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간조선은 ‘안철수표 5-5-2제’ 학제개편안을 주도한 조영달 서울대 교수 인터뷰를 통해 개편안의 내용을 상세히 싣고, 반대하는 교육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담았다. 반대 목소리에는 이미 조 교수의 설명을 통해 전달된 부분도 있었지만, 질문처럼 던진 반박도 있었다. 조영달 교수가 반대론자들의 질문을 모아 재반박문을 보내왔다.

이번 학제개편의 요지는 ‘5(초등)-5(중등)-2제(직업 탐색학교/미래학교)’와 ‘고교체제의 대대적 변환’이다. 이 개편안에 대한 비판은 대개 △과다한 비용 △효능성에 대한 의심 △초등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문제 △4차 산업혁명과의 관련성 △충분한 논의와 합의의 필요성 등으로 모아진다.

먼저 첫째로 ‘과다한 비용’ 문제다.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대학 진학을 만 17세로 하향조정할 경우 학제개편 첫해에는 만 5·6세, 만 17·18세가 동시에 입학하게 되어 시설부족의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초등학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인구절벽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3분의 1 이상 줄어드는 상황과 초등학교 편제 단축을 고려하면 별도의 시설을 확충하지 않아도 된다. 중등학교의 경우에는 학령인구의 급감을 고려하더라도 상당 규모(대략 20~30% 내외 추정)의 시설확충이 필요할 것이다. 대학 입학경쟁률의 문제는 대학 충원율이 계속 하락하는 추세와 학령인구의 급감을 고려하면 그리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특정 기간에 한해 대학 입학정원을 일부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 졸업 후 구직자 수가 일시적으로 크게 늘 수 있으나 졸업 후 상당 기간에 걸쳐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현재의 추세를 생각하면 그 짐은 크게 분산된다.

이 외에도 정책시행에 따른 생각지 못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비용 문제는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여겨진다. 인구구성이 급변하는 지금 시기를 놓치면 교육 재편 기회를 다시 잡기 매우 힘들 것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효능성을 의심하면서 현 체제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다. 이는 현실인식을 명확히 하고 교육적 상상력을 발휘하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들은 대부분 대학입시의 블랙홀에 휩쓸리면서 실패를 거듭했다. 우리가 느끼는 보통교육의 고통은 현재의 패러다임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얼마 전 대도시 일반계 고등학교 2학년생 133명을 대상으로 ‘5-5-2제’ 학제로 개편되면 미래학교와 직업탐색형 학교 중 어느 학교를 택할지 물었다. 54%의 학생이 가능하면 직업탐색형 진로를 택하겠다고 응답했다. 현재 특성화고 등에 진학하는 학생이 20% 정도임을 생각하면 유의미한 수치다. 또한 교사노동조합총연맹(교사노총) 추진위에서도 지난 2월 21일 이와 비슷한 개편안을 제안했다. 이들의 제안은 유치원 1년을 공교육으로 편입하고, 초등학교 5년, 중등학교 5년을 의무화하면서 중등학교와 대학교 과정 사이에 2년제 예비대학학제를 신설하자는 내용이 골자였다. 신기하게도 안철수 의원과 현직교사 양쪽에서 내놓은 학제개편안은 틀도, 내용도 거의 같다. 정책적 효능성과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셋째, 초등학교 입학연령의 만 5세 하향조정안은 여러 논의가 가능하다. 학제개편을 옹호하는 국내 논문들은 한국의 학생들이 조기에 성숙했다고 판단한다. 반대론자들은 학생들의 조기 성숙은 상식적 수준의 진단이라는 논문을 근거로 들면서, 조기성숙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미흡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조기에 입학한 학생이 불리하지 않다는 연구들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하향하는 것은 동의할 만하다. △한국의 유아교육(특히 만 5세)에서 학부모가 처한 고통스러운 사교육 상황 △현재 만 5세 유치원 과정에서 이미 초등학교를 염두에 둔 교육이 많이 이루어지고 △하향조정된 만 5세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유아교육과 초등교육의 이행을 감안, 유아교육 관점으로 교육하면 무리 없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초등학교 1학년(만 5세)을 담당하는 교사를 대상으로 유아교육 관련 연수가 필요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노르웨이처럼 유·초등저학년을 함께 교육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할 필요도 있다.

초등학교 시작 연령은 나라마다 다르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만 5세이며, 핀란드 만 7세, 독일과 이탈리아는 만 6세다. 초등학교 시작 연령에 대한 정책결정은 초등교육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와 그 나라가 처한 유아교육 및 교육환경에 대한 고려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여건을 고려하면 초등 입학연령 하향은 충분한 일리가 있다. 이 과정에서는 국가교육위원회에 ‘영유아교육·보육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여 공개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입학연령 만 5세 하향과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 충분히 재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피해가 예상되는 관련 당사자(사립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에 대한 공교육 강화 차원의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넷째, 본 학제개편안이 4차 산업혁명과 어떻게 연관되는가의 문제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책으로 ‘교육체제의 혁신’과 ‘지속적 학습이 가능한 평생교육 체제의 수립’을 제안했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인재 양성은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체계적으로 고안하는 과정에서 △시민적 인성 △비판과 창의를 포함한 고차사고력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협업능력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다른 일을 이룰 수 있는 역량 등에 초점이 있다. 이는 본 학제개편안이 제안하는 학교교육의 중심 목표이기도 하다. 또한 자율적으로 진로를 탐색하는 미래형 학교를 통하여 학생들은 학교의 상담을 받으면서 스스로 4차 산업혁명시대의 미래를 위한 터전을 개척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교수학습 방법이나 교육 내용 등에 대한 소개도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의가 있어왔지만 논의에만 그칠 뿐이었다. 토론학습을 포함한 어떠한 교수학습 모형도 근대적 교육체제와 입시의 블랙홀 속에서 그 실효성을 발휘할 수 없었다. 코딩교육도 마찬가지다. 이미 교육부의 정책이지만 이 역시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교육체제와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야

본 제안의 성안을 위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당연히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하여 10여년의 논의와 합의 및 그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추후 이해관계 당사자를 포함하여 시민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공개적인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더하여 구체적인 교육과정과 교사양성 및 연수, 재정 소요와 예산, 사회환경의 조성 등에 대한 논의가 자세하고 심도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와 무역규모 세계 10위권의 문턱을 밟은 한국 사회는, 다른 한편에서는 심각한 불확실성과 불평등에 직면하면서 커다란 고통에 휩싸여 있다. 10% 이상의 청년실업률, 빈곤의 증가, 가족의 해체, 가난한 노인, 고학력 푸어, 빈번한 폭력과 일상의 위험, 무의미한 교육과 사교육 부담은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현주소다. 이러한 시대상은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경험했던 70~80년간의 혼란기와 유사하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전 속에서 우리는 근대적 성장 패러다임의 붕괴, 인구절벽과 다문화화로 대변되는 사회구성의 급변, 그리고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으로부터 심각한 불확실성과 불평등에 직면해 있다. 이는 과거 시대로부터 내려온 고통의 근원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과거에 사용했던 매뉴얼과 추격 전략으로는 더 이상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존의 틀이 지닌 정당성을 의심하고 회의(懷疑)를 품을 때가 된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현상이나 진리라 여기는 것들도 따져 보면 ‘그 시대’ 구성원들이 합의한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학교제도도 우리의 관계맺음 속에서 구성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시대’를 뛰어넘어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관계맺음을 할 때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생성의 틀이 필요하다.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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