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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N번방, 우리 옆의 괴물들… 모두가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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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01호]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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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N번방, 우리 옆의 괴물들… 모두가 공범이다

▲ 일러스트 허인회
김예나(가명)씨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김씨는 주간조선 2553호 기사 ‘버닝썬 사태는 불법촬영 스캔들이다’에서 자신의 디지털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김씨와 파혼한 전 남자친구가 지인에게 무작정 발송했던 성관계 동영상 때문에 고통을 겪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는 요즘 다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TV도 틀어본 적 없고, 인터넷 접속도 거의 안 해요. 온갖 곳에서 ‘n번방’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제가 겪었던 일들이 계속 떠오르거든요. 남들은 화가 난다고도 하고 비난도 하던데 저는 오히려 냉소적인 기분이 되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김씨가 겪어야 했던 비슷한 사건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방송인 정준영씨를 비롯한 유명 연예인들이 불법촬영과 집단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적도 있었다. 쏟아지는 불법촬영 관련 사건 뉴스는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다. 불법촬영 피해자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읽고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한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n번방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못 들은 척 밥만 먹고 있는데 누가 그러더군요. ‘어디서 이렇게 변태 같은 사람들이 튀어나왔대?’ 순간 아연해졌어요. n번방 가해자들이 갑자기 어디선가 등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계속 되풀이되어온 일이라고요.”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 불법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이른바 ‘n번방’ ‘박사방’ 사건에 대해 대중들이 가장 먼저 반응한 점은, 가해자가 26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또 n번방, 박사방 등에서 벌어진 잔인한 성착취 방법에 대한 경악도 잇따랐다. 언론에서도 비슷한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초유의 ‘성착취 영상 공유방’” “전례 없이 잔혹한 수법이 동원되고 전례 없는 규모의 가해자가 가담한 초유의 성폭력 사건” 같은 표현에서는 마치 n번방 사건이 이제껏 없었던 성범죄 유형으로, 전에 없이 악독한 범죄자들이 가담한 성범죄처럼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n번방은 갑자기 등장한 일탈적인 성범죄 사건이 아니다. 매일같이 벌어진 불법촬영 사건,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성희롱과 성폭력, 소라넷 같은 불법촬영물 공유 사이트, 일반 사용자가 접근할 수 없는 암호화된 네트워크인 다크웹에서 벌어진 성착취물 제작 사이트로 불거진 일들을 떠올려도 된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잊을 만하면 불거지던 카카오톡 단체채팅방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만 봐도 n번방 사건은 갑자기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껏 있어왔던, 그러나 더 규모가 크고 광범위한 사건인 것이다.
   
   가상화폐를 주고받으며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포하고, 더 가학적인 영상을 요구하는 이 시스템은 그간 n번방의 뿌리가 자라나도록 내버려둔 데에서 기원한다. 단지 몇 사람만의 범죄로 치부하고 이들을 구속·검거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또 다른 n번방 사건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동안의 사건들이 되풀이되며 규모를 키워왔던 것처럼 말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는 ‘디지털 성폭력과 남성 중심적 성문화’라는 글에서 ‘야동’이라는 단어를 먼저 짚고 넘어간다. 해외에서 상업적으로 제작되어 한국에서 불법적으로 유통 중인 음란물뿐 아니라 불법촬영물 등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야동’은 ‘야한 동영상’의 줄임말이다. 이 말이 쓰이던 초창기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야구 동영상’이라는 유머러스한 지칭어로 대신 쓰이기도 했다. 여기서 김 교수는 단호하게 지적한다.
   
   “이것이 농담이 될 수 있는 것은 남성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음란물의 존재는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야동 보기’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착각
   
   이미 ‘야동’은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시청하는 것만으로 지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대다수다. 실제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막 청년이 된 남자 연예인들이 출연해 야동 시청 경험을 이야기하며 격려받는 일은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야동을 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으로 인식되고 있고 오히려 권장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야동을 보고 공유하는 일은 남성 또래집단 내에서 ‘인정’을 받는 방법 중 하나다. 서울 청계천에서 불법복제된 비디오테이프를 소지하고 있던 남학생이 교실 안에서 ‘영웅’ 취급을 받던 일화부터 시작해,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는 유출 동영상을 유포하는 친구에게 시선이 쏠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어디서건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 경험이 없는 남성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마법사’라는 단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이가 먹도록 성 경험이 없는 남성을 조롱하듯 가리키는 말이다. 최경화 경북대학교 강사의 논문에서는 한 사례가 나온다.
   
   “어떤 연구참여자는 여자친구가 제안한 성관계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바보라고 놀림을 당하거나 성매매 집결지에 가서라도 성 경험은 빨리 해봐야 한다고 다그침을 당하기도 하였다. 섹스 경험을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경험이 없는 연구참여자를 조롱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여자 얘기만 나오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몇몇 사람만의 사례가 아니다.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를 보자. 일반 남성 응답자 1050명 중 성구매 경험이 있는 남성은 전체의 50.7%가 넘는데, 그중 절반 넘는 인원(53.8%)이 20대 초반에 처음으로 성을 구매했다. 그 동기도 ‘호기심’ 때문이라는 응답이 25.2%가 넘었다. 성적 욕구 해소를 위해서라는 응답도 15%에 달한다.
   
   이처럼 남성의 성욕은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한 보조적인 장치, 야동이나 성매매는 ‘권리’처럼 존재한다. 지난해 2월 정부가 해외 불법 음란물·도박 사이트 차단 방침을 내세우며 대대적으로 단속에 나섰을 때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던 것은 젊은 남성 네티즌들이다. ‘딸칠 권리’(자위할 권리)라는 단어도 등장했는데 음란물을 무조건 차단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게 이들의 논리였다.
   
   그런데 이렇게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남성의 성욕을 위해서 여성은 단지 대상으로 존재하기만 한다. 가장 ‘대중적인 방법’으로 성욕을 풀어낸다는 야동에서 여성은 도구처럼 다뤄진다. 야동은 절대 현실의 성애를 반영하지 않는다. 그저 쾌락과 더 큰 자극을 위해 여성을 다룰 뿐이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를 보자.
   
   매트 프래드는 책 ‘포르노 판타지’에서 미국 아칸소대학교 심리학과 안나 브리지스 교수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그는 미국 포르노 업계를 다루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 AVN에서 제일 잘 팔리는 것으로 집계된 포르노 250편 중 304건의 정사 장면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한 글을 읽어보자.
   
   “정사 장면 전체를 통틀어 총 3376건의 언어적·신체적 폭력이 발견되었고, 이는 평균적으로 1분30초마다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한다는 뜻이다. 장면의 약 88%에 뺨 때리기, 재갈 물리기, 머리채 잡아당기기, 엉덩이 때리기 등 적어도 한 건의 신체폭력이 등장했다. 전체 장면의 절반(48.7%)가량에 언어폭력이 등장했다. 정사 장면의 95%에서 폭력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폭력에 중립적으로, 또는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야동은 결코 중립적이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많은 연구자들은 포르노가 기존에 없던 성적 쾌락을 학습시킨다는 것을 지적한다. 한국에서는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 불법촬영된 수많은 야동이 유통되고 있지만 자연스럽고 심리적인 교감을 나누는 정사를 표현한 작품은 드물다. 페미니스트 철학자 윤지선씨는 이 부분이 바로 n번방으로 향하는 첫걸음에 서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금 n번방에 참여하는 남성들에게 단순히 여성의 벗은 몸은 섹슈얼한 느낌을 주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가학적인 행위가 동반되어야 비로소 쾌락을 얻습니다. 이 쾌락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입니다. 여성이 싫어하는 행위, 가학적으로 괴롭히는 행위 같은 것이 동반되었을 때 섹슈얼하다고 여기는 것은 일반적인 성애에서 얻는 심리적 교감과는 완전히 다르죠.”
   
   ‘박사방’의 운영구조를 보면 입장료가 비싸지면 비싸질수록 가학성의 정도가 커진다. 마치 자극의 역치가 점점 커지는 것처럼, 한번 강한 자극으로 쾌락을 얻은 사람은 더 낮은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다.
   
   

   놀이가 된 디지털 성폭력
   
디지털 기술은 야동의 가학성을 키우고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비디오테이프로 유통되던 시절 야동의 공유는 ‘아는 사람’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소통방식의 변화와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완전히 다른 방향의 성폭력을 만들어냈다. 인터넷에서는 음란물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그에 대한 비평이 이뤄진다. 촬영기기의 발달과 편집기술의 간소화는 심지어 누구나 불법촬영물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왔다. 앞서 얘기했듯 야동을 시청·공유하는 행동이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는 동시에 지위를 인정받는 행동이라면, 이제는 누구나 ‘남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김소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 소장의 연구 결과다.
   
   “남성들은 자신 혹은 타인이 불법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등을 사이트에 유포함으로써 이를 공유·소비했고, 칭찬과 부러움, 불법촬영물에 대한 평가와 같은 다른 남성들의 반응을 즐기는 가운데 쾌락을 획득했다. 성표현물 생산, 유통, 소비 간 경계가 흐릿해지고 불법촬영물의 공유가 남성들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자,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남성 연대는 대폭 확장되었다.”
   
   방송인 정준영씨 등이 구속돼 파장을 일으켰던 불법촬영 및 집단성폭행 사건의 내용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이 불법촬영물을 만들고 공유하는 과정에서는 흥겹고 즐거운 감정이 많이 표현됐다. “강간하자”라는 말에 “ㅋㅋㅋ”로 답하고 다양한 행동을 서로 지시하면서 불법촬영을 독려하는 과정은 ‘놀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단체 카카오톡 성폭력 사건에서도, 소라넷과 같은 불법 공유 사이트에서도 똑같이 있었던 일이다. 추정 회원 수 100만명에 달하는 ‘소라넷’에서는 합성 불법촬영물을 올리는 게시판이 버젓이 존재했다. 강간 모의 게시판도 있어 강간을 제안하고 실행하며 격려하고 공유를 권유하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소통하기도 했다.
   
   낯선 장면이 아니다. 이 모습이 그대로 n번방으로 옮겨진 것이다. 윤지선 철학자는 ‘모방’이라는 단어로 이 행동들을 설명한다.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에서 사촌 여동생을 불법촬영한 게시물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남성 유저들의 호응이 잇따랐지요. 기프티콘을 주겠다는 사람부터 ‘웨이브를 타고’ 다음 명절에 불법촬영을 예고하는 글까지 올라왔어요. 제작하고 공유하면서 모방이 일어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었던 겁니다.”
   
   이건 아주 특이한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3월 25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모든 대학에서 온라인 강의를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외대의 한 대학 교수가 강의시간 중에 카카오톡을 통해 음란물을 공유받는 장면이 포착돼 논란이 일었다. 강의 중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노골적인 음란물을 주고받던 카카오톡 채팅방이 화면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졌는데, 교수는 이를 두고 ‘실수’와 ‘오류’였다며 간략한 사과문을 올렸다. 이 영상물이 불법촬영물인지, 해외에서 상업적으로 제작된 것을 불법으로 공유하는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연대감과 흥미로 영상물을 공유하는 행동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작게는 지인들과의 단톡방에서, 크게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체계적인 대화방에서 불법촬영물을 놀이처럼 즐기기 시작하면서, 불법촬영물과 디지털 성폭력은 ‘돈’ 그 자체가 되었다. 소라넷 운영진이 17년간 사이트를 운영하며 100만명의 회원으로부터 8만개의 불법촬영물을 통해 얻은 수익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소라넷의 뒤를 이어 개설되었던 ‘AVSNOOP’ 사이트 운영자 안모씨는 46만개의 불법촬영물을 통해 수십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3월 25일 신상이 공개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집에서는 범죄 수익금으로 추정되는 1억3000만원의 현금이 발견되기도 했다.
   
   놀이와 산업 사이에서 불법촬영은 하나의 커다란 사회를 만들었다. 이 사회에서 여성은 점점 더 도구처럼 이용된다. 사실 아직까지 여성들이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고 있는지는 명확히 알지 못한다. 디지털 성폭력 실태를 연구해온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집계할 수 있는 디지털 성폭력 범죄 피해 통계가 지극히 일부분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집계하려면 직접 불법촬영을 행하는 것뿐 아니라 유포하고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법적 근거가 없지요. 그나마 개정 중인 법안들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등 여러 부서로 나뉘어 있어 통일이 돼 있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인용해보자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거해 불법촬영물 관련 범죄를 저지른 건수는 과거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2011년만 하더라도 관련 범죄는 2445건이었는데 2018년에는 7290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김소라 소장은 ‘여성 일상의 포르노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길거리, 지하철, 화장실, 탈의실 등의 공공장소에서 불법촬영이 무분별하게 발생함에 따라 성적 행위 속에 놓여 있지 않는 여성의 몸까지도 오로지 남성의 성적 쾌락 추구를 위해 분절되고 포르노화되었다”는 설명이다.
   
   윤지선 철학자 역시 동의한다. 그는 n번방과 같은 곳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촬영했거나 소지하고 있는 불법촬영물을 공유해야 하는 ‘규칙’을 짚었다. 디지털 성폭력이 이뤄지는 공간에서 남성들은 참여하거나 최소한 침묵이라도 해야 한다. ‘어깃장’을 놓으면 안 되는 것이다.
   
   “누군가 거기에서 ‘이건 아니야’라고 얘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불법촬영은 단지 성적인 쾌감만을 얻기 위해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자신들만의 연대를 공고히 하고 ‘진짜 남자’임을 서로 인정받기 위해 이뤄지는 경향이 큽니다.”
   
   
▲ 지난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묵인하고 방조해온 디지털 성폭력의 결과
   
   군대 문화는 이런 경향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많은 남성이 경험했듯이 군대에서 성 경험과 성에 대한 지식을 얘기하는 일은 고된 일상을 풀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일이다. 아무 말 않고 듣기만 하는 일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모두가 묵인하고 방조하는 사이 몇몇 남성들은 영웅적인 서사를 부여받았다. 남성들이 많이 드나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야동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을 두고 ‘가방끈이 길다’고 칭찬한다.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이 스스로를 ‘박사’라고 칭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n번방’ 운영자의 닉네임은 ‘갓갓’이다. 신을 뜻하는 단어 ‘god’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누가 진짜 남자인지 가려내고 추앙하는 과정에서는 조롱하고 모욕하는 대상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 대상은 여성이 된다. 디지털 성폭력이 일어난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 n번방과 같은 대화방에서는 여성은 ‘여자’가 아니라 ‘년’이나 성기로 대신 지칭된다. 거리낌 없이 그런 단어들을 쓰면서 연대감을 강화하고 서로를 격려한다. 정준영씨 등의 채팅방에서는 자신들의 행위가 범죄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n번방 같은 대화방의 운영진들이 잇따라 검거되고 추적되는 상황에서도 ‘쫄지마’라는 독려가 나온다. 이쯤 되면 이 연대는 단순히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남자’들끼리 지켜주고 보듬어주는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봐도 된다.
   
   다시 말하자면 n번방은 일부분이다. 남자라면 카카오톡으로 음란물 하나쯤은 공유해 볼 수도 있고, 지나가던 여성의 몸을 촬영해 ‘몸평(몸매평가)’ 한번은 해볼 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정보를 얻어 불법이지만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불법촬영물 공유 사이트나 대화방에 참여할 수도 있다. 만약 단순히 참여하기만 했다면 안심해도 좋다. 별다른 처벌 없이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참여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묵인해온 책임은 디지털 성폭력에 직접 참여했던 남성에게만 있지 않다. 디지털 성폭력이 발생해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는 사법체계, 범죄가 일어나고 화제가 될 때에만 강력하게 대처하는 듯 보인 집행기관부터, 일부의 일탈적인 행동으로 인식하고 넘겨온 무관심까지. n번방은 어느 한순간 벌어진 벼락 같은 사건이 아니다. “성의식부터 바꿔나가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라는 윤지선 철학자의 이야기처럼 n번방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키워온 괴물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일 뿐이다.


   

   참고문헌
   
   김소라(2018), ‘디지털 성폭력의 변화 양상과 ‘음란성(obscenity)’을 근거로 한 규제의 한계’, 아시아여성연구
   김소라(2019), ‘디지털 자본주의와 성폭력 산업’, 여/성이론
   김수아(2019), ‘디지털 성폭력과 남성 중심적 성문화’, 젠더리뷰
   장다혜·김수아(2018), ‘온라인 성폭력 범죄의 변화에 따른 처벌 및 규제 방안’,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총서
   최경화·박경·정숙정(2019), ‘남자 대학생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근거이론적 연구’, 사회과학 담론과 정책
   최란(2019), ‘온·오프를 넘나드는 남성연대와 성폭력’, 여/성이론
   매트 프래드, ‘포르노 판타지’, 시그마북스
   이나영 외,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 프로젝트P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시행하는 ‘성매매 실태조사’의 공정성에 관한 부분은 201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매매 실태조사 개선방안 연구’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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