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매립지로부터 1㎞ 거리에 있는 ‘사월마을’ 전경. 주택들 사이로 폐기물처리공장들이 난립해 있다. ⓒphoto 이성진 기자
수도권매립지로부터 1㎞ 거리에 있는 ‘사월마을’ 전경. 주택들 사이로 폐기물처리공장들이 난립해 있다. ⓒphoto 이성진 기자

인천 서구 왕길동의 ‘사월마을’. 수도권매립지로부터 약 1㎞ 떨어진 이 마을엔 50여가구만이 남았다. 1990년대만 해도 바다와 수풀로 둘러싸인 살기 좋은 동네였지만 현재는 비산먼지와 쇳가루가 날리는 험한 동네가 돼버렸다. 주택들 사이로 폐기물 중간처리 업체가 우후죽순 들어섰고 주변 새소리는 작업장에서 새어 나오는 굉음에 뒤섞인 지 오래다. 장선자 전 사월마을환경비상대책위원장은 “주민들 살기만 더 어려워졌다”며 “시에 관련 대책을 요구해왔지만 변한 건 없다”라고 말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2017년 8월부터 2년간 사월마을 환경오염·주민건강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서는 사월마을이 ‘사람이 살기엔 부적합한 곳’이라고 규정했다.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와 중금속성분인 납, 망간, 니켈, 철 농도가 인근 지역보다 2~5배 높았고, 소음은 모든 곳에서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것이 과학원의 주된 분석이다. 주민 125명 중 15명은 암 진단을 받았고 이 중 8명은 숨지기까지 했다. 주민들 대다수는 우울증과 불안증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사는 수도권매립지와 마을 환경오염 간의 인과관계까진 증명하지 못했지만 주민들은 자신의 건강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마을의 한 주민은 “수도권매립지가 조성되고 나서부터 이와 관련한 폐기물 처리업체가 집 앞 10m 거리까지 들어서기 시작했다”며 “수도권매립지로 향하는 덤프트럭이 드나들 때나 영종도 쪽에서 바람이 불 때면 그렇게 하늘이 뿌옇게 보일 수가 없다”라고 푸념했다.

주민들이 지적하는 수도권매립지는 1992년 인천 서구에 조성된 1685만㎡ 면적의 광역 폐기물 처리시설을 말한다. 서울·경기·인천 3개 시도와 환경부는 1987년 ‘김포지구 해안매립지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해 이 매립지를 유치했다. 당초 매립지는 2016년까지 운영될 계획이었으나 2015년까지 대체매립부지를 찾지 못해 사용기한을 2025년까지 연장했다. 현재 사월마을 주민들은 이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월마을 환경이 개선되려면 수도권매립지가 2025년 이후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서울·경기·인천이 쓰레기 처리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수년째 마땅한 대체부지를 찾지 못해서다. 이런 상황에 최근 인천시가 “이제 쓰레기는 각자 알아서 처리하자”고 밝히면서 지자체 간 신경전은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향후 인천이 서울·경기 쓰레기를 거부할 경우 수도권 쓰레기 문제는 지자체 간 소송전으로 이어질 거란 관측도 제기된다. 앞서의 사월마을 주민은 “인천이 또 수도권 쓰레기를 받아내기 시작하면 사월마을 같은 곳은 더 늘어날 거다”라고 말한다.

현재 사용 중인 수도권매립지 3-1매립장 전경. 2025년 매립 종료를 앞두고 서울·경기·인천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photo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현재 사용 중인 수도권매립지 3-1매립장 전경. 2025년 매립 종료를 앞두고 서울·경기·인천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photo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대체매립지 확보 실패

사월마을 주민들의 우려는 2015년 서울·경기·인천 3개 시도와 환경부가 합의한 ‘수도권매립지 정책 4자 협의체 합의서’에서 비롯되고 있다. 당시 작성한 합의문은 3개 시도가 2025년 전까지 대체매립지확보추진단을 구성·운영하여 대체매립지 조성 등 안정적 처리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대체매립지 조성이 불가능하여 대체매립지가 확보되지 않을 경우 수도권매립지 잔여부지의 최대 15%(106만㎡) 범위 내에서 추가 사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은 5년 동안 대체부지를 찾지 못하면 현 매립지에 계속해서 쓰레기를 매립한다는 이야기다.

3개 시도는 2017년 대체부지를 찾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인천 서구갑을 지역구로 둔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실시한 연구용역 결과 매립 후보지로 인천의 2곳, 경기도 6곳이 적정지로 꼽혔다. 하지만 4자 협의체는 이를 참고용으로만 검토 중이며, 가장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서울 지역이 후보지에서 배제되는 등 불공정성 시비만 보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2019년 기준 서울·경기·인천의 폐기물 반입률은 각각 42.3%, 37.1%, 20.6%이다.

대체매립지확보추진단 논의 내용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 10월 21일까지 대체매립지와 관련한 논의를 지속했다”며 “최종 합의가 도출되면 그때 수도권매립지 운영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수도권매립지 폐기물 반입량 증가는 포화 시점을 앞당기며 대체매립지 조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 따르면 2015년 366만4832t을 기록한 총 폐기물 반입량은 2018년 374만957t으로 지속해서 늘다 지난해 처음으로 336만8000t으로 감소했다. 공사 관계자는 “매립장 종료 시기가 가변적”이라며 “경기가 좋아지면 쓰레기 발생량이 확 늘어 매립지 포화 시기가 2025년에서 2024년으로 당겨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부지를 선정, 시민 설득까지 거쳐 최종적으로 대체매립지를 조성할 시간을 현실적으로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2015년 때처럼 또다시 인천 수도권매립지 사용 연장안에 무게가 실린다는 이야기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지난 10월 15일 자체 매립지를 조성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photo 인천시청
박남춘 인천시장이 지난 10월 15일 자체 매립지를 조성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photo 인천시청

인천시 “쓰레기 알아서들 처리해라”

이에 인천시는 지난 10월 15일 ‘자체 매립지’ 조성 의사를 밝히며 서울·경기권 쓰레기는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사월마을 환경오염을 비롯해 침출수로 인한 인근 어민 피해, 대규모 악취 등의 2차 피해로 수도권 쓰레기를 더 연장해 받기는 부담이란 판단에서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이날 “당사자인 서울·경기, 환경부는 4자 합의문만을 믿고 대체매립지 공모에 들어오라는 압박만 하고 인천시민의 고통은 외면한다. 더이상 내몰리지 않겠다. 서울과 경기에 촉구한다. 쓰레기는 각자 처리하자”라고 밝혔다.

인천시 측은 박 시장이 직접 총괄하는 ‘수도권매립지종료 TF팀’을 구성한 후 지난 10월 27일 서울·경기·인천 내 64개 시군구 지자체에 “관할구역 폐기물을 적정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공문까지 보냈다.

인천시의 이 같은 조치는 지금까지 없던 강경책이다. 시의회에선 이런 대응이 역효과를 불러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여당에서부터 제기되고 있다. 인천시의회의 한 여당 의원은 “서울과 경기가 바로 ‘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도 자체 매립지 조성하겠습니다’라고 하겠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5년밖에 안 남은 시간에 자체 매립지를 선정하고 관련 공사까지 가능할지는 따로 떼서 봐야 한다. 시민 동의를 얻는 데도 시간이 걸릴 거다. 매립지 종료는 고사하고 인천시가 코너로 몰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여당 의원은 “합의문 내용을 벗어나는 조치다. 소송이 제기될 수도 있다. 법적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2015년 수도권매립지 연장이 결정됐을 당시 인천 시민사회단체 10여곳은 ‘4자 합의 효력 정지’를 요구하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법원은 원고가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해당 소송을 각하했지만, 이번은 다를 거라는 게 인천시 안팎의 주된 시선이다. 합의 당사자인 서울시와 경기도가 인천시를 상대로 ‘합의 위반’이라며 직접 원고로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인천시 측은 벌써부터 이에 대한 대비책도 강구하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인천시청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인천시청 관계자는 “5년 후 발생할 소송도 대비하고 있다. 변호사들로부터 자문을 받고 있으며 관련 자료 검토를 중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경기는 인천의 명확한 입장표명을 기다리는 중이다. 4자 협의체는 대체매립지 공모를 위한 공모안 논의를 끝내고 공모 주체 구성에 대한 결정만을 남겨놓은 상태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4자 협의체로 그대로 갈 건지 혹은 인천시가 자체 매립장 조성 이후 공모에 참여하지 않을지 등에 대해 결정해야 한다. 아직 인천은 수도권매립지 조성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천이 자체 매립지 조성 계획을 밝히면서도 법적 문제 등을 우려해 4자 협의체 탈퇴 여부에 대해선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규모 분산형 매립시설 검토 등 필요

전문가들은 중앙정부의 개입으로 현실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승희 경기대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지금의 수도권매립지 유치 건은 3개 시도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지자체 간 싸움만 부추길 거다.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서 중재해야 한다. 도시계획 때부터 관련 시설 건립을 고려해야 했는데, 최근 논의되는 서울시 신규 주택 공급 과정에서 함께 논의해보는 것도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모든 쓰레기를 수도권매립지 한 곳에 묻자는 건 폐기물 관리 안전성을 위협하는 조치이기도 하다”라며 “소규모의 분산형 매립시설을 수도권에 다수 조성하는 것이 주민 갈등을 덜어내는 현실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평했다.

인천시의 강경 대응을 두고선 성급한 판단이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앞서의 인천시의회 의원은 “사실 쓰레기매립지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매립을 완료한 1매립장과 2매립장은 현재 녹지, 골프장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사월마을을 포함한 그 주변 관리다. 주민 민원과 환경 정비 책임은 인천시와 서구청에 있었다. 수도권매립지 운영 유무로 이를 서울·경기에 전가하는 건 적절치만은 않다”고 말했다. 인천시 측은 올해 들어 뒤늦게야 사월마을을 ‘2040년 인천도시기본계획’의 일환으로 개발할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수도권매립지를 조성할 당시 인천의 쓰레기를 함께 책임지기로 한 것이 서울·경기였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승희 교수는 “1990년대 인천시도 쓰레기를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가진 게 없었다. 자금이 풍부했던 서울시, 땅이 있던 경기도와는 달리 자금도, 땅도 없었던 거다. 이런 이유로 당시 인천이 간척지를 조성해 쓰레기를 받아들이기로 한 측면도 있다. 관련 운영 재원은 서울·경기가 출연했다”고 말했다. 과거 사정이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독단적으로 자체 매립지를 조성해 수도권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는 건 이기주의적 행정이란 것이 그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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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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