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지리한 단일화 협상을 이어오던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지난 11월23일 갑작스레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안 후보는 서울 종로구 공평동 캠프에서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단일화 방식은 누구의 유불리를 떠나 새 정치와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의 뜻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여기서 더 이상 단일화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의 말대로 이날 돌연 사퇴를 선언하기 직전까지도 야권 단일화 협상은 국민의 뜻, 심지어 야당 지지자들의 뜻에도 부응하지 못했다. 특히 문재인 후보 측의 중재안에 대해 고집스럽게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던 안철수 후보를 향해 “처음부터 협상에 뜻이 없었고 ‘치킨게임’을 하려고 한 게 아니냐”(진중권 교수)는 등 거센 비난이 가해졌다. 안철수 후보로서는 이런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것이 결국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연출하며 사퇴하는 주요한 배경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새로운 정치와 정당 혁신을 들고나왔던 ‘정치신인’ 안철수가 두터운 기성정치의 벽을 뚫지 못한 셈이 됐다.

‘양보냐 포기냐’는 궁금증이 남을 만큼 돌발적인 사퇴로 막을 내렸지만, 어쨌든 야권의 숙원이었던 단일화는 이뤄졌고 앞으로 최대 관심사는 문재인 단일 후보가 야권의 기대대로 승리를 담보해낼 수 있느냐에 모이게 됐다.

사실 야권 인사들은 2011년 새해 벽두부터 ‘야권 단일화’를 승리의 주문 처럼 되뇌어왔다. 당시는 안철수 후보는 물론 문재인 후보도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이었지만 “야권 단일 후보를 내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해 왔다. 정치권을 포함한 시민사회 대부분 인사들까지 ‘야권 단일화=승리’라는 도식을 진리처럼 믿어 왔다.

문 후보 측과 안 후보 측 지지자들 모두를 하나로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야권이 주문처럼 외운 또 하나의 경구가 바로 ‘아름다운 단일화’ ‘감동이 있는 경선’이었다. 하지만 이는 11월 6일 양 후보의 첫 회동 이후 단일화 실무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 물 건너간 이야기가 돼 버렸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겠다”는 양 후보의 공언과는 달리 양측이 한 치 양보 없는 벼랑 끝 전술로 ‘치킨 게임’을 하면서 ‘아름다운 단일화’ ‘감동이 있는 경선’은 공언(空言)이 돼버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적잖은 감정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문 후보 측 협상팀장이었던 박영선 의원은 안 후보 측과 협상을 마치고 돌아가며 트위터에 “14시간 동안 똑같은 얘기만 반복해서 듣고 이제 들어갑니다. 아!….”라고 쓰며 우회적으로 고충을 토로했다. 김기식 의원은 협상 내용이 왜곡돼 언론에 보도됐다며 “새벽에 배달된 신문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라고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단일화?… 감정 상할 대로 상해

협상 과정에서 받은 충격은 상대적으로 민주당 인사들이 더 커 보였다. 안캠프는 ‘기득권 세력’ ‘구태 정치 세력’ ‘쇄신 대상’이라고 민주당을 지칭해왔고, 협상이 안풀리면서 안 캠프의 상당수 인사들이 “원래 민주당이 그런 조직 아니었느냐”며 비판했기 때문이다. 문 후보 측은 이에 대해 “이게 입만 열면 떠들었던 새 정치냐” “안 후보 측이야말로 구태 세력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고 맞비난을 하기도 했다. 단일화 룰 협상 과정에 관여했던 민주당의 핵심 의원은 “진절머리가 난다. 새 정치를 표방한다면서 결국은 이런 게 정치인가 생각하면 환멸이 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문 후보 측은 그러면서도 후보 단일화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간의 단일화 때 노 후보 측 협상 대표였던 신계륜 민주당 의원은 전화 통화에서 “단일화 자체가 차선이지 최선은 아니다”면서도 “달리 길이 없기 때문에 모욕과 수치와 수모를 겪더라도 단일화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독으로 박근혜 후보하고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달리 방법이 없죠. 이길 수 있는 길이 이것밖에 없고 이 길이 무너지면 안 되니까 필사적이 되는 겁니다.”

1+1=3 되나

이런 상처투성이의 단일화가 막을 내린 지금 상황에서 가장 큰 관심은 문재인 후보 진영이 안철수 지지세력을 얼마나 흡수해 내느냐이다. 당초 야권의 기대대로 단일화가 ‘1+1=3’이라는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문재인 안철수 지지세력이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는 게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양측의 갈등, 캠프 사람들 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안철수 후보의 돌연한 사퇴 과정으로 인해 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안철수 후보 사퇴 직후 통화를 한 안철수 캠프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거의 멘붕 상태이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았다”며 “저쪽과의 아픈 기억만 남은 상태에서 당장은 우리가 저쪽을 흔쾌히 도울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후보직 사퇴 직후 눈물바다가 됐던 안철수 캠프 내부의 분위기는 대체로 “(문재인 후보를 돕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반응이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 기자회견에서 “이제 단일 후보는 문재인 후보”라며 “문재인 후보에게 성원을 보내달라”고 말했지만, ‘안철수의 속내’를 둘러싸고 다른 해석도 나온다. 안 후보가 기자회견에서 “새 정치의 꿈이 잠시 미뤄진 것” “제게 주어진 시대와 역사의 소명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이 단일화 과정에서 쌓인 민주당에 대한 앙금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최대 관심은 이번 대선이 아니라 5년 후 대선이 될 수 밖에 없고, 문재인 후보를 돕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목표로 하는 ‘새 정치’를 위해 일정한 거리두기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문재인 후보 측으로서는 제1의 승리 전략이 ‘안철수 끌어안기’가 될 수 밖에 없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안 후보를 최대한의 예우로 모실 것‘이라며 ”어떤 자리 문제가 아니라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것이 문 후보의 생각“이라고 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안 후보가 민주당에 대한 앙금이 쌓여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문재인 후보를 도울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많다. 며칠 마음을 가라앉힌 뒤 어떤 형태로든 문 후보를 도울 것이라는 기대다.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 정권 교체가 중요하다고 말해 왔고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 야권의 기대주라는 이미지가 굳혀진 이상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서도 본선에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그간 이번 대선 승패와 관계 없이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고 ”앞으로 20년간 정치인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말도 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본격적으로 돕더라도 단일화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002년 단일화 당시 노무현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한 뒤 포장마차에서 러브샷을 하는 등 ’감동적인 장면‘이 빠진채 안 후보의 일방적 사퇴로 단일화가 이뤄진 만큼 단일화가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문 후보 측 김부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물론 아름다운 단일화, 감동 있는 경선을 했다면 보수세력은 그야말로 일패도지(一敗塗地·싸움에 패하여 땅에 떨어진다)했을 것이다. 그렇게 폼나게 양쪽이 손잡았으면 정말 한국 사회의 주력군이 일어나는 기회가 됐을 것”이라면서도 “그래도 일대일 구도가 되면 빡빡하긴 해도 한번 해볼 만한 선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박국희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