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7일 서울 장안동의 인포스탁데일리 사무실에서 만난 이형진 대표(위). 아래 사진들이 AI 앵커 모습이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월 7일 서울 장안동의 인포스탁데일리 사무실에서 만난 이형진 대표(위). 아래 사진들이 AI 앵커 모습이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인공지능(AI·Artifical Intelligence) 기술이 발달하면 없어질 직업군에 아나운서나 앵커는 포함될까. 컴퓨터로 만든 목소리가 라디오 아나운서를 대신할 순 있어도, TV에 나오는 앵커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처럼 홀로그램을 통해 아나운서를 구현해내는 기술은 언제쯤 도입될까. 기술의 진보는 이런 질문에 빠르게 답하고 있다. 그 첫걸음은 바로 AI 앵커다.

주간조선은 AI 앵커가 출연하는 뉴스를 만들어 보도하는 인터넷 경제미디어 ‘인포스탁데일리’의 제작현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포스탁데일리는 ‘한국형 블룸버그’라고 알려진 인포스탁에서 만든 인터넷 경제매체다. 인포스탁데일리는 지난해 12월 23일부터 AI 앵커가 출연하는 뉴스를 만들어 내보내기 시작했다. 인포스탁데일리는 AI 전문기업 머니브레인의 기술을 활용해 ‘AI 뉴스앵커’를 구현해 뉴스에 활용하고 있다. 자사에서 생산한 경제 뉴스를 이 AI 앵커가 방송 뉴스의 한 기사처럼 음성으로 독자에게 전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2월 23일 이후로 매주 3회 방송을 이 AI 앵커가 진행한다.

지난 1월 7일 현장을 방문한 기자는 AI 앵커가 대중 앞에 서게 되는 과정을 직접 참관했다. 단순하게 말하면 AI 앵커란 취재기자가 텍스트를 쳐 넣으면 컴퓨터가 구현해낸 앵커가 읽어내려가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입 모양이나 발음의 정확도는 물론이고 기사 내용에 따른 감정까지 실어내는 것에서 기술력의 차이가 드러난다. 이렇게 방송하는 것은 초기단계지만 기술이 더 발달하면 컴퓨터에 전송되는 정보를 가지고 AI가 기사까지 작성하고 이를 리포팅하는 단계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기자가 텍스트를 입력하는 모니터 창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입력하자 곧 옆 모니터에서 KBS 아나운서 출신 김현욱 앵커 모습을 한 AI 앵커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발음했다. 이번에는 ‘주간조선’을 입력하니 김현욱 앵커가 또렷한 입 모양으로 “주간조선”이라고 정확히 발음했다. 왼쪽 화면의 텍스트 입력 창에 쓰는 글자 그대로 오른쪽 화면의 인물이 음성으로 표현하는 ‘AI 앵커’ 기술이었다.

인터넷 경제미디어 인포스탁데일리 이형진 대표는 20년간 경제방송기자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AI 앵커를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출발점은 ‘펜기자(글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기사로 방송 뉴스를 만들 방법이 없을까’였다.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따로 아나운서나 방송기자를 채용하는 건 무리였다. 그때 주변에서 조언해준 게 ‘AI 앵커’였다. 기자들이 쓴 기사를 그대로 구어체로만 바꿔 입력하면 곧바로 하나의 방송 리포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AI 앵커 얼굴 모델은 현재 활동 중인 김현욱 MC 겸 아나운서가 맡았다.

외국 방송국 AI 앵커 실전 배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지만 이미 일본과 중국 방송사에서는 AI 앵커가 정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NHK는 ‘뉴스의 요미코’라는 이름으로 AI를 실전 배치해 방송하고 있다. 다만 요미코는 실존인물이나 사람 등 ‘실사’가 아닌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또 지역 FM방송 5곳이 AI 목소리로 뉴스를 방송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중국 소후닷컴의 자회사인 소우거우가 중국 관영통신사인 신화통신과 손잡고 개발한 AI 아나운서를 선보였고, 중국 최대 검색 포털 서비스인 바이두도 현지 뉴스 서비스인 펑파이신문과 손잡고 사람의 이미지를 합성한 가상 아나운서 뉴스 방송 ‘자오완바오’를 서비스하는 중이다.

다만 신화통신의 AI 앵커는 한눈에 봐도 ‘사람이 아닌’ 티가 난다. 입 모양과 텍스트가 다소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포스탁데일리가 구현한 AI 앵커는 언뜻 보기에 실제 사람인지 AI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사람이 말할 때 나오는 눈 깜박임과 미세한 손동작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또 음절과 음절 사이의 발음이 뚝뚝 끊어지지도 않는다.

머니브레인과 인포스탁데일리는 AI 앵커 실전 배치를 위해 수개월간 많은 협의를 해왔다. 현재 머니브레인 AI 앵커는 바로 실전에 투입해도 되지만 정교한 경제용어나 설명을 위해 8주간 ‘훈련’(딥러닝) 과정을 거쳤다. 주어진 원고(기사·텍스트)를 입력하면 AI 앵커는 실시간으로 음성과 표정을 조절해가며 원고 내용을 전달한다.

또 머니브레인의 AI 기술로는 글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까지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심각한 내용의 기사라면 AI 앵커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반면 밝은 뉴스를 전할 때는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띤다. 이 대표는 “우리 매체 뉴스를 김현욱 앵커가 진행하니까 주변에서 ‘돈 많이 벌었나 보다’란 오해를 샀다. AI 앵커인 걸 눈치채지 못하고 우리가 직접 고용한 줄 착각한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AI 앵커 도입의 강점으로 ‘One source-Multi use(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를 꼽았다. 가령 취재기자가 텍스트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작성하면 AI 앵커를 활용해 이를 방송기사로 내보낸다. 그러면 그 정보에 대한 해설, 분석 기사를 내보내고 전문가들이 모여 토크쇼 형식의 토론 방송을 제작한다. 이 대표는 “경제 기사의 특성상 속보를 제외하면 기자 개인의 수준 높은 분석력과 정보력이 필요한데, AI 앵커로 인해 기자들이 취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대표는 “AI 앵커로 인해 인건비가 줄어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론사의 수익구조가 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의 사례들이나 앞으로의 언론환경을 예측해봤을 때 점점 더 많은 매체에서 AI 앵커를 찾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이 더 이상 글을 읽지 않고 모든 콘텐츠를 영상으로 소비하는 시대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미 유튜브와 같은 영상 플랫폼이 압도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이 때문에 글 쓰는 기자들의 설 자리도 좁아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AI 앵커로 인해 오히려 취재기자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영상의 시대라고 해서 지면 매체, 활자 매체들이 지상파 방송의 영상 콘텐츠를 무리하게 따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진 셈이다. 인공지능 앵커만 있다면 원하는 대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심도 깊은 단독기사를 쓸 수 있는 취재기자의 설 자리는 더 넓어진 것이다.”

현재 종합편성채널 일부 방송국에서 AI 앵커 도입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기존 인력들의 반발이 거셀 수 있기 때문이다. AI 앵커가 상용화되면 기존 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 탓이다. AI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우려해온 ‘인간 일자리의 실종’이 현실화되는 셈이다. 다만 AI 앵커가 활성화된다고 해서 기존 아나운서, 앵커들의 설 자리가 곧바로 없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실존인물을 AI 앵커로 활용해 영상을 만들 경우 한 건당 얼마씩 일종의 ‘출연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상권과 같은 ‘2차 저작권’의 개념이다. 이 대표는 “기술이 발달해서 방송국들과 더 많은 언론사가 AI 앵커를 활용하게 되면, 오히려 기존 아나운서와 앵커들은 앉아서 돈 벌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키워드

#미디어
곽승한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