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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아의 한반도 역사, 환경으로 다시 보기]  설화에 압축된 권력집단 주도권 다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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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14호] 20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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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한반도 역사, 환경으로 다시 보기]설화에 압축된 권력집단 주도권 다툼의 역사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옛이야기, ‘예(羿)의 전설’ 1막과 2막을 2회에 걸쳐서 보았다. 존경받고 사랑받는 멋진 영웅으로 그려진 ‘예’라는 캐릭터는 지금으로부터 5만년 쯤 전, 아마도 지구자기장 격변으로 인한 생태적·사회적 혼란을 피해 긴 여정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했다가 북쪽, 이어서 북동쪽으로 이동해 중국 내륙으로 들어온 이주집단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난 회에서도 봤지만, 이 전설의 마지막 이야기는 ‘예’가 흔들리며 몰락해가는 내용이다. 예가 아름다운 아내 항아를 서왕모에게 보내 불사약을 구해오게 했지만, 항아는 그걸 갖고 달나라로 도주하고, 그 결과 원래 불사의 천신이었던 예는 보통 사람들처럼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의 제자 봉몽에게 복숭아나무 몽둥이에 맞아 죽는다.
   
   ‘곤륜산’에 산다는 서왕모는 지금의 쿤룬산맥 기슭에 정착했던, 아마도 모계사회였을 법한 인간집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왕모는 중국 설화에서 가장 근원적인 여성 캐릭터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다. 그녀와 연관검색어 1위쯤 될 만한 키워드는 ‘복숭아’다. 실제로 복숭아는 쿤룬산맥이 있는 중국 서부 산지가 원산지인 것으로 밝혀져 있다.
   
   외모와 성격에 대해서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호랑이 이빨과 꼬리를 가진 기이한 외모에 포악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복숭아처럼 달콤하고 섹시한 외모와 성격의 여성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동양신화 전문가 이화여자대학교 정재서 교수에 의하면, 이것은 그녀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시각이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기에는 아마도 중국의 한족(漢族)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을 서쪽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가, 한족 중심의 중국 사회가 안정적으로 형성되면서, 또 그 사회가 뚜렷하게 남성 중심적이었기 때문에, 존재감 있는 신화 속 여성은 그저 예쁘고 만만한 사람으로 표현하게 됐다고 추정한다는 것이다.
   
▲ 오래된 중국 설화집 ‘산해경’에 묘사된 서왕모. 호랑이 이빨과 꼬리를 하고 곤륜산에 우뚝 서서 하늘과 세상을 연결하고 있다.

   서왕모의 상징이 복숭아라는 점에 주목하자. 예는 복숭아나무 몽둥이에 맞아 죽는다. 이것은 복숭아로 대표되는 서쪽 산지 출신 집단이, ‘예’라는 영웅으로 상징되는, 한반도로부터 유입된 집단을 쓰러뜨렸던 상황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것일 수 있다. 봉몽이 죽인 것은 맞지만 무기로 복숭아나무 몽둥이를 썼다. 봉몽 자신이 복숭아나무 집단 출신이 아니라 그 집단의 무력을 빌어서 예를 퇴출시킨 과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잠시 뒤에 보자.
   
   항아는 서왕모에게서 불사약을 받자 영생할 욕심에 둘 다 먹어버리고 달나라로 도망간다. 이것 역시 길고 복잡하며 많은 사람들이 얽힌 과정을 축약해서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불사약을 자기가 독차지해서 예를 취약한 존재로 만들면서 도망갔다는 것은, 항아가 서왕모로부터 ‘예’를 도와주라고 지원을 받았지만 예의 반대편에 붙어서 그를 몰락시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예의 반대편은 어떤 집단이었을까? 앞서도 소개했던 IBM 내셔널지오그래피 공동 연구가 만든 ‘제노그래픽 프로젝트 지도’를 과거 지구자기장 변화와 연동시켜 보면 한 줄기의 움직임이 보인다.
   
▲ (왼쪽)지난 6만 년 간 지구자기장 변화와 (오른쪽)동아시아 지역 인류 이동을 보여주는 DNA 분석 지도. 출처: 이진아

   왼쪽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약 2만 년 전부터 5000 년 전까지의 1만5000년 동안은 지구자기장 밀도가 전체적으로 약한 가운데 변동이 심했다. 이 그래프를 IBM의 지도와 통합해서 보면, 이럴 때는 특히 남성 중심의 집단이 먹고살기 힘든 고향을 떠나 멀리 새로운 땅을 개척하러 가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지도는 약 1만 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남쪽으로 이동한 집단(M122)이 현재의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경계지역을 거쳐서 황하 중류 유역까지 진출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이 지역은 한반도 출신의 M174 집단이 다른 주류 집단들과 혼인관계를 맺으며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곳이다. 새로운 집단 M122는 아마도 상당히 오랜 기간 몸을 낮추고 더부살이를 하며 세를 키워갔을 것이다. 이 집단의 성장에 위기의식을 느낀 M174 집단은 인척관계인 서쪽 쿤룬산지 지역 사람들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안 그래도 M174 집단 주변의 여러 집단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불편했던 서쪽 산지 출신들은 오히려 반대편인 새로운 집단에 붙어 M174 집단을 제압하고 주도권을 빼앗아버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을 설화의 언어로 번역해보자. 봉몽(새로운 세력인 M122)은 뛰어난 무술 솜씨를 가지고 있었으나 예(기존 세력인 M174)를 따라가지 못해, 그를 처치하고 제1인자가 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예는 불로장생, 영원히 잘 살고 싶은 욕심에서 항아(서쪽 산지 출신의 혼인집단)를 서왕모(서쪽 쿤룬산지 거주 집단)에게 보내 불사약(아마도 지원군 혹은 식량?)을 요청하지만, 불사약을 확보하고 난 항아는 마음이 바뀐다. 이미 예의 바람기 등으로 불편해진 관계를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녀는 불사약을 독차지하고 안전한 곳, 달나라로 피신한다. 여기서 불사약이라는 상징은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바뀐다. 둘 다 서쪽 쿤룬산지의 서왕모와 연계된 상징이다. 봉몽은 복숭아나무 몽둥이를 준비해두었다가 예가 방심한 틈을 타서 때려죽인다.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설화는 실제 있었던 일을 상징적으로 전하는 것이라는 사실, 이때 그 상징은 집단이 개인으로 바뀌고, 몇 백 년, 몇 천 년이라는 긴 시간이 축약되어서 한 사람의 일생처럼 그려진다는 사실은 학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예의 전설을 보면, 지구시스템이 격변하는 시기에 동아시아 지역에서 살기 위해 목숨을 건 긴 여정에 올랐던 집단들이 서로 얽히면서 자리를 잡고 또 새로운 세력으로 대체되어 가는 역동적인 드라마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리즈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그것이 한반도의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다는 문제의식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특별히 조명하기 위해서도 예 전설의 마지막 남은 디테일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항아가 예를 배신하고 ‘달나라’로 도망갔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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