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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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하늘나라 임금님에게는 태양 아들이 열 명 있었다. 매일 한 명씩 교대로 빛의 수레를 몰고 인간 세상의 하늘길을 달렸다. 그런데 어느 날 장난기 발동한 열 명의 아들이 한꺼번에 자신들의 수레를 몰고 나란히 인간 세상의 하늘에 등장했다. 갑자기 하늘에 뜬 열 개의 태양. 그 빛과 열이 너무 강해지자 지상의 초목들은 말라 죽고 인간들은 고통에 시달리게 됐다. 어수선한 세상을 틈타 온갖 요괴와 괴수들이 판을 쳤다.

뒤늦게 이 상황을 알게 된 하늘나라 임금님은 ‘예(羿)’라는 신하를 불러 사태를 수습하도록 했다.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예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열 개의 태양에 분노를 느꼈다. 명궁인 그가 태양을 향해 활을 겨누자 태양은 차례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아홉 개까지 처치됐을 때, 남은 하나의 태양은 정신이 번쩍 들어 황급히 수레를 몰아 하늘로 숨었다.

하늘 임금님은 정작 아들을 아홉이나 잃게 되자 화가 치밀어 예를 인간세계로 추방했다. 땅에 내려온 예는 무수히 많은 악귀와 괴수를 쫓아내고, 사람들을 잘 도와주며 평화롭고 풍요한 세상이 되도록 노력했다. 사람들은 예를 ‘하늘 사람’으로 받들어 섬겼다.

이 이야기는 고대 중국의 신화집 ‘산해경(山海經)’을 비롯한 여러 전통 설화집에 실려 있는 ‘예’의 전설 전반부 이야기다. 산해경은 서기 300년대에, 주로 황허 유역인 동북지방 민간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다수의 기록자가 보태면서 완성한 ‘옛날 얘기 책’이다. 예의 전설은 그중에서도 길고 소상하게 전해지는 이야기에 속한다.

뜬금없이 중국의 옛날얘기를 소개한 이유는 이런 얘기들이 갖는 기능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20세기의 마지막 고전학 거장으로 꼽히는 죠프리 커크(Geoffrey S. Kirk)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수는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신화, 민담 등이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한 집단기억이라고 주장했다.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후대의 기억에 남기고 싶을 때, 이야기 형식을 빌어 입에서 입으로 전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옛날이야기 중엔 실제 일어났다고 보기엔 다소 비현실적인 부분들도 많다. 커크 교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실제 상황을 그대로 전하기 어려울 때 상징적 묘사로 대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테일이 사라진 상징적 이야기는 사람들이 실제 일어났던 일들을 추상적으로, 뭉뚱그려 기억을 하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아직 그 원리를 과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시절 발생한 복잡한 자연현상의 경우나, 정치적·사회적 이유 등으로 인해 현실을 그대로 말하지 못할 경우 상징으로 에둘러 표현한다. 18세기 독일 낭만주의 대표 저술가였던 노발리스(Novalis)는 당시 독일의 사회적 혼란을 현실 그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동화를 써서 상징에 빗대는 방법을 택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위에 소개한 ’예(羿)‘의 전설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비현실적 요소가 많은 이 얘기에는 어떤 현실이 감추어져 있을까?

이번 회차에서는 태양이 지나치게 강렬해져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부분을 조명해보려 한다. 지상 모든 생명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태양이 어떨 때는 오히려 생명체에게 가혹한 존재가 된다는 모티브는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태양신 아폴론의 철없는 아들이 빛의 수레를 서툴게 몰다가 너무 지상으로 가까이 내려와 온 세상의 수목이 말라 죽고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얘기다. 메소포타미아 길가메쉬 신화에서도 태양이 폭군 길가메쉬를 도와 엄청난 규모의 삼림파괴에 앞장선다.

이 난폭한 태양이라는 상징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커다란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앞으로도 이 연재를 통해 계속 나오겠지만, 이것은 ‘지구자기장’이라는 지구환경 시스템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왼쪽)지구자기장의 기본 구조, 출처 www.loctier.com 비디오 발췌 / (오른쪽) 태양풍이 발생, 전자파가 지구 쪽으로 향하면 지구자기장이 변형되면서 전자파를 막거나 회절시키는 원리. 출처 www.sciencelearn.org.nz
(왼쪽)지구자기장의 기본 구조, 출처 www.loctier.com 비디오 발췌 / (오른쪽) 태양풍이 발생, 전자파가 지구 쪽으로 향하면 지구자기장이 변형되면서 전자파를 막거나 회절시키는 원리. 출처 www.sciencelearn.org.nz

위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를 둘러싼 거대한 도넛과 같은 구조가 지구자기장이다. 이것은 강한 자기에너지가 작용하는 공간인데, 그 에너지가 외부 우주로부터 들어오는 유해 전자파를 차단해서 지구를 보호한다. 지구자기장이 있어서 지구는 생명이 번성하는 행성이 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지구자기장은 때때로, 그리고 지역에 따라 심하게 약해지기도 한다. 하필 그럴 때 태양 표면에서 지구 방향으로 전자파 폭풍이 발생하면 그 해로운 에너지가 지상으로 쏟아지게 된다. 태양빛이 가혹할 정도로 강렬하게 느껴지며, 사람도 힘들고 식물도 잘 자라지 못해 식량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된다.

▶지구자기장과 태양풍에 대한 비디오 보기

태양 전자파는 사람들의 뇌파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뇌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때문에 이런 에너지가 지구상으로 대거 쏟아져 들어올 때는 사람들의 정서가 불안정해지고 공격적인 성격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힘을 믿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설치는 일이 많아진다. 소위 ’난세(亂世)‘다. 이 부분을 다시 과학으로 들여다보자.

(왼쪽) 지난 6만 년간 지구자기장 밀도 변화. 출처 R. Muscheler 외 2005, “Geomagnetic Field Intensith during Last 60000 Year” / (오른쪽) 게노그래픽 지도 중 동아시아 부분. 출처 IBM 리서치
(왼쪽) 지난 6만 년간 지구자기장 밀도 변화. 출처 R. Muscheler 외 2005, “Geomagnetic Field Intensith during Last 60000 Year” / (오른쪽) 게노그래픽 지도 중 동아시아 부분. 출처 IBM 리서치

왼쪽 그래프는 지난 6만 년간 지구자기장 변화를 역추적하여 표시한 것이다. 지구자기장의 밀도가 낮아졌다가 급격히 치솟는 지점은, 때마침 지구자기장이 약해진 틈으로 태양 전자파가 많이 유입됐던 상황을 보여준다. 자기장 밀도가 낮아진 틈으로 들어온 전자파의 영향으로 지구에서 강한 자기에너지가 생성, 급속히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붉은 타원 1에서 5만 년 전 무렵 그렇게 됐던 것을 알 수 있다. (붉은 타원 2에 대한 얘기는 다음 회에 이어서하려 한다.) 그리고 5만 년 전이라는 시점은 한반도로부터 유입한 사람들의 흐름이 중국 동북부에 정착을 끝낼 무렵이다. 오른쪽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류의 이동 경로 중에서 한반도를 거쳐 중국 내륙에서 끝나는 M174번의 노정이다.

신화에 과학적 해석을 덧입힌다면, 예의 전설은 실제로 태양으로부터 강한 전자파가 들어와서 사람들이 살기 힘들었던 시절, 막강한 힘과 올곧은 마음으로 세상의 어려움을 평정했던 어떤 존재를 기억하려는 얘기일 수 있다. 예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고 알려졌다. 중국 신화학자 중에서는 그가 ’동이(東夷)족‘, 즉 한반도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들이 있다. 5만 년 전은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니까 나라 경계는 없었을 테다. 하지만 8만 년 전 형성된 흑요석 광맥은 있었을 것이다. (*흑요석과 고대 권력의 관계에 대해선 앞 연재 기사 “고구려인들의 강력한 한 방, 흑요석의 정체”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2&nNewsNumb=002610100031 참고 )

5만 년 전 당시는 빙하기가 절정이었고 농사가 아직 시작되기 이전의 수렵채취 단계였다. 예는 사악한 존재들을 물리친 영웅인 동시에,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스승으로 전해진다. 한반도 북부에서 가져온 흑요석 무기로 세상을 평정하고, 흑요석 도구를 사용해서 더 효율적으로 사냥과 야생식물 채취·가공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은 아니었을까? 이 옛날얘기가 3세기 채록됐다고 치면, 적어도 그때까지 수만 년 동안, 중국 동북부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존재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퍼져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주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변하고 그에 따라 지구와 지구상 인간들의 삶도 변한다. 다음 연재에선 ‘예’의 전설 후반부의 이야기에 집중해 한반도 역사를 풀어보겠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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