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 손을 대고 유대식 기도의식을 행하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5월 2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 손을 대고 유대식 기도의식을 행하고 있다. ⓒphoto 연합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으로 한반도는 세계가 주목하는 분쟁지역이 되어가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 트럼프마저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트럼프의 공간적 의사결정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고, 이 패턴을 알면 그는 예측가능한 사람이다. 일단 사업가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부동산 투자 지도를 살펴보면 그의 관심 국가가 금방 드러난다.<41쪽 지도 참조>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출발해 호텔·카지노·골프장·미디어 산업으로 확장한 트럼프 제국의 부동산은 미국, 영국, 캐나다뿐 아니라 중동, 아시아 전 지역에 분산 투자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의 발리와 자카르타에서 시작해 필리핀의 마닐라, 인도와 뭄바이와 델리, 그리고 이슬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왕조국가, 신분사회, 독재적인 지도자는 트럼프가 선호하는 투자국의 조건인 것처럼 보인다. 중동에는 왕조국가가 많고 영국은 아직도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다. 발리와 인도는 힌두교를 믿는 철저한 신분사회이고, 빈부격차가 큰 필리핀·인도네시아는 화교 재벌이 주도하는 경제이다. 특이한 점은 터키·인도네시아·아랍 등 무슬림 국가의 재벌과 왕족, 상류층 인사들과 트럼프의 오래된 인연이다. 그는 가난한 이민자와 무슬림이 미국으로 오는 것을 싫어할 뿐이지 이슬람 종교 자체에는 거부감이 없는 듯하다. 또한 트럼프의 특별한 인도 사랑은 그가 미국 내 카지노호텔 이름을 ‘타지마할’이라고 붙인 데서 엿볼 수 있다. 비록 채산성이 맞지 않아 실패했지만 그는 무굴제국의 왕처럼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한국의 서울·부산·대구에 트럼프와 관련된 건물이 있는데, 이는 그의 사업파트너였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덕분이다. 건물에 트럼프의 이름을 넣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김 회장은 트럼프가 신뢰하는 멘토였고, 실제로 여의도의 대우-트럼프 타워 개발 과정에서 그에게 후한 이름값을 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김 회장과 트럼프는 다른 점도 많다. 세계경영을 외치며 자신이 세계 오지를 구석구석 찾아갈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던 김우중 회장과는 달리 트럼프는 해외 출장을 잘 안 가는 스타일이다. 그의 경쟁자였던 젭 부시에 의하면 트럼프는 지지자들과의 악수도 꺼릴 정도로 결벽증이 심하다고 한다. 트럼프가 전 세계에 호화로운 호텔과 리조트를 건설한 이유가 세균의 공포를 견디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서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를 결벽증 환자로 보면, 영부인을 백악관이 아닌 트럼프 월드에 계속 머물게 하고 외국 정상들을 플로리다 마라라고에 있는 자신의 휴양지로 부르는 사정이 저절로 이해가 된다. 실제로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외국 순방을 계속 미뤄왔다.

자신감 넘치는 거래의 달인 트럼프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은 있다. 바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다.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진행한 스코틀랜드 골프장 개발 사업의 숨겨진 이유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는 사회주의 성향이 강하고 영국 내에서도 성평등 의식이 강한 곳이다. 트럼프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 서부 헤브라이스제도 출신의 늘씬한 금발 미녀였다. 건강이 안 좋았지만 자신과 아이들에게 엄격했고, 빨간색 스포츠카를 타고 다닐 정도로 개성이 강했다. 뉴욕으로 건너와 성공한 사업가인 트럼프의 아버지와 결혼한 그녀는 3남2녀를 낳았다. 하지만 사교적인 그녀는 사교계에 관심이 없는 과묵한 일벌레 남편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에게서 사업가로서의 재능과 승부욕을 물려받은 데다 어머니를 닮아 활동적이고 쇼맨십에 능한 둘째 아들 트럼프는 어머니의 자랑이자 희망이었을 것이다.

‘포브스 아시아’ 2017년 4월호 인도네시아판에 실린 세계 6대주에 흩어져 있는 트럼프 타워.
‘포브스 아시아’ 2017년 4월호 인도네시아판에 실린 세계 6대주에 흩어져 있는 트럼프 타워.

트럼프가 순방국을 고르는 조건

지금도 트럼프가 또렷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을 거실 TV에서 보고 계셨죠. 어머니는 정말 부러운 눈빛으로 황홀해 하셨어요.” 트럼프의 아내들은 모두 다 자신의 어머니를 닮은 늘씬한 금발 미녀들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이혼하자마자 트럼프가 스토커처럼 꽃과 선물 공세를 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녀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 트럼프는 세계 최고의 트로피 와이프가 될 후보자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영국 여왕과 어머니, 딸 이방카를 제외하고 트럼프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여자를 싫어한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여선생님에게 주먹을 날릴 정도로 감정 통제가 안 되는 문제아였다. 미국의 45대 대통령 자리를 놓고 경쟁한 상대가 중후한 남성 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아닌 똑똑한 모범생 스타일 여성 후보자 힐러리였다는 점도 대통령 선거에서 꼭 이기고 싶다는 트럼프의 승부욕을 자극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여성을 무시하는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하는데 눈도 마주치지 않고 딴청을 부리고 악수도 하지 않은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자신을 공격하거나 바른말 하는 사람, 특히 잘난 여자들 앞에서 트럼프는 이성을 잃고 눈과 귀를 닫아 버린다. 세 아이를 낳은 첫 번째 부인조차도 자신을 능가하는 사업가의 기질을 보이자 이혼해 버렸다. 오죽하면 영어도 잘 못하는 동유럽 출신 속옷 광고 모델과 세 번째 결혼을 했겠는가.

트럼프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이다. 특히 자신을 무시하거나 모욕을 준 사람은 절대 용서 안 한다. 한번 자존심이 상하면 끝까지 상대를 물고 늘어진다. 대선 출마를 결심하게 된 배경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공개 석상에서 망신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오바마의 출생지가 미국이 아니라는 버서(birther) 논쟁을 트럼프가 주도했는데, 기습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하와이로 표시된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전격 공개했다. 졸지에 트럼프는 하와이가 미국 땅인지도 모르는 지리적 문맹이거나 아니면 허위 정보로 대통령을 괴롭히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을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밖에 없었으리라.

트럼프는 자신이 찍힐 사진의 배경과 파트너를 특히 중시한다. 어머니의 고향이라는 인연을 언급하며 트럼프는 가족행사를 매년 자신의 스코틀랜드 골프장에서 개최한다. 사실 영국 왕실만큼 왕이 되고 싶은 트럼프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자신의 격을 높여줄 상대도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있었으리라. 브렉시트 투표 당시에도 스코틀랜드의 골프장으로 날아가 브렉시트 결과를 환영하고 자신의 골프장을 홍보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영국 왕실로부터 정식 초대를 받아 어머니의 한(恨)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영국인은 인종차별적 발언에 지도자로서 품격이 많이 떨어지는 트럼프의 국빈 초청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결국 영국 여왕의 여름 별장이 있는 한적한 스코틀랜드 시골의 밸모럴성을 방문하는 수준으로 조율되는 분위기다.

워싱턴에서 탄핵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첫 순방국가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선택한 것은 절묘한 지리적 상상력이다. 인구 17억에 달하는 무슬림들의 정신적 본향이자 부자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세계 정치·자본을 움직이는 유대인의 모국 이스라엘을 동시에 방문함으로써 트럼프는 경제적 양다리를 제대로 걸친 셈이다. 왕조와 계급이 존재하는 보수적인 국가에서 최고의 보스와 직접 만나 담판을 짓는 거래를 선호하는 트럼프는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역대급 무기 판매실적을 올렸다. 또한 메카·메디나가 있는 이슬람교의 성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극진한 환대까지 받았으니 당분간 세계 무슬림 신자들이 트럼프를 공격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女權이 약한 나라만 골라 가는 이유

나아가 사우디아라비아-팔레스타인-이스라엘-이탈리아 교황청으로 이어지는 이번 순방은 그동안 페미니스트에게 시달려온 영부인 멜라니아를 위한 배려일 수 있다. 남성의 권위가 살아 있는 나라, 여성의 권리가 약한 나라만 기막히게 골랐다. 겉으로 내세우는 순방의 의미는 세계문화유산 탐방과 종교를 통한 통합과 화해지만, 자신과 가족들이 자존심의 상처를 받지 않을 화려한 데뷔 무대를 세심하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실제로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해외 순방국은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심한 나라가 대부분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이 혼자 운전도 못 하게 할 정도로 여성 차별이 심해 2016년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 조사 대상 144개국 중 141위였다.

미국에서는 기죽어 살던 멜라니아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당당한 패셔니스타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다음 목적지는 그가 이스라엘. 잘나가는 유대인 사업가와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개종한 딸 이방카를 전면에 내세웠다. 통곡의 벽에서 심각한 포즈로 유대교식 기도를 올리는 포즈를 취한 후 다음 목적지는 교황청. 이탈리아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뚜렷하고 여성을 억압하는 보수적인 나라로 꼽히며 성격차지수 순위도 50위로 유럽에서는 하위권이다.

중동 최대 이슈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선 트럼프는 “이·팔 평화협상은 가장 어려운 협상”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중재자로 나서는 건 흔치 않는 기회”라고 역설했다. 어려운 일일수록 그에게는 더 매력적인 과업이 된다. 그가 이스라엘·아랍권과 ‘반(反)이란 연대’ 구축에 나선 배경이다. 차기 순방국으로서 한국은 트럼프에게 매력적인 카드이다. 사드 배치가 이슈가 되고 있고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트럼프에게는 특별 관심대상국이다. 성격차지수 순위 114위로 아시아 최하위권인 데다가 이미 20년 전 대우 김우중 회장과의 인연으로 한국에 트럼프 월드를 조성해 익숙하다는 점도 결벽증이 심한 트럼프에게는 좋은 조건이다.

북한 역시 트럼프가 끌릴 만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 평화만 정착되면 북한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노다지 투자처일 수 있다. 특히 탄핵 위기에 몰려 대통령직을 상실하기 직전이 되면 그는 북한의 김정은을 마라라고 별장으로 전격 초청할지도 모른다. 대통령으로 있을 때 미리 북한의 지도자를 만나 그가 원하는 선물을 슬쩍 안겨주고 퇴임 후 벌일 사업에서 최대한 실속을 챙겨 놓으려는 계산에서 말이다.

우려되는 사항은 평소 트럼프의 성향을 고려할 때 남한보다는 북한과의 거래를 선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사회의 합리적 지도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유혹할 수 있는 화끈한 선물을 마음대로 줄 수 없다. 반면 왕조국가에서 세습받은 막가파 독재자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 빅딜도 가능하다. ‘김정은은 어리지만 꽤 똑똑한 지도자다. 그를 직접 만날 용의가 있다. 하지만 만찬은 기대하지 마라. 그와 햄버거를 먹을 것이다.’ 어쩌면 트럼프는 자신의 호화로운 별장에서 북한과 은밀하게 거래할 것에 대한 계산을 이미 끝냈을 수도 있다. 의외로 치밀한 트럼프는 김정은뿐 아니라 명품으로 치장한 영부인 리설주와 함께 찍을 훈훈한 사진의 각도까지 계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스코틀랜드는 트럼프 모친의 고향이다. 사진은 스코틀랜드의 밸모럴성(城).
스코틀랜드는 트럼프 모친의 고향이다. 사진은 스코틀랜드의 밸모럴성(城).

숨겨진 트럼프의 카드를 읽어라

김정은 역시 트럼프의 수를 이미 읽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연일 더 센 미사일을 쏘아대며 트럼프와 국제사회에 ‘제발 나 좀 주목해 달라’며 시위 중이다. 최악의 갈등으로 치달아 파멸하기 직전에 전격 화해해야 더 멋져 보인다. 그래서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까지 북한은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한반도에서 긴장과 갈등이 고조될수록 문제해결자로서 트럼프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그의 존재는 빛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의 행보는 매우 위험한 도박이기도 하다. 트럼프에게 ‘무시와 굴욕’으로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냥 물러날 리 없다. 끝까지 북핵 문제를 잡고 늘어질 것이다. 하지만 판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이 극적으로 성사될 확률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당장 6월이 되면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러 미국에 갈 예정이다. 일단 숨겨져 있는 ‘트럼프의 카드’를 읽어내 그를 만족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업이 어려울 때 트럼프가 형처럼 의지했던 파트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골프를 하지 않으니 한국 출신 골프 여제들을 골프 라운딩에 초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에게 방한을 요청할 때 궁궐 같은 권위의 공간, 종교·문화적 유산이 밀집된 역사적 장소를 선호하는 트럼프의 공간적 취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경북 안동의 종갓집을 찾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한국 순방코스도 준비단계에서 참고할 만하다. 자연스럽게 서울·부산·대구의 트럼프 회사와 관련된 화려한 건물을 홍보해주는 것도 전략이다.

언론과 미디어는 한국을 배경으로 트럼프가 멋지게 나온 사진과 기사로 그의 행복지수를 높여줄 수도 있다. 미디어 노출을 즐기는 트럼프의 전략을 역으로 이용해 한국 관광을 홍보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말이다. 결국 그를 왕처럼 대접하고 기분 좋게 하는 게 포인트인데, 특히 나를 포함한 페미니스트들의 인내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의 언행이 역겹더라도 단 며칠간이니 온 국민이 애국하는 심정으로 꾹 참고 트럼프를 환대해야 한다. 그게 ‘남다른’ 정신세계를 보유한 미국 대통령, 트럼프를 다루는 방법이다. 종잡을 수 없는 상대라며 그와의 만남을 겁낼 건 없다. 알고 보면 너무 단순하고 유치해서, 오히려 다루기 쉬운 남자가 바로 트럼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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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재 문화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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