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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3호]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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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유한국당이 사는 길 죽는 길

김대현  기자 

▲ 지난 6월 15일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관 복도에서 무릎을 꿇은 채 지방선거 패배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photo 뉴시스
지난 6월 15일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오후 2시로 예정된 의원총회를 앞두고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당내 중진급 인사 A씨와 오찬을 함께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비공개 회동에서 마주 앉은 A씨에게 당 사무총장직을 전격 제안했다. 6·13 지방선거 직후 김 원내대표는 당대표 권한을 갖는 비상대책위원장 ‘0순위’ 후보였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대표와 최고위원이 모두 사퇴할 경우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을 맡거나 비대위 체제에서 위원장을 맡게 된다. 하지만 선거 참패 여파가 확산됨에 따라 김 대표 역시 권리를 내려놓고 당 쇄신을 맡을 외부 인사를 수혈하는 ‘비상체제’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날 김 대표와 A씨는 전권을 위임할 혁신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뜻을 모았다. 외부 인사를 위원장으로 영입하되 사무총장이자 당연직 비대위원이 될 A씨가 혁신비대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당 쇄신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두 사람은 당을 사실상 해산해야만 보수가 재건될 새로운 토대가 마련된다는 공감대도 확인했다. 사흘 뒤인 지난 6월 18일 김 원내대표는 실제 ‘중앙당 해체’를 선언했고 외부 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해 인적쇄신의 전권을 부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무총장을 비롯한 당직자 전원의 사표도 받기로 했다. 당내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당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당대회를 준비해온 당내 중진 대부분은 침잠에 들어갔다.
   
   “당을 해산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자유한국당에서 비교적 유연한 사고를 한다고 평가받는 국회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이들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당내 중진급 인사는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당 쇄신의 고삐를 당겨보지도 못하고 친박(친박근혜) 잔존 세력에 의해 당이 목숨을 연명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을 맞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요즘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심경이 복잡하다고 했다.
   
   한국당 내부는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을 수습할 새 대표를 선출하자는 ‘현실론’과, 당을 해체하고 재건 과정을 거치자는 ‘쇄신론’이 충돌하고 있다. 조기 전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대체로 친박계로 분류되고, 당 해산론은 주로 비박계 인사들이 주장하고 있다. 현재 당의 주도권은 비주류 출신의 쇄신론자들이 쥐고 있다. 이들은 “조기 전대는 곧 보수가 죽는 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쇄신파는 대개 김영삼 전 대통령 중심의 상도동계 출신이 많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당내 비주류를 형성해온 이들이다.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입장이 정리되고 나면 곧 행동에 옮기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에 동의하며 민심을 수용했던 것도 이들이고, 탈당 뒤 바른정당을 창당했다가 다시 자유한국당에 복당한 정치인들도 이들이다.
   
   이처럼 말보다 실행을 강조해온 한국당 내 쇄신파가 사실상 당 해산을 주도하고 있는 모양새다. 서청원·최경환 등 친박의 구심점이 사라졌다지만 “당 해산만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친박 세력과의 결전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6월 21일 열린 의원총회는 ‘전권을 부여한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여부를 두고 당내 계파 간에 일합을 겨루는 장(場)이기도 했다.
   
   6·13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은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17개 시도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대구시장과 경북지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15곳에서 대패했다. 바른미래당 소속이던 원희룡 제주지사가 무소속 출마로 재선 고지에 오른 것을 제외하더라도 부산·경남·울산 등 전통적 텃밭을 모두 더불어민주당에 내주고 말았다. 경기지사와 인천시장 등 기존 한국당 소속 현역 단체장이 있던 지역에서도 참혹한 성적표를 받았다. 35%의 득표율에 그친 한국당 남경필 후보는 56%를 득표한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패배했다. 민주당 박남춘 인천시장 당선인은 57%를 득표해 35%를 얻은 현역 유정복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렸다. 광역단체장 선거뿐만 아니라 기초단체장도 전국 226곳의 시장·군수 가운데 민주당은 151곳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반면 한국당은 53곳을 지키는 데 그쳤다. 그 뒤를 이어 민주평화당이 5곳, 무소속 후보가 17곳에서 승리했다. 지방정부를 견제할 지방의회도 민주당이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한국당은 선거 목전까지 여론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어쩌면 애써 외면했을 수도 있다. 특히 선거를 지휘한 홍준표 전 대표는 선거 막판까지 “최소 6곳(+α)의 광역단체장을 배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존에 발표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는 “조작된 민심”으로 치부해버렸다.
   
   
   이유 있는 2선 후퇴와 탈당
   
   홍준표 대표는 선거 패배를 책임지고 일찌감치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 뒤를 이어 6선의 김무성 의원이 2020년 치러질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2선 후퇴했다. 김 의원은 “새로운 보수정당의 재건을 위해 저부터 내려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상직·정종섭 의원 등 초선들도 차기 총선 불출마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친박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까지 한국당 탈당을 선언했다. 서 의원은 “보수의 가치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분노를 자초한 보수진영 정치인의 책임을 통감한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입장문을 냈다.
   
▲ 6·13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홍준표 전 대표가 기자회견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당내 일각에서는 관록의 정치인들이 ‘용단’을 내린 배경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우선 김무성 의원의 경우 6·13 지방선거 직전까지 차기 전당대회 출마를 저울질해오다 지방선거 참패로 전대 무용론이 대두되자 곧바로 차기 총선 불출마 카드를 꺼내며 기득권을 내려놓았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정치를 오래해온 인사들이 볼 때 지금은 희생하고 내려놓는 모습을 보일 때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김 대표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건 보수진영 재건 과정에서 다시 부름을 받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 의원은 비대위 체제가 만료될 올 연말 또는 내년 초 전당대회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 의원의 선제적 탈당도 당 해체 수순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전망에 따라 먼저 행동에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당 해산 이후 마땅한 대안이 없는 한 그는 다시 친박 진영의 좌장으로 돌아올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 자유한국당 한 전략통의 관측은 이랬다. “현재 한국당은 속수무책이다. 차기 국회의원 선거는 2년 가까이 남았고 지금 무엇을 하든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는 게 난망하다. 당이 무너져 해체되는 지경까지 갈 수밖에 없다. 그래야 새로운 희망을 싹틔울 수 있다. 다선 국회의원들은 이런 구도를 감각적으로 예견하고 있을 거다. 한국당의 몰락 과정은 적어도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럼에도 당내 주도권 경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일부 중진 인사는 지난 총선에서 단체장 선거를 지원한다는 미명하에 전당대회를 위한 세력 확보에 나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도 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한선교 의원이 박관용 전 국회의장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기자고 제안한 배경도 궁극적으로 김성태 대행과 그 주변 인사들이 당을 장악하는 것을 제어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선거 패배 이후에도 당내 계파 간 불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한국당의 모습이 오히려 조용한 것보다 낫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당 측 한 정세분석가의 설명이다. “거대 정당이 초라하게 망가져 가면서도 조용하다면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일 수 있다. 민주당이었다면 벌써 내부 투쟁이 한창 가열됐을 것이다. 지금 한국당은 그동안 감춰왔거나 노정되지 않았던 내부 문제를 드러내고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한다. 아직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바닥을 딛고 일어서야 비로소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까진 물리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비대위가 가동되면 당내 친이 대 친박의 대결구도 또는 주류 대 신(新)주류의 기싸움이 잠시 뒤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초·재선 국회의원 가운데 일부는 현 김성태 대행 체제의 쇄신방안을 존중하는 반면, 일부는 김 대행의 독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성태 대행은 당 수습방안 중 하나로 ‘중앙당 해체’를 들고나왔고 당명 교체와 함께 “당 소속 국회의원 114명 전원이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일부 한국당 관계자들은 “김성태 대행이 욕심이 많은 것 같다. 당을 해체하는 것은 결코 보수적 해법이 아니다.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라”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2020 총선 때 한국당 소멸 위기
   
   혁신비대위의 위원장은 누가 맡게 될까. 비대위 사령탑은 당을 사실상 해산하고 새집을 짓는 기초를 닦아야 하는데 외부 인사 가운데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보겠다고 나설 후보군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인명진 비대위 체제’ 등 기존의 당 개혁 작업들이 대체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외부 인사 영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대위에 전권을 부여할지라도 국회의원이 따라와주지 않는다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현재 한국당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는 한 인사는 이와 관련, “비대위에 전권을 부여하기도 어렵겠지만 그렇게 된다 해도 말을 듣지 않는 국회의원을 제어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한국당 내부에서 동력을 찾기보다 국민과 접촉하며 건강한 보수진영을 재건할 힘을 모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내 권력투쟁을 제어하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 무너진 보수의 울타리를 다시 세워야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한국당 주변에서는 “만약 보수 혁신이 실패한다면 한국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민주당이 온건파와 개혁파로 나뉘어 입법부(국회)를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대구·경북 지역 보수 성향 유권자들까지 온건한 진보세력이 만든 새 정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 유력 인사가 나서지 않았음에도 민주당 후보들이 40% 전후를 득표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와대와 여권 일부 전략가들이 차기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인위적 분열을 통해 입법부 전체를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만약 두 개로 쪼개진 민주당이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250석 안팎을 차지하게 된다면 보수를 자임해온 한국당은 소멸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대한민국 정치지형 전체가 좌클릭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당은 적어도 연말까지 비대위 체제를 유지하며 당 재건작업에 나설 전망이다. 그러나 사즉생의 각오로 인적쇄신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홍준표 전 대표가 스스로 마지막 ‘막말’이라며 던진 발언은 이런 점에서 한 번 더 곱씹어볼 만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전 대표가 지난 6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핵심은 “인적 청산 실패에 대한 후회”였다. “고관대작을 지내고 국회의원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추한 사생활로 더 이상 정계에 둘 수 없는 사람, 술주정 부리는 사람, 국비로 세계일주가 꿈인 사람, 카멜레온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변색하는 사람, 감정조절이 안 되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 친박 공천 받고 중립 행세하는 사람, 경력 하나로 소신 없이 정치생명 연명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정리되지 않으면 한국 보수정당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 거다.”
   
   정치컨설팅업체 ‘윈지코리아’ 박시영 부대표는 “한국당의 선택지에 묘수는 없다. 깨지고 부서지기를 반복하며 당분간 혼란이 지속될 것이다. 죽어야 사는 길이 열릴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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