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이 코로나19 의심환자의 진료를 마친 뒤 주변을 통제한 상태에서 이동시키고 있다. ⓒphoto 뉴시스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이 코로나19 의심환자의 진료를 마친 뒤 주변을 통제한 상태에서 이동시키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31번 확진자(여·59)가 수퍼전파자로 지목되는 분위기다. 31번 확진자는 지난 2월 18일 영남권에서 첫 번째로 확진 판명을 받은 환자다. 그는 2월 6일 교통사고를 당한 다음날 대구 새로난한방병원에 입원했는데 코로나19 감염 확진을 받기 전날까지 잦은 외부 활동을 이어갔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그가 접촉한 사람은 병원 관계자까지 포함해 1160명이다. 이후 그가 방문, 접촉했던 신천지예수교회 관계자 등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났고 2월 27일 오전 9시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1595명, 사망자는 12명을 기록했다. 질병관리본부 측은 “31번 감염자의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았고 초반 환자가 아닌 2차 감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지만, 여론은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31번 확진자에게 “이기적인 인간” “동네를 초토화시켰네” “몇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거냐” 등의 비난을 지속해서 쏟아냈다. 급기야는 그의 이름, 사진 등 신상정보를 캐는 것은 물론 법적 처벌 가능성까지 운운하기 시작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31번 확진자는 확진 판정을 받은 4일 만에 여러 언론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표명하기도 했다. “코로나 검사를 거부한 건 내가 아닌 보건소였다. 나도 코로나19에 걸린지 몰랐다. 온갖 억측이 난무하다 보니 자살충동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말할 자격 없다”는 등의 반발만 불러왔다. 한번 자리한 부정적 인식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이른바 ‘낙인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전염병 사태에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런 낙인효과가 뒤따랐다. 2012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확산되던 당시 국내 수퍼전파자로 1번, 14번, 15번, 16번, 76번 환자가 지목됐는데 이 중 14번(남·당시 35세) 환자는 대중으로부터 맹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총 81명을 감염시키고 이 중 16명을 숨지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서 ‘수퍼전파자’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14번 환자 때문이었다.

원초적 고통에 대한 불안이 비난으로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확산되던 당시엔 폐전문의사인 류젠룬(劉劍倫) 중국 광둥성 중산대 교수가 비난의 대상이 됐고, 더 거슬러 올라 1980~1990년대 미국에서 에이즈가 창궐하던 당시엔 첫 에이즈 환자였던 개탄 듀가스(Gaetan Dugas)가 대중의 입에 올랐다. 이들 모두 전염병의 피해자였지만, 여론은 그들을 가해자로 몰아세웠다. 개탄 듀가스가 ‘미국에 에이즈를 준 남자’라는 오명을 벗기까지는 3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낙인효과는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미국 전역에 2만8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전염병 ‘장티푸스’가 확산되던 당시엔 더 강하게 나타났다. 이 감염병에 걸린 최초 환자는 ‘메리 맬런(Mary Mallon)’이었는데, 그는 1900년부터 1907년까지 미국 가정집을 전전하며 요리사로 일하던 중이었다. 그가 일했던 가정집 구성원 대부분은 발열, 설사 등 장티푸스 감염 증상을 보였다. 결국 그가 갖고 있던 균은 51명을 감염시키고 이 중 3명을 숨지게 했다.

당시 그는 무증상 보균자였기에 자신이 병에 걸린지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냉혹했다. 그의 일대기를 담은 책 ‘위험한 요리사 메리’에 따르면 그의 전염력이 추후 정부와 학회 등을 통해 알려지자 대중은 그를 ‘장티푸스 메리’ ‘인간 장티푸스 균’ ‘기형적 변종’ 등이라 비난했다고 한다. 급기야 정부는 공권력을 휘둘러 그를 체포하고 섬으로 유배 보내기까지 했다. 피해자이자 환자였던 ‘메리 맬런’을 가해자로 내몬 억울한 처벌이었다.

100여년이 흐른 지금, 과도한 공권력 행사는 사라졌지만 전염병을 퍼뜨린 자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가혹한 셈이다. 정부는 이들을 ‘수퍼전파자’라 일컫고 대중은 이들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2015년 메르스 백서’에 따르면 수퍼감염자란 앞서 언급한 메리 맬런처럼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2차 감염자 수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킨 환자를 일컫는다. 수퍼전파자 지명과 관련한 구체적인 국내외 기준은 없으며 정부 등이 이를 자의적으로 판단한다.

불안을 극복할 희생양을 찾는다

의학계에선 비난에 앞서 전염병의 확산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다. 통상적으로 전염병 확산과 해소에 영향을 끼치는 건 크게 3개 요인, 즉 바이러스균과 개인의 특성,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이유에서다. 손장욱 고대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바이러스가 신체에 얼마만큼 침투하냐, 그 사람의 면역력이 얼마나 높냐, 어떤 환경에서 전파되냐 등에 따라 감염 성립 여부가 결정되는 것인데 여기서 환경적 요인이 주는 영향이 제일 크다”며 “유독 신천지교회에서만 왜 수백 명의 감염자가 나오는지 조사, 연구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라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최초의 전염병 환자 등을 탓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면역력, 청결유지 여부 등을 탓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대중은 왜 이들을 이토록 비난할까. 전문가들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혐오 등으로 번지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엔 자신의 문제를 외부로 돌리는 일종의 ‘투사심리’가 작용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체적 고통은 더 원초적인 불안이다. 투사심리는 더 강하게 일어난다. 불안을 극복할 희생양을 찾는 식이 되는 것이다. 확산세가 커질수록 비난은 더해진다”고 설명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경우 기존 일부 집단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도 한몫한 측면이 있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본래 신천지가 띠고 있는 이단 종교집단이란 성격은 사람들의 분노를 더 일으키는 배경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비난과 낙인은 감염자들의 자진신고를 위축시키며, 확진자 색출과 감염경로 파악 등에 어려움만 더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런 이유 등으로 메르스 대처 때와 달리 코로나19 수퍼전파자를 따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아직 역학조사가 완료되지 않은 것도 있고 국민적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어 명명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건당국이 현재 항바이러스제 치료 외에도 코로나19 확진자와 그 가족, 자가격리 경험자 등에 대한 심리 상담을 지원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전문가들은 “전염병은 해소될 수 있어도 개인이 대중으로부터 받은 비난과 낙인은 쉽게 치료될 수 없음을 반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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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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