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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83호]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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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선내 핏자국 없었다” 북한 선원 추방 의혹 5가지

▲ 동해상으로 남하했다 추방된 북한 어선. photo 통일부
길어야 세 달, 그리고 처형. 평양 사정을 잘 아는 탈북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추방 북한 선원 두 명의 운명이다. 김정은 정권이 이들을 내버려둘 리가 없다는 암울한 진단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탈북 어민 추방 사건의 개요를 정리하면 이렇다. 지난 10월 31일, 북 어민들이 탄 북한 선박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했다. 우리 군함은 이들을 북쪽으로 쫓아보냈다. 다음날 새벽, 다시 같은 어선이 NLL을 넘어 내려왔다. 해군은 이들을 뒤쫓으며 경고 방송을 했다. 방송에도 반응이 없자 두 차례 경고사격을 했다. 북 어선은 이에 불응하고 남한 방향으로 내달렸다. 결국 해군은 나포 작전을 시작했다. 11월 2일, 북 어선은 나포됐다. 동해 군항으로 입항한 후 어민들은 합동신문조사를 받았다. 11월 7일, 이들은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추방됐다.
   
   첫 발견부터 추방까지 8일간 정부의 설명과 대응은 그야말로 총체적인 의혹 투성이다. 큰 의문점을 뽑자면 크게 다섯 가지다.
   
   
   NLL 남하 정보 북으로부터 받았다?
   
   첫째, 우리 군은 어떻게 이들이 NLL을 넘어 남하할 줄 미리 알고 있었을까. 국회 국방위 소속인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이 군 관계자에게 확인한 내용을 보면, 군은 범죄 혐의가 있는 이들이 어선을 타고 남하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한다. SI, 즉 특수 정보로 인지했단 얘기다. 정경두 국방장관도 지난 11월 7일 국회에서 같은 얘기를 했다. 이들이 내려올 것을 대비해 10월 31일 전후로 동해상의 해상경계를 강화했다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수집한, 어떤 내용의 SI였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게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다. 해군은 SI로 인지한 정보를 맹신해 귀순하려는 어선을 NLL 위로 쫓아 올려보내는 데 급급했던 게 아닐까.
   
   일각에선 군이 밝힌 ‘이틀간의 추격전’에 의문을 표한다. 북한 어선의 최고속도는 시속 20㎞를 넘지 않는다. 이런 배를 우리 해군 호위함이, 그것도 이틀간 추격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얘기다. 우리 군의 해상경계는 이미 북한 어선에 의해 뚫린 전적이 있다. 지난 6월 북한 목선이 삼척항으로 들어온 사건이다. 야권에선 정경두 장관 경질과 국정조사를 요구했지만 유야무야 덮였다. 이틀간 우리 군과 북한 어선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해상 작전일지 등 자료를 중심으로 검증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둘째, 이들이 귀순 의사가 없었다는 게 사실일까. 군 측은 이들이 적어도 해상에선 적극적인 귀순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어선 주변을 돌면서 따라갔는데 백기를 흔드는 등 적극적인 귀순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경고사격 후 나포했다는 설명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월 8일 국회에 출석해 “북한 어민들이 합동심문 과정에서 ‘죽더라도 돌아가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귀순 의사가 없었단 얘기다. 과연 사실일까. 합동심문을 받아본 탈북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평양 출신 탈북자 A씨의 얘기다.
   
   “김연철 장관은 합동심문을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기라도 했나? 심문 과정에서 조사관들이 일부러 여러 말들을 던져본다. 이들 어민은 설사 범죄에 가담하고 넘어왔다 해도 사실 여부를 일단 따진 후 정착하게 해줄 줄 알았을 거다. 북한 사람들이 대체로 성격이 급하다. 자존심도 세다. 심문관들이 대뜸 ‘살인자’ ‘범죄자’ 이렇게 말하면 기질상 배짱을 부렸을 게 뻔하다. ‘죽더라도 고향에 가겠다, 너네들한테 붙어서 살지 않겠다’ 이런 말을 했을 거란 얘기다. 나도 조사받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 ‘남자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때 나도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어민들은 한국 정부가 보낸다 보낸다 해도 설마 북으로 보내겠느냐는 생각을 했을 거다.”
   
   
   20대 2명이 건장한 16명 살인?
   
   세 번째 의혹은 과연 살인사건이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다. 탈북자인 정성산 감독은 북한 내부 소식통과의 메신저 대화를 지난 11월 13일 공개했다. ‘이들은 각각 22살, 23살이고 영양실조에 병이 있어서 군대도 못 간 아이들이다. 김책에서 먼저 잡힌 남자가 범인’이라는 내용이었다. 정 감독에게 메신저를 주고받은 경위와 뒷얘기를 물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 자체는 맞는 듯하다. 오징어잡이배 살인사건은 10월 중순부터 김책 쪽엔 소문이 돌았다. 이 두 명이 어떤 식으로든 범행에 연루된 것도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열여섯 명을 죽였는지는 모른다. 3년 전까지 동해 어장은 인민무력부가 관리했다. 이후 선주들이 돈을 내면 개인 사업이 가능해졌다. 근해상의 조업권은 대부분 중국 배가 갖고 있다. 새로 진입한 선주들은 먼바다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먼바다로 조업을 나갈 때는 경력이 많은 선원들이 나간다. 조업이 위험하지만 크게 한 건 해보자는 식으로 나가는 거다. 대부분 서른 살 이상이다. 이들을 스물두세 살짜리 둘이 죽일 수 있었을까.”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어선 살인사건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역사상 해상에서 집단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구조적으로 일어나기 힘들다. 배에는 선장뿐 아니라 당비서가 함께 탄다. 이중견제를 한단 얘기다. 선원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당비서 귀에 다 들어간다. 이런 조건에서 형제 관계도 아닌 두 명이 살인 모의를 한다? 불가능하다. 오징어잡이는 밤에 조업한다. 두 명이 열여섯을 밤에 죽였다는 게 말이 되나. 부당한 대우로 인한 선내 갈등 얘기를 하는데, 생활총화에서 웬만한 갈등은 다 해소된다.”
   
   인민군 출신 탈북자인 최정훈 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는 “16명이 살해됐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작은 배에 19명이 탔다는 얘기 아닌가. 말이 안 된다. 엄청난 숫자인 16명 정도는 죽였다고 해야 남한에서 어민들을 올려보내기 쉬울 것 같으니 북한 측이 날조한 거다.”
   
   
   “북한 역사상 해상 집단 살인은 없었다”
   
   북한 주민들과 접촉하는 탈북자 B씨는 “선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10월부터 있긴 했다. 오징어잡이에 나섰다가 몇 명이 못 돌아왔다. 난파사고가 워낙 많긴 하다. 행방불명된 게 바람 때문인지 살인사건인지 조사 중이었고 세 명이 불구속 조사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고 말했다.
   
   어선이 군부대 소속 어선이었는지에 대해선 탈북자들의 분석이 엇갈렸다. 통일부가 공개한 어선 사진은 화소가 그리 높지 않다. 뱃머리 쪽에 쓰인 어선 번호가 분명치 않은데 번호의 길이가 비교적 짧은 걸로 보아 군부대 소속 어선은 아니라는 게 군 출신 탈북자 C씨의 얘기다. 군부대 소속 어선의 번호는 일반 어선보다 길다.
   
   넷째, 국정원은 어선을 왜 소독했을까. 선체 검역은 검역법의 적용을 받는 사안이다. 검역법 제6조를 보자. ‘①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운송수단과 사람 및 화물(운송수단 내의 컨테이너, 운송수단 내 비치용품, 소모용품 및 개인 소지 물품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은 제12조에 따른 검역조사를 받아야 한다. 1.우리나라로 들어오거나 외국으로 나가는 운송수단과 사람 및 화물 2.범죄의 예방, 수사 업무나 피의자 체포 업무를 수행할 때에 제1호에 해당하는 운송수단과 접촉한 운송수단과 사람 및 화물 ②제1항에 따른 검역조사를 받지 아니한 운송수단과 사람 및 화물은 검역 절차가 끝나기 전에는 우리나라로 들어오거나 외국으로 나갈 수 없다. ③제1항과 제2항에도 불구하고 연료나 자재 및 생활필수품 등을 공급받을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일시 머무르는 운송수단 중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운송수단에 대하여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검역조사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생략할 수 있다.’
   
   지난 11월 2일 오전 10시20분 국정원은 농림축산검역본부 속초사무소로 검역 요청을 했다. 총 9명이 현지 출동했다. 동물검역관 3명, 식물검역관 2명, 사람을 담당하는 국립검역소 검역관 4명이었다. 이들은 북한 어선 내의 동식물류, 남은 음식물 등을 조사했다. 대인소독은 13시45분부터 14시30분까지 45분간 이뤄졌다. 어선 검역은 19시15분부터 22시까지 2시간45분 동안 이뤄졌다.
   
   일각에선 검역 때문에 혈흔 등 현장 증거가 훼손되지 않았겠냐고 지적한다. 어떤 식으로 소독이 이뤄졌는지 궁금했다. 조현호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검역과장에게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북한 지역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창궐했다고 하지 않나.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를 동시에 사멸할 수 있는 소독제가 있다. 이 소독제의 원액을 희석해 분무기로 분사하는 식으로 소독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배인지 어떤지 사전에 듣지 못했다. 현장 검역관들은 선체 내부에서 핏자국 같은 건 전혀 못 봤다.”
   
   이 말이 맞는다면 북한이 주장하는 어민들의 살인 혐의에 정부 당국은 어떤 물적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다섯째, 왜 재갈을 물리고 안대를 씌워 호송했을까. 애초 이 일은 언론사의 카메라에 잡힌 문자메시지 때문에 공개됐다. JSA 대대장(중령)이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상황을 직보한 메시지다. 메시지가 보도되자 부랴부랴 통일부는 브리핑을 했다. 좀 다른 얘기지만, 이 메시지를 수신한 김 차장의 휴대폰은 LG유플러스 통신망을 쓰고 있었다. 청와대는 직원용 공식 휴대전화로는 LG유플러스를 쓰지 않는다. LG유플러스는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 통신장비는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사용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결국 김 차장은 중국으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는 개인 휴대전화로 JSA 대대장에게 정보 보고를 수시로 받고 있었다는 얘기다.
   
   
   자해 위험? 북한 추방 거부 암시
   
   이 메시지엔 ‘자해 위험이 있어 적십자사가 아닌 경찰이 호송한다’는 문구가 있다. 이들이 북한으로 추방되는 걸 극구 거부했다는 걸 시사한다. 북한 군인에게 넘겨지기 직전 안대를 풀어주자 이들이 주저앉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안대를 씌우지 않아 어디로 가는 줄 알았다면 ‘북한으로 돌아갈 바엔 죽겠다’며 자해를 시도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사상 초유의 사태다. 최정훈 대표는 “안대와 재갈을 왜 남한이 씌워서 돌려보내나. 북한과 범죄인 인도협정이라도 체결했냐”고 지적했다. 일부 탈북자들은 북한이 이 장면을 홍보에 사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인민군 출신 탈북자 C씨는 “판문각에 CCTV가 있지 않나. 남조선에 가면 이렇게 돼서 돌아온다며 주민들 단속에 활용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평양 출신 탈북자 D씨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런 영상까지 보여주면 자칫 역효과가 난다. 다만 주민들을 모아놓고 공개처형을 하면서 남조선까지 도망갔었다며 말할 수는 있다.”
   
   심문 영상과 전말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청와대는 답이 없다. 이번 사건이 6월 삼척 목선 사건처럼 슬그머니 묻힐 수 있을까. 국제사회는 일단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미 인권단체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렉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지난 11월 7일 발표한 성명에서 “1953년 정전 협정 이후 한국 정부가 탈북자의 뜻에 반해 북송한 첫 사례”라며 이들이 가혹한 처벌, 고문, 처형 등을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제 북송은 한반도 모든 주민을 한국인으로 인정하는 헌법을 훼손한다. 불과 2명이 16명을 죽였다는 것도 기이하다(bizzare)”고도 말했다. 한국 정부가 3일 만에 이들에게 사실상의 사형 선고를 내린 점에 대해서도 우려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데이비드 알턴 영국 상원의원은 지난 11월 9일 페이스북에 ‘한국 정부의 상당히 옳지 못한 결정’이란 글을 올렸다. ‘한국의 헌법까지 위반하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난민들을 북한으로 보냈나’란 내용이다. 필 로버트슨 휴먼라이츠워치(HRW) 부국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강제추방 결정으로 두 북한 주민은 북에서의 고문과 처형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중대범죄인 만큼 증거에 기반해 신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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