운 구역을 중심으로 어느 칸에 타야 엘리베이터와 가장 가까운지, 환승을 위해 다음 승강장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등을 지도처럼 그려놓았다. 현재 33개역 58개 구간이 만들어져 있다.
   
   
▲ (왼쪽부터) 협동조합 ‘무의’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교통약자 지하철 환승지도. 지하철 환승지도 텍스트 버전.

   고장난 휠체어리프트 앞에서
   
   이 환승지도를 만든 것은 공공기관이 아니다. 휠체어 타는 딸을 둔 한 엄마의 고군분투 결과다. 홍윤희(46)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이베이코리아 기업홍보팀 이사)이다. 환승지도의 출발도 고속터미널역이었다. 8년 전쯤의 일이다. 홍 이사장은 딸 지민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 위해 9호선에서 7호선으로 환승하려던 참이었다. 문제는 환승구간 중간에 있는 계단이었다. 휠체어리프트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날 리프트 앞에 ‘수리 중’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종이에는 ‘7호선 환승을 위해서는 동작역에서 4호선 이수역으로 이동해 다시 갈아타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그 말은 다시 9호선 승강장으로 가서 9호선을 타고 거꾸로 동작역까지 간 후 4호선으로 갈아타고 이수역에서 7호선으로 환승하라는 말이었다. 1분도 안 걸려 갈 수 있는 계단을 두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40여분을 돌아야 했다.
   
   역무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계단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은 황당했다. “계단 아래에 있으면 7호선을 관리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 계단 위에 있으면 3호선 서울메트로에 연락하라”는 것이었다. 현재는 서울교통공사로 통합됐지만 당시만 해도 지하철 노선별로 사업자가 나뉘어 있었다. 도대체 계단 가운데 있으면 어쩌라는 것인지 기가 막혔다. 속 터진 사연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더니 한 신문에 기사화가 됐다. 국토교통부에서 해명 보도자료를 내고 난리가 났다. ‘문제제기를 하면 임팩트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엄마를 열정적인 활동가로 만든 사건이었다.
   
   그날 일은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교통약자들이 지하철 환승을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 지하철 바닥에 스티커로 안내 경로를 붙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경비 마련을 위해 시민 후원을 받는 스토리펀딩에 도전했다. ‘지민이의 그곳에 쉽게 가고 싶다’는 프로젝트로 지민이의 지하철 도전기를 영상으로 올렸다. 펀딩에 성공, 600만원을 모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알고 보니 개인적인 안내문 부착은 불법이었다. 스마트폰용 앱을 만들까 알아 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실내 지도를 만드는 일은 난이도도 높고 제작비도 비쌌다. 고민하던 차에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계원예술대 브랜드디자인과 김남형 교수가 졸업작품 프로젝트로 해보겠다고 나섰다. 학생들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환승구간을 직접 다니면서 리서치를 하고, 계속 업그레이드를 시키면서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가 만들어졌다.
   
   지난 9월 16일 서울 역삼역 근처에서 홍윤희 무의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딸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한 엄마 덕분에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 ‘#휠체어탄라이언챌린지’ 캠페인. 인기 캐릭터 라이언이 휠체어를 탄 그림이나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캠페인으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해 진행했다. photo 무의

   장애인이 불편한 이유 세 가지
   
   2006년, 지민이는 척추에 종양을 가지고 태어났다. 소아암의 일종인 신경모세포종이었다. 생후 며칠 안 된 작은 몸은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 있으면서 수술을 받고 12번의 항암 치료와 10번의 방사선 치료를 견뎠다. 수술실을 오가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후유증으로 하반신 마비가 됐다.
   
   지민이처럼 휠체어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곧 생존권이다. 홍 이사장은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불편한 이유는 딱 세 가지, “첫째 인프라가 없다. 둘째 안내가 잘 안 돼 있다. 셋째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거리에서 휠체어 장애인을 만나기 힘든 이유는 기본이동권조차 보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장애인 콜택시 평균 대기시간은 58분이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는 48%에 불과하다. 저상버스가 아닌 경우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지하철은 목숨 걸고 타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은 휠체어리프트로 계단을 이동해야 하는데 위험천만이다. 지난 2001년부터 지금까지 리프트 사고로 다섯 명의 장애인이 목숨을 잃었다. 2017년 신길역에서는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려던 장애인이 호출버튼을 누르다 계단으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2015년 서울시는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을 통해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것을 약속했으나 2019년 9월 현재까지도 24개 역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그나마 장애인들이 쇠사슬로 자신들 몸을 묶고 투쟁을 한 끝에 얻어낸 결과”라고 홍 이사장은 말했다. 지하철 타고 외출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지민이도 리프트는 공포다. 홍 이사장은 “리프트를 탈 때마다 구경난 듯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홍 이사장의 집이 있는 강동구 상일동역도 엘리베이터가 없다. 리프트를 타기 싫어하는 지민이는 상일동역을 집 앞에 두고도 저상버스를 타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덕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탄다. “2011년부터 서울교통공사, 국민권익위, 시의원, 국회의원, 소셜미디어 등에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제야 세워진다고 하더라”고 했다. 승강장과 전동차 사이의 넓은 간격과 단차(높낮이)도 위험요소다. 홍 이사장이 “지민이도 그 사이에 휠체어 바퀴가 빠져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무의’를 만든 것은 환승지도 작업을 하던 2015년의 일이다. 하버드대생으로 미국 20개 주를 휠체어로 여행한 후 책을 펴낸 김건호씨의 제안으로 함께 만들었다. ‘무의’는 ‘장애가 무의미한 세상을 만들자’는 뜻이다. 장애인 여행 콘텐츠 제작을 통해 ‘장애에 대한 대화를 변화시키자’는 명쾌한 목표를 세웠다. ‘무의’의 슬로건은 ‘Disability made sexy’, 장애를 불쌍하게 볼 필요 없다는 의미다. 장애인도 욕구가 있고 즐길 줄 아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무의의 슬로건대로 홍 이사장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사람들의 편견은 거대한 벽이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아프고 화가 난다. 지하철 환승지도를 만들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리서치를 나간 때였다. 휠체어를 탄 자원봉사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노인이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요즘 장애인들은 대통령보다 더 대접받아. 백화점에 갔는데 장애인 구역에 내 차를 못 대게 하더라고.” 화를 못 참고 싸우고 돌아와 방법을 찾았다. ‘리서치 활동에 노인들을 직접 참여시키자. 휠체어를 타보면 생각이 바뀌겠지.’ 서울시 중장년 지원센터인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연계해 은퇴자들을 아르바이트로 참여시켰다. 비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리서치를 하고 나면 시선이 확 바뀐다. 장애인의 눈높이에서 문제가 보인다.
   
   최근에는 무의를 통해 ‘휠체어 탄 라이언 챌린지’를 진행했다. 카카오의 캐릭터 ‘라이언’을 비롯해 각종 캐릭터의 사진을 찍고 소셜미디어에 ‘#휠체어탄라이언챌린지’란 해시태그를 올리게 했다. 장애를 가진 캐릭터의 제작을 촉구하기 위해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홍 이사장은 “지민이의 친구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 우리에게 친숙한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장애를 보여주면 더 포용력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다음 참여자를 지목해 릴레이 방식으로 진행된 이 캠페인은 반응이 뜨거웠다. 지난 7월 9일부터 40일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당초 목표치였던 300개를 넘겨 330개의 해시태그가 올라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휠체어를 탄 라이언을 직접 그려서 올리기도 하고, 인형에 목발을 끼워 올리기도 하면서 화제가 됐다.
   
   
▲ 지하철 환승지도 리서치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들. 비장애인도 휠체어를 타고 리서치를 하게 한다. 그래야 장애인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photo 무의

   두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딸 덕분에 그는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눈을 가지게 됐다. 휠체어의 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이다. 그 높이에 맞춰 변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인천지하철 측에서 환승지도 요청이 오고, 대구시에서는 장애인 이동권 향상을 위한 공익광고를 의뢰했다. 서울 경전철 설계에 자문위원으로 그를 부르고 지하철 관련 회의에도 불려 다니느라 바쁘다. 지하철 역내 교통약자를 위한 안내문도 많이 바뀌고 있다. 또 지하철 환승지도에 이어 휠체어 아동을 위한 체험학습 지도도 만들고 있다. 지민이가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갈 때마다 친구들과 동선이 다르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서울 사대문 안쪽에 있는 지하철역 주변 문화시설을 중심으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화장실, 음식점, 편의시설 등을 조사해 지도로 만들어 특수학교에 배포하고 오는 12월 무의를 통해 서비스할 계획이다.
   
   무의 활동만으로도 정신없어 보이는데 그의 본업은 따로 있다. 이베이코리아에서 기업 홍보를 맡고 있다. 다행히 소셜 임팩트를 만들어내야 하는 업무는 그의 바깥 활동들과 마주치는 지점이 많다. 장애인을 위한 활동이 업무에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장애인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 의류를 론칭하고, 옥션에 장애용품을 모아놓은 ‘케어플러스’를 만들었다. 그는 “화장실 문턱 때문에 고생하는 지민이를 위해 인터넷을 헤맨 끝에 어렵게 ‘실내경사로’를 샀다. 4만원짜리로 4000만원 가치의 자유를 얻었다. 이런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면서 “장애인에게 정보는 곧 복지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기업으로 이미지가 좋아지니 회사에도 좋은 일이었다. 케어플러스는 국내 장애용품 스타트업을 위한 플랫폼 역할도 하고 있다.
   
   장애아를 둔 경우 아이를 돌보기 위해 맞벌이는 사실 불가능하다. 육아휴직 중에 승진까지 하고, 홍보이사까지 올라간 그는 아주 드문 경우다. 지민이가 병원에 있을 때 항암 부작용으로 상태가 안 좋아졌다. 회사 복귀 시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출근을 했는데 호전됐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아이는 아이대로 생명력이 있구나. 엄마가 붙어 있다고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친정의 도움도 받고 회사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남편도 당시에는 엄두도 내기 힘든 육아휴직을 용감하게 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받은 만큼 사회에 기여할 수는 없을까 항상 생각하고 있다.”
   
   도전적인 엄마를 보면서 지민이는 자립적인 아이로 잘 자랐다. “엄마는 엄마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 엄마가 좋아서 하는 일을 나 때문이라고 말하지 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해 엄마를 섭섭하게 만드는 중학생이다. 지하철 타고 아이돌 스타를 만나러 간다기에 걱정했더니 “엄마가 만든 지도가 있잖아. 걱정 마!”라는 말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지민이의 장애 소식을 들었을 때 남편은 “지민이가 클 때쯤엔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돼 있지 않을까. 안 되면 이민 가자”라고 말했다. 그때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사람들의 편견도 여전하다. ‘휠체어탄라이언’ 캠페인 관련 글 밑에 ‘라이언이 무슨 잘못?’이란 댓글이 있었다. 아직도 ‘장애는 잘못’이라는 의식이 여전한 것이다.
   
   몸무게 2.7㎏으로 태어난 지민이를 안는 순간 그에게는 2.7t의 무게로 느껴졌다. 그 무게로 무릎이 꺾이기도 하고, 세상의 벽에 부딪힐 때는 전부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눈물 대신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지민이가 혼자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은 꿈을 꾸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직도 휠체어 바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많다. 장애인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안전한 길이다. 그는 그 길을 만들기 위해 계속 뛸 것이다. 엄마의 이름으로.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