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로 내년 12월로 예정돼 있던 대선의 조기(早期) 실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내년 1〜2월에 탄핵 결정을 내린다면 그로부터 60일 이내인 3〜4월에 대선을 치르게 된다. 헌재가 최장 180일 심리 기간을 채워 내년 6월 초에 탄핵을 결정할 경우엔 대선이 8월에 실시될 예정이다. 이르면 3~4월 ‘벚꽃 대선’ 또는 8월 ‘찜통 대선’을 겨냥해 대권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대선 판도는 여권 후보로 꼽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야권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11월 말 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총장과 문재인 전 대표가 17%로 공동 선두였고 다음은 이재명 성남시장(16%) 등의 순이었다. 한국갤럽이 12월 9일에 발표한 조사도 비슷했다. 반기문 총장과 문재인 전 대표가 각각 20%로 공동 선두였고 이재명 시장이 18%였다. 다음은 안철수 전 대표 8%, 안희정 충남지사 5%, 박원순 서울시장·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등이 각각 3%였다. 최순실 파문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이전과 비교하면 대선 판도는 크게 바뀌었다. 지난 10월 갤럽조사에선 반 총장이 27%였지만 최근엔 20%로 두 달 만에 7%포인트 급락하면서 최순실 파문의 불똥을 피하지 못했다. 야권 주자 중에서도 촛불 정국 이후 안철수 전 대표와 박원순 시장은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당이 지난 4월 총선에서 38석을 획득하며 3당 체제를 구축할 당시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은 20%에 달했지만 최근엔 8%로 가라앉았다. 작년 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을 때 지지율 17%로 여야 통틀어 1위를 차지했던 박 시장도 최근 갤럽조사에선 3%에 그쳤다. 반면 갤럽조사에서 지지율이 1~2%에 불과했던 이재명 시장은 촛불 정국에서 연이은 강경 발언으로 눈길을 끌면서 11월 조사에서 8%, 12월 조사에선 18%로 껑충 뛰어올랐다.

반기문, 늘어난 비토층 극복이 과제

대선이 3자 대결로 치러질 것을 가상한 여론조사 결과도 변화 폭이 컸다. 최순실 파문 이전인 지난 9월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3자 대결 지지율은 반 총장 39%, 문 전 대표 28%, 안 전 대표 15% 등이었다. 하지만 12월 갤럽조사에서는 문 전 대표가 36%로 상승했고 반 총장이 31%로 하락하면서 선두가 바뀌었다. 안 전 대표는 17%로 큰 변화가 없었다. 촛불 정국에서 문 전 대표가 득점을 올렸고 반 총장은 실점을 허용한 셈이다. 3자 대결에서 연령별로 반 총장은 50~60대 이상, 문 전 대표는 20~40대에서 우세해 각각 여야(與野)의 전통적 지지층이 기반이었다. 화이트칼라와 대학생은 문 전 대표, 자영업자와 주부층에선 반 총장이 앞섰다. 이념성향별로 반 총장은 보수층, 문 전 대표는 진보층에서 각각 5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고 중도층에선 35% 안팎으로 지지가 비슷했다.

촛불 정국 이후 ‘대망론’이 암초에 부딪힌 반 총장의 지지율 하락은 여권 전체의 인기 하락과 맞물려 있다. 반 총장은 지난 10월 갤럽조사에서 단독 선두일 당시 새누리당 지지층에선 지지율이 54%였다. 문 전 대표와 공동 선두가 된 12월 갤럽 조사에선 오히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지지율이 65%로 높아졌다. 하지만 그 사이에 새누리당 지지율은 28%에서 13%로 크게 하락하면서 여당 지지층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반 총장에 대한 여당 지지층의 기대는 높아졌지만, 여당 지지층 규모의 축소로 인해 반 총장도 지지율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결국 반 총장의 지지율 회복은 여권 지지층의 복원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2월 10일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반 총장의 대선 출마에 대해 전체 유권자 중에서 찬성(33%)보다 반대(49%)가 많아서 그에 대한 비토층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한편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후보는 문 전 대표다. 내년 3~4월에 대선이 치러질 경우엔 정권 교체 기류가 강해진 현재의 판세가 그대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친노(親盧)’가 강점이자 약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그의 기반은 노 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던 30대·화이트칼라를 중심으로 한 진보·좌파층이다. 문 전 대표가 지난 4년간 야권의 대표성을 확보한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인 문재인’보다 ‘노무현 후계자’ 이미지가 강한 점은 딜레마다. 친노의 상속자로는 본선이 쉽지 않고, 독자 노선을 내세운다면 당내 경선이 힘들어질 수 있다. 선거 전문가와 언론인 등이 함께 문 전 대표의 강·약점을 분석해 내놓은 책 ‘문재인 대통령이 될까’에선 그가 외연(外延)을 확장하기 위해 설득해야 할 세 부류의 유권자 계층을 제시했다. 그의 본선 가능성에 회의적인 야당 지지층, 그에게 불안감을 갖고 있는 중도층, 그에게 극도의 거부감을 갖고 있는 보수층 등이다. 보수층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앞의 두 부류를 최소한 중립으로 묶어둘 수 있도록 선거 전략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조기 대선에서 문 전 대표가 가장 유리할 것’이란 대세론도 다른 후보들의 집중적 견제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부정적 요소로 꼽힌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대세론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과거에 보면 꼭 그렇게도 안 되더라”면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9년8개월을 1등 하다가 마지막 한 달을 남기고 김대중, 노무현 두 분에게 대통령을 빼앗겼다”고 했다.

최근 촛불 정국에서 지지율이 급등하며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은 반기문 대망론과 문재인 대세론을 동시에 뒤흔들고 있다. 이 시장의 지지층 구성은 모든 지역과 연령대에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최근 갤럽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광주·전라(21%)와 대구·경북(21%)에서 동시에 가장 높았고, 수도권(19%)과 부산·경남(16%), 충청권(15%) 등에서도 지지율이 10%대 중·후반을 기록했다. 연령별로는 20대(26%), 30대(24%), 40대(23%)뿐 아니라 50대(17%)에서도 지지가 높은 편이고 60대 이상에서만 5%에 머물렀다. 이념성향별로는 진보층에서 27%로 34%인 문 전 대표에 비해 낮았지만, 중도층에선 20%로 공동 선두였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문 전 대표(44%)가 이 시장(27%)을 앞섰지만,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에 달하는 무당(無黨)층에선 이 시장(12%)이 문 전 대표(6%)에게 우세했다. 요약하면 문 전 대표는 진보층을 중심으로 한 야당 지지층, 이 시장은 정치 혐오층을 주축으로 영남을 포함한 각 지역의 중도층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둘 사이의 지지층이 그다지 겹치지 않기 때문에 야권에선 민주당의 단일 후보가 확정되면 외연 확장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반박(反朴)뿐 아니라 반노(反盧) 성향도 강한 이 시장의 지지층과 친노 성향의 문 전 대표 지지층이 한쪽으로 흡수되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문재인 외연 확장 키를 쥔 세 부류층

그래도 문 전 대표와 이 시장을 비롯한 야권 후보들의 전반적인 강세는 역대 대선에서 전례(前例)를 찾아보기 힘들다. 문 전 대표도 “사상 최초로 야권 후보가 훨씬 풍부하고 대선을 이끌어가는 상황”이라고 자평한 적이 있다. 12월 초 갤럽조사에서 여권 후보들의 지지율 합(合)은 반기문 총장(20%)과 유승민 의원(3%) 등 23%에 그쳤다. 반면 야권 후보들의 지지율 합은 문재인 전 대표(20%)·이재명 시장(18%)·안철수 전 대표(8%)·안희정 지사(5%)·박원순 시장(3%)·손학규 전 대표(3%) 등 전체 유권자의 과반수인 57%에 달했다. 대선 판세가 야권 우세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은 여권의 ‘인물난’ 때문이다. 여권의 인물난이 심각해진 데에는 인재 영입과 2인자에 관심이 컸던 전임 대통령들과는 다른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이 영향이 미쳤다는 해석이 있다. 박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당의 한 축인 친이계를 철저히 배제했고 원조 친박계 인사들도 잇따라 대통령과 등을 돌리면서 여권 핵심으로 성장할 기회를 잃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안대희 전 대법관 등이 줄줄이 낙마한 여당의 지난 4월 총선 패배도 인물난을 가속화했다. 공천 파동에 이은 총선 패배와 지지율 하락으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결국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후보군의 여야 간 불균형은 촛불 정국의 영향으로 여당 지지가 급속히 하락하고 야당이 반사 이익을 얻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 최근 갤럽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은 13%에 불과했지만, 민주당(35%)·국민의당(13%)·정의당(7%) 등 야당들의 지지율은 55%로 야권 후보들의 지지율 합과 비슷했다.

내년 대선의 승부와 관련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야권이 승리할 것으로 전망하는 측은 “조기 대선이 실시된다면 판세에 영향을 줄 변수가 줄고 표심(票心)이 출렁거릴 시간도 없기 때문에 현재 상승세인 야권이 유리할 것”이라며 “야권 선두인 문 전 대표가 대권 고지에 근접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구도의 싸움”이라며 “반 총장이 여권 단일 후보로 나서고 야권은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로 분열된 가운데 대선이 치러질 경우엔 보수 쪽으로 정권 재창출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4월 총선에서 민주당(123석)과 국민의당(38석) 등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며 새누리당(122석)을 누르고 승리했지만, 실제로 각 정당별 지역구 후보의 득표율 합은 새누리당(38.3%)이 민주당(37.0%)과 국민의당(14.9%)에 앞선 1위란 점을 근거로 든다.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부사장은 “반 총장이 귀국하는 내년 1월에 반기문 대망론과 문재인 대세론이 충돌하면서 대선 승부가 시작될 것”이라며 “다양한 이합집산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새 판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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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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