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안철수연구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안철수 원장.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12월 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안철수연구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안철수 원장.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에이씨…” “아, 찰스!”

9월 13일 오후 5시8분. 약 500명이 상주하고 있는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실 이곳저곳에서 갑자기 한숨 섞인 탄식이 들려왔다. ‘삐링삐링’ 하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알림음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울리고 난 직후였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날의 마감을 끝내고 막 한숨을 돌리고 있던 차였다.

“<알림> 유민영입니다. 안철수 원장-박원순 서울시장 만남 관련, 메일 참고해 주세요.”

‘왜 하필 마감 다 끝내놓고 나니까 이러는 거야?’ 입이 튀어나온 기자들이 이메일을 열어보지만 역시나 자세한 내용은 없다.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으셔서 알려드린다’며 유민영 대변인 명의로 “안 원장이 오늘 오후 3시 50분부터 4시 25분까지 30여분간 서울시청을 방문해 박원순 시장과 환담했다”는 내용이 짧게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때부터 잡히지 않는 실체와 온갖 정치적인 해석을 곁들여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입씨름이 시작됐다.

수백 명의 기자들은 동시에 자괴감도 느꼈다. 이틀 전인 9월 11일에도 오후 4시가 다 된 시각에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이 끝난 뒤에 안 원장이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는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이 일방적으로 날아들어 왔다. 그때까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모든 언론은 기사 계획과 편집 방향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정치권의 모든 관심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쏠렸고, 9월 12일과 13일에도 유민영 대변인을 비롯한 안 원장의 측근이랄 수 있는 사람은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전화를 돌려 근황을 체크했지만 단 한 명의 기자도 안 원장과 박 시장의 회동 사실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다.

안 원장을 담당하는 언론사 정치부의 기자들, 즉 ‘마크맨’은 안 원장을 영어 이름에 빗대 ‘찰스(Charles)’라는 애증 섞인 별칭으로 부른다. “요즘 찰스 때문에 죽겠다”가 서로의 안부 인사가 된 지 오래다.

안 원장이 여의도 정치권에 등장한 것은 2011년 9월 1일이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두 달여 앞둔 이날 밤 한 인터넷 매체에 안 원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다음날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예정돼 있던 안 원장과 ‘시골의사’ 박경철씨의 ‘청춘콘서트’에는 대한민국 모든 매체의 기자들이 몰린 듯했다. 강연장까지 걸어가는 10여분 내내 인파에 떠밀린 채 안 원장의 뒤통수에 코를 박고 향긋한 샴푸 향기를 맡아가며 “시장에 출마할 거냐”는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날도 안 원장은 “결정하게 되면 내가 직접 말할 것”이라며 “나는 ‘호박씨’와 거리가 멀고 결심하면 그 자리에서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원장은 대선 출마가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1년째 ‘찰스’와 숨바꼭질

이때부터 ‘찰스’와 ‘찰스 마크맨’들의 숨바꼭질은 1년 넘게 현재진행형이다. 당시 안 원장의 서울 여의도 집 앞에 기자들은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밤새 ‘뻗치기’를 시작했다. 밤늦게 퇴근해서 들어오는 안 원장은 기자들을 본체만체 침묵으로 대응하기 일쑤였고, 새벽에 출근하는 안 원장은 밤새 기다려 노숙인 몰골을 한 기자들에게 “할 말이 없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 사라지기 일쑤였다. 급기야 안 원장은 10월에 용산의 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여의도 집보다 더욱 삼엄한 경비시설 탓에 기자들은 더 이상 집 앞으로 접근도 불가능해 그나마 뻗치기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안 원장은 휴대전화를 직접 받지 않는다. 정치권의 이슈로 떠오르기 전 안철수연구소 일을 하던 안 원장은 언론사 산업부 기자들과 직접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선 주자 반열에 든 이후로 그의 직통 전화번호를 아는 기자는 없다. 측근들은 “이메일을 써보라. 모든 이메일을 안 원장은 읽고 계신다. 혹시 답장이라도 오면 특종 아닌가?”라며 충고를 해주었지만 몇 번의 이메일에도 기다리던 답장은 오지 않았다. 비서진을 통해 “박 기자님, 안 원장님이 이메일 잘 받으셨답니다” 같은 확인 전화를 받은 것에 그저 감사해야 했을 뿐이었다. 오늘도 수원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건물 부근이나 용산 주상복합 아파트 근처에는 늘 안 원장을 우연히라도 마주칠까 기다리며 오매불망 초췌한 몰골로 서성이는 기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1년 만에 드디어 명함 교환

안 원장은 지난해 박경철, 김제동, 법륜 스님 등과 함께 ‘청춘콘서트’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자들은 주로 대학교 강당을 따라다니며 안 원장을 취재했다. 취재랄 것도 딱히 없다. 포토존에서 안 원장을 기다리며 한두 가지 질문이라도 해보려는 기자들을 경호원들은 매몰차게 밀쳐냈고, 안 원장도 딱히 포토존에 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주로 강연장의 대학생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들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 치는 게 취재의 전부였다.

작년 9월 경북대를 끝으로 ‘청콘’을 마치자 이번엔 그의 멘토로 알려진 법륜 스님을 따라 전국 강연장을 따라다녔다. 기자 신분을 숨기고 마치 방청객인 양 “안 원장은 대선에 출마하시냐”고 물어보면 “스님한테 안철수 질문은 하지 마세요”란 ‘즉문즉설’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해를 넘겨 올 1월 안 원장은 2주간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을 만나고 구글 본사를 찾아 에릭 슈미트 최고경영자를 만났다. 운이 좋은 언론사의 기자들은 안 원장을 따라 미국 출장을 갔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기자들은 또다시 출입국 시각에 맞춰 인천공항을 찾아 안 원장의 샴푸 향기를 맡으며 예의 “대선 출마 결심을 하셨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도의 대표적 상징인 광주 전남대와 대구 경북대를 찾아 마지막으로 강연을 한 안 원장이 더이상 ‘강연 정치’를 하지 않자 기자들도 속이 탔다. 때마침 7월 안 원장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된다는 소식은 기사에 목말랐던 ‘찰스 마크맨’들 사이에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때부터 기자들과 출판사의 전쟁이 시작됐다. 데스크들은 “한 시간이라도 먼저 책을 입수하라”는 지시를 내려보냈고,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안 원장과 철통 보안을 지켜가며 원고가 사전에 유출되지 않도록 물 샐 틈 없는 방비를 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쇄소를 ‘습격’하는 수밖에 없다고 기자들은 생각했지만 수많은 인쇄소 중 한 곳을 콕 집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한 신문사의 문화부 출판담당 기자가 자신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해 인쇄소에서 원고 일부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고, 나머지 정치부 기자들은 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출판사에서도 교대로 직원들을 인쇄소 곳곳에 배치해 밤새 경비를 세웠다고 하니, 안 원장 측의 철통 보안 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지난 8월 30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의 학위 수여식에서 대학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안 원장이 이날도 여지없이 자신들만의 포토존을 만들고 대기하고 있던 마크맨들이 가여웠는지 잠깐 건물 밖으로 나와 일일이 기자들과 악수를 하며 명함을 교환했던 것이다. 1년 전 안 원장을 처음 따라다니며 숱한 기자들이 자신들의 명함을 안 원장에게 건넸지만 안 원장이 자신의 명함을 공식적으로 맞교환하기는 이날이 처음이었다. 대선을 100여일 앞둔 시점이라 그랬던 것일까. 안 원장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고, 일부 감격에 겨운 기자들은 안 원장의 명함을 책상 앞에 부적처럼 붙여놓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안 원장 취재의 가장 큰 어려움은 그가 기성 정치인이 아니라는 데 있다. 국회의원처럼 주군의 심중을 헤아리는 보좌진을 여러 명 둔 것도 아니라서 안 원장의 내심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검사 출신 강인철 변호사나 금태섭 변호사,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비서관 출신의 유민영 대변인, ‘시골의사’ 박경철씨 역시 제각각 만나보면 입이 무겁기가 안 원장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측근들도 모두 ‘안철수 스타일’인 것이다.

차곡차곡 정치 행보 밟아온 안철수

지금 생각해보면 안 원장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조용히 대선 출마를 위한 행보를 해온 것 같다. 올 3월 중국 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북송 반대 단체들이 항의집회 시위를 하고 있을 때 굳이 평소와 달리 면바지와 운동화, 낡은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찾아 “인권은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가치”라는 메시지를 던지거나, 파업 중인 방송사에 힘을 실어주는 인터뷰를 하고, 5월 갑자기 유민영 전 춘추관장을 대변인으로 영입한 것만 봐도 일반 IT업계 CEO의 상식적인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 이후 민감한 소재의 용산참사를 다룬 독립영화를 관람한 뒤 이를 봤다고 기사를 써달라며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을 보내오는 것이나 지방 각지를 돌며 여성, 장애인, 사회복지사, 40대 가장, 첨단산업 연구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하는 것은 영락없는 대선 주자의 행보였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는 “지방 돌아다니며 이야기 듣는 게 일반적인 교수가 할 일은 아니지 않으냐”는 한마디 말로 상황을 정리하기도 했다.

8월 23일에는 지방 행보의 일환으로 춘천 시니어클럽을 찾아 노인들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안 원장 측은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이곳도 사전에 일절 연락을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찾아가 해당 기관과 일부 노인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노인들과 안 원장이 현장에서 어르신 일자리 문제 등을 놓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간담회를 진행했다기보다는 다소 꿰맞춘 듯한 ‘정치공학적 냄새’가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와서 안 원장이 “정치는 내가 감당할 게 아닌 것 같습니다”라며 불출마 선언을 하면 그가 이민을 가야 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1년간의 시간들을 “다 거짓말이었다”며 무효화할 수 없을 만큼 안 원장은 그간 정치 한복판에 깊숙이 들어와버린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안 원장이 대선에 드디어 출마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몇몇 측근들 역시 “이제 대선 출마 선언만 남았다”고 하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안철수 대통령’의 대한민국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하지만 1년간 안 원장을 따라다닌 마크맨 입장에서도 여전히 그 세계는 내게 안 원장의 모호한 어법만큼이나 아직 안갯속인 것 같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박국희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