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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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내년 대선에 출마한다. 복수의 반기문 총장 측근에 따르면 반 총장은 국내 복귀 후 자신을 수행할 비서진 채용과 소규모 대선 준비팀 구성을 최측근에게 주문했다. 이에 앞서 반 총장의 일부 측근은 지난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미국 뉴욕을 잇따라 방문하고 반 총장과 국내 정치 상황 변화에 따른 대권 구상을 논의하고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반 총장 귀국 시점에 맞춰 발표할 대국민 메시지에 대해 막바지 조율에 착수했다.

지난 12월 초 뉴욕에서 반 총장을 만나고 돌아온 최측근 A씨는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간만 보다가 그만둘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반 총장의 대선 출마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반기문 총장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충청권 출신의 언론인도 “1월 1일 퇴임 직후부터 보좌진과 경호원 예우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비서진을 서울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등판이 확정됨에 따라, 그동안 야권이 주도해온 대선판에 메가톤급 파장이 예상된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친박 대 비박’의 분열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도 보수 대항마의 등장이 가져올 지지율 변화를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비서진 인선, 캠프 구성 착수

반 총장은 지난 12월 12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고별연설을 했다. 이날 그는 193개 유엔 회원국을 상대로 사실상 작별을 고했다. 다음날 반 총장은 미국 뉴욕 빌 드블라시오 시장을 만나러 가는 길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그는 임기가 끝나는 12월 31일까지 경호원과 비서진의 보좌를 포함한 국가 정상급 예우를 받는다. 그럼에도 국내 정치인들이 선거기간에 보여주는 친서민 행보에 나선 것을 두고 사실상 국내 복귀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됐다.

반 총장은 큰 틀의 ‘국가 개조’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측근의 말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는 국가 개조에 나서겠다고 했으나 정부조직법을 개편하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에 있다. 국민과 국가 모두 체질을 개선하고 긍정 마인드를 심어줄 리더십이 필요하다. 페어플레이와 노블레스오블리주가 통용되는 사회를 위해 대한민국은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한다. (반 총장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출마하는 게 아니고 좋은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뿐이다.”

반 총장 측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개헌에 반대해온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선을 명확하게 긋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동시에 여권 일부 세력과 제3지대를 개헌의 고리로 엮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반 총장은 국내 정치를 예의주시하며 여러 고민을 해왔다. 개헌, 정치개혁, 사회개혁, 국가통합 등에 대해 고민한 바를 곧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반 총장은) 지금 거론되고 있는 프로 정치인보다 자질과 능력 면에서 차별성을 갖고 있으며 더 잘할 자신감도 있다.”

반 총장이 대선 출마를 최종 결심한 건 올해 여름 이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뉴욕에서 반 총장을 만난 여당 중진 의원 측은 “친분이 있는 사이임에도 당시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선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당시 A의원은 반 총장이 단골로 이용하는 뉴욕 맨해튼 외곽의 허름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반 총장과 비공개로 만났다. 뉴욕의 경우 독립된 공간을 가진 식당이 많지 않아 반 총장이 비공개로 손님을 만날 때는 주로 이 식당을 이용했다고 한다.

가을부터 반 총장은 출마로 기울기 시작했다. 뉴욕 현지에서 사적으로 반 총장을 조언해온 최측근 B씨도 반 총장이 대선 출마를 결심하는 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때 YS계로 분류됐던 70대 중반의 재미동포 B씨는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전부터 반 총장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반 총장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았다. 반 총장의 부인과 B씨의 부인은 충주여고 동창생이다. 그는 지난 10월 말~11월 초 한국에 들어와 김덕룡 전 의원과 현역 국회의원 C씨, 외교부 출신의 반 총장 측 인사들을 두루 접촉하고 돌아갔다. 이후 반 총장의 대선 준비도 빨라졌다. 국내에 있는 일부 측근들은 정치권 동향 등을 전하기 위해 11월부터 12월 초까지 뉴욕 현지를 찾았다. 이를 전후한 시기에 정치권 인사들과 반 총장 측 인사들의 교류가 확대됐다. 과거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D씨, 전직 국회의원 E씨도 최근 반 총장 측에 합류했다.

제3지대 빨아들일 블랙홀 노려

반 총장은 내년 1월 귀국 후 기존 정당과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움직일 계획이다. 반 총장 측은 “국민과 언론의 일반적 정서가 있고, 탄핵 과정에서 누구랑 같이 가면 안 된다는 건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친박 진영과 한 배를 타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 총장 최측근의 설명이다. “문재인 전 대표 등이 있는 야권과는 상식적으로 같이 갈 수 없다. 여권도 어떻게 분화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구와 함께할지 아직 정해진 바 없다. 탄핵정국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국민 마음을 읽어가며 거취를 결정하되, (당분간 독자적인 길을 간다는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오실 것 같다.”

반 총장 측근은 새누리당 탈당파와도 접촉했다. 개헌론에 앞장서온 여야 인사들과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독자세력화에 방점을 찍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보수 진영 한 전략가는 “반 총장은 어느 세력과 연대가 아니라 제3의 지대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새누리당 후보와의 보수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반 총장 측은 또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했다. 대선 준비를 위한 시간이 촉박하다는 분석을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 총장 최측근의 말이다. “최근 언론계 인사와 야당 국회의원, 헌법학자 등을 두루 만나본 결과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탄핵 사유의 일부를 인용, 조속히 판단 내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프로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의 명예가 걸린 결정을 내리는데 허겁지겁 여론에 떠밀려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촛불민심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치를 포기할 수도 없다.”

반 총장 측은 최근 돌풍을 일으키며 상승세를 탄 야권의 이재명 성남시장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한 측근은 “이재명 시장의 지지율 상승에 대해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탄핵정국 속에서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오를 수 있다. 그런 것에 의미를 두는 건 시간 낭비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반 총장 측은 대규모 조직이나 캠프를 동원한 선거운동에 부정적이다. 소수 정예의 대선팀을 가동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대중과 호흡한다는 계획이다. 반 총장 측근들은 1시간 단위로 시간을 쪼개가며 언론과 정치권 인사를 두루 접촉하느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반 총장은 외신의 혹평과 달리 유엔 본부 내 사무처 직원들에게 ‘배려의 리더십’으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유엔 본부를 방문한 인턴 직원들과의 기념촬영도 꼼꼼하게 챙기는 등 세심함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그래서 측근들은 반 총장의 좌우명인 ‘상선약수(上善若水)’보다 ‘시종여일(始終如一)’이 그를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도 했다. 한편 반 총장은 이르면 1월 초 귀국길에 오를 수 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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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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