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송성각 당시 한국콘텐츠진흥원장(왼쪽)과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중구 문화창조벤처단지를 방문했다. 문화창조융합벨트에 대한 정책금융지원 등 부처 간 지원 강화를 위한 MOU를 체결하는 자리였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송성각 당시 한국콘텐츠진흥원장(왼쪽)과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 중구 문화창조벤처단지를 방문했다. 문화창조융합벨트에 대한 정책금융지원 등 부처 간 지원 강화를 위한 MOU를 체결하는 자리였다. ⓒphoto 뉴시스

최순실에게 미르재단이 있다면 차은택에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부터 ‘창조경제’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차은택은 ‘창조경제’ ‘문화창조’의 세부계획을 설계했다고 의심받는 인물이다. 창조경제추진단장 겸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활동했다. 문화융성위원회 위원도 맡았다. 그가 속한 조직에서 제안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정책으로 실행됐다. 주 소관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직접 정책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산하 기관들이 담당하기 마련이다. 산하 기관 중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진흥원)이 정책 집행의 실무를 주로 맡았다. 진흥원은 2009년에 설립됐다. 명칭 그대로 ‘콘텐츠 진흥을 위한 모든 업무’를 다룬다. 소관 범위는 상당히 넓다. 출판, 영화 등의 영역부터 게임, 음악까지 실질적으로 문화와 관련된 전 분야를 다룬다고 보면 된다. 각종 전시회 개최부터 공모전, 교육까지 다양한 사업을 벌인다. 임직원 수는 올해 10월 기준으로 266명. 서울 상암동에 본원을 뒀다가 2014년 전라남도 나주로 옮겨 갔다.

한 해 만에 832억 늘어난 차은택 예산

2014년 12월, 진흥원 원장에 송성각씨가 임명됐다. 한때 오랜 기간 차은택과 ‘갑을 관계’였던 인물이다. 송씨가 제일기획 상무로 재직하던 기간, 차은택은 제일기획의 광고를 여러 건 수주했다. 송씨가 원장에 취임한 후 진흥원의 예산은 40% 증가했다. 송씨는 원장 재임 시절 기자회견에서 “공공기관 중 유례없이 예산과 인력이 늘었다”고 밝혔을 정도다. 구체적으로는 2015년 2478억원에서 올해 3310억원으로 증가했다. 832억원가량 늘었다. 늘어난 예산은 대부분 ‘문화창조융합벨트’ 관련 예산이다. 국민의당 송기석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올해 기준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위해 배정된 예산은 약 904억원이다. 이 중 760억원이 진흥원에 배정됐다.

주간조선은 진흥원의 3년치 지출내역을 입수했다. 송씨의 원장 취임 후 진흥원이 지출한 내역 중 미심쩍은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동계스포츠’ 관련 지출과, 둘째 ‘문화창조’ 관련 각종 지출이다. 동계스포츠 관련 지출은 대부분이 ‘문화기술 연구개발’ 사업 지원금 명목으로 나갔다. 공모로 지원 대상을 정했는데, ‘머큐리포스트’와 부경대학교, 세항, 빛샘전자가 참여한 컨소시엄이 지원을 받게 됐다. 머큐리포스트는 송씨가 진흥원으로 오기 직전인 2014년 12월까지 대표로 있었던 기업이다. 차은택이 만든 엔박스에디트와 법인의 주소가 같다. 사실상 차씨의 회사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해당 컨소시엄이 받아간 금액만 21억원이 넘는다. 앞으로 집행될 금액까지 합치면 총 45억원 규모의 사업이다. 문제는 이들이 제안한 기술이 얼마나 실용성이 있는가이다. 이들이 개발 중인 기술은 아이스링크 바닥에 LED 디스플레이를 설치하는 기술이다. 아이스쇼 등 공연을 연출할 때 쓰일 수 있는 기술이다. 이들은 제안서에 ‘개막식이나 피겨스케이팅 갈라쇼 등 평창올림픽 행사에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고 썼다. 빛샘전자는 ‘평창올림픽 빙상 LED 전광판을 양산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설명은 다르다. 경기나 행사에 이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 공식 경기장은 규격과 요건이 엄격히 정해져 있다. 조명이나 부속 설치물이 빙질과 경기장 전체 온도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올림픽 개막 직전 해에 올림픽 개최국에서 국제빙상연맹(ISU) 국제대회를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종의 ‘올림픽 리허설’이다. 대회 전 과정을 올림픽과 똑같이 치른다. 내년 2월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리는 ISU 피겨스케이팅 4대륙선수권대회가 그 예다. 올림픽 리허설까지 이제 3달 남짓한 시간이 남았는데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올림픽에 적용하겠다고 제안한 컨소시엄에 45억원을 지원하는 셈이다.

문화창조융합 관련 예산 중 눈에 띄는 항목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문화기술 연구개발’이다. 올해에만 약 477억원을 배정했다. 문화산업 전반의 수준 향상을 위해 분명 필요한 예산이다. 문제는 예산의 집행과 성과 평가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자칫 ‘선심성 예산 나눠 주기’로 끝날 우려가 있다. 진흥원뿐 아니라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도 같은 성격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비효율적으로 집행될 가능성도 있다. 문화기술 연구 관련 문체부의 내부 보고서(2013)에도 ‘정책 수립-기획-평가, 관리 시스템의 연계가 부족하다.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대목이 있다. 올해 진흥원의 집행 내역을 보면 재단법인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DIP)에 문화기술 연구개발비로 33억원 이상을 지원했다. DIP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거의 매해 대구시 의회에서 ‘예산 낭비’로 지적을 받고 있는 기관이다. 연구개발 예산을 국고로 지원받지만 실적이 없다는 이유다. 2014년에는 ‘5년간 민간에 단 4건의 기술만 이전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차은택 예산 위해 관광진흥기금 전용

문화창조융합 관련 예산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 번째 항목으로 ‘문화창조벤처단지’(이하 벤처단지) 조성 예산이 있다. 벤처단지는 문화산업 전반의 벤처기업들이 입주할 수 있는 단지다. 일종의 창업 지원 사업인 셈이다. 서울 청계천로에 있는 한국관광공사 건물을 활용한다. 한국관광공사(이하 관광공사)는 2014년 12월 강원도 원주로 이전했다. 올해 집행내역을 보면 벤처단지 운영을 위해 진흥원에서만 200억원 이상을 집행했다. 애초 관광공사는 서울 사옥을 ‘한류 관광 허브’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K팝, 드라마, 뷰티 등 한류 콘텐츠의 구심점을 만든다는 발상이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다는 점과, 부근에 호텔·백화점 등이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판단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던 것이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상이 급부상하면서 ‘창업 허브’로 무게중심이 옮겨 갔다. 원래 구상은 3~4층에 전시관과 한류 상품 상점을 설치하는 것이었지만, 문화창조융합본부 차원에서 ‘한식’을 주제로 3~5층에 한식문화체험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관광공사는 애초 구상대로 서울 사옥을 활용하지 못하게 됐을 뿐 아니라 관광진흥개발기금 중 145억원까지 내주어야 했다. 문체부가 기금 용도 변경을 신청하자마자 기획재정부는 승인했다. 관광산업 진흥에 쓰여야 할 기금이 벤처단지 조성에 쓰였다. 국가 예산까지 전용해가며 ‘차은택 예산’을 늘렸다는 얘기다. 송기석 의원은 “차은택 예산은 효율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초부처적으로 예산을 몰아줬다는 특징이 있다”며 “특히 진흥원의 사업은 보통 2년이나 3년 단위로 진행되는 데 반해 차은택 사업으로 의혹을 받는 사업은 모두 송 전 원장의 임기 내에 끝나도록 1년6개월 안에 사업이 종료된다. 지금이라도 관련 예산에 대한 철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키워드

#이슈
하주희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