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광역서울도’ 설치를 주장하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광역서울도’ 설치를 주장하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photo 뉴시스

경기도 과천시의 지역번호는 02다. 02는 서울특별시의 지역번호지만 엄연히 경기도 관내인 과천시는 02 지역번호를 사용한다. 과천시 경내에 있는 대공원의 이름은 ‘서울대공원’이다. 그 옆에 있는 놀이공원의 이름은 ‘서울랜드’. 그 옆에 있는 과천경마장의 공식명칭 역시 ‘렛츠런파크 서울’이다.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을 관할하는 서울대공원장을 임명하는 임명권자도 서울시장이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경기도 과천에 있는 돌고래의 생사여탈권을 쥔 까닭은 여기 있다. 심지어 과천시에 사는 외국인을 관할하는 출입국관청도 서울 양천구에 있는 서울출입국사무소다. 과천시를 드나드는 버스 중 서울에 차고지를 둔 버스도 9개 노선이나 된다. 이쯤 되면 과천에 사는 사람들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과천이 도대체 경기도에 속하는지 서울특별시에 속하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경기도 관내에는 과천과 비슷한 사정을 가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경기도 광명시 역시 엄연히 경기도에 속하지만 지역번호는 서울 지역번호인 02를 사용한다. 광명시에 사는 외국인들을 관할하는 출입국관청 역시 서울 양천구에 있는 서울남부출입국관리사무소다. 이 밖에 서울 주변 택지로 인기가 높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삼송지구, 지축지구 역시 서울 지역번호인 02를 사용한다. 삼송과 지축 역시 경기도인지 서울특별시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경기도 부천시의 경우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지역번호는 경기도 031, 서울 02도 아닌 인천 032를 사용한다. 관할 지검과 지법은 인천지검과 인천지법 소속이다. 부천시 관내 외국인을 관할하는 출입국관청은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다.

이 같은 일은 서울과 경기도의 접경지역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경기도 주민들은 행정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찾아야 할 관청이 경기도인지 서울특별시인지, 인천광역시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나마 내국인은 어느 정도 익숙하다지만, 국내 장기체류(90일 이상) 외국인 148만명 중 가장 많은 33%가 모여 사는 경기도 거주 외국인들은 보통 헷갈리는 일이 아니다. 그전에 관청의 전화번호가 경기도 031번호인지 서울 02, 아니면 인천 032인지 먼저 따지고 봐야 한다. 경기도이지만 지역번호가 02가 붙는 지역은 아파트값도 소위 ’02 프리미엄’을 얻어 고평가받는 일이 엄연한 현실이다. 2015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실(광명갑·3선)이 전문기관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광명시민 85%가 서울 편입을 원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생활권과 동떨어진 행정체제가 만들어낸 코미디 같은 일들이다.

헷갈리는 경기도민들

남경필 경기지사가 ‘광역서울도(道)’란 개념을 들고나온 것은 이런 이유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지난 12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내일 경기도를 포기하겠습니다”란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그리고 다음 날인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광역서울도 형성과 수도권 규제혁신(서울과 경기를 하나로)’이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 서울과 경기도를 하나로 합친 ‘광역서울도’란 개념을 들고나왔다. 남경필 지사는 “우리나라의 혁신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수도권 규제가 철폐되고 초(超)강대도시를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경기도지사로서 경기도를 포기한다는 각오와 용기를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경필 지사가 제기한 ‘광역서울도’는 내년 6월 13일 지방선거가 목전에 닥치면서 정치권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남경필 지사의 주장대로 서울특별시와 경기도를 합친 ‘광역서울도’가 출범하게 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과 경기도지사 중 한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자연히 차기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출마를 검토 중인 인사들은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유력 경기지사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은 ‘광역서울도’ 주장이 나온 당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기 서울 통합은 고등유기체를 거대 아메바로 만들자는 주장”이라며 “자치분권 강화와 세방화(세계화와 지방화의 동시 진행) 흐름에 역행하는 황당 주장”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여권 경기지사 후보군인 전해철 의원(경기 안산상록갑·재선), 양기대 광명시장도 남 지사의 ‘광역서울도’ 주장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남경필 지사는 다음 날인 12월 14일 재차 “도지사라고 기득권만 강조했다면 아무도 저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권 모독을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아예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재명 성남시장의 비판처럼 ‘광역서울도’ 개념은 황당 주장이 아니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한 나름의 역사적 유래를 갖추고 있다. 서울이 다른 도시와 달리 특별한 대접을 받은 것은 조선 태종 때 전국을 8도(道)로 재편한 행정체제 개편을 통해서다. 당시 지금의 서울에 해당하는 한성을 관할하는 한성부 판윤은 수도를 관할하는 특수한 지위로 인해 지금의 각부 장관급에 해당하는 육조판서와 같은 ‘정(正)2품’ 관리가 맡았다. 지금의 경기도지사에 해당하는 경기관찰사를 비롯한 지방관찰사들이 지금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종(從)2품’ 관리가 맡았던 것에 비해 높다.

하지만 구한말 갑오개혁 때부터 한성부(서울)와 경기도의 지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1895년 갑오개혁 때 기존의 8도 체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도입했을 때 경기도는 폐지되고 ‘한성부’ ‘인천부’ ‘개성부’로 재편된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때 단행한 ‘폐번치현(廢藩置縣)’을 본떠 기존의 도를 없앤 것이다. 하지만 갑오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듬해인 1896년 경기도는 기존의 ‘8도 체제’를 남북도로 나눈 ‘13도 체제’로 다시 부활하면서 함께 되살아난다. 이후 1910년 경술국치와 동시에 한성부가 수도 지위를 잃고 ‘경성부’로 이름이 바뀌면서 경기도 아래에 편입되기에 이른다.

1946년 서울·경기도 분리

일제강점기 35년간 서울은 ‘경기도 경성부’라는 이름으로 존재해왔다. 이후 서울이 경기도에서 분리된 것은 미군정 때인 1946년 8월 광복 1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기존의 경성부를 ‘특별시’로 승격시켜 경기도에서 분리하면서다. 당초 미군정이 발표한 원문에는 ‘독립자유시(freedom independent city)’로 되어 있으나,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제 때 경성부에 한해 적용이 검토된 바 있는 ‘특별부제’에 따라 ‘특별시’라고 번역됐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이원체제가 형성된 것은 50여년에 불과한 셈이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2년에는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기존 내무부의 지휘감독을 받는 서울시를 국무총리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승격시킨다. 내무부 말단공무원 출신으로 충남지사·경북지사를 지낸 김수학 전 국세청장의 회고에 따르면, 이 특별조치법은 5·16군사정변 주체세력의 일원으로 5·16 직후 서울특별시장에 임명된 윤태일 전 서울시장이 주도했다.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장은 다른 시도지사와 달리 장관급 지위로 올라섰다. 이와 함께 지금의 강남과 강서 일대를 대거 서울시에 편입해 관할 면적도 2배로 넓어지면서 지금의 모양과 비슷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장관급, 나머지 광역시장과 도지사들이 차관급 대우를 받는 것은 이런 역사적 유래가 있다.

하지만 서울과 경기도는 사실상 서울을 중심으로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왔다. 일례로 조선시대 때 경기도를 관할하는 경기관찰사(경기감사)가 주재하던 ‘경기감영’은 서대문(돈의문) 밖 지금의 서울 새문안로 서울적십자병원 자리에 있었다. 비록 사대문 밖이라고는 하지만 한성부와 지척의 거리다. 경기감영은 1896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원으로 잠시 내려갔다가 1910년 경술국치와 동시에 경성부를 편입하면서 서울 경복궁 바로 앞에 자리 잡는다. 옛 의정부가 있던 지금의 광화문시민열린마당 자리다. 이후 경기도청이 경기도 수원으로 내려가면서 서울에서 완전 독립한 것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67년이다.

1967년 경기도가 서울시로부터 완전 분리독립했음에도 교통과 통신수단의 획기적인 발달로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경계는 오히려 더 모호해진다. 특히 서울특별시는 협소한 공간 안에서 급증하는 행정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서울과 경기도의 접경지역을 1995년까지 야금야금 편입해왔다. 서울시계를 벗어나 경기도 관내에서 버젓이 서울특별시민들을 위해 필요한 행정업무를 처리하기도 했다. 서울시 관내 무허가 판자촌 철거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박정희 정부 때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에 조성한 광주대단지, 서울특별시민들이 꺼려하던 창경원 동식물원과 뚝섬경마장을 이전하기 위해 각각 경기도 과천시에 조성한 서울대공원과 과천경마장(렛츠런파크 서울), 서울특별시민들의 살인적인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해 노태우 정부 때 서울 도심에서 20㎞ 떨어진 서울과 경기도의 접경지역에 조성한 5대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이다.

특히 노태우 정부 때 5대 신도시 조성에 이어 노무현 정부 때 ‘2기 신도시’(판교·광교·동탄·운정·한강·양주·위례·검단·고덕·아산) 조성과 함께 매일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월경족(越境族)은 급증한다. 10곳의 2기 신도시 중 인천 서구에 속한 검단신도시와 충남 천안시와 아산시에 걸쳐 있는 아산신도시 두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기도에 속한 지역이다. 또 최근에는 경기도에 생산공장 등이 대거 입지하면서 서울에서 경기도를 오가는 사람들도 많다. 통계청이 실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통근·통학차 경기도와 인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주민들은 146만명에 달한다. 이 중 경기도민만 127만명에 달했다. 사실상 서울과 경기도가 하나의 생활권역으로 재편된 데 반해 행정체제는 조선시대의 한성부와 경기도 이원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 ‘경기도 경성부’ 시절만도 못한 행정시스템이다.

이원화된 행정시스템으로 득을 보는 사람들은 자리가 늘어난 공무원들이다. 행정구역이 하나였다면 한 개의 관청에서 처리했을 일을 두 개의 행정기관이 나뉘어 처리하면서다. 지방선거 때면 서울특별시장과 경기도지사를 별도로 선출해야 한다. 그 아래 달린 임명직 공무원들 역시 이중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장의 경우 장관급 대우를 받기 때문에 그 아래 차관급 대우를 받는 부시장만 3명(행정1, 행정2, 정무)을 거느리고 있다. 비대한 조직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모두 국민세금에서 나온다. 반면 행정서비스를 받는 대상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심지어 인천광역시에까지 걸쳐 있어 단일 행정기관의 공무원 조직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공무원 자리만 늘어나

대중교통의 경우 이런 문제가 심각하다. 이로 인해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경기도는 2005년 ‘수도권교통본부’란 옥상옥(屋上屋) 조직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경기도의 고위공무원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꽃보직이다. 반면 본부장 재임기간이 6개월에서 1년에 불과해 광역교통 현안 파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을 무료화하는 정책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간에 8회 이상 정책협의를 벌였지만 결국 양자 간의 이해관계가 달라 결렬됐다. 여기에 더해 문재인 정부는 지난 대선 때 ‘대도시권 산하 광역교통청’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한 터라 이 옥상옥 조직을 더욱 확대개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 행정체계를 개편해 교통기구를 일원화하면 단칼에 해결될 문제를 옥상옥 조직을 계속 늘리는 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조직을 늘리는 과정에서 공무원 일자리는 아메바가 증식하듯이 계속 늘어나는 만큼 옥상옥 조직 신설에 공무원이 반대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 도(道)를 없애 행정체계를 간소화하려던 행정실험은 공무원과 자치단체장들의 반발에 실패로 끝났다. 구한말인 1895년 갑오개혁 때 8도를 없애고 전국을 23부로 나눈 것만도 못한 결과였다. 당시 이회창 총재가 이끌던 자유선진당과 박세일 교수가 이끌던 한반도선진화재단 등에서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이 도의 크기를 오히려 키우는 ‘광역도’ 실험이었다. 전국을 인구 500만~1500만 단위로 묶어 ‘서울주(州)·경강주·경상주·충전주’ 등 크게 4~5곳으로 재편하자는 주장이었다. 남경필 지사의 ‘광역서울도’ 주장은 큰 틀에서 당시 이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주요 경쟁도시들은 일찍부터 광역체제를 꾸리고 있다. 서울의 경우 면적이 605㎢에 불과하지만 일본 도쿄도(都)의 면적은 2190㎢로 서울의 3.6배에 달한다. 오사카부(府)의 면적도 1905㎢로 서울의 3배다. 중국 베이징시의 면적은 1만6411㎢로 27배, 상하이시의 면적은 6340㎢로 10배에 달한다. 서울특별시의 면적은 부산광역시(769㎢)나 인천광역시(1029㎢)보다도 협소하다. 서울(605㎢)과 경기도(1만183㎢)를 합친 면적(1만788㎢)도 베이징시에 비해서는 적다.

협소한 면적(605㎢)에 1000만명의 인구가 서울특별시에 밀집거주하는 것은 수도권 문제를 일으키는 핵심 원인이다. 수도권 규제는 수도권 문제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돼 국가경쟁력 전체를 옥죄고 있다.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수도권이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며 “일본도 수도권이라는 단어를 쓰다가 도쿄권이라고 권역을 나눠 쓰고 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박형준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는 “메가폴리스 단위로 경쟁을 해야 시너지 효과가 가장 크다”며 “귀납적으로 풀어가야 할 방법이 조화를 이루면 궁극적인 목표인 행정구역 개편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6개월 앞에 둔 지금 실현가능성을 두고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남경필 지사가 속한 바른정당은 원내교섭단체도 아니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결국 행정안전부가 결정하는 것인데 행안부에서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때 행정체계 개편을 지휘한 이달곤 전 행안부 장관은 “쉽게 말하면 두 집 살림하던 것을 한 집으로 합치자는 것인데 자리가 줄어드는 이해당사자들이 너무 많아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며 “서울만 해도 구청을 많이 둘 필요가 없는데 그것조차 줄이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지금과 같이 정치력 부재가 아쉬운 시대에는 ‘광역서울도’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실현가능한 행정개편에 먼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달곤 전 장관은 “도(道)라는 기구는 군(郡) 단위 정도를 도와주는 기구로 직접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별로 없다”며 “도가 필요한 지역은 도를 그대로 두되 대도시 인근 지역부터 소단위 통합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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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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