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6월 1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 비정규직 임금체불 근절을 촉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6월 1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 비정규직 임금체불 근절을 촉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임금이 체불되었을 때 이른바 ‘바지사장’을 붙잡고 늘어져 봐야 큰 의미는 없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법적으로 바지사장은 임금체불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엄연히 대표이사 등으로 등기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니 황당한 일이다. 분명 우리 근로기준법에는 사용자가 임금을 체불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서 사용자란 사업주, 사업경영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 대표뿐만 아니라 대표를 보좌하는 인사담당자도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사용자의 개념이 폭넓게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대표로 등기가 되어 있는 바지사장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니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법원은 바지사장에게는 임금체불의 형사적 책임은 물론 민사적 책임 또한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바지사장은 사용자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법원이 바지사장을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대법원은 누가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인가를 판단할 때에는 계약의 형식이나 관련 법규의 내용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1999. 2. 9. 선고 97다56235 판결,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0다107071, 107088 판결 등 참조) ‘형식’보다 ‘실질’을 보라는 이야기다.

이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적용되는 논리다. 근로자인지 아니면 개인사업자에 불과한지 여부를 판단할 때 계약의 형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용역계약, 도급계약을 체결하였고, 회사에서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회사의 업무지시를 받아가며 일했다면 근로자에 해당할 수 있다. 실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학원강사, 채권추심원, 배달기사 등에 대해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퇴직금 청구 등을 인정한 판례가 다수 존재한다. 결국 법원은 근로자뿐만 아니라 사용자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형식이 아닌 실질을 따져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무엇인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왜냐하면 통상 많은 법률관계에서는 ‘형식’이 매우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계약서, 합의서에 적힌 문구의 내용이 무엇인지, 내 도장이 제대로 찍혀 있는지, 등기 명의는 누구로 되어 있는지에 따라 그 효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아무리 짧고 간단한 문구라 하더라도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그 권한과 책임의 소재가 바뀐다. 예컨대 ‘주식회사 OOO 대표이사 홍길동’으로 기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식회사 OOO 홍길동’으로 기재했다면, 회사의 행위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부동산 명의신탁 등과 같이 형식을 뛰어넘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노동법의 영역에서는 ‘형식’보다 ‘실질’이 중요시되는 경우가 많다. 근로자와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원청이라 하더라도 해당 근로자에게 지시, 감독, 명령 등을 했다면 사용자로 인정되어 각종 책임(퇴직금 등)을 부담할 수 있다.

사무장 병원, 임금체불 책임주체는 의사가 아닌 사무장

실제 지난 4월, 사무장 병원에서 발생한 임금체불에 대한 책임은 병원장이 아닌 사무장에게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8다263519 판결) 많은 언론에서 놀라운 판결로 보도했지만, 어떻게 보면 새로울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사무장)이 의료인을 고용하여 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신고를 하고 운영하는 것을 통상 사무장 병원이라 부른다. 이러한 내용의 약정은 의료법 제33조에 위반되어 무효이고, 해당 의료기관의 운영과 관련하여 얻은 이익이나 부담하게 된 채무 등은 모두 의료인(의사)에게 원칙적으로 귀속된다. 하급심에서는 바로 이 점을 고려하여 임금체불에 대한 책임은 사무장이 아닌 병원장에게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무장이 의사의 명의를 빌려 개설한 이른바 사무장 병원에 해당하고, 직원들이 형식적으로는 의사(병원장)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였지만 사무장이 실질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면서 직원들을 채용하였으므로, 사무장이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관련한 형사사건에서도 사무장에게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된 반면, 병원장(의사)에게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결국 바지사장과 다름없는 자의 경우 임금체불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형식적으로는 사업주(사장) 등이 아니라 하더라도 회사의 실권자로서 실제 경영자라면 임금체불 등 노동법에 따른 책임을 진다고 볼 수 있다. 실제 형식상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였으나 실질적인 사주로서 회사를 사실상 경영하여 온 자에 대하여 임금체불의 책임을 인정한 경우도 존재한다.(대법원 2002. 11. 22. 선고 2001도3889 판결) 각종 법적 책임, 경제적 리스크, 자격 내지 면허 요건 잠탈(사무장 병원 등)을 위해 바지사장을 두지만, 결코 노동법에 따른 책임은 쉽게 피해갈 수 없다. 각종 규제를 잠탈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에서 바지사장을 세우는 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운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바지사장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결과 실무적으로는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바지사장을 내세울 정도라면 다른 재산 명의 또한 타인 명의로 해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신용이 불량할 가능성도 존재하는데, 만약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체의 사장이 이런 사람이라면 임금체불 소송에 승소하더라도 집행이 어려울 수 있다.(물론 자력이 없는 자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기도 하므로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 아울러 바지사장을 내세우고 잠적을 하는 경우 법적 대응이 매우 늦어질 수 있다. 특히 개인 입장에서 사장을 바지사장으로 볼 수 있을지, 누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노동청에 고소, 진정을 하면 조사과정에서 누가 실질적인 사용자인지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 판단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시간도 그만큼 지연될 수 있다. 임금체불 금액이 소액이라면 누가 사용자이든 간에 체당금 제도를 활용하여 정부로부터 그 금액을 보전받을 수 있지만, 임금체불 금액이 크다면 이조차도 여의치 않게 된다.

바지사장이 아닌 실질사장이 임금체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은 타당하다. 하지만 막상 실무상으로는 누가 바지사장이고 누가 실질사장인지 분명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여러 문제로 근로자가 임금을 보전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바지사장과 실질사장이 연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정재욱 변호사ㆍ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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