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에 공개한 괌 미군기지 사드 포대. ⓒphoto 괌 미 36비행단
한국 언론에 공개한 괌 미군기지 사드 포대. ⓒphoto 괌 미 36비행단

전자파 유해론이 또다시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번에는 정부가 경북 성주에 배치하겠다고 밝힌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문제다. 사드의 레이더에서 방출되는 강력한 전자파가 지역 주민의 건강은 물론이고 농사까지 망쳐버릴 것이라고 한다. 특히 성주 군민의 절반 이상이 재배하는 특산물인 참외가 문제라고 한다. 전자파에 노출된 참외는 유전적 변화가 생겨서 잘 자라지 못하고, 그런 참외를 먹은 사람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의 일방적인 사드 배치 결정에 성이 나버린 성주 군민들에게는 몹시 거슬리는 고약한 괴담이다.

사드가 지역 주민이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정부의 해명은 너무 안이한 것이었다. 사드 기지가 400m 높이의 산꼭대기에 설치될 것이고, 레이더는 지상에서 5도의 각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미군 홍보자료 수준의 내용을 앵무새처럼 옮기는 정부 관료의 해명을 신뢰하기는 쉽지 않았다. 미군 자료에 소개된 ‘지상인원통제구역’ 100m와 ‘비통제인원제한구역’ 3.6㎞의 차이도 분명하게 구별해주지 못하는 정부의 어설픈 설명이 문제였다. 특히 사드 기지가 들어서면 본인이 직접 안전성을 확인해주겠다는 국방장관의 주장은 괜한 객기였다. 메르스를 확실하게 막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보건복지부 장관의 볼썽사나웠던 허풍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가 국민에게 위험한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무총리의 너스레도 오히려 성난 민심을 자극해버렸다.

결국 다급해진 정부는 국내 패트리어트 기지와 미군이 운용하는 괌의 임시기지까지 언론에 공개하는 극약 처방을 선택했다. 다행히 두 곳 모두에서 측정된 전자파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전자파 안전기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특히 괌의 경우 레이더로부터 1.6㎞ 떨어진 평지에서 간이측정계로 측정한 전자파는 최대치가 방통위 기준의 0.007%에도 미치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 지상 400m의 성주 포대에 설치할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정부가 군사기밀까지 포기하면서 확인된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전자파 유해론의 원조 폴 브로더

우리가 전자파의 유해성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였다. 어느 재미동포가 당시 미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던 전자파 유해론을 뒤늦게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 계기였다.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었다. 선진국인 미국에서 심각한 논란이 되고 있는 전자파 유해론에 대해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순진한 주장이었다. 어쨌든 파장은 컸다. 결국 요란스러운 언론 보도에 시달리던 정부는 전자파 유해론을 과학적으로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1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물론 아까운 세금만 축내버린 일이었다.

사실 전자파 유해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0~1980년대 미국에서였다. 미국 ‘뉴요커’ 기자였던 폴 브로더가 원조로 알려져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정보기관에 설치된 대형 마이크로파 안테나를 본 것이 문제였다. 마이크로파가 무엇인지 몰랐던 그는 거대한 안테나에서 방출되는 전자파가 인체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성 기사를 썼다. 그는 1987년 뉴요커에 ‘마이크로파가 원숭이 등 영장류의 중추신경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라는 기사를 썼다.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엉터리 기사였지만 놀라울 정도로 심각한 논란이 벌어졌다. 폴 브로더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몰래 감춰놓았던 놀라운 비밀을 캐내 소비자들의 안전을 지켜준 ‘영웅’이 되었다. 뉴요커를 사직한 그는 전자파 유해론을 부추기는 대중서와 강연으로 미국 남부의 휴양지에서 넉넉하고 호화로운 노년을 보낼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었다.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할 수도 있다는 폴 브로더의 선정적인 주장은 전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엉뚱한 부담과 피해를 남겼다. 불안해진 소비자들의 성화를 견디지 못했던 미국 정부는 1991년 ‘정부가 전자파의 유해성을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법을 제정했고, 무려 250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했다. 물론 미국 정부도 폴 브로더가 주장했던 유해성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고 아까운 세금만 낭비해버렸다. 미국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캐나다·영국·프랑스·일본 정부도 적지 않은 예산을 낭비해야만 했다. 우리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시행착오 결과 오늘날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와 세계보건기구(WHO)는 물론 미국의 과학원·국립암연구소·물리학회 등 과학 분야의 권위 있는 단체들도 전자파 유해론이 과학적으로 아무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억측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전자파 유해론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전자파 유해론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끔씩 휴대폰의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한다.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질병의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암은 물론이고 신경정신과적 증상의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하루에 몇 시간씩 휴대폰 통화를 하는 사람의 생활을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장시간의 휴대폰 통화는 상당한 스트레스의 요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질병이 모두 휴대폰의 전자파 때문이라고 우길 수는 없다.

각국의 세금만 낭비한 유해론 검증

병원이나 비행기 이착륙 과정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는 것도 전자파 유해론을 떨쳐버리기 어렵게 만든다. 휴대폰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전자파가 유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직접적인 위험이 아니라 정밀 전자장치에 간섭을 일으킬 가능성 때문이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많은 항공사가 비행기 이착륙 과정에서 전자기기의 사용을 제한하던 규정을 폐지하고 있다. 비행기의 이착륙 과정에서 사용하는 정밀 전자기기에서 간섭에 의한 오작동 가능성이 충분히 낮은 것으로 파악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전자파가 인체에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강한 전자파는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게 된다. 특히 파장이 짧은 ‘X-선’과 ‘감마선’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런 전자파는 인체를 구성하는 원자나 분자를 파괴해버릴 수 있다. 방사성 물질에서 방출되는 ‘방사선(放射線)’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X-선과 감마선은 엄격한 법과 제도를 통해 안전 관리를 한다. 법으로 정한 자격을 갖춘 경우에만 그런 전자파를 취급할 수 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자외선의 경우에도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여름철 태양에서 쏟아지는 자외선이 너무 강할 경우에는 정부에서 ‘자외선 경보’를 발령한다. 피부에 암을 일으키기도 하고 눈의 시신경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전자파인 가시광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히 ‘빛’이라고 부르는 가시광선이 적당한 밝기일 때는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해준다. 그러나 지나치게 밝은 빛은 우리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심지어 빛에 노출되는 시간도 문제가 생긴다. 밝은 빛을 장시간 쪼이게 하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고문의 방법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동물과 식물도 빛의 밝기와 노출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대도시의 밤을 화려하게 밝혀주는 가로등과 광고용 조명이 ‘빛 공해’로 지탄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유전자 변화 가능성은 제로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적외선·마이크로파·라디오파(RF)·초저주파(ELF)가 ‘전자파 유해론’ 논란의 핵심이다. 이 범위에 포함되는 전자파는 양자역학적인 이유 때문에 인체를 구성하는 원자나 분자를 직접 파괴하지는 못한다. 그런 전자파를 구성하는 ‘광자(光子·photon)’의 에너지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파의 세기가 충분히 강하면 피부가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양자역학적으로 적외선은 분자의 떨림(진동) 운동을 강화하고, 마이크로파는 분자의 회전 운동을 강화한다. 라디오파와 초저주파도 충분히 강할 경우에는 피부에 광자의 에너지가 전해져서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있다. 그러나 피부의 온도 상승 이외의 변화 같은 심각한 문제는 확인되지 못했다. 전자파의 전기장과 자기장이 신경 전달에 미치는 효과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광자의 에너지가 작은 전자파라고 해도 지나치게 강하면 피부에 화상(火傷)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주방에서 사용하는 전자레인지에서 사용하는 마이크로파가 외부로 새나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자레인지의 유리창에 금속망을 설치하고 전자레인지 문에 간단한 스위치만 붙이면 그런 위험은 쉽게 예방할 수 있다. 매우 강한 마이크로파를 사용하는 군사용 레이더, 방송국 송신용이나 인공위성 통제용 안테나의 경우에도 미리 정해놓은 비교적 좁은 범위의 ‘통제구역’만 벗어나면 피부의 화상을 비롯한 피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군사용 레이더의 경우에는 기지의 보안을 위해 통제구역과 제한구역을 더 넓게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드 레이더에 사용하는 X-밴드(8~12GHz)의 마이크로파가 참외 농사에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괴담이다. 참외에 강한 마이크로파를 직접 쪼인다고 해도 참외의 유전자(DNA)가 변화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X-밴드의 마이크로파 광자로는 DNA의 화학결합에 영향을 줄 수 없다. 고작해야 참외를 전자레인지에 넣었을 때처럼 열에 익어버릴 뿐이다. 더욱이 넓은 참외밭을 망칠 정도로 마이크로파를 쪼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찾아내는 사드 레이더 본래의 임무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키워드

#이슈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